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에서 에너지 전문가들의 토론 자리를 함께하면, 두 개의 진영으로 갈리곤 하는 관점이 있다. ‘그레이터 선라이즈(Greater Sunrise)’를 두고 나오는 다른 어휘들이다.
한쪽은 '주권의 완성'이라 부르고, 다른 쪽은 '승자의 저주'라 부른다. 같은 가스전, 같은 파이프라인을 두고 왜 이렇게 다른 언어가 나오는 것일까?
'주권의 완성'이란 논리는 이렇다. 파이프라인이 동티모르 남해안으로 연결되어 육상 LNG 플랜트가 세워진다면, 그것은 거대 인프라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975년 인도네시아에 강점당하고 24년간 점령 아래 신음했던 나라, 2016년 UNCLOS 역사상 최초의 강제조정 절차까지 동원해 호주를 상대로 해양 경계를 되찾은 동티모르가, 마침내 자국 땅에서 자국 자원을 처리하는 나라가 된다는 것.
수익 지분 70%라는 숫자보다 훨씬 큰 이야기가 거기에 담겨 있다. 플랜트 건설 고용, 기술 이전, 관련 산업 클러스터, 젊은 티모르인들의 자국 일자리다. 이것이 진짜 독립 경제의 시작이라는 논리다. 구스망 총리가 수십 년째 이 입장을 꺾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승자의 저주'론은 그 논리의 반대편을 파고든다. 티모르 해구, 가스전에서 동티모르 남해안 사이를 가로막은 최대 수심 3,000미터의 해저 협곡. 이 협곡을 넘는 해저 파이프라인은 기술적으로 극도로 까다롭고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남해안에 LNG 플랜트를 새로 짓는 데 드는 초기 자본도 수십억 달러 규모다.
문제는 이 비용이 고스란히 프로젝트 경제성에 반영된다는 것. 개발 비용이 올라가면 수익성은 낮아지고, 수익성이 낮아지면 상업적 매력이 떨어지고, 결국 동티모르가 애써 손에 쥔 가스전의 경제적 효용이 줄어든다. 남해안 벨트에 구상 중인 가스 가공 시설은 그레이터 선라이즈 이외에는 마땅한 활용 계획조차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겼더니 짐이 더 무거워졌다'.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나오는 근거다.
세 번째 시나리오도 있다. 가장 어두운 전망이다. 동티모르는 파이프라인을 남해안으로 고집하고, 우드사이드와 호주는 버티는 상황이 계속되어, 그렇게 줄다리기만 하다가 결국 개발이 영구 표류하는 것. 그레이터 선라이즈가 '신기루'가 되는 시나리오다. 1974년 발견 이후 이미 반세기가 그렇게 흘렀다. 역사가 보여주는 시나리오인 셈이다.
세 가지 시나리오 모두 나름의 논리가 있다. 그러나 신기루 시나리오에 대해 필자의 견해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레이터 선라이즈 개발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동티모르의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나 가능할 것이란 관점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권은 국민의 지지로 그 권력을 유지한다. 크고 작은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동티모르의 민주주의는 동남아시아 최상위권의 제도적 면모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구스망의 지지 기반은 여전히 강건하다. 독립 영웅이라는 상징성, 인도네시아 점령기 저항세력의 구심점이었던 역사가 어떤 정치인도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자산을 만들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영웅의 서사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석유기금이 빠르게 줄어드는 나라, 바유운단이 멈춘 나라, 2026년 예산도 IMF 권고치를 4억 4000만 달러 웃도는 나라의 국민들은 어느 순간 묻기 시작한다. “그레이터 선라이즈 약속은 언제 지켜지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그 질문이 쌓이면 정권은 흔들린다. 동티모르에는 프레틸린(Fretilin)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엄연히 존재한다. 프레틸린은 파이프라인 방향 문제에 대해 현 여권보다 훨씬 유연한 입장을 보여왔다. 만약 정권이 교체된다면, 그 새 정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과도한 자본 투자 없이, 호주 다윈 방향으로 파이프라인을 연결해 그레이터 선라이즈를 지금 당장 개발하자. 수익 지분도 오히려 80%로 더 높다. 호주에 대한 불신이 걱정된다면, 더 촘촘한 감시 체계로 대응하겠다.”
석유기금 고갈 국면에 들어선 나라의 국민들이 이 논리에 반대하기는 쉽지 않다. 명분이 선명하고 셈법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그레이터 선라이즈 개발이 영구 표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보는 이유다. 파이프라인이 딜리로 향하든 다윈으로 향하든 개발 자체가 멈출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유력한 대체 경제 수단이 없는 나라에서 이만한 패를 영원히 쥔 채 앉아 있을 여유는 없다.
방향이 딜리냐 다윈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 논리만이 아니라, 동티모르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이기도 하다. 현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면 파이프라인은 남해안으로 향하고 ‘주권의 완성’을 시도하게 된다. 현 정부가 약속을 흐지부지한다면 민심은 야권으로 기울고 파이프라인은 다윈 방향으로 돌아설 수 있다. 어느 경우든 개발은 이루어진다.
개발이 현실화되면 대략 최소 15년에서 30년 분량의 정부 예산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익이 발생한다. 바유운단이 20년간 동티모르 살림을 떠받쳤듯이, 그레이터 선라이즈도 그 역할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동티모르 경제는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른다. “석유기금이 있으니 괜찮다”는 논리로 비(非)석유 경제 개발을 미뤄온 관성이 또다시 반복될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는 다를 것인가? 가스전 수익이 흐르는 15~30년을 농업, 관광, 제조업, 인력 개발에 진지하게 투자해, 그다음 세대가 세 번째 자원 고갈을 마주했을 때 버틸 수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어낼 것인가? 바유운단이 남긴 교훈을 어떻게 소화했느냐가 그 답을 좌우한다.
외국 언론들은 동티모르가 석유기금 고갈 국면에 들어선 것을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모습으로 조망하기도 한다. 재정 절벽, 개발 표류, 지정학적 각축이란 단어들이 기사를 장식한다. 그러나 동티모르의 민주주의 작동 방식에 대한 고려를 더한다면, 그 불확실성의 그림은 생각보다 좀 더 간결해진다. 자원이 고갈될수록 정치는 더 빠르게 움직이고, 민주적 압력은 결국 개발을 향한 선택을 강제한다. 불확실성이 아니라, 방향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석유기금 고갈 국면의 동티모르를 불확실성이 증대된 위험 지역으로만 간주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레이터 선라이즈를 둘러싼 동티모르와 호주의 경쟁과 협력은 자연스럽게 주변국으로도 파장을 넘긴다. 중국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아래 수십 개의 인프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호주는 총리가 직접 딜리를 찾아 지원을 약속했다. 각국은 이미 이 소용돌이를 기회로 읽고 움직이고 있다.
한국 역시 SK E&S가 바유운단 CCS 프로젝트의 핵심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고, 양국 간 관계의 역사도 짧지 않다. 필요한 것은 정치와 경제 간의 역동적 상호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양국 간 발전의 모멘텀을 포착할 준비된 자세다. 자원이 있을 때만 찾아오는 파트너가 아니라, 그 자원이 다 소진된 이후의 경제를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 함께 준비하기에 든든한 파트너, 그것이 한국이 동티모르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장 신뢰받는 위치다.
'주권의 완성'이냐 '승자의 저주'냐 하는 논쟁은, 따지고 보면 파이프라인의 방향 문제가 아니다. 자원을 손에 쥔 나라가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동티모르는 그 질문 앞에 두 번째로 서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시험이었던 바유운단에서의 답이 비석유경제를 준비할 수준은 아니었음을, 딜리의 깨인 소수들은 알고 있다. 똑 같은 반복을 다시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최창원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hopeseller@gmail.com
최창원 프로필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현, 아시아비전포럼 선임연구원
현, 한국스피치웅변협회 동티모르 지부장
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한국학센터장
전, UNDP 아름다운동티모르 만들기 프로젝트 자문관
한글 발전 및 한국어 세계화 공로로 대통령 표창(2025)
『테툼어–한국어 사전』, 『한국어–테툼어 사전』 동티모르 말모이팀 편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