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신국(神國)' 사상이 대두한 배경에는 한반도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어진다. 이미 살펴 본대로 ‘신국’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전설적인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 때 신라왕의 입을 빌려 나왔다는 것은 이미 본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 뒤 ‘신국’이란 말이 나온 데에는 고대 일본 조정이 처했던, 보다 현실적인 사정이 자리한다. 그것이 당시 동아시아의 최대 역사적 사건인 하쿠스키노에(白村江, 이하 ‘백촌강’)의 전투이다. 여기서 말하는 백촌강이란 ‘백마강’ 또는 ‘백강’이라 부르는,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 비빈들이 투신했다는 전설이 서린, 한반도 서남부에서 흐르는 강이다. 이 백촌강 전투는 7세기 한반도에서 일어난 최대의 사건이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나당(羅唐)연합군과 싸움에서 일찍이 없었던 대 참패를 당했다. 당시 백제 부흥을 위해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군이 당한 이 참패는 지울 수 없는 멍에를 안겼지만 오늘의 주제인 일본의 신국사상도 이에 기인한다. 일본의 한 저자는 이렇게 적는다. 수세기에 걸쳐 신라·백제·고구려 삼국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던 조선반도에서는 당과 결합한 신라가 대두하고 660년 양국의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백제의 왕도가 함락되었다. 텐지(天智)
일본이 저들 나라가 신국이라는 이른바 ‘신국사상’은 그것이 일부 극우분자의 망상 또는 환상으로 남아 있는 한 굳이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데 문제의 심각성이 놓여 있다. 이전 이야기에서 필자는 일본사회에서 ‘신국사상’ 도도히 흐르고 있다면서 여느 때는 잔잔한 물결로 남아있지만 여차하면 출렁이는 파도가 된다고 짚었다. 이제 그 현장으로 가보자. 필자는 우선 두 가지 ‘사건’에 주목하고자 한다. 하나는 2000년 5월 15일 당시 수상이었던 모리 요시로(森喜朗)가 일본은 '신의 나라'(神の国)라고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국가의 신수'(日本国家の神髓)라는 책이 2015년 새해 벽두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신국사상의 전거가 된 '국체의 본의'(国体の本義)라는 책을 기리는 해설서 또는 안내서이다. 두 사건에 주목하는 까닭은 ‘신국사상’이 먼 과거의 일이나 군국주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 수상이 지껄인 '신의 나라'(神の国) 발언은 2000년 5월 15일 신도정치연맹(神道政治連盟)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나왔다. 그는 인사말 중에 "일본이라는 나라는
[일본의 신국론(神国論)] 上....천황의 완전무결 군주론-국수주의적 신도론 신앙적 지주 일본에는 저들 나라가 ‘신국’(神国)이라는 ‘사상’이 흐르고 있다. 여느 때에는 잔잔한 물결로 남아 있지만 여차하면 출렁이는 파도가 된다. 군국주의 시절에는 이것이 일본군 무패론으로 둔갑해 수많은 자국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 허무맹랑한 신국 사상은 한편으로는 천황의 완전무결한 군주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국수주의적 신도론의 사상적·신앙적 지주로 활약했다. 이 신국 사상의 근원도 한반도와 인연을 갖는다. 즉, 신공황후의 ‘신라 정토’ 또는 ‘삼한정벌’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이다. 이전 이야기에 보듯이 신공황후가 신라를 쳐들어가 복속시켰다며 <일본서기>는 신라 왕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적는다. “때에 바람의 신이 바람을 일으키고, 파도의 신이 파도를 일으켜, 바다 속의 큰 고기들이 모두 떠올라 배를 도왔다... 노를 쓸 필요 없이 신라에 이르렀다.” “신라의 왕은 벌벌 떨며 어쩔 줄을 몰랐다. 일찍이 바닷물이 저절로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천운이 다하여 나라가 바다가 되는 것은 아닌가... 내가 들으니 동방에 신국(神国이 있는데 일본이라 한다. 성왕(
한민족은 10월 3일을 개천절(開天節)로 이름 지어 ‘국경일’로 기린다. 이날 천신(天神) 환인(桓因)이 아들 환웅(桓雄)과 웅녀(熊女) 사이에 낳은 단군(檀君)으로 하여금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 보내 나라를 열게 했다는 것이다. 이때가 기원 전 2333년 이라 한다. 이웃나라 일본도 어느 특정한 날을 ‘기원절(紀元節)’로 기리는 것은 당연히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일본이 2월 11일을 ‘기원절’에서 ‘건국기념일’로 바꾸었다. 여기에서 정치적 목적성이 드러난다. 뒤에 살피겠지만 천황의 일본지배의 신화적 유래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2월 11일은 어떤 날인가? 이른바 전설적인 진무(神武) 초대천황이 기원전 711년 1월 1일[음력] 즉위했다며, 그날을 양력으로 계산해 정한 날이라 한다. 문제는 일본정부가 전설 또는 신화의 즉위 일을 ‘건국기념일’로 법제화한 것이다. 반복하지만 ‘기원절’이었지만 ‘건국기념일’로 법으로 바꾼 것이다. 신화의 법제화라. 만일 그리스 정부가 올림포스 신화를 법제화했다면 세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러나 일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해마다 2월 11일 ‘건국기념일’ 의식을 성대하게
[일본의 신화: 찬탈적 침략성 2 하(下) 군국주의자 날개 달아준 가공인물 '신공황후'] 신공황후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녀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는 앞에서 보듯이 찬탈적 침략성으로 대표된다. 그것은 남을 해코지하는 요녀와 같은 괴물성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미지에는 적지 않은 인물성의 요소가 겹쳐 있음을 놓칠 수 없다. 전자가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날개를 달아 주기 위해 날조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후자는 오히려 실존적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역의 찬탈적 침략성이랄까? 그녀의 원상을 두고 일본학자들은 몇 가지 설을 내놓고 있다. 그 중에는 왕조교체기에 천황의 이른바 ‘만세일계(万世一系)’의 황통을 잇기 위해 설정된 가공인물이라고 전후 역사학자들이 내놓은 학설도 있다. 부연하면 야마토 왕정의 황통은 제14대 추아이(仲哀)에 이르러 단절되었으며, 그 뒤 전혀 별계의 왕조, 곧 규슈 계의 오진(応神) 왕조가 들어섰기 때문에 후세 두 왕조를 하나로 잇는 가교가 필요해져 신공황후라는 가공인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설은 황국사관이 날조되었다는 점에서 일리는 있다. ■ 또 다른 얼굴의 실존 인물: 한반도 남부에서 건너온 무녀 하지만 나
일본의 신화의 찬탈적 침략성2 상(上) 일제 조선침략 옹호 이데올로기 작용 <기기> 신화에는 천황의 ‘섭정’ 진구코-고-(神功皇后, 이하 ‘신공황후’)가 등장한다. 이 여인은 ‘삼한정벌’ 또는 ‘신라정토’의 영웅으로 상투적인 이미지가 굳어져 있다. 이 이미지는 메이지 시대 이래 근대 천황 상에 내포된 찬탈적 침략성을 상징한다. 필자는 신공황후의 이미지는 애초부터 조선을 표적으로 겨냥한, 저 땅의 지배자들의 마음속에 박혀 그것이 집단무의식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지금도 그것이 일본 사회의 저류로 흐르고 있다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공황후의 삼한정벌 신화는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정한론(征韓論)이 타오르게 한, 불쏘시개 구실을 하는가 하면 일제의 조선침략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한 빌미가 되었다. 이 신화를 따라가 보자. 제14대 천황으로 되어있는 추아이(仲哀)의 제3비가 된 신공황후가 어느날 신탁(神託)을 받는다. “처녀의 눈썹같이 생긴 나라가 바다머리에 있는데 그곳은 눈부신 금, 은, 화려한 색의 재물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이를 ‘다쿠후스마시라기노쿠니’((栲衾新羅国=신라국)이라합니다. 만일 내게 제사를
[일본 신화 정치적 작위성1] 나오키 ‘천양무궁의 신칙’은 조작...천황 통치를 ‘신정' 승화 지난번 이야기에서 이른바 ‘국학’에 이어 그 사상적 기반을 종교적 옷을 입힌 ‘국가신도’, 그 모두가 천황 통치에 부조한다는 점을 짚었다. 그런데 국학의 천황 부조를 뛰어넘어 천황 통치를 ‘신정(神政)’의 위치로 승화시킨 것이 따로 있다. 일본 신화이다. 메이지 헌법은 겉으로는 입헌군주제의 옷을 입히고 있지만 천황의 ‘신성한’ 존재로 못박고 있다. 그 배후에 바로 일본 신화가 밑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유구한 문명을 품은 세계의 민족은 대체로 여러 신화를 내재한다. 그 중에 건국 신화, 종교 신화, 민중 신화가 보편적이다. 무사의 나라 일본에는 영웅 신화도 있다. 앞서 본 스사노오노미고토가 하늘나라 고천원에서 내려와 머리가 아홉 개나 달린 큰 뱀 야마타노오로치(八岐大蛇)를 베어 처녀를 구했다는 이야기라든가 전설적인 영웅 야마토다케루 이야기 등. 글쓴이가 일본 신화에 주목하는 첫째 이유는 그 정치적 작위성이 두드러진다는 데에 있다. 이 정치적 작위성은 천황을 일본의 통치자로서 정당성에 부합하도록 조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 예로서 ‘천양무궁(天壤無窮)의 신칙(神勅)’을
일본의 국학이 천황을 ‘현인신’으로 받는 종교적 뒷받침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국가신도’에도 깊숙이 관련을 맺는다. 국가신도란 무엇인가? 일본의 코지엔(広辞苑) 사전은 이렇게 정의한다. 메이지 유신 뒤, 신도 국교화 정책에 의해 신사신도(神社神道)를 황실신도 아래 재편성하여 만들어진 국가종교. 군국주의·국가주의와 결부되어 추진되고 천황을 현인신으로 하여 천황지배의 사상적 지주로 되었다. 이 단순한 정의가 “메이지 유신 뒤, 신도 국교화 정책에 의해...만들어진 국가종교”라고 했지만 이는 무미건조한 사전적인 의미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국가신도가 종교의 이름으로 이웃나라 조선에 자행한 만행이나 자국민에 저질은 죄상은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헤아릴 수 없는 청년들이 ‘텐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이 정의가 언급한 “군국주의·국가주의와 결부되어 추진되고 천황을 현인신으로 하여, 천황지배의 사상적 지주로..”하여 그 일단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그 영문도 모른 채 죽은 극히 일부가 야스쿠니(靖国) 신사에 ‘호국영령’으로 묻혀 있다고. 문제는 전후 일본 총리라는 자들이 이 ‘영령’에 참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