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 칼럼] 니시 아마네-후쿠자와 유기치 등 서구사상 번역한 수많은 언어창제 ‘선각자’
19세기 후반 메이지 시대 일본. 일본인 선각자들은 서양 문물이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올 때 새로운 언어 창작으로 이를 수용했다. 때는 아직 군국주의 일본이 조선에 대한 흑심을 품기 전이었다. 그것이 번역이지 왜 ‘언어 발명’인가에 의아해 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지만 필자의 시각에서 그것은 분명 새로운 언어의 창제이다. 그 까닭은 뒤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간단히 말해 그때까지 없었던 지평에 새로운 단어가 새로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두자.
우선 메이지 일본에서 벌어진 언어 창제의 창문을 열어보자. 당시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라는 지식인이 눈에 들어온다. 네덜란드에 유학한 이 엘리트는 1874년 지금 우리가 학문적으로 쓰는 용어를 다수 창제해냈다. 예컨대 영어의 ‘Science’나 독일어 ‘Wissenschaft’를 ‘과학’으로 번역했다.
그것은 그런 말이 없었던 터에 새로운 언어의 창제나 진배없다. ‘과학’뿐만 아니라 니시는 ‘철학’, ‘예술’, ‘기술’이라는 말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은 지금 이런 말을 기원도 모른 채 항시적으로 쓰는 셈이다.
■ 선각자 후쿠자와 유기치의 ‘민주’ 언어 창제
니시의 동 시대 동료이기도 한 후쿠자와 유기치(福沢諭吉, 1834~1901)는 일본의 게이오 대학을 창설한 선각자였다. 그는 ‘민주’, ‘문명’, ‘권리’, ‘사회’ 등 현대인의 삶의 기초가 되는 말을 만들어내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일본이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었던 ‘Democracy’를 ‘민주’로 번역해냈다. 처음에는 ‘하극상’으로 번역했다가 ‘민주’로 바꾸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일본의 선각자들이 번역해낸 언어는 굳이 미국의 언어철학자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생성문법(generative grammar)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혁명적 현상을 ‘생성’해냈음이 분명하다. 예컨대 1874년 당대 지식인 이다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 1837~1919)가 불붙인 자유민권운동은 ‘민주’라는 언어가 단단히 한몫을 한, 엘리트 발 풀뿌리 민중운동일 것이다.
이런 언어 창제 형 번역은 일본의 봉건주의를 타파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를 진보시키는, 좀 더 사회 차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위에서 든, 니시가 번역한 ‘과학’을 보자. 그 자신 과학철학자 이자 캠브리지 대 강단의 장하성 교수는 이렇게 평가한다.
니시가 그것을 과학(科學)이라 한 것은 날카로운 통찰력을 발휘한 것이다. 온 세상에 대한 진리를 말하려 한 동양의 전통적인 학문과는 달리, 각 과(분야)마다 특수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는 학문이 과학이다. 과학 연구는 각 전문 분야 특유의 ‘패러다임’에 기반한다는, 90년 후에 나온 쿤(Kuhn)의 과학철학 이론을 니시가 이미 예견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중앙일보》 2021년 8월 31일 치, 장하성 “과학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이유”).
언어의 이런 혁명적 기능을 일찍이 간파한 사람은 컬럼비아 대학의 문화인류학자이자 일본전문가인 허버트 패신(Herbert Passin) 이었다. 그는 과도적 이행 사회(transitional society)가 근대화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세 분야에서 ‘타파(break through)’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짚었다. 즉 정치적 및 사회적 개혁, 언어, 그리고 저널리즘이라는 세 분야라고.
그는 과도적 이행사회를 폭 넓게 관찰하고는 근대화를 위해 뛰어 넘어야 할 산을 이렇게 짚은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중국이 1911년 신해혁명이 1919년 5.4운동으로 이어졌고, 19세기후반 20세기 초 인도의 경우 타골이 선도한 벵갈 르네상스는 간디가 이룬 정치발전으로 이어졌으며, 1868년 메이지 유신은 20년 뒤 일본의 ‘문화 르네상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일본 전문가가 주목한 것은 메이지 유신 뒤 일본이다. 그는 일본이 1868년 메이지 유신을 출범한지 약 20년 뒤 ‘문화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면서 그 때 정치 행정 개혁이 먼저 이루어지고, 이어 언어와 저널리즘이 잇달았다고 짚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서구 문물을 표현하는 번역 언어에 주목했다.
■ ‘citizens’을 ‘시민’으로... 일본의 ‘문화 르네상스’ 기폭제
위에서 후쿠자와가 영어 ‘Democracy’를 ‘민주’로 번역함으로써 19세기 후반 자유민권운동을 매개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했지만 그 밖에도 일본의 선각자들은 서구의 사상을 번역한 수많은 언어를 창제해냈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citizens’을 ‘시민’으로 창제 번역한 것은 일본인 선각자들의 번뜩이는 혜안이라고 생각한다.
패신은 ‘시민’이 등장하는데 어려움을 일깨우고는 그 과정을 흥미롭게 추적한다. ‘the people’을 번역하는 ‘본질적 말(generic term)’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물론 사람을 지위나 자격 또는 생물학적은 조직체로서 가리키는 많은 일본어는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근대적인 의미에서 ‘권리(rights)’가 부여된 ‘시민(citizens)’을 충분히 전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사람 또는 ‘서민’=shomin은 윗사람에 의무를 지닌 ‘민’=tami 이었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평민’=heimin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말은 위 서열(higher orders)과 구별되는 아래 서열(lower orders)을 의미하는 말이었다(Passin, 1963, 87).
그밖에 ‘kokumin(国民)’, ‘minzoku(民族)’ ‘jinmin(人民)’ 등을 열거하면서 그러나 이들 말이 여전히 ‘시민’의 뜻을 전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뒤 ‘시민’을 번역어로 내놓았지만 이는 봉건 영주에 대한 대항 권리로서 중세 유럽 도시에서 나온 체험이 결여된 일본에서 의미를 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짚었다. 그러나 그 뒤 ‘시민’은 시간이 흐르면서 ‘민주시민’으로서 자리를 잡아 간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즉 ‘민주’, ‘민권’, ‘시민’과 같은 새로운 언어가 시민의식을 일깨워 드디어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절대적 천황과 신국 사상이 이런 계몽주의 사상과 언어를 무력화 시키고 말았다. 즉 일본 군국주의가 계몽주의 사상과 언어를 압도하고 만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일본의 계몽주의와 언어가 봉건일본의 탈을 벗기고 명실 상부한 입헌 군주제 아래 ‘민주일본’이 자리잡고, 그 과실을 아시아 이웃 나라들과 공유하는데 이르렀다면 아시아의 지도자로서 명예를 누렸을 것이다.
■ 컬럼비아 대학 유학 시절, 필자와 학과장이었던 패신과 교유 추억
필자는 1970년 대 말 컬럼비아 대학에 만학의 유학 시절 패신과 교유한 적이 있다. 정치학과 대학원에 소속된 필자는 일본 정치를 전공한 처지에서 사회학과 과장이었던 패신과 컬럼비아 대학 근처 선술집에서 그를 만나 담소를 나누곤 했다.
그때 그는 40대의 필자를 친구처럼 대했다. 도쿄를 자주 찾았던 그를, 나는 그곳 야키니쿠(燒肉) 집서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2003년 2월 26일 영면했다. 좀처럼 부음 기사에 인색한 《뉴욕타임즈》는 장문의 부고기사를 싣고는 그가 활약한 필생의 일본 활동을 기렸다.
참고 문헌
《중앙일보》 2021년 8월 31일 치, 장하성 '과학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이유'
Herbert Passin, “Writer and Journalist in the Transitional Society”, 《Communications and Political Development》, ed., Lucian W. Pye, Princeton University Press, N.J. Princeton, 1963
《The New York Times》, 2003년 2월 26일 치, “Herbert Passin, 86, Japan Scholar and Writer”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외대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이션 학부 명예교수다.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