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3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엔화(JPY)가 국제시장에서의 안전통화로서의 위상이 안전하지 않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적인 경제침체와 금리인상, 미국에서 실리콘밸리뱅크(SVB)의 파산으로 촉발되는 금융위기에 일본의 무역적자와 장기 저금리 정책으로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스위스 프랑과 일본 엔화 간의 환율이 1프랑당 153.80엔까지 떨어지면서 지난 198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2000년 9월 최고치였던 스위스 프랑당 58엔에 비하면 3분의 2 수준으로 하락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안전통화’는 강한 금융 스트레스 상황에서 위험회피를 위해 구매하는 통화들인데, 특정 통화가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며 타 통화 대비 강세를 보여 해당 국가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이를 ‘안전통화의 저주(Curse under safe haven)’라고 한다.
5월 12일 기준 달러(USD) 당 엔화(JPY) 환율은 134.20엔까지 올라 지난 5월 2일 기록한 최근 저점보다 3.50엔 올랐으며 유로(EUR) 당 엔화(JPY) 환율은 5월 12일 한때 유로당 146.70엔까지 올라 5월 2일보다 5엔 올랐다.
지난 2011년 10월 31일 엔-달러 환율은 유럽 재정위기가 심각해지고 시장의 위험회피 심리가 고조되던 시기에 75.32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안전자산으로서 엔화는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엔화 매입인 이전 같지 않다는게 국제금융시장의 평가다.
돈 가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제 엔화와 스위스 프랑을 같은 통화로 취급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2021년 말 가진으로 대외 순자산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일본의 엔화가 안전통화의 지위가 흔들리게 된 것은 주요 경제대국 중 양적완화를 고집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4월 일본은행 우에다 가즈오(田田和男) 총재는 금융정책회의를 열고 대규모 양적완화 유지를 확정했다.
이는 연방기금금리를 5%로 올린 연준이나 향후 금리인상을 계속하는 유럽중앙은행 등 주요 경제국 중앙은행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외환시장에서 투자자들은 금리가 낮은 통화를 팔고 금리가 높은 통화를 사들이는 차익거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당장 일본 엔화의 저금리가 눈에 띄어 차익거래 통화로 선정되기 쉽다.
결국 엔화 가치는 타 통화에 비해 크게 낮아지면서 통화 종합력을 보여주는 지수는 ‘닛케이통화지수’에서 엔화는 2022년 말보다 2.5%p 하락했고 스위스 프랑(CHF)는 대비되게 1.7%p 절상했다.
수출대국이던 일본의 경제구조의 변화도 원인으로 꼽힌다.
2022년 에너지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일본의 무역적자는 19조 9,000억 엔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스위스는 428억 스위스 프랑의 무역 흑자를 기록하면서 의약품, 화학제품, 시계 등 고부가가치 상품들이 수출 실적을 견인했다.
무역흑자국 중 수출기업이 벌어들인 외화를 자국 통화로 바꾸려는 수요가 수입기업의 외화 수요보다 많아 자국 통화 환율을 끌어올리기 쉽다.
JP모건체이스은행 일본지사 사사키 융(本部长木国家) 시장조사본부장은 “국가경쟁력 하락이 환율 수준의 격차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금융정책이든 경제구조든 일본의 거시환경은 단기간에 변화하기 어렵다.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에너지 등 수입원가가 상승하고 무역적자 확대로 인한 엔화 약세 사이클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