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새벽 5시, 찢어질 듯한 오토바이 배기음이 창문을 흔들었다. 폭동인가 싶어 내다본 거리에는 초록과 빨강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동티모르 국기가 아니었다. 이 땅을 지배했던 식민 종주국, 포르투갈의 국기였다. 유로 2016 결승전에서 포르투갈이 프랑스를 1-0으로 꺾던 그날, 딜리는 리스본보다 더 뜨겁게 울었다. 이 기이한 풍경의 정점을 찍은 건 다름 아닌 샤나나 구스망(Xanana Gusmão)이었다. 동티모르 독립 투쟁의 상징이자 초대 대통령인 그 국부(國父)가 거리로 나왔다. 양손에는 동티모르 국기와 포르투갈 국기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식민 지배에 맞서 17년간 정글을 누빈 게릴라 사령관이, 옛 통치국의 승리에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이방인의 눈에는 모순 덩어리다. 왜 독립 영웅이 옛 식민 종주국의 깃발을 흔드는가? 필자도 이 장면 앞에서는 잠시 멈칫했다. 표면적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옆에 붙은 거인, 인도네시아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24년의 불법 점령 기간 동안 전체 인구의 최소 4분의 1을 죽음으로 내몬 인도네시아와 자신들을 구분 짓는 끈이 바로 포르투갈어, 가톨릭, 그
2010년 동티모르국립대학교(UNTL). ‘리더십의 단계와 성격’을 강의하던 날,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내 논리에 정면으로 맞섰다. 반박은 날카로웠고 눈빛은 형형했다. 설전은 종강 벨이 울려서야 멈췄다. 그날 밤, 누군가 자취방 대문을 두드렸다. 낮의 그 학생이었다. 땀에 젖은 채 숨을 고르는 모습에 항의인가 싶어 긴장했으나, 짐작은 빗나갔다. “교수님, 수업 시간엔 제 생각을 다 전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 반대 의견을 가졌는지 설명드리고, 교수님 견해를 다시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우리는 현관 돗자리에 마주 앉아 어둠이 내릴 때까지 대화했다. 권위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끝까지 ‘왜’를 묻는 그 청년. 시간이 흘러 그 순간이 동티모르 민주주의와 만난 날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 세계언론자유지수 아세안 중 1위...숫자가 증명한 야성 그 학생의 당돌함은 우연이 아니었다. 2025년 국경없는기자회(RSF)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동티모르는 180개국 중 39위를 기록했다. 아세안국가 중에 차순위는 태국(85위), 말레이시아(88). 한국은 61위였다. 동티모르의 순위는 전년도 20위에서 크게 하락하긴 했음에도 동남아 1위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치 환경,
2025년 10월 26일, 제47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동티모르가 아세안의 11번째 정회원국으로 공식 승인됐다. 가입 신청 후 무려 14년만의 승인이었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과 호주 북부 다윈 사이에 위치한, 강원도 크기의의 동티모르(수도 딜리Dili)는 인구 142만명의 동남아시아 최연소 국가다. 동티모르는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베일에 싸여있는 나라 중 하나다. 과연 어떤 나라이고, 어떻게 아세안에 가입할 수 있었을까? 왜 이렇게 가입에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 아세안익스프레스는 2008년부터 14년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를 역임한 최창원 교수를 특별 칼럼니스트로 초빙한다. 그는 앞으로 동티모르의 역사와,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 등 비하인드 스토리를 쉽게 술술 풀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주] ----------------------------------------------- 돌이켜보면 2008년 아세안 헌장(ASEAN Charter)이 발효된 이후, 그동안 한 국가도 정식 가입 절차를 통해 회원이 된 적이 없었다. 기존 10개국은 헌장 체제 이전에 합류한 국가였다. 지난 10월 26일, 인구 142만 명의 작은 나라가 아세안 헌장 체제 최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