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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일본이야기29] 가나자와 쇼-자부로의 ‘일선동조론’

일본인은 누구인가 12. 일본의 조선관: 가나자와 쇼-자부로의 일선동조론

 

일본의 조선관에는 부정적 면이 두드러진다. 황국사관-식민사관 등 침략사관이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놓칠 수 없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지난번 이야기에서 일본의 옛 언어학자 가나자와 쇼-자부로(金沢庄三郎)가 밝힌 풍국(豊國)의 훈독론을 살펴보았지만, 그는 조선을 ‘문명국’ 또는 ‘신국’이라고 짚고 있다.

 

일본의 이름난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로 알려진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는 고대한일 관계에서 일본인의 조상이 조선반도 도래인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그뿐만 아니다. 조선의 도자기를 흠모해 ‘미의 나라 조선’(김정기, 2011)을 음미하고 심취한 아사카와(浅川) 형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와 같은 일본인도 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가나자와 쇼-자부로가 주장한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에 함유된 조선관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 김석형 교수 “일선동조론은 ‘반동 리론’...조선 이주민 열도 진출 증명할 뿐”

 

북한의 김석형 교수는 문제의 일선동조론을 지목해 ‘반동리론’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이른바 일선 《동조론》은 일제의 우리 민족에 대한 말살 정책에 복무한 반동 리론이다. 그것은 조선 사람도 일본화되어야 한다는 황당무계하고 극악 무도한 식민주의 《리론》이였다. 조선과 일본이 동조인 것이 아니라 일본인의 조상이 조선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리하여 《동조론》의 저자가 끌어대는 자료 중에 정확하다고 보이는 것은 거의 모두가 량 민족의 《동조》임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조선 이주민들의 일본 렬도 진출과 그 곳에서의 거대한 력사적 역할을 증명할 뿐이다(김석형, 1966, 227).

 

글쓴이는 김석형의 평가는 좀 지나친 이데올로기적 레토릭을 빼면 사실 그대로라고 생각한다.

 

‘일선동조’가 일제의 조선 강점에 이용되어 내선일체(內鮮一体)나 황민화(皇民化) 운동에 적극적으로 이용된 용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캠페인은 물론 전쟁에 총받이로 조선 청년을 동원하려는 목적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일선동조론’을 마냥 타기해야 할 ‘반동 리론’일까? 가나좌와가 주장한 ‘동조론’의 실체에는 풀어야 할 의구심이 존재한다.

 

먼저 가나좌와가 1929년 출간한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은 담고 있는 내용에 주목해 보자.

 

 

이 책은 서설(序說) “조선은 문명국이다”로 출발한다. 이어 제1장은 “조선은 신국(神國)이다”로 시작한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무슨 내용이 담겼나? 또 이 책이 말하려는 주제는 무엇인가?

 

책 전반부인 서설부터 제5장까지를 읽는다면 “「흐릿하지만 우리나라 말[일본말]과 대륙 여러 나라 말 간에 존재하는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 이해한 뒤, 후반부인 제6장부터 제10장까지가 ‘본제(本題)라고”(石川遙子, 2014, 227). 이제 서설의 문명국 론과 제1장의 신국 론에서 그가 주장한 말에 다가가 보자.

 

「옛 조선은 문명국이다. 우리나라로 보아 특히 그렇다」 고 서설은 운을 띤다. 조선은 금은보화로 은혜를 받은 부자나라[豊かな国]다. 규슈 땅은 일한교통 상 요충이며, 신라 세력이 쓰쿠시(筑紫: 옛 규슈)에 미쳐 쿠마소(熊襲) 등을 도와주게 되었다. 신라인은 후대를 받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꺼이 조선관계 이름을 붙였다. ‘소쓰히코’나 ‘사데히코’는 쿠마소와 신라에 공통하는 ‘소(ソ)’라는 민족명을 담은 ‘소’ 족의 남자라는 의미로 일종의 칭호이다. 그러나 백촌강(白村江)에서 일본이 패퇴하자 점차 백제 출신은 꺼리게 되고 본성을 피해 새로운 성을 원했다(石川遙子, 위 책, 같은 면).

 

■ 가나좌와, 서라벌 ‘소’ 언급 “일본인의 조상이 한반도에서 왔다”고 주장

 

글쓴이는 <일선동조론>에서 특히 제3장에 주목한다. 이 장은 이른바 신대사(神代史)에 보이는 조선에 대한 기술은 천손강림은 히무카(日向)의 타카치호노미네(高千穗峯, 이하 ‘타카치호 봉우리’)이며 나라의 형세를 높은 곳에 보아 나아갈 방향을 정한 것이라고 한다. 이어 가나좌와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스사노오노미고토(素盞鳴尊)이 신라국 소시모리(曾尸茂梨)로 내려왔다는 것은 <일본서기>에 실려 있어 상대(上代) 일선관계 상 가장 귀중한 기록이다. 소시모리의 땅은 낙랑(樂浪)의 산이나 춘천이 아니라 <석일본기>(釈日本紀)에 적혀 있듯이 신라의 도읍, 즉 지금의 경주이다. 종래 학자는 스사노오노미고토가 먼저 오오야시마구니(大八洲国=일본의 고칭)으로 내려오고 그 뒤 신라로 건너갔다고 주장해오고 있지만 그것은 신들이 타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조선반도를 거쳐 우리나라로 건너오게 된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겨 이를 극력 회피한 것이다. 「海北道中」의 해석도 될 수 있는 한 조선을 언급하지 않고 신대사를 설명하려고 하는 학풍에서 일어난 것이다. 해북(海北)이란 조선이며, 해북도중이란 조선에 왕래하는 도중에 다름이 아니다. 삼 여신을 해북도중에 내려 보내 천손을 수호한 것은 천손이 조선에서 해협의 섬을 거쳐 히무카의 타카치호 봉우리에 이른 것을 암시한다. 신대에서 카라쿠니노시마(韓鄕之島, 이하 ‘섬나라 한국’)와 오오야스시마구니)는 이토록 밀접한 관계[間炳]에 있고 오오야스시마 중에 섬나라 한국이 포함되었다는 역사가의 설명도 부정할 수 없다(石川遙子, 위 책, 228).

 

이는 일본의 주류 역사가들이 아무리 부정해도 가나좌와는 일본인의 조상이 한반도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가나좌와는 신라의 민족명 ‘소’를 중시한다. ‘소’라고 했지만 이는 서라벌(徐羅伐)의 ‘서’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오규-소라이(荻生徂徠, 1666~1723, 에도 중기의 유학자--글쓴이)가 소는 오랑캐[夷]이며, 에조(蝦夷)는 그 종이라고 했는데, 쿠마소(熊襲)의 소는 한 종족명으로 신라의 사(斯)와 동계이다. 소노카라카미(園韓神)는 曾韓神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 계통에 속하는 ‘아소(阿蘇)’, ‘이소(伊蘇)’, ‘이세(伊勢)’, ‘우사(宇佐)’, ‘여사(余社)’ 등은 민족명 ‘소’ 및 그 비슷한 음[類音]을 이름으로 한 것이며, 우리 민족 이동사(移動史)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땅이다(위 책, 230).

 

■ 김달수, 신라의 ‘민족명 소’ 들어 “한반도 도래인이야 말로 일본민족의 조상”

 

그런데 재일작가이자 고대사 연구가인 김달수 씨는 이 ‘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소라고 하는 신라의 본래 이름[原戶]이라는 것에 대해 이 때 확실히 해두고자 합니다만 언어학자 카나자와 쇼-자부로 씨는 그것을 신라의 ‘민족명 소’라고 하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교토부의 단고(丹後)에는 요사(与謝)의 우미(海), 아소(阿蘇)의 우미(海)가 있으며, 与謝는 余社(요사)라고도 쓰는 것으로 지금이라도 그 말이 그대로 살아 있기도 하지만 그 余社에 대해서 카나좌와 쇼-자부로 씨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余社는 와묘-쇼-(倭名抄) 단고국 与謝郡의 땅으로 유라쿠 천황 22년기에는 단바국(丹波國) 余社郡이라 적는다. 단바국의 5군을 떼어서 비로소 단고국을 둔 것은 와도(和銅) 6년으로 그보다 이전은 단고국이었다. 단고국의 요사군( 与謝郡)의 아마노하시다테(天梯立)는 이사나기 신(伊射奈芸命)이 하늘로 통하기 위해 만들어 세운 것을 넘어뜨린 것이기에 그 동쪽의 바다를 与謝, 서쪽의 바다를 阿蘇라 한다고 풍토기에 보이며, 또한 천조대신을 다니와노요사노미야(但波吉佐宮)에 4년 간 제사 지내며 모셨다는 것도 적혀 있어[<倭姬世紀>], 옛날에는 유서 깊은 땅이라 보이고, 요사(ヨサ), 아소(アソ)의 이름은 민족명 소(ソ)와 통하는 곳이다.

 

이상 아소(阿蘇), 이소(伊蘇), 이세(伊勢), 우사(宇佐), 요사(余社) 등 어느 것이든 우리 민족이동사[我民族移動史]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땅이며, 게다가 민족명 소 및 그 밖의 유사한 말이 되고 있는 것은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이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金達寿, <古代朝鮮と日本文化: 神々のふるさと>, 1986, 40).

 

 

여기서 가나자와 쇼-자부로가 말한 ‘우리 민족이동사’의 ‘우리민족’은 일본민족이지만 실은 한민족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면 그 역시 바로 한반도 도래인이야 말로 일본민족의 조상임을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그의 조선관이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간취하고도 남음이 있게 된다.

 

참고 문헌

김석형, <초기조일관계연구>, 사회과학원 출판사, 1966

金澤庄三郎, <日鮮同祖論>, 刀江書院, 昭和四年[1929]

石川遙子, <金沢庄三郞>, ミネルバ書房, 2014

金達寿, <古代朝鮮と日本文化: 神々のふるさと>, 講錟社, 1986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외대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이션 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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