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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일본의 눈7] ‘와다츠미’에 왜 ‘바다’라는 신라어가?

김정기 교수가 쓴 일본이야기. 쓰시마의 명신대사에 얽힌 진실

 

우리는 쓰시마-이키 라는 작은 섬에 신사로서 명성이 높은 시키나이샤(式內社)가 유난히 많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하면 <엔기시키>(延喜式) 신명장에는 쓰시마에 29사, 이키에 24사의 시키나이샤가 기록되어 있다. 이전 이야기에서 보듯이 전체 2861사의 시키나이샤가 모신 제신은 3132좌에 이른다.

 

이 신들은 ‘메이진’(名神, 또는 明神, 이후 ‘명신’)으로 불리며, 이 신들을 모신 신사는 ‘명신대사(名神大社)’가 된다. 명신이란 영험을 나타낸 신의 뜻으로 조야의 숭경을 받는 신을 말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명신은 쓰시마를 통해 한반도에서 건너간 신[海神(와다츠미 신)]들의 웃어른 격이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쓰시마의 명신대사에 얽힌 줄거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명신대사는 신사의 품격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나?

 

■ 일본은 신의 나라…팔백만 신과 함께 산다

 

일본은 신의 나라라고 할만하다. 열도 곳곳에 가지가지 신들이 묵고 있는 신의 나라이다. 이 신들은 열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신사는 물론이고, 산의 숲[모리(森])이나 바위 또는 나무에 깃들이기도, 사람들에 지피기도 한다.

 

이렇게 곳곳에 두루 묵고 있는 일본신의 편재현상을 무로마치(室町) 시대[1392~1573] 신도가인 요시다 카네토모(吉田兼俱(1435~1511)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두가 신령(神靈)이니라”라고 일깨웠다.

 

일본의 옛 사서(史書)인 <고사기>(古事記, 712)에는 ‘야오요로즈노카미’이라는 표기가 나오는데 이는 팔백만 신(八百万神)의 훈독(訓讀)이다. 이들 ‘팔백만 신’을 <고사기>의 경우 ‘카미(神)’ 또는 ‘미코토(命)’으로 부르지만, 천황의 신성(神性)에 중점을 둔 <일본서기>(日本書紀, 720)의 신대권(神代券) 신화에서는 ‘미코토’를 구분하여 지고(至高)의 신을 尊(미코토)으로, 나머지를 命(미코토)으로 부른다.

 

‘팔백만 신’이라는 숫자를 훌쩍 뛰어 넘는 표현도 등장한다. <이즈모국풍토기>(出雲国風土記)에 의하면 ‘천신 천오백만, 지신[地祇] 천오백만’이라고 적고 있다. 이들 표현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신들이 저 땅에 있는지 어리둥절케 하지만, 이는 숫자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나는 이 ‘팔백만 신’의 배경에는 한토 무교의 만신(萬神)사상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 수많은 신과 소통하는 무녀를 ‘만신’이라 부르듯 이 만신사상이 일본에 건너가 ‘팔백만 신’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에 반해 이들 신의 고향인 한토에서는 외래 종교인 불교, 그리고 뒤에 유교의 종교적 내지 정치적 이데올로기아래 철저하게 배척당해 겨우 명맥만이 민간신앙의 형태로 남아 있게 된 형편이다.

 

이 ‘팔백만 신’에 대하여 메이지(明治)기에 일본에 온 영국의 영문학자이자 문필가인 라프카디오 헌(Rafcadio Hearn [일본명, 고이즈미야쿠모(小泉八雲)], 1850~1904)은 일본에서 처음 받은 강한 인상이 ‘팔백만 신’이라 면서 ‘별의 별 신’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마을의 신, 땅의 신, 지역의 신, 일월신(日月神), 각종 기능의 신, 상업 농업의 신, 군인, 지배자, 정치가의 신, 샘의 신, 부엌의 신, 냄비 솥의 신, 문짝의 신, 밥통의 신, 마당의 신, 허수아비의 신, 다리의 신, 나무의 신, 냇물의 신, 길의 신…별의별 신이 다 있는 것이다<신령의 일본>(靈の日本).

 

■ 신의 계급, 신사의 품격…상위 칸페이사와 하위 코쿠페이사

 

독특한 것은 일본인의 경우 인간이 신의 계급[신위]을 정할 뿐만 아니라 신을 모시는 신사의 품격도 가른다. 예컨대 전국적으로 3만 2000여 채의 분사를 자랑하는 후시미이나리(伏見稲荷) 신사의 제신인 이나리신은 정일위(正一位)를 부여받고 있다. 카토리신궁(香取神宮)의 후쓰누시 신(経津主命)의 경우 정일위훈일등(正一位勳一等)으로 되어 있다.

 

후쓰누시 신은 천손강림 신화에서 타케미카즈치 신(武甕槌神)과 함께 천상에서 파견신으로 내려와 아시하라나카츠국(葦原の中つ国, 갈대 벌 한가운데의 나라, 즉 옛 일본의 별칭으로 볼 수 있다–글쓴이)을 평정해 오오나무치 신(大己貴命, 이즈모(出雲)대사의 제신인 오오쿠니누시 신(大国主神의 별칭–글쓴이)을 위협해 황손에 나라를 양보케 했다는 신이다. 그 결과 황손이 이 세상의 통치를 맡게 되고 오오쿠니누시는 저 세상[幽界]의 일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신사의 품격은 시키나이샤에 적용된다. 우선 칸페이(官幣)와 코쿠페이(国幣)로 나뉘고, 다시 대사(大社)와 소사(小社)로 나뉜다. 이들이 칸페이대사, 칸페이소사, 고쿠페이대사, 고쿠페이소사라는 네 품격의 신사이다.

 

여기서 말하는 칸페이란 도읍에 가까운 하후리(祝), 즉 신직(神職)들이 직접 신기관(神祈官)에 출두해 칸페이(官幣=관[조정]에서 주는 공물)를 받은 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도읍에서 먼 지방국[国]의 신사들은 지방관[国司]에게서 코쿠페이(国幣=지방관이 주는 공물)를 받았기 때문에 코쿠페이샤로 부르게 되었다. 그 결과 결국 신사의 품격으로 상위의 칸페이사와 하위의 코쿠페이사로 나뉘게 된 것이다.

 

■ 쓰시마에는 와다츠미 신이 섬 곳곳에 들어서 있네

 

그런데 쓰시마에는 ‘와다츠미’ 신이 섬 곳곳에 들어서 있다[진좌(鎭座]. <엔기시키> 신명장에는 상현 2좌[1좌는 와다츠미미코 신(和多都美御子神)], 하현에 2좌의 와다츠미신사가 보인다. ‘와다츠미’란 신명은 <고사기> <일본서기>[이하 <기기>] 신화에 海神라고 쓰고 ‘와다츠미’라고 읽으라고 이른다.

 

쓰시마 신들에 신위를 내린 것은 일본 최초의 사료인 <속일본후기> 죠와(承和) 4년[837] 2월 5일 조에 보이는데, 쓰시마 상현 와다쓰미 신(和多都美神), 코로쿠미코 신(胡籙御子神), 하현 다카미타마 신(高御魂神), 스미요시 신(住吉神), 와다츠미 신, 다쿠츠 신(多久都神), 후토노리토 신(太祝詞神), 모두에 종오위하(從五位下)를 내린다고 되어 있다. 뒤이어 840년 11월 조에 쓰시마 와다츠미미코 신, 와라와 신(波良波神), 쓰쓰치 신(都々智神), 킨야마 신(銀山神)에 관사(官社)를 내린다고 되어 있다. 쓰시마에 모두 11사가 헤이안(平安)초기에 관사로 들어선 것이다.

 

그 뒤 이들 신의 신위가 진급됨에 따라 새로운 관사로 지정되어 <엔기시키> 신명장에는 상현군 와다츠미신사 이하 16좌, 하현군에 타카미타마신사 이하 13좌가 관사로 되었으며 그 중 상현의 와다츠미, 스미요시, 후토노리토 6개사가 명신대사가 되어 지방국에서 공물을 받았다.

 

 

다시 반복하지만 쓰시마에 ‘와다츠미’라고 이름 지은 신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와다츠미는 和多都美를 음독(音讀)한 이름인데, 이는 아테지(当て字)이기에 뜻을 얼른 읽기 어려운 이름이다. 그러나 海神을 훈독하면 <기기>가 이르듯 와다츠미로 읽는다. 예컨대 키사카(木坂)의 海神神社의 海神은 와다츠미로 훈독한다.

 

그런데 和多都美도 자세히 살펴보면 뜻이 숨어 있다. 뒤에서부터 보면 ‘미’는 혼령[靈]이라는 뜻이며, ‘쓰’는 소유격 조사 ‘의’이다. 문제는 ‘와다’인데 이는 ‘바다’가 전와된 것이라는 유력한 설에 주목하면 ‘와다츠미’는 ‘바다의 신’ 즉, 해신(海神)이 된다. 쓰시마 재지 사학자인 나가토메 히사에 씨는 ‘와타(ワタ)’ ‘와다(ワ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와타(ワタ)’ ‘와다(ワダ)’는 해(海)를 나타내는 고어로 “조선어 Pata(海)와 같은 원천[同源)이라고 일컬어지듯이 이리에(入江, 바다가 육지 안으로 들어 온 곳–글쓴이)를 와다 라고 부르고 海原을 와타노하라(ワダノハラ=넓은 바다)라고 칭하고 있다. 그래서 ‘츠(ツ)’는 조사이며, ‘미(ミ)’는 뱀[蛇]의 고어인 ‘헤미(へミ)’가 ‘미(ミ)’로 전와하여…(永留久惠, 2009, 335).

 

나가토메 씨는 이렇게 ‘와다’를 한껏 잘 풀이해 놓고도, 왜 와다츠미 신에 조선어 ‘와다’ 즉, ‘바다’가 붙게 되었는지, 당연히 이는 의문에는 외면하고 있다. 물론 와다츠미 신은 쓰시마에 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엔기시키> 신명장에는 ‘海神社’라고 쓰고 ‘와타츠미’라고 읽는다는 신사가 세츠(摂津[현 오사카]), 하리마(播磨), 타지마(但馬), 오키(隠岐), 치쿠젠(筑前), 이키(壱岐)에 있다고(위 책, 같은 면).

 

그런데 ‘와다츠미’ 신사가 있는 곳을 세츠에서 이키까지 역순으로 읽으면 바로 와다츠미 신들이 바다를 건너가는 모습이 재현된다. 그들이 현해탄을 건너 쓰시마·이키를 거쳐 다시 북 규슈[치쿠젠]를 거쳐 일본열도로 전래하는 코스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신들이 홀로 갔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 도래인 들이 숭경한 와다츠미 신들이 열도로 다가가는 모습도 보인다. 오아리(尾張, 현재 아이치(愛知 현 서부)에도 와다신사(綿神社)가 있다. 하지만 와다츠미(和多都美)라고 쓴 신사는 쓰시마의 네 사[四社]와 아와(阿波, 현 도쿠시마(德島)의 와다츠미토요타마히메신사(和多都美豊玉姬神社) 뿐이다(永留久惠, 위 책, 같은 면).

 

이렇게 생각하면 와다츠미 신은 바다를 건넌 한신(韓神)에 다름 아닌 것으로 된다. 게다가 1686년 편찬된 <다이슈신사지>(対州神社誌)에는 와타츠미 신을 아애 ‘渡海宮(와타츠미노미야)’로 표기하고 있다. 즉 ‘바다를 건넌 신’을 우러르는 말이다. 한일고대사에 밝은 교토대학의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교수는 <귀화인>이라는 저서에서 신라에서 도래한 하타인(秦人)을 추적하면서 ‘바다’와 연결시키고 있다.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등 고서에서 ‘하타’를 ‘波蛇’로 음차(音借)하는 예도 있는 만큼 그 말의 유래는 신라어 하타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조선의 옛 지명의 하단(波旦)에서 구하는 설도 있지만 신라어의 하타는 ‘바다’를 의미하므로 조선반도에서 온 바닷사람[海人=외래인]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 그 후 씨족명(氏族名)으로서 특정 씨족을 가리키게 되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김달수, 1993, 68 재인용).

 

그런데도 쓰시마 재지 사학자 나가토메 씨는 쓰시마의 와다츠미 신을 엉뚱한 곳으로 부회한다. 그는 “쓰시마의 와다츠미신사(和多都美神社)는 황통의 조상신에 나란히 오른 히코호호데미노미고토(彦火々出尊),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고토(鵜茅葺不合尊), 오오와다츠미 신(大海神)의 딸 토요타마히메(豊玉姬)를 제신으로서 <고사기> <일본서기> 신대사에 전해지는 이야기와 같은 뿌리[同根]의 유서를 싣고 있다”(永留久惠, 위 책, 같은 면)고. 황통의 조상신과 ‘같은 뿌리’라는 와다츠미 신이 ‘바다를 건넌 한신’과는 다른, 황손이라는 뜻이다.

 

■ 우미사치히코–야마사치히코 두 형제 전설

 

그는 또한 쓰시마의 와다츠미 신을 우미사치(幸)히코(海彦)·야마사치(幸)히코(山彦) 전설에 나오는 ‘해신(海神[와다츠미 신])’에 갖다 붙이고 있다.

 

우미사치히코(海幸彦)와 야마사치히코(山幸彦) 이야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 두 형제가 천손강림의 황손인 니니기노 미고토(瓊瓊杵尊)의 아들로 전설적인 초대 천황 진무(神武)가 조부라는 것이다. 또한 두 형제는 니니기노미고토와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노미고토(木花之開耶姬命) 사이에 낳은 아들이다.

 

우미사치·야마사치 두 형제의 이야기[渋谷申博, “山幸彦と豊玉姬、塩士老翁,” 2007에 의함]는 이렇게 전개된다. 어느 날 두 형제 신은 그들이 부리는 사냥도구를 교환한다. 낚시 바늘과 화살을 서로 교환하지만 동생 야마사치는 낚시가 영 신통치 않을 뿐만 아니라 낚시 바늘마저 잃고 만다. 하는 수 없이 칼을 쪼개 바늘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나 형 우미사치는 본래 것을 달라고 고집한다.

 

해변에서 낙담하고 있던 차 시오쓰치노오지(塩士老翁)라는 신이 나타나 용궁[海神宮]으로 가보라고 가르쳐 준다. 그는 용궁에 가 환대를 받고 용왕[해신(와다츠미)]의 딸 토요타마노히메(豊玉姬)와 결혼한다. 그리고는 육지로 돌아 와 용왕이 가르쳐준대로 보옥(宝玉)의 힘으로 형의 항복을 받아 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쓰시마의 와다츠미 신은 현해탄을 건넌 해신(海神[와타츠미 신])이기에 우미사치·야마사치 이야기에 등장하는 같은 이름의 와다츠미 신(海神)과는 서로 연이 닿지 않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후자 와다츠미가 천황가의 황손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가토메 씨는 후자에 전자를 부회한다. 그야말로 견강부회에 다름없다.

 

나가토메 씨는 앞 이야기에서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료타로가 “우익 사상화한 메이지 후의 국가신도의 해독에서 벗어나고도 남을 만한 인물”이라고 추어 올린 쓰시마 출신 사학자이자 키사카의 와다츠미신사(海神神社)의 사가(社家, 세습신관가–글쓴이) 출신이다. 글쓴이도 쓰시마 적석탑의 원형을 찾아 멀리 한국의 경상북도 의성까지 섭렵하는 그의 모습에 “학문적 열정이 묻어 난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쓰시마의 ‘바다를 건넌 한신[와다츠미 신]’을 천황가의 황손 ‘와다츠미 신’에 억지로 갖다 붙이고 말았다. 와다츠미 신사의 사가 출신 후예로서 그는 가문의 긍지를 천황가의 권위에 슬쩍 얹힌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와다츠미’에 왜 ‘바다[와다]’라는 신라어가 붙었는지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글쓴이가 문제의 ‘바다’에 대해 당연히 이는 의문을 그가 외면했다고 보는 까닭이다.

 

참고문헌

 

渋谷申博, <日本の神社>, 日本文芸社, 2007

 

永留久惠, <対馬国誌: ヤマトとカラの挟間で活きた対馬> 제1권 원시 고대 편, 2009

 

김달수, <일본열도에 흐르는 한국혼>, 동아일보사, 1993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다.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일본천황, 그는 누구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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