[김정기의 일본이야기16] 유령처럼 떠도는 조선인 이미지
“일본 깡패나 폭력배보다 조선인이 무섭다” 1921년 11월 4일 당시 일본 수상 하라 다카시(原敬, 1856~1921)가 도쿄역 남구(南口)에서 한 청년이 휘두르는 칼에 찔려 암살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범인을 포박한 형사가 대뜸 “너 쵸-센징이지”라는 말을 던졌다는 것이다. 사실 범행을 저지른 건 정치에 불만을 품은 일본인 청년이었지만 경찰은 반사적으로 범인을 조선인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건 경찰뿐만 아니었다. 당시 일본 신문은 하라 수상의 암살을 호외(戶外)로 전하면서 “하라 수상 센징(鮮人)에 찔려/도쿄역전에서 쓰러져” “돌연 군중 속에서...14~15세 조선인 풍(朝鮮人風)의 한 청년이 불쑥 나타나”[大阪朝日新聞, 1921년 11월 4일치 호외]라고 쓰고 있다. 이런 선입견에 의한 오도가 “두려운 존재로서 조선인의 이미지를 널리 번지게 한 것”(水野直樹·文京洙, 2015, 20)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앞의 이야기에서 1923년 9월 일어난 칸토 대지진 때 ‘후테이노센징’이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 등 터무니없는 데마로 조선인이 일본 곳곳에서 떼죽음을 당한 참극을 일깨웠지만 이런 극단적인 사건을 예외로 치더라도 ‘두려운
- 정리=박명기 기자
- 2020-01-20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