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원의 동티모르 워치 12] 또 하나의 바티칸, 97.6%가 천주교도
남서쪽 끝자락, 국경 도시 수아이(Suai)의 공기는 유난히 묵직했다. 그 덥고 습한 바람을 맞으며 들어선 마을에서 나는 잊을 수 없는 장면과 마주했다. 조상신이 머무는 신성한 집, ‘우마 루릭(Uma Lulik)’ 앞이었다. 뾰족하게 솟은 전통 가옥의 문앞에 으레 악귀를 쫓는 무시무시한 수호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예수였다. 놀라웠던 건 그 표정이다. 창을 든 전사도, 심판자의 얼굴도 아니었다. 그는 세상 모든 풍파를 다 품어줄 듯 더없이 인자한 미소로 그 토속적인 우마 루릭의 문 앞에 양쪽 기둥에 서 있었다.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그 모습.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들에게 가톨릭은 바티칸에서 건너온 딱딱한 교리만은 분명 아니었다. 척박한 땅과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가장 강력하고 따뜻한 ‘루릭(Lulik, 신성한 힘)’ 그 자체였다. 바티칸 시티라는 특수한 도시국가를 제외하고 동티모르는 종교자유가 있는 국가들 중에 사실상 가장 높은 비율의 가톨릭 신앙을 보이고 있다. 2022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무려 97.6%가 신자다. 딜리(Dili)에도 모스크 돔이 있긴 하다. 하지만 동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