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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일본이야기36] 고사기전, 노리나가가 구상한 ‘천황신앙' 뿌리

일본인은 누구인가 19 일본의 국학이란? 중(中) 사후 그의 문인 자임 히라타 아츠타네 완성

 

일본의 국학이 이웃 나라, 즉 조선, 만주, 중국을 침탈하고 마침내 태평양 전쟁까지 이른 황국 사관의 이데올로기로 된 기반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원천은 천황을 ‘현인신’, 즉 ‘아라비토카미(現人神)’으로 떠받든 천황 신앙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노리나가가 구상한 ‘천황교 교의’는 그가 필생 연구 끝에 엮어낸 <고사기전>에 드러내고 있으며 노리나가 사후 그의 문인으로 자임한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1776~1843)가 완성했다고 두루 알려지고 있다.

 

이번 이야기는 노리나가의 천황교 교의를 중심 줄거리로 삼고자 한다. 그에 앞서 <고사기전>이 담고 있는 한반도 편견을 짚어 보자.

 

■ 한반도 편견의 뿌리:노리나가 ‘일본서기’ 바꿔치기 인용해 ‘고사기’ 일대수정

 

<고사기>에는 이른바 천손강림 신화에서 천황가의 조상신이라는 니니기 신(邇々芸命)이 츠쿠시(筑紫, 규슈의 옛 이름)의 히무카(日向)의 다케치호 봉(高千穗峰)으로 내려왔을 때 <고사기>의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땅은 카라쿠니를 향하고, 카사사(笠沙)의 미사키(御前)와 직통하고 아침 해가 눈부시게 내려쬐며, 저녁 해가 밝게 내려쬐는 나라니라. 때문에 이 땅은 매우 좋은 땅[甚吉き地]이다”라고 말한 대목이다.

 

반면 <일본서기>는 해당 대목에서 천손이 다케치호 봉우리[嶺]왔다면서 그곳을 소지시노무나쿠니(膂肉空国)라는 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소지시노무나쿠니의 ‘소지시’란 소의 등심고기로 매우 고기가 적고 질긴 것이기에 불모의 땅이라는 형용사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런 의미 맥락에서 <고사기>가 말하는, ‘카라쿠니를 향하고...매우 좋은 땅’이라는 기사와 <일본서기>의 기사는 정반대 방향으로 맞선다고 말할 수 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의 <고사기전>에서는 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노리나가는 <일본서기>가 매우 중국적인 사상이라든가 조선반도의 관념이 들어와 좋지 않다고 말하면서 <고사기> 쪽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 그가 서 있는 중심 기조이다.

 

때문에 “카라쿠니를 향하고 있어 좋은 땅”이라면 조선반도를 향하고 있어 매우 좋은 땅이라는 해석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고사기전>은 <일본서기> 쪽 편에 선다.

 

<고사기>의 경우 원문은 ‘向韓国...尋吉地’이며, <일본서기>에는 ‘膂宍空国’라는 식으로 적혀 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向韓国’은 잘못이라면서, 거기에는 ‘膂’자가 누락된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向 자가 宍 자를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韓 자를 空 자의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向韓国’은 ‘膂宍空国’가 된단다. 고대사에 밝은 다니카와 겐니치(谷川健一)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평소에는 <고사기>를 치켜세우면서 <일본서기>를 경시하고 있었던 노리나가가 이때만은 <고사기>의 문장을 <일본서기>에 맞추어 일대 수정을 가한 것입니다. ‘向韓国...甚吉地’을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谷川健一 金達寿, <地名の古代史>, 河出書房新社, 2012, 36).

 

노리나가는 한반도가 ‘매우 좋은 땅’이라고 천황의 조상신이 한 말을 ‘불모의 땅’으로 ‘바꿔치기’ 한 심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것이야말로 바로 오늘날 도쿄의 한 복판에서 혐한, 매한(呆韓=어리석은 한국), “조선 놈 죽여라”라고 외치는 일본 극우 목소리의 원조가 아닌가!

 

■ 천황교 교의: “살아있는 천황을 절대 신-‘현인신’, 통치는 ‘신의 기획’”

 

노리나가의 천황교 교의에 돌아가 보자. 이는 메이지 유신에 이념적으로 기여해 군국주의자에 더할 나위 없는 빌미를 주었다. 그뿐만 아니다. 민중을 끌어들이는 메이지 천황의 종교적 권위, 그것을 믿게 하는 신앙적 근거가 되고 있다. 더 나아가 그것은 이른바 일본 군국주의의 전위기관으로 변신한 ‘국가신도’의 사상적 기반 구실을 했다.

 

 

노리나가의 천황교 교의가 그의 국학사상에 연유하고 있다면 그 기원은 무엇인가? 노리나가는 한때 도쿠가와 삼대 가문[德川御三家]의 하나인 기슈가(紀州家)에 봉사한 적이 있다. 그때 그가 번주(藩主)인 도쿠가와 하루사다(德川治貞)에 바친 두 권의 소책자가 있다. <타마쿠시게>(玉くしげ)와 <히혼타마쿠시게>(秘本玉くしげ)가 그것이다.

 

‘타마쿠시게’란 옥을 담은 빗 접을 말하는데, 다시 말하여 옥과 같은 진리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전자에서는 그의 국학의 이념을 엿볼 수 있고, 후자는 국학사상에 근거한 정치적 헌책이라 할 수 있다. <타마쿠시게>의 머리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면 지금 치세[御代]를 말씀드리면 우선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의 기획[御はからひ]으로 조정(朝廷)의 위임[御任]에 의해 아즈마테루카무미오야노미코토(東照神御祖命, 막부 초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호-지은이)로부터 이어가시고, 대장군가의 천하통치[天下御政]를 근본으로 해 주시는 치세로 하는 것이며, 그 통치를 일국·일군으로 나누어 다이묘(御大名)들 각각에 맡겨 행하는 일로 된다면 그 영내 모든 백성도 전혀 사사로운 백성[私民]이 아니며, 지역 국[国, 다이묘가 다스리는 번(蕃)이라는 뜻-지은이]도 사사로운 번[私国]이 아니며, 모두 당시 이것을 아즈마테루카무미오야노미코토의 대대 대장군가에로 천조대신이 맡겨 주신 나라입니다.

 

에도 중기의 이 옛글은 말마디마다 ‘어(御)’ 자가 들어 가 있어 당시 지배자를 우러러보는 존칭이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케 한다. ‘아즈마테루카무미오야’란 초대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죽자 천황이 내린 시호 도-조다이곤겐(東照大權現)에 유래하는 신이자 ‘큰 어른’[미코토(命)]이라는 뜻이지만 전체적인 대의는 아무래도 장군의 천하통치가 천조대신의 ‘기획’으로 내린 위임에 있다는 점에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노리나가가 발상한 국학사상의 근본 개념을 엿볼 수 있다. 지금 나라의 통치를 비롯해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의 일은 인간을 넘어선 ‘신의 기획’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야스마루 요시오(安丸良夫)교수는 <타마쿠시게>에 나타난 노리나가의 사상을 ‘천양무궁의 신칙’에 근거한 세계관이라며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노리나가가 가장 힘을 쏟아 공격한 것은 ‘이국풍의 간교한 책술[料簡], 즉 유자(儒者)들의 ‘이치’[理窟]이다. 모든 세상[天地 間]에는 어느 나라도 공통하는 ‘오로지 한 길’뿐인 ‘진정한 길’이 존재하는 것인데, 거기에 작용하는 “진정한 리(理)는 인간의 사려가 미치기 어려운 것으로서 인간이 이모저모 꾀하는 바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그러면 왜 ‘진정한 길’이 인간의 사려가 미치기 어려운 것인데 결국 어느 일도 인간의 소업을 넘어선 ‘신의 기획’[神の御はからひ]이며 “이 세상의 일[아라와니고토(顕事)]라고 해도 필경 저 세상의 일[카미고토(幽事: 신의 소업]”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은 반드시 착한 신[善神]에 한 하지 않고, 신들에게도 가지가지의 존비선악사정(尊卑善惡邪正)가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좋은 일·길한 일[善事吉事] 뿐만 아니라 나쁜 일·흉한 일[惡事凶事]도 있는 것이며 후자는 특히 마가츠히노카미(禍津日神= 재앙신)이 내리는 업보이다(安丸良夫, 1992, 103).

 

이러한 노리나가의 국학 사상은 (1) 이 세상 전체를 인지(人知)나 인위(人爲)를 넘어 근본적으로 신의 소업으로서 종교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 (2) 그 때문에 인간은 신들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것에 다름 아닌 수동성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 (3) 그때 이 세계는 나쁜 일도 흉한 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강조되어 인간의 불행, 불운, 부도덕 따위에도 인위가 미치기 어려운 근거로 여겨진다는 것에 특징지을 수 있다(위 책, 104).

 

주목해야 할 점은 노리나가의 이런 신 관념이 ‘현인신’ 천황관에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살아 있는 천황을 신, 게다가 절대 신으로 보는 것이다. 앞서 글쓴이는 노리나가의 국학이 문예적인 야마토고코로[일본정신]를 일본고전에서 찾은 데 감동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정치적인 일본정신을 찾는데 헌신했다고 보인다.

 

그가 일본의 고전에서 찾은 정치적인 ‘일본정신’[야마토코코로(和心)]는 무엇인가? 그것은 천황=절대신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저 땅에 뿌리내린 전통적인 신관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기> 신화에서 보듯이 일본은 ‘팔백만 신’(八百万神 「야요로즈노카미」)의 나라다. 따라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스람교를 믿는 나라가 유일신의 나라라면 일본은 다신 또는 만신의 나라다. 그러기에 중세 이래 저 땅에서는 신신 습합(神神習合)은 물론 신불(神佛) 습합도, 신불도(神佛道)의 습합도 거침없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 절대 ‘신의 나라’ 황국: 백성은 천황의 칙령을 황송하게 받들어야 한다

 

이런 전통적인 신 관념에서 볼 때 노리나가는 일본인에게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절대신 사상을 소리높이 외친 것이다.

 

노리나가는 천조대신이 일본국토를 통일한 태조라든가, 고천원이 그 태조의 도읍이라는 따위의 ‘이국풍의 이치[理窟]’라고 배척하고는, 천조대신은 태양 그 자체이며, 일본은 천조대신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만국 중 으뜸이 되는 나라’[万国の元本大宗たる御国]이며, ‘천양무궁의 신칙’에 기록되어 있듯이 만세일계의 천황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논하고 있다(<玉くしげ>). 이와 같은 노리나가의 주장은 “<기기> 신화를 그대로 세계관으로 전환한 것으로 성립한 것”(安丸良夫, 1992, 102)이다.

 

이것은 노리나가가 유학적 합리주의를 거부하고 <서기> 신화에 나타난 ‘천양무궁의 신칙’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천조대신과 그 후손을 만세일계의 천황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에는 노리나가의 천황관인 절대신 사상이 가로 놓여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또 다른 노리나가 연구자인 마에다 쓰토무(前田勉)는 노리나가의 천황관을 다음과 같이 논한다.

 

노리나가에 의하면 지금 여기에 계신 ‘와가스메라노미고토’(吾天皇尊: 현재의 천황-인용자 주)는 그대로 ‘신’이다. 이 ‘인간 신’[人中の神]으로서 “범인과는 아주 저 멀리, 귀하고 황송하게 계십니다”(<고사기전> 권 3, 전체 9, 125 페이지). 천황에 “감히 선악을 논하는 것을 그만두고 오로지 황송하고 귀하게 모시는 것”이 ‘진정한 길’, 즉 신하로서 취하여야 길이었다.

 

물론 노리나가는 이른바 ‘자리를 물려주는 위임[御任]론에 서서 천조대신-->천황-->아즈마테루카무미오야노미코토(東照神御祖命)-->장군-->다이묘(大名)-->가신단-->서민으로 이어지는 계층질서 안에서 상위자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그대로 최상위에 있는 천황을 섬긴다고 설명하고 있어 막부 정권 말기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전형적인 일군만민(一君万民) 사상과 같이 천황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충성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노리나가가 천황이 천조대신의 자손으로서 ‘천신의 마음’[御心]을 큰마음[大御心]으로 섬겨야 하듯이[<나오미노타마>(直毘靈), 전체 9, 49 페이지] 위는 장군으로부터 아래는 만민에 이르는 “미천할 대로 미천한 사람까지 그저 천황의 큰마음을 마음으로 하여 오로지 칙령[大命]을 황송하게 받들라”고 요구한 것은 근세 일본의 사상사 중 천황이 만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개입하는 존재로서 나타난다는 의미로 획기적인 일이었다(井沢元彦, 2014, 192~193 재인용).

 

여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현재 재위에 있는 천황이 만민의 삶에 직접 참여하는 가부장적인 어버이와 같은 인간신이자 절대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백성은 천황의 칙령을 황송하게 받들어야 한다고.

 

참고문헌

김정기, <일본천황, 그는 누구인가>, 푸른사상, 2018

金達寿·谷川健一, <地名の古代史>, 河出書房新社, 2012

前田勉, <近世神道と国学>, ぺりかん社, 2002

安丸良夫, <近代天皇像の形成>, 岩波書店, 1992

井沢元彦, <逆說の日本史>, 시리즈 17 ‘江戶成熟編’, 小学館, 2014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외대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이션 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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