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베트남 연구를 최초로 시작한 곳이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바로 여기였다.” 이진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장이 2일 연구원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김준엽 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베트남 학술대회’에서 학술대회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오늘 학술대회에 응우옌 부뚱 주한 베트남대사도 참석해줘 감사하다. 김준엽 전 총장 탄생 100주년을 ‘한-베트남 현인그룹(Eminent Persons Group: EPG)’을 모셔 진행되어 뜻깊다. 이 건물은 김 총장의 의지로 한국에서 최초로 베트남 연구를 시작한 장소”라고 말했다. 신재혁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장의 개회사에 이어 진행된 학술대회 주제는 ‘2022년 베트남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현안’이었다. 올해 양국 수교 30주년 계기 출범한 ‘한-베트남 현인그룹’이 작성한 양국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 제언 보고서가 양국에 각각 제출되는 날이기도 했다. 두 나라 정부는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베트남 관계의 미래 발전 비전에 대한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기 위해, 정치외교, 경제통상, 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양국 관계에 정통한 양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
K-POP 열풍을 보면 새로운 아시아 시대가 보인다. 걸그룹으로 빌보드 정상권까지 치고올라간 ‘블랙핑크’의 리사는 한국 메이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YG에서 데뷔한 첫번째 태국인 가수다. ‘리사’에 대한 태국 팬들의 팬덤은 엄청나다. 이미 닉쿤이라는 2PM의 보이그룹 멤버도 태국 출신이다. 어쩌면 닉쿤이 ‘마중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다른 동남아 국가의 젊은이들도 리사와 같은 ‘한국 기획사’에서 기회를 얻기를 희망한다. 걸그룹 시크릿넘버로 디타가 인도네시아 최초 K-POP 그룹에 멤버로 데뷔하기도 했다. 정호재 신간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는 K-POP 열풍을 통해 아시아를 본다. 다년간의 동남아 체류에서 얻는 경험이 응축되어 있다. 그는 문화를 비롯 정치 또는 사회현상의 공동점을 발견한다. 부제가 ‘아시아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 다르게 보이고 동남아가 다르게 보인다’라는 이유다. ■ 문화적인 ‘오감(五感)’ 촉 밝은 기자 출신의 ‘K-POP으로 본 아시아’ 저자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다. 그리고 ‘조금은 뒤늦게 떠난 아시아 유랑’이 ‘아시아학’이라는 학문이었다. 저널리즘의 ‘오감(五感)’과 지금 몸담고 있는 아카데미즘을 놓치지 않은 것이 이 책
新加坡 통신⑨ 싱가포르 차기 지도자 '헹 스위 킷' <2> 리콴유 비서로 정계 입문 싱가포르의 고위공무원 가운데는 군인 장교출신이 유난히 많다. 현 리셴룽 총리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1965년에 말레시이아 연방에서 독립한 신생독립국인 만큼 국방력 강화가 아주 절실한 국가과제였던 영향이 크다. 그래서 1970~80년대에 아주 많은 인재들이 군대로 유입이 됐고, 이후 성공적으로 행정관료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여타 군부정치와는 사뭇 다른 방식의 엘리트 군인의 활용인 셈이다. 1. 경찰로 커리어 시작한 '글로벌 수재' 헹 스위 킷. (그의 중국식 이름 표기는 왕서걸(王瑞杰)이다. 중국 5대 화교에 속하는 조주인인 탓에 조주어 발음표기인 Heng Swee Keat 으로 불린다. 이 발음은 '헹' 보다는 '헝'에 가깝고, '킷' 보다는 '낏'에 가깝지만, 이미 널리 헹 스위 킷으로 표기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 표기법을 따른다.) 헹 스위 킷은 1984년 경찰(PAP)로 공직 커리어를 시작했다. 내부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영국식 통치제도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자연스러운 행보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두각을 보였는지 199
전세계 주식시장이 신종바이러스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시장이 하나 있다. 바로 미얀마의 주식시장인 '양곤 스톡 익스체인지' 줄임말로 'YSX'가 그 주인공이다. 동남아시아 금융시장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미얀마의 주식시장의 존재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2016년에 본격적인 문을 연,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늦게 태동한 현대적 증권거래소이자 가장 작은 규모의 시장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상장된 기업의 숫자는 5개에 불과하고 전체 시총도 5000억원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다 (인접국 태국의 상장회사는 600여 개에 이른다). 이런 소규모의 미얀마 증권거래소(YSX)가 최근 국제적 관심을 끄는 이유는 오는 3월 20일부터 본격적으로 외국인의 거래 참여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일정 정도의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미얀마에 거주하는 외국인이어야 하고, 외국인 지분은 기업전체 지분의 35%를 넘어설 수가 없도록 정해졌다. 이 외국인 지분에 대한 내용은 개별 회사가 내부 규정에 따라 결정하게 되어 있다. 앞으로 거래를 원하는 외국인은 양곤시내 증권거래소에 가서 계좌
미얀마는 한반도와 지정학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미얀마가 중국과 국경을 맞댄 14개 국가 중 하나라는 점이다. 무려 2100km의 국경을 중국의 윈난성과 공유한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인 1334km보다 1.5배 가량 긴 셈이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미얀마에게 커다란 기회이자 위기로 작용했다. 당연히 화려한 중국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도 했지만, 반대로 최고의 불교문명을 일구던 바간 왕국이 몽골의 침략으로 무너지기도 했고, 명나라의 황족이 만주족의 공격에 쫓겨 도달한 곳이 미얀마이기도 했다. 가까이는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밀린 국민당 군대 일파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도주로가 버마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상당수 중국인이 국경 오지에서 양귀비를 키우며 생존을 모색하기도 했고, 많은 패잔병들은 결국 대만을 최종 목적지로 삼아 되돌아가기도 했다. 지난 30년간 중국은 미얀마 폐쇄경제 유지의 가장 중요한 생명줄이 되어왔다. 미얀마는 중국과의 활발한 국경무역을 통해 부족한 생필품을 보충하고 미얀마의 주요 생산품인 천연가스와 목재 광석 등을 몰래 수출하면서 서구사회의 경제제재로부터 버틸 수가 있었다. 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