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신국(神國)' 사상이 대두한 배경에는 한반도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어진다. 이미 살펴 본대로 ‘신국’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전설적인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 때 신라왕의 입을 빌려 나왔다는 것은 이미 본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 뒤 ‘신국’이란 말이 나온 데에는 고대 일본 조정이 처했던, 보다 현실적인 사정이 자리한다. 그것이 당시 동아시아의 최대 역사적 사건인 하쿠스키노에(白村江, 이하 ‘백촌강’)의 전투이다. 여기서 말하는 백촌강이란 ‘백마강’ 또는 ‘백강’이라 부르는,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 비빈들이 투신했다는 전설이 서린, 한반도 서남부에서 흐르는 강이다. 이 백촌강 전투는 7세기 한반도에서 일어난 최대의 사건이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나당(羅唐)연합군과 싸움에서 일찍이 없었던 대 참패를 당했다. 당시 백제 부흥을 위해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군이 당한 이 참패는 지울 수 없는 멍에를 안겼지만 오늘의 주제인 일본의 신국사상도 이에 기인한다. 일본의 한 저자는 이렇게 적는다. 수세기에 걸쳐 신라·백제·고구려 삼국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던 조선반도에서는 당과 결합한 신라가 대두하고 660년 양국의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백제의 왕도가 함락되었다. 텐지(天智)
[전창관의 태국이야기 16] 전 국민 대상으로 지급할지 여부를 놓고 야당 대표의 당론 번복까지 일으켰던 코로나19 5차 재난지원금 지급기준이 소득 하위 88% 국민 대상으로 결정났다. 이 과정에서 ‘지급방안에 대한 각론’과 ‘지급하겠다는 당위적 개론’에 대해서는 치열한 정치적 대립을 벌인 반면, 해외체류 재외국민에 대한 지급불가 사유 또는 지급 가이드 라인의 합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제대로된 논란조차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장소가 어디냐에 따른 고통의 강약 차이가 있을 수 없을진데 왜들 이러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대통령 투표와 국회의원 선거철이면 전 세계 약 270만 명의 재외국민들에게 국민의 권리인 투표권을 행사해 달라며 본국 정부와 재외공관들의 독려가 빗발칠 때가 언제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 가까운 순간에 재외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인지, 재외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한 비합리성과 불확실성이 ‘논의의 사각지대’에 처해진 채 방치되어 있다. 외국에 나와 사는 사람들로서는 우리가 ‘재외국민(在外國民)’인지 ‘제외된 국민(除外國民)’인지 모르겠다는 볼멘 소리가 저절로 나올법
지난 7월말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한국 자동차업계의 해외 진출 뉴스가 보도됐습니다. 바로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인도네시아에 연간 생산량 10GWh 규모의 배터리셀 합작공장을 세우기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와 투자 협약을 맺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번 협약에 앞서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인근의 카라왕 산업단지 내 합작공장 설립 계약을 체결한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2023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약 11억 달러(약 1조2700억원)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2024년 상반기부터 연간 전기차 배터리 15만대분 이상의 배터리셀 양산에 돌입해 현대차와 기아차의 전용 플랫폼이 적용된 전기차 모델 등에 탑재한다는 방침입니다. 인도네시아 배터리셀 투자를 통해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현대차그룹과 LG그룹의 발 빠른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매력적인 생산기지에 더해 최근 구매력을 갖춘 소비시장으로도 주가를 높여온 동남아 지역에서 존재감을 키울 수 있는 행보로 주목받기 때문입니다. 즉, 완성차 그룹과 배터리 기업 간의 폭넓은 전기차 분야 협업이 일본 자동차업계의 텃밭으로 인식돼 온 동남아 시장에서 국내 브랜드
7월14일에 개봉한 ‘랑종(Rang Zong)’이 연일 화제다. 20억 원대 제작비를 들인 동 영화는 개봉 4일만인 17일에 관객 40만 명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개봉 7일째 손익분기점을 넘겼던 ‘범죄도시’와 개봉 8일째 손익분기점을 달성했던 ‘내부자들’보다 빠르며,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 중 최단기간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고 한다. 코로나 시국에 많은 영화들이 개봉조차 미루고 있는 시점에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 화제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두 천재의 만남의 시너지 ‘랑종’은 영화 제작 전부터 두 천재 감독의 만남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필자도 개봉 이전부터 ‘셔터’를 인생 공포영화로 꼽는 친구에게 이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 개봉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곡성’ 나홍진 감독과 ‘셔터’ 태국 피산다나쿤 감독의 만남으로 홍보가 되어 두 천재 감독이 함께 연출을 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나홍진 감독은 기획과 제작을 맡았으며 연출은 피산다나쿤 감독이 맡았다. 두 감독 모두 데뷔작인 ‘추격자’, ‘셔터’부터 흥행을 한 감독이다. 물론, 데뷔작만 흥행에 반짝 성공을 한 감독들도 많이 있지만 두 감독은 다르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으로 2016년
“올해도 발리로 여름 휴가를 가기는 어렵겠네요.”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예고된 최근 필자의 지인이 털어놓은 하소연(?)입니다. 한국인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는 휴양지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인도네시아 발리(Bali)를 갈망하는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습니다. 실제 예년 같으면 여름 휴가철을 맞아 발리행 항공권을 탐색하는 손길이 분주했을 때입니다. 하지만 2021년 7월의 형편은 자못 다릅니다. 4차 대유행이 현실화될 정도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나라 밖으로 떠나는 발길이 사실상 묶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기업인들의 비즈니스 출장에 대한 제약조차 갈수록 커질 만큼 여러모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약 6시간 30분~7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발리는 남반구의 저위도에 위치한 섬입니다. 제주도의 대략 3배 크기에 440만여 명이 거주하는 발리에는 연중 무덥고 습한 열대우림 기후가 두드러집니다. 발리는 역사적으로 인도네시아 정치-경제의 중심지인 서쪽의 자바섬(Java Island)과 소순다 열도(Lesser Sunda Islands)로도 불리는 동쪽의 누사 텡가라(Nusa Tengg
일본이 저들 나라가 신국이라는 이른바 ‘신국사상’은 그것이 일부 극우분자의 망상 또는 환상으로 남아 있는 한 굳이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데 문제의 심각성이 놓여 있다. 이전 이야기에서 필자는 일본사회에서 ‘신국사상’ 도도히 흐르고 있다면서 여느 때는 잔잔한 물결로 남아있지만 여차하면 출렁이는 파도가 된다고 짚었다. 이제 그 현장으로 가보자. 필자는 우선 두 가지 ‘사건’에 주목하고자 한다. 하나는 2000년 5월 15일 당시 수상이었던 모리 요시로(森喜朗)가 일본은 '신의 나라'(神の国)라고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국가의 신수'(日本国家の神髓)라는 책이 2015년 새해 벽두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신국사상의 전거가 된 '국체의 본의'(国体の本義)라는 책을 기리는 해설서 또는 안내서이다. 두 사건에 주목하는 까닭은 ‘신국사상’이 먼 과거의 일이나 군국주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 수상이 지껄인 '신의 나라'(神の国) 발언은 2000년 5월 15일 신도정치연맹(神道政治連盟)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나왔다. 그는 인사말 중에 "일본이라는 나라는
[전창관의 태국이야기 15] 신남방 땅 재태 한인들의 삶의 터전인 태국의 경제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한국도 서민 체감경기 부진과 각종 기업대상 지원정책 실행상의 엇박자로 민생과 기업운영에 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지만, 그나마 펀더멘털 수치(기초경제 여건 지표)에서는 코로나 경제상황 하의 최강 반열에 속해 있고 상승세마저 보이고 있다. 이 척박한 코로나 시대에, 자그마한 동방의 불빛 같다던 나라가 IMF 집계 국민총생산(GDP) 세계경제력 순위 10위 반열에 올랐으니 말이다. 반면, 태국은 언젠가부터 기초경제 체감불황뿐 아니라 국가경제 펀더멘털 수치 성장률에서 조차 동남아 최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벌써 여러 해에 걸쳐 소위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중진국 함정’에 빠졌어도 이만저만 빠진 것이 아니다. 1997년 IMF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이래 지난해까지 1998년, 2009년, 2020년 등 벌써 네번에 걸친 역성장까지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연간 5% 내외는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소위 중진국 그룹에 속한 태국이 2000년대 들어 연 경제성장률 5% 이하를 벌써 13번이나 기록
최근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민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젊은 여성부터 재래시장 한켠에서 동남아 음식을 판매하는 가족, 렌터카 업체에서 정비기사로 일하는 젊은 남성과 바닷가 횟집에서 근무하는 중년 여성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했습니다. 외부 세계에 대한 배타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관광섬 곳곳에 자리잡은 동남아인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새삼 다문화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일찌감치 다문화 시대를 선언한 아세안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바람도 커졌습니다. 동티모르를 제외한 동남아 10개 나라로 구성된 지역협력체인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들은 몇 가지 특성을 공유합니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벼농사 중심의 농경 문화와 유럽 열강에 의한 식민 지배 경험, 권위주의 정부 주도의 성장 모델 도입 등을 아세안 국가들의 공통점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꼽는 아세안 지역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 다양성입니다. 다양성에 기반한 다문화(한 국가나 한 사회 내에 다른 계급, 민족, 인종 등 여러 집단의 문화가 공존하는 현상) 야말로 아세안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예를 들어, 동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