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집?
양재역 5번 출구에서 말죽거리 방면으로 60미터 내려가면 서브웨이가 나온다. 여기서 SPC 사옥에 다다르기 전에 오른쪽으로 다이소 간판이 세워져 있다. 다이소 입간판 바로 너머에 초록색으로 칠해진 매장이 산뜻하다. 서브웨이의 초록보다는 밝고 연한 색이다. 간판은 영어로 “이풀리(efully)” 라고 적혀 있다.
겉으로 봐서는 샐러드 카페나 패스트푸드점 같다.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깔끔하고 환한 매장에 20~30대의 여성들이 식탁에서 대화를 나누며 맛의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2대의 키오스크에는 주문을 하기 위해 여러 명이 서 있다.
키오스크 메뉴판에는 김밥류, 비빔밥류, 사이드류, 디핑소스 등의 카테고리가 있다. 김밥 메뉴를 눌렀더니 12가지의 깁밥 종류가 뜬다. 야채를 뜻하는 베지와 참치마요, 닭가슴살, 데리야끼 김밥도 있지만 불어묵, 비건단백질, 토마토포크 등 처음 들어보는 김밥도 있다.
김밥 종류를 선택하고 나면 이어서 밥을 선택하라고 나온다. 백미, 현미귀리, 흑미가 있다. 야채 선택에서는 전체 추가에서 지단 빼기, 오이 빼기 등 싫어하는 재료를 뺄 수 있도록 했다. 반대로 토핑을 선택하면 아보카드나 청양고추 등을 더할 수 있다. 디핑 소스도 있다.
주방으로 보이는 곳도 영락없이 서브웨이나 패스트푸드점이다. 검은색 모자에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 네댓명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음식을 만드는데 앞에는 상당히 많은 반찬통이 놓여있다. 김밥 재료들이 줄잡아 20여 가지가 넘는다.
손님들의 식탁에는 김밥이 보이고 비빕밥이 보이고 묵사발도 있다. 간혹 컵라면도 보인다. 한쪽엔 말차로 보이는 음료수가 놓여 있다. 오픈 이벤트 기간에만 무료로 제공하는 말차식혜다.
김밥은 접시가 아닌 맥도날드처럼 겉면에 로고가 새겨진 초록색 유산지(기름종이) 위에 놓여 있다. 쟁반도 초록색이다. 포장을 원하면 은박지 대신 초록색 유산지에 싸준다.
1년 반 전인 2023년 1월 성수동에 1호점을 낸 ‘풀리김밥’이 양재동에 김밥 단어를 빼고 “이풀리”란 이름으로 2호점을 냈다.
1호점을 냈을 때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간에 고객들은 “깁밥계의 서브웨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나만의 김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나 네이버에서 먹고 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글은 “너무 너무 맛있어요” 가 상당수다. 맛있는 음식 앞에 무슨 수사가 필요할까
최재훈 이풀리 마케팅 팀장을 만나봤다.
오픈한지 얼마 안 됐는데 반응이 어떤가?
초반 치고는 손님들이 많은 편이다. 찾은 분들은 인상 깊어 한다. 재방문율도 좋다. 성수동의 경우 48~50% 인데 양재동도 그 정도는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성수동은 핫하고 젊은 층들이 많아 1호점이 들어서기 적당한 곳이다. 2호점을 양재동으로 택한 이유는?
양재점은 성수점과 마찬가지로 직장인들이 많은 곳이다. 성수점과 다른 점은 연령층이 좀 더 폭 넓게 분포해 있다. 이풀리의 가격이 다소 높은 편이라 가격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40~50대로 이용층을 늘리기 위해서 양재점을 선택했다. 그러나 최근 재료비 상승으로 다른 김밥 브랜드들이 가격을 올리고 일반 식당 음식 가격도 9000원 이상 하기 때문에 이풀리의 가격이 높다는 인식이 줄어들었다. 최근에 비싸다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모든 층들이 이용할 수 있게 돼 더 잘 됐다. 매장의 컨셉은 거의 그대로다.
실제로 어떤가?
주고객층은 2030이지만 4050 손님들도 성수점에 비해서 많다. 예상이 들어맞았다.
2030을 주고객으로 택한 이유는?
김밥은 이제 세계적인 추세다. 건강한 음식이고 한식이지만 간단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브웨이의 장점인 “나만의 골라 먹는 음식”이라는 장점을 얹었다. 이 모든 것이 2030과 어울리는 특징들이다. 그리고 깁밥은 어렸을 때부터 친숙한 음식이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즐겨 먹는다. 맛과 건강을 유지하면서 2030을 사로잡으면 전 연령층까지 확대될 것이라 생각했다.
건강한 음식이라고 했는데 이풀리의 특징이 있는가?
일단 참기름부터 다르다. 가격은 비싸지만 일반 볶은 참기름 대신 저온에서 원적외선으로 볶아 압착해서 짠 참기름을 사용한다. 태워서 생기는 문제점을 없애고 참깨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밥도 백미뿐만 아니라 현미귀리, 흑미를 선택할 수 있어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성수점에서부터 한 번도 이틀을 넘은 재료를 쓰지 않았다. 이틀 안에 모든 재료가 다 팔렸기 때문이다. 회전이 빠르다 보니 저절로 신선해졌다.
김밥집에 비빔밥 메뉴를 보니까 색다른 느낌이 든다. 비밥밥을 하게 된 이유는?
성수동에서 시작할 때 브랜드 자체를 “풀리김밥”으로 했다. 주메뉴로 김밥만 팔았다.
이풀리의 목표가 “한식의 패스트푸드화”인데, 김밥만으로는 한식의 확대를 가져오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메뉴개발에 집중했다. 제약조건은 “비빔밥을 만드는데 별도의 공정과 시간이 들면 안 된다”였다. 김밥 재료를 가지고 비빔밥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우스갯 말로 하자면 비빔밥을 김으로 말면 김밥이고 김밥을 풀어헤치면 비빔밥이라고 단순화했다. 연구 끝에 작년 하반기부터 비빔밥을 판매했다. 반응이 괜찮았다. 비빔밥을 찾는 손님 비중이 20~30% 됐다.
“풀리김밥”이란 이름을 양재점에서는 “이풀리”로 바꿨다. “에브리데이 잇 풀리(Everyday eat fully)”의 줄임말이다. 브랜드 영향 탓인지 지역적 영향 탓인지 비빔밥이 많이 팔린다. 양재점을 찾는 손님도 여기가 김밥집이란 생각보다는 김밥과 비빔밥을 파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두 명이 와서 한 명은 김밥을 시키고 한 명은 비빔밥을 시켜 나눠 먹을 정도다. 가격의 부담감을 없앤 점도 크다.
해외 시장도 염두에 뒀다. 김밥과 비빔밥은 혈통은 같다. 같은 음식인데 단지 “김밥은 햄버거처럼 걸어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한식이고, 비빔밥은 앉아서 먹는 한식”으로 인식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풀리김밥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김밥은 안정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빔밥은 어떤가 잘 될 거란 생각이 드는가
감히 예상하자면 비빔밥이 좀 더 많이 팔릴 것 같다.(웃음) 비슷한 음식으로 포케나 샐러드가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양도 다소 적은 편이다. 건강을 찾거나 푸짐하게 먹고 싶은 사람은 비빔밥도 훌륭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비빔밥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음식이라 잘 개발하면 많은 손님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음식은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새롭고 건강한 음식은 몸까지 즐겁다. 익숙한 음식인데 새롭게 선보이면 뇌까지 즐거워진다. 풀리김밥에서 이풀리로, 2030에서 4050으로, 국내에서 해외로 이풀리의 진화가 즐겁고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PS) 말차식혜는 대한민국에 이풀리에만 있는 음료다. 그 배합이 절묘하다. 처음엔 식혜가 말차에 스며들은 듯 했는데 한두입 더 먹었더니 말차가 식혜와 한몸이었다. 이풀리가 말차식혜로 더 유명질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