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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일본이야기14] 북규슈에 특히 많은 한반도 유래 땅이름

일본어 서사 4: 지명고(地名考)-‘쓰시마’는 두 섬 뜻, 한국어가 기원...가야에서 온 지명 많은 이유

 

일본의 지명은 읽기가 어렵다. 한문으로 표기된 지명은 거의 모두 훈독(訓読)으로 읽는다. 물론 수도 도쿄(東京)나 고도(古都) 교토(京都)와 같이 음독(音読)으로 읽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예외라 할 수 있다.

 

일본어 훈독은 비유적으로 견주면 예컨대 慶州라고 쓰고는 이를 ‘경주’가 아니라 ‘서라벌’이라고 읽는 식이다. 외부인은 이를 알 도리가 없다. 일본 매스컴의 사건-사고 담당 종사자들도 지명사전에 의존할 정도라고 하니 그 난해한 오명은 알 만하다.

 

한반도를 마주하는 쓰시마를 기점으로 전개되는 북 규슈 일원에는 한반도와 인연 있는 지명이 많이 눈에 띈다. 우선 ‘쓰시마’부터 한국어에 유래하는 이름인데, ‘쓰’는 ‘두’, ‘시마’는 ‘섬’으로 두 말을 조합하면 ‘두 섬’이 된다. 예부터 남북으로 갈라진 섬의 지형을 묘사하는 표기이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섬 이키(壱岐)에는 ‘후레(触)’라는 고아자(小字: 가장 작은 단위의 마을)라는 마을이 99개나 있으니 섬 전체가 후레에 다름 아니다. 이 ‘후레’는 한국어 ‘부루·후루’가 진화해서 ‘바루·후레’로 된 것이지만 본래 서라벌’의 ‘벌’에서 온 것이다.

 

북 규슈는 한반도 남부와 지리적으로 일의대수(一衣帶水)의 땅으로 예부터 한반도의 도래인과 인연이 많다. 고대 북 규슈는 츠쿠시(筑紫: 뒤에 치쿠젠(筑前)·치쿠고(筑後)로 나뉨), 토요쿠니(豊国: 부젠(豊前)·붕고(豊後)로 나뉨), 히젠(肥前)이라고 불리는 지방국 땅이다. 지금 후쿠오카(福崗) 현이 중심을 이루는데, 주변의 오이타(大分) 현, 사가(佐賀) 현, 나가사키(長崎) 현 일부를 포함한 땅이다.

 

북 규슈의 동부 즉 ‘肥国’은 ‘고마노쿠니’로 불리고, 서부 즉 ‘豊国’은 옛날 ‘카라쿠니(韓国)’로 읽었다고 북한 사회과학원의 김석형(金錫亨) 교수는 주장한다. 후자 豊国은 지금 토요쿠니라고 읽고 있다. 히젠의 肥는 ‘히’로 읽고 오늘날도 그렇게 읽고 있으나 그러나 肥人을 고훈으로는 ‘히노히토’가 아니라 ‘코마노히토’라고 읽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코마는 고구려나 고려가 아니라 백제라고 그는 풀이하고 있는 것이다(김석형, 1966, 223~226).

 

 

김석형은 일본의 고문헌 <일본령이기>(日本霊異記)에 기록된 ‘豊國法師’를 가노(狩野掖齊)라는 학자에 의존하여 ‘가라구니의 중(韓國僧)’라고 읽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어 그는 옛날 일본의 언어학자 가나자와 쇼자부로(金沢庄三郎)의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인용하여 ‘豊国’을 코마노쿠니로 읽었다고 일깨우고는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고 있다.

 

<일선동조론> 9페이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또 <만요슈-> 「구훈에는 <肥人>을 <고마히도>로 읽어오고 있다. ...기츄(契沖)의 대장기(代匠記)에는 <肥人>을 고마히도라고 토를 단 까닭은 <高麗人(고마)>의 뜻이 겠는가 <肥>를 <고마>라고 읽는 뜻을 아직 모르겠다...」라고 하였다(김석형, 위 책, 234).

 

위에서 보듯이 북 규슈 일원에는 한반도와의 인연은 무엇보다도 한반도에 유래하는 지명이 특히 많다는 것이다. 일본 지명에 밝은 타니카와 켄이치(谷川健一)가 지명이란 ‘대지에 새겨진 인간의 과거 색인’(大地に刻まれた人間の過去の索引’이라 한다(谷川健一·金達寿, <地名の古代史>, 2012, 22).

 

그가 재일작가이자 고대사 연구가인 김달수와의 대담에서 나눈 문맥에서 보면 그 ‘인간’이란 한반도에서 온 이주민을 말하며, 그들이 일본 열도 각지, 특히 북 규슈에 새겨 놓은 지명이야 말로 그들 이주민의 역사를 새기는 색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규슈는 조선반도에 가장 가깝습니다. 이것은 결정적인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과 같이 교통기관이 발달하지 않고, 지리적 제약이 다른 조건보다도 월등했던 시절에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이 가장 문화의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마타이 국을 기내로 가지고 간 논자들은 이런 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규슈가 조선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가까운 곳에 우선 외래문화가 뿌리 내리는 것, 이는 매우 자연스런 것이지요(谷川健一·金達寿, 2012, 17).

 

■ 이주민이 새겨 넣은 지명: 장산곶처럼 ‘구시’는 한국어 ‘곶(コス)’에서 온 말

 

한반도 이주민이 새겨 놓은 지명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타니카와가 먼저 짚은 것은 ‘구시(串)’라는 말이 붙은 지명이다. 그 지명은 나가사키(長崎) 현에 가장 많고, 가고시마(鹿児島)에도 ‘구시마(串間)’라든가 ‘구시키노(串木野)’ 등이 있다. 애히메(愛媛) 현에도 적지 않고, 기슈(紀州)의 구시모토(串本)도 ‘구시’의 예. 카가와(香川) 현 다카마츠(高松) 서쪽의 오쿠시반도(大串半島)가 있는데, ‘커다란 구시’[大串]라는 뜻이다.

 

 

구시는 한국어 ‘곶(コス)’에서 온 말이다. ‘곶’이란 바다가 육지로 파고들어 온 곳을 말하는데, 예컨대 한국의 인기가곡에 등장하는, 평양 서쪽 해안의 유명한 ‘장산곶’을 들 수 있다. 후나코시(船越), 즉 오후나코시(大船越)·고후나코시(小船越)의 경우, 이는 ‘구시’가 “다시 배를 짊어지고 넘는다”[船越]는 뜻으로 변한 것이라고.

 

위에서 유명한 장산곶을 들었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필자가 사는 서울 강북 지역 이문동(里門洞) 북쪽에 석관동(石串洞)이라는 이름의 지역이 있지만 이 석관(石串)의 옛 토착어는 ‘돌[石] 곶이[串]’로 지금도 자히철 4호선에 ‘돌곶이’ 역이 남아 있다.

 

재일 작가 김달수는 <일본 속의 조선문화>라는 시리즈 물에서 그는 북 규슈의 한국 지명에 주목했다. 규슈와 한반도 남부는 ‘동일문화권’이라며 점점이 박힌 지명을 열거한다. 그가 주목한 지명을 따라가 보자.

 

■ 와지로(和白)-신라에서 익은 ‘화백’...‘타타라’는 백제 성명왕 후손

 

한반도 남부에서 북 규슈로 오는 뱃길에서 이주민은 하카다(博多) 만 주변을 거쳤을 것이다. 후쿠오카 시 북쪽에 우미노나카츠미치(海ノ中道)라는 좁고 긴 반도가 돌출해 있는데 그것이 시가 섬[志賀島]이다. 그 섬 남쪽의 옛날 나국왕(奴国王)의 유명한 금인(金印) 출토지이다. 거기에 ‘漢委奴国王金印發光之処’라는 석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것이 유명한 금인출토를 기념해 세운 것이다. 이 시가 섬 끝에 와지로쵸(和白町)란 곳이 있다. 이 와지로란 무엇인가?

 

와지로는 일본어 훈독이지만 한국어를 읽으면 ‘화백’이다. 이 화백은 한국인이라면 익숙한 신라어로, 평의(評議)란 뜻이다. 이 화백이란 지명이 토요쿠니(豊国)가 자리한 북 규슈에 있는가? 그것은 신라 이주민이 귀소본능에서 유래한 것이리라. 옛날 고대 삼국의 하나인 신라는 처음 사로국의 여섯 족장의 연합이었으며, 그 연합의 평의가 ‘화백’이었던 것이다.

 

위에서 豊国을 옛 훈독으로 ‘카라쿠니(韓国)’로 읽었다고 언어학자 카나좌와 쇼자부로를 인용했지만 그것은 실로 신라였다. <일본지명학연구>로 유명한 나카지마 토시이치로(中島利一郞)는 “와지로(和白)는...의회를 의미하는 신라어였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다시 시가 섬으로 돌아와 와지로에서 하카다 만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카시이쵸(香椎町)가 나오는데 거기에 드넓은 신역을 갖춘 카시이궁(香椎宮)이 자리 잡고 있다. 와지로는 옛날 카시이 신궁의 신령(神領: 신사에 속한 밭이나 논)이었다 한다. 카시이궁의 ‘카시이’란 한국어인 쿠시후루, 쿠시이에서 온 것이다. 츠쿠시 유가카(筑紫豊) 씨의 <츠쿠시문화재산보>을 보면 카시이궁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필자는 이 사당에 참배할 때마다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전해지고 있는 카시이 행궁(行宮[안구]: 임금이 행차 때 묶는 별궁-필자)의 일을 생각한다. 카시히의 지명 시원은 이 지방에서 츄아이 천황의 관(棺)에 걸어 놓은 메밀잦밤나무의 열매[椎の実]가 향내를 뿜어내기 때문에 ‘칸바시이’[냄새가 좋은]의 준말이라는 전설이 있지만 이 지명은 진무천황 즉위 지명의 카시와라와 함께 천손강림의 지명 쿠시후루, 쿠시이와 동형으로 한국의 왕도(王都)의 뜻으로 풀이되며, 고대사 상 반도와의 관계가 깊은 신공황후, 오진 천황의 성격 해명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金達寿, 1986, 208 재인용).

 

이 저자가 “고대사 상 반도와의 관계가 깊은 신공황후, 오진 천황의 성격해명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라고 시사적으로 언급하는데 그쳤지만 이 모자가 한반도 계라고 지적하는 일본 학자들도 적지 않다.

 

와지로 근처에 있는 타타라(多田羅)나 타타라카와(多多良川)도 한반도와 인연 깊은 지명이다. 타타라란 고대 철의 제련법인 타타라[후이고(踏鞴): 풀무]와 통하지만 또한 고대 한반도 남부 소국 타라(多羅)와도 통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야요이 시대 이주민이 가져온 도작문화는 제철문화를 동반한다는 의미에 본다면 ‘타타라’는 이주민과 깊은 인연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이 타타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일본 중세 규슈와 츄고쿠(中国)를 지배했던 오우치 요시다카(大內義隆, 1507~1551)의 가문 오우치 씨는 타타라와 인연이 깊다. <일본역사대사전>에 의하면 “스이코(推古) 천황 19년 백제 성명왕(聖明王)의 제 3자인 린쇼태자(琳聖太子)가 스오국(周防国, 현 야마구치 현) 타타라 해변[타타라하마(多多良浜)]에 닿아 그 자손이 같은 지방 오우치무라(大內村)에 살았기 때문에 성(姓)을 타타라(多多良), 씨(氏)를 오우치(大內)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스이코 19년 이라면 7세기 초 611년의 일인데, 린쇼태자가 어떻게 스오국 타타라 해변에 닿았는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이름 없는 해변에 닿았기 때문에 그곳에 ‘타타라’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다음으로 주목을 끄는 곳은 스쿠(須玖) 유적이다. 후쿠오카 이다즈케(板付) 공항이 있는 이다즈케 대지는 한반도의 논농사가 처음 시작된 곳으로 유명하지만 그곳에서 서남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스쿠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고대 이주민 호족들의 무덤 떼로 보이는 야요이 시대 분묘가 일천여 기(基)가 밀집되어 있어 츠쿠시 토요씨는 ‘야요이긴자(弥生銀座) 스쿠유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쓰쿠시 씨는 이 스쿠가 한국어 ‘스쿠’(スク: 시골)에서 온 촌락의 의미라고 풀이하고 있다.

 

 

■ 가라·가야: 한반도 남부 가야 또는 가라에서 온 지명

 

그밖에도 한국어에 온 지명은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위지왜인전동이전」에 나오는 나국(奴国)의 나(那)의 경우 한국어 라(羅)에서 온 것으로, 그것은 신라, 가라, 다라의 이름에서 보듯이 나라 또는 국토라는 뜻이다.

 

이토(系島) 반도에 있는 여러 ‘바루,’ 즉 마에바루(前原), 가스가바루(春日原), 나카바루(仲原), 히라바루(平原), 토바루(唐原)의 ‘바루’는 한국어 서라벌(徐羅伐), 서나벌(徐那伐), 서벌(徐伐)에서 보듯이 ‘벌’에서 오는 지명이다. 이들 지명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가야 또는 가라에서 온 지명일 것이다. 또 ‘세부리’ 또는 ‘스와라’란 지명도 주목을 끈다.

 

이토시마 반도 한가운데 솟아 있는 가야산(可也山), 그 주변의 가후라(可布羅), 가후리(可布里), 케야(芥屋)라는 지명은 한반도 남부의 가야 또는 가라에서 온 것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카사 마사오(笠政雄) 씨는 <카라고>(韓良考)에서 가야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남제서>(南斉書)에는 가라국(加羅国), <북사>(北史)에는 가라국(迦羅国), <삼국사기>에는 가락(駕洛)·가락(伽落)·가야(伽耶)·가야(加耶)로 쓰고 있는 것은 어느 것도 카라(カラ)및 그 전와된 카야(カヤ)의 음역(音訳)이다...

그런데 나의 향토 이토시마의 땅을 널리 생각해보면 지금의 기타자키(北崎) 땅을 옛날 카라향(韓良鄕)라고 부르던 것 밖에도 똑같이 <와묘쇼>(和名抄 또는 倭名銷: 倭名類聚銷의 약칭, 일본 최초의 漢和辞典--글쓴이)에 나오고 있는 케야고(鷄永鄕)가 있고, 그보다 오랜 나라시대에 <만엽집>(万葉集)에 나오는 가야산(可也山)이 있다. 케야(鷄永)는 이설이 있긴 해도 시마향(志摩鄕)의 추정에서 지금의 케야(芥屋)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산이 많은 경우 지방의 대표로서 보게 되어 이를 대표 격 이름이 붙여진 지방 명을 가진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가야산의 가야 호칭도 또한 지방적 명칭이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 카라(韓(良)·케야(鷄永)·카야(可也) 세 옛 지방의 이름이 카라(カラ) 계통의 지명인 것은 누구라도 생각이 미칠 것이다. 카야(カヤ)와 카라(カラ)와의 혼동전화는 전술한 조선의 고지멍에서 이미 볼 수 있는데다 카야(カヤ)가 케에(ケエ) 또한 케야(ケヤ)로 전해지는 것은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金達寿, 1986, 221 재인용).

 

내가 감동한 것은 카사 마사오 씨가 토로한 향토와 연관된 카라에 대한 짙은 향수가 배인 인간의 감정이다. 그는 위에서 ‘나의 향토 이토시마’라고 부른데 이어 다시 ‘우리 시마반도’라고 부르면서 ‘카라’와 연관 지어 이렇게 계속한다.

 

옛날 <와묘쇼>나 <민부쇼즈초>(民部省図帳)에 시마군(志摩郡)이라 불리었던 땅을 생각건대 이 카라 계통의 세 지방[카야·케야·카야]을 획으로 이어간 가상선仮想線)은 동과 서와 북, 거의 주요부를 더할 나위 없이 화사하게 꾸민 것이다. 만일 시대를 죽 고대로 거슬러 올리면 이 시마군이야 말로 카라군(韓良郡)으로도 불리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것은 외곬으로 천착한 억측인지도 모르지만 문헌 없는 유사(有史)이전이라면 이 땅은 크게 카라(カラ) 땅으로 불리었던 것이 아닐까. 일곱 고을[七鄕]의 비교적 새로운 이름과 견주면 카야(加也) 이름이야말로 먼 옛날부터 변하지 않는 저 산의 웅자(雄姿)와 같이 오래된, 지금 물을 나위도 없는 선주민족의 한 조각[一片]의 기념으로서 오래고 오랜 말이 수수께끼와 같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만일 대륙을 향해 뛰어 나온 우리 시마반도가 카라(カラ)인가 카야(カヤ)로 불리었다면 이 땅은 고대 조선민족의 점거지이든가 식민지는 아니었을까...(위 책, 222).

 

 

<삼국지> 「위지왜인전」편에 이토국(伊都国)과 나국(那国)이 나오지만 그 사이에 드넓은 사와라(早良) 평야가 있다. 그 사와라의 이모리(飯盛) 유적에서 1984년 12월 왕묘에 버금가는 커다란 무덤에서 최대급 독널[甕棺]이 발견되어 일본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것이 「왜인전」에 기록이 없는 사와라 국의 ‘왕묘’인가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그 ‘사와라’의 어원에 대해 고고학자 하라다 다이로쿠(原田大六)는 한국어 ‘서울’에서 온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이모리 유적이 있는 이모리 산과 함께 거기에 포함된 세후리(背振) 산지의 세후리도 사와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어 ‘소우루’에서 온 것이라고.

 

이토국과 나국 사이에 사와라 평야에 1984년 ‘최대급’ 독널 무덤이 발견되어 그것이 사와라 왕국에 걸맞은 것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게다가 부장픔으로 고대 한반도 남부제의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동검·곡옥이 세트로 발견되어 이른바 ‘삼종의 신기’[천황 정통성을 보증하는 세 가지 보물]의 최고례(最古例)가 출토된 것으로 이것은 1972년 3월 야마토 아스카에서 다카마츠총 벽화고분에 못지않은 커다란 고고학적 발견으로 평가된다.

 

결국 이렇게 보면 한반도 남부 가야인들이 새겨 넣은 그 많은 고국의 지명이야말로 일본의 고대사에서 이주민 삶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했음을 증언하고 있지 않는가. 이 증언은 우리가 이전 이야기에서 신라 왕자 아메노히보코 세력이 북 규슈 이토반도에 세운 무축왕국을 비롯해 사와라 왕국을 세운 것에서 뒷받침되고 있지 않는가. 그런대도 일본의 주류 고대 사가들은 한반도 패싱을 일삼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참고문헌

김석형, <초기조일관계연구>, 사회과학원 출판사, 1966

金達寿, <古代朝鮮と日本文化: 神々のふるさと>, 講談社, 1986

谷川健一·金達寿, <地名の古代史>, 河出書房新社, 2012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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