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길게 바라보면 세계는 언제나 몇 개의 제국이 주도해 왔다. 그 제국들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도, 또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도 아니다. 번영의 정점에 올랐다가 내부 균열과 외부 충격 속에서 서서히 힘을 잃는 일정한 패턴을 보였다. 오늘날 미중 경쟁을 바라볼 때도 우리는 이러한 제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인류 역사에는 수많은 제국이 존재했다. 이집트 제국, 페르시아 제국, 그리스 및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 중화 제국, 오스만 제국, 동남아의 앙코르와 스리위자야 제국, 아프리카의 송가이 제국, 인도 무굴 제국 그리고 중남미의 마야-아즈텍-잉카 제국이 대표적이다. 이들 제국은 한때 광대한 영토와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주변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 후손 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과거의 제국적 위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이란, 튀르키예, 캄보디아, 페루, 멕시코, 사헬 지역 국가들을 보면 과거 제국의 영광과 현재 국력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예외적으로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면 중국이다. 중국은 진-한 이래 2000년 이상 제국적 질서를 유지해 온 ‘문명국가’로서 오늘날 다시 글로벌
“이것이 동티모르의 살아있는 민주주의 정신이다.” 동티모르에서 “생명연금의 소급 취소를 결정한 규칙은 위헌이 아니다”라는 법원의 판결이 3월 26일나왔다. 라파(rafa) 등 현지 미디어에 따르면 자신타 코레이아 다 코스타 (Jacinta Correia da Costa) 항소법원 주심 판사 등이 서명한 문서에 따르면 “2002년 제1차 국회 입법부가 시작된 이래 생명연금을 만들거나 승인하거나 규제한 모든 법 조항의 최소를 소급 적용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상은 대통령, 총리, 대법원장, 국회의원 및 정부 구성원고 같은 이전 주권 기관의 연금이 포함되었다. 이 판결문은 “2002년 5월 20일부터 시행된 독립 회복일에 해당하는 법은 연재 및 미래의 연금 지급이 즉시 중단될 것”이라고 결정했다. 한편 계약 배정에 대한 보상을 받지 않기로 한 결정은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점을 고려, 일부만 위헌으로 판단했다. 지난해 9월 동티모르 대학생(EUTL)이 주도해 “의원들에게 월 생명 연금을 보장하라는 법을 재검토하라”며 국회앞에서 3일간 격렬한 항의를 했다. 9월 29일 호세 라모스-호르타 대통령은 “2002년 5월 20일 이후 소급이 적용 결정”이라고 정부에 합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사용한 에이전트 오렌지, 고엽제다. 한국도 연인원 32만 명이 파견되었고, 그중 8만 5000명 정도가 고엽제 관련 치료를 받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고엽제에 노출된 사람이 480만 명, 환자가 300만 명이라고 하니 정말 엄청난 숫자다. 그리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고엽제의 영향을 받아 기형아로 태어난 아이가 15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피해가 대물림되고 있다. 베트남 작가 밍쭈엔은 <숨겨진 상처>라는 제목의 르포 기사(Báo Văn Nghệ số 30, 26-7-1997. p.10 and 15)를 썼다. 베트남 전쟁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고통, 특히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다이옥신)의 후유증을 고발하는 르포 형식의 글이다. 전쟁은 끝났고 자연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인간의 몸속에 스며든 화학물질은 세대를 넘어 지속적인 파괴를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타이빙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참전 군인 가정을 방문하며, 고엽제로 인해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자녀들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부모들의 삶을 기록한다. 겉으로는 총성이 멈춘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각 가정 안에서는 여전히 “폭탄”과 같은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당반
동티모르 체류 초기 필자는 동티모르 정부 인사의 통역할 일이 있었다. 동티모르 정부 인사는 생각지 못한 질문을 불쑥 던졌다. "한국의 기술로 그레이터 선라이즈의 가스를 동티모르 쪽으로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그 문장을 통역하면서, 이 나라가 그 가스전에 얼마나 깊이 기대고 있는지를 실감했다. 그레이터 선라이즈는 1974년에 발견됐고 당시 이미 수십 년째 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방 안의 공기는 희망으로 가득했다. 이미 실현된 희망은 바유운단(Bayu-Undan) 가스전이었다. 현지 공무원들은 산유국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럴 만한 근거도 있었다. 석유기금(Petroleum Fund)만큼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제도였다. 2019년 전 세계 64개 국부 펀드 투명성·책임성 평가에서 세계 7위에 올랐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손실을 내지 않은 국부 펀드로 기록됐다. 규모가 아니라 원칙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원칙은 일찍 흔들렸다. 석유기금법이 정한 지속가능인출수준(ESI)은 기금 총자산의 3%였지만, 2008년 이후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2009년부터 연평균 인출 비율은 법정 한도의 1.7배인 5
주말 아침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다가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지인이 보내온 필리핀 마닐라 갈레온 박물관 안내판이었다. 필자가 아세안대사로서 2015년 아세안 의장국 50주년 계기 개관식에 참석했던 기억도 겹쳐진다. 코로나로 문을 닫았던 박물관이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은 단순한 재개관 이상의 의미를 던진다. 그것은 동남아를 관통하는 하나의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기 때문이다. 동남아의 역사를 움직인 것은 정복이 아니라 바닷길이었다는 사실이다. 16세기 중반 시작된 마닐라–아카풀코 갈레온 항로는 약 250년간 이어지며 세계 최초의 태평양 글로벌 공급망을 형성했다. 멕시코와 포토시(현재 볼리비아)의 은은 중국의 비단과 향신료를 사들이는 데 쓰였고, 아시아의 상품은 유럽으로 흘러갔다. 은이 중국으로 들어가 중국이 은본위제 경제화하는데 촉매제가 되었다. 마닐라는 그 교차점이었다. 이 항로는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글로벌 공급망의 원형이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연결도 영원하지 않았다. 19세기 초 갈레온 무역은 멕시코 독립, 경제성 약화, 제국 재정의 한계 속에서 막을 내린다. 중요한 점은 하나다. 특정 항로의 쇠퇴는 단지 경제 문제가 아니라
"백성은 무진장한 창고이고, 관리는 오직 백성에 기대어 산다." 17회에 이어서 베트남 학자 또안아잉(Toàn Ánh)이 1970년에 펴낸 『부패와 뇌물의 예술』 속 다른 에피소드 두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비록 오래된 남의 나라 얘기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날 밤 두 사람(군수와 친구)은 돈을 갈취하는 방법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억울하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고 상급자가 조사에 나서지 못하게 할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날, 군수는 친구에게 백성들이야말로 무진장한 창고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군수는 공문서를 재가하면서 서기와 관리들을 꾸짖은 뒤, 친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자네, 내가 오늘 무죄한 사람에게서 돈을 갈취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네. 자네가 관리로서 나를 따라하지 못하고 돈을 갈취하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멍청한’ 짓이지.” 마침, 그때 갈색 옷을 입은 촌사람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군수는 그를 가리키며 친구에게 말했다. “자네, 저 복 없는 촌놈을 보게나. 재수 없게 나를 만났군. 내가 저놈에게서 돈을 갈취할 테니 두고 보게.” 그는 곧바로 군청으로 들어가 병사에게 명령했다. “저 촌놈을 불
새벽 세 시. 하투 부일리쿠(Hatu Builico) 마을에서 손전등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순례자들이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해발 2,963미터. 티모르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조제 하무스-호르타(José Ramos-Horta)는 이 산을 두고 “죽은 자들의 영혼이 모여 천국으로 떠나기 전 머무는 신성한 산이며, 위기가 닥치면 돌아가신 지도자들이 평화로 향하는 길을 찾기 위해 모이는 곳”이라 표현했다. 이 성산(聖山)을 오르기 전,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혼란은 바로 이름이다. 어떤 지도에는 ‘라멜라우(Ramelau)’, 어떤 안내서에는 ‘타타마일라우(Tatamailau)’라 적혀 있기 때문이다. 정답부터 말하면 둘 다 맞지만 의미는 다르다. ‘타타마일라우’는 이 지역 원주민 언어인 맘바이어(Mambai)로 ‘모든 이의 할아버지’라는 뜻이다. 이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수천 년간 불러온 이름으로, 한국인의 백두산과 같은 상징성을 갖는다. 반면 ‘라멜라우’는 이 봉우리가 속한 산맥 전체를 가리키는 지리학적 명칭이다. 독립 이후 동티모르인들은 조상의 언어를 되찾아 ‘포호 타타마일라우(Foho Tatamailau)’를 공식 명
1962년 10월, 세계는 핵전쟁의 문턱에 섰다. 미국 정찰기가 쿠바에서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된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는 인류 역사상 3차 세계대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건으로 기록된다. 당시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공습이나 침공 대신 해상봉쇄(qurantine)라는 절제된 군사 조치를 선택했다. 그리고 13일간의 긴 협상 끝에 소련 지도자 후루시쵸프와 절충에 도달했다. 소련은 쿠바의 핵미사일을 철수했고,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동시에 미국은 비공개로 터키에 배치된 핵미사일을 철수하기로 했다. 겉으로는 미국의 승리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강대국 간 체면을 지키는 절충이었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을 보면 이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미국의 군사 행동 이후 긴장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이란에서는 강경 지도부가 등장했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제기되며 국제 유가가 요동치고 있다. 세계 증시는 불안정해졌고 에너지와 물류뿐 아니라 반도체 공급망까지 영향권에 들어가고 있다.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