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김정기의 일본이야기 41] 건국신화의 정치성...신화 속 '천황즉위' 법제화

일본의 눈 41.기원절->건국기념일, 천황의 일본지배 신화적 유래 정당화 정치적 의도

한민족은 10월 3일을 개천절(開天節)로 이름 지어 ‘국경일’로 기린다. 이날 천신(天神) 환인(桓因)이 아들 환웅(桓雄)과 웅녀(熊女) 사이에 낳은 단군(檀君)으로 하여금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 보내 나라를 열게 했다는 것이다. 이때가 기원 전 2333년 이라 한다.

 

이웃나라 일본도 어느 특정한 날을 ‘기원절(紀元節)’로 기리는 것은 당연히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일본이 2월 11일을 ‘기원절’에서 ‘건국기념일’로 바꾸었다. 여기에서 정치적 목적성이 드러난다. 뒤에 살피겠지만 천황의 일본지배의 신화적 유래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2월 11일은 어떤 날인가? 이른바 전설적인 진무(神武) 초대천황이 기원전 711년 1월 1일[음력] 즉위했다며, 그날을 양력으로 계산해 정한 날이라 한다.

 

문제는 일본정부가 전설 또는 신화의 즉위 일을 ‘건국기념일’로 법제화한 것이다. 반복하지만 ‘기원절’이었지만 ‘건국기념일’로 법으로 바꾼 것이다. 신화의 법제화라. 만일 그리스 정부가 올림포스 신화를 법제화했다면 세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러나 일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해마다 2월 11일 ‘건국기념일’ 의식을 성대하게 치른다. 한국의 경우 10월 3일 개천절은 광복절, 삼일절 등과 함께 ‘국경일’[공휴일]의 하나로 기릴 뿐이다.

 

일본의 건국기념일에 함유된 정치적 의도로 돌아가 보자. 이전 이야기에서 한반도를 노린 찬탈적 침략성으로 상징되는 신공황후의 신화가 아직도 그 저류가 일본사회에 흐르고 있다고 짚었다. 뿐만 아니라 천황의 일본지배의 유래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거의 노골적으로 그 저의가 드러나고 있다.

 

■ 건국기념일의 정치적 의도...나오키 코-지로 교수 문부성관리 행태 비판

 

일본신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나오키 코-지로(直木孝次郞) 교수는 예컨대 문부성 관리들이 중·고등교의 역사교과서에 손을 대 건국 신화를 넣으려는 행태를 가리키고 있다. 그가 구체적으로 짚은 것은 1996년 10월 30일 교육과정심의회의 교과과정의 ‘개선’을 위해 「역사에 관한 학습에 대해서 인물이나 신화·전승 등 채택 방법 등에도 고안을 궁리해 전체로서 충실을 기한다」는 자문 답신에 주목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신화·전승 등 채택 방법 등에도 고안을 궁리해’ 라고 되어 있다면서 나오키는 교수는 이것이 문부성 관리들이 규제력을 동원해 바로 ‘천양무궁의 신칙’을 넣으려는 정치적 의도라고 짚는다. 바로 ‘고안을 궁리해(くふう(工夫)を加え)’와 같은 애매한 표현은 규제에 빌미를 준다는 것이다. 즉 문부성의 교과서조사관이 「고안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학습지도요령에 위반이다」라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불합격 시키는 것도 하려면 할 수 있다고.

 

문부성 관리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건국신화를 교과서에 넣으려는지 문부성 차관 나이토 호메사부로(內藤誉三郎)의 발언에서 드러난다. 그는 천양무궁의 신칙이 「우리들 조상의 신앙이나 이상과 희망을 지니고 있는 신화」라며 이를 역사 교육의 소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뇌인다.

 

사회과 문제뿐만 아니라 나는 천황의 지위라는 것은 역사 안에서 해명해 두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좀 전에 든 신화 가운데에도 「토요메아시하라노미즈호노쿠니(豊葦原瑞穗国), 너 황손이여 가서 다스려라. 하늘이 내린 후손의 황위[아마노히츠기(寶祚)]의 번영이 항상 하늘과 땅과 더불어 영원하리라」라는 신칙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서기>나 <고사기>에도 나와 있습니다. 2천년 래 우리 국민들이 부동의 신념으로 받들고 오늘의 헌법에서도 일본국 및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는 형태로 존속되고 있는 것은 나는 정말로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잘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신화 중에 이번 신칙이라는 것을 반드시 포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直木孝次郞, 1990, 122).

 

이것은 문부성 관리들이 천양무궁의 신칙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나 그대로 보여 준다. 나오키 교수는 천양무궁의 신칙이 조작된 경위까지 밝혔지만 문부성 관리들이 이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는 「이 발언이 일본의 신화와 역사에 대한 오류와 왜곡으로 차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고 단언한다.

 

다른 한편 문부성 관리들은 또한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가 지은 교과서가 문부성 검정에서 「‘신대’ 이야기는 물론이고 진무천황 이후 수대 간 기사에 이르기 까지 이미 황실이 일본을 통일한 뒤 황실이 일본을 통치하는 유래를 정당화하기 위해 구상된 이야기이다」라는 부분이 집요하게 삭제를 강요 받았다(위 책, 123)고.

 

 

■ 살아있는 신공황후의 ‘삼한정벌’...고등학교 교과서 《신일본사》 침략사관 부활

 

재일작가이자 한일고대사 연구가인 김달수 씨는 이른바 신공황후의 ‘삼한정벌’ 신화가 겉으로는 모습을 감췄지만 그 저류는 여전이 일본사회에 흐르고 있다며 한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다름과 같은 구절을 따왔다. 즉 그는 황국사관이나 조선을 노린 침략사관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원 3세기 무렵 조선반도의 남부에는 한민족(韓民族)이 그 무렵의 일본과 마찬가지로 소국가군을 형성하여 마한·진한·변한의 세 국가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일본의 통일과 전후한 4세기 전반 무렵 마한·진한은 각각 백제와 신라라는 두 한민족의 국가에 통일되었다.

 

4세기에 들어서면 야마토 정권의 세력은 조선반도에 진출하여 소국가군의 상태로 있던 변한을 영토로 삼고 여기에 미마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설치한 후 391년에는 또 군대를 보내어 백제·신라도 복속시켰다. 반도 남부를 정복한 야마토 정권은 반도의 부(富)와 문화를 흡수해서 그 군사력과 경제력을 강화했으며 국내통일은 이로써 현저하게 촉진되었다(金達寿 日本の中の朝鮮文化. 시리즈 4권, 41~42, 재인용).

 

이것은 일본의 산세이도(三省堂)에서 출간되어 1972년 3월 재판까지 찎어내고 있는 고등학교 교과서 《신일본사》에 적혀 있는 구절이다. 신공황후의 ‘삼한정벌’ 신화의 재판에 다름 아니다.

 

■ 지워진 ‘위안부 강제’...역사 교과서 12종 중 단 한 곳만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성 서술

 

도대체 문부성 관리들이 천양무궁의 신칙과 같은 신화를 넣으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천황의 일본 통치를 정당화 하려는 정치적 의도 밖에 다름이 아니다.

 

이는 일본을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한 황국사관을 정당화하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황국사관은 일본의 수많은 청년들뿐만 아니라 조선을 비롯한 이웃나라들에 끔직한 불행을 안겨준 죄악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언한다.

 

저 유명한 위안부 동원과 같은 역사적 죄악은 저들도 인정하지 않았던가. 1993년 4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은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면서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는 일 없이」, 「역사 교육을 통해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표명한다」는 이른바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그런데도 거의 한 세기가 지난 금년 2021년 이 고노 담화를 무색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내년부터 일본의 모든 고등학생이 배워야 할 역사 교과서 12종 중 단 한 곳만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성을 서술했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본문이 아니라 각주로 「각지의 전장에서는 위안소가 건설돼 일본과 조선, 대만 점령지의 여성이 위안부로 모집됐다. 강제됐거나(오기도 하고) 속아서 연행되기도 한 예도 있다」 서술했다는 것이다. 다른 교과서의 경우 「많은 여성이 위안부로 전지에 보내졌다」 등 간단한 사실관계를 적고, ‘강제’라는 표현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한겨레》 2021년 3월 31일 치 일면 기사)고.

 

이것은 일본 문부과학성이 2022년 4년 동안 사용할 고등학교 역사 총합[종합]·공공·지도책 등 296종의 검정 결과를 30일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는 1996년 당시 문부성 관리들이 ‘고안을 궁리해’를 무기로 써 교과서 검정을 강화해 건국 신화를 넣으려는 행태의 후속편이 아닌가.

 

참고문헌

直木孝次郞, <日本神話と古代国家>, 講談社, 1990

金達寿, <日本の中の朝鮮文化>, 총 시리즈 12권 중 제 4권

《한겨레》 2021년 3월 31일 치 일면 기사, “‘위안부 강제’ 지운 교과서 모든 일본 고교생 배운다.”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외대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이션 학부 명예교수다.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관련기사

포토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