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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원제 Angst esses Seele auf (Fear eats the soul)

 

파스빈더가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이 영화는 1974년 서독에서 제작되었다.

 

1960년대 말 시작된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 중 하나였던 파스빈더는, 이 영화를 통해서 1972년 벌어진 뮌헨학살 이후의 독일과 나치시대의 독일을 오버랩하면서 인종혐오주의를 정면으로 비난한다. 또한 파스빈더는 어쩌면 상투적일 수도 있는 멜로드라마, 즉 통속극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홀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거나 눈 앞의 상대를 침묵 속에서 응시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독특한 카메라의 시선과 움직임을 통해서, 소극장에서 연극을 볼 때 혹은 갤러리에서 사진을 바라볼 때 발생하는 감흥을 은밀하게 선사한다.

 

20년 전에 남편과 사별한 후 청소노동자로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엠미는 어느 날 밤, 퇴근길에 비를 피해 우연히 들린 바에서 모로코 출신의 이주 노동자인 알리를 만난다. 늙고 초라한 엠미를 놀려먹을 의도를 갖은 심술궂은 여자종업원은 알리에게 엠미와 춤을 추어보라며 부추킨다. 하지만 알리는 자신과 같이 불안에 의해서 영혼이 잠식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엠미에게서 발견한다. 그리고 둘은 다정한 기운이 흐르는 춤을 춘다.

 

 

알리는 자신을 낮에는 개처럼 다루고 밤에는 성적대상으로만 취급하는 독일사회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인간미를 엠미로부터 느끼고, 엠미는 알리로부터 꾸밈없는 훈훈한 인간애를 느낀다. 다음 날 새벽, 잠에서 깨어난 엠미는 평소처럼 별 생각없이 방을 나서다 침대에서 들려 오는 알리의 헛기침 소리를 듣고나서야 어젯밤에 벌어진 일에 대해 자각하고는 황급하게 방을 빠져나가 화장실로 들어간다. 60세의 청소노동자는 거울 속에 있는 생기 넘치는 여자를 바라보다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진다.

 

두 인물은 하객은 없지만 사랑과 존경과 감사함이 충만한 결혼식을 올린다. 이제부터 파스빈더는 이 용감한 60세의 백인여성 노동자와 40세의 아랍계 노동자 커플이 겪어야하는 차별과 경멸과 증오를 장식없이 정직하게 보여준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엠미와 알리는 동시에 지쳐간다. 특히 엠미는 독일사회에 구석구석 드리워진 인종혐오주의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게 되면서, 서구의 제국주의들이 그들의 식민지를 다루듯이, 알리를 하나의 물건처럼 대한다. 그리고 결혼생활은 파탄이 난다.

 

 

엠미에게 버려진 알리는 섹스와 술과 도박에 빠져 병들어가고, 알리를 버렸던 엠미는 자신이 알리를 진심으로 사랑한단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엠미는 결혼식 날 입었던 옷에 용기와 예의를 갖추고 알리를 찾아간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리 역시 결혼식 날 입었던 옷차림이다. 둘은 춤을 춘다. 그리고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더 깊은 사랑의 다짐을 한 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해피엔딩을 향하던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배를 움켜잡고 바닥에 뒹굴면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알리로 전환되고, 곧이어 어떤 병원의 병실로 순식간에 전환된다. 의사는 엠미에게 알리의 병명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천공까지 생긴 심각한 상태의 위궤양이며, 6개월 후에는 또 다시 병원으로 오게 될거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마지막 장면이다.

 

카메라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알리와 그의 손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엠미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미동도 없이 바라본다. 엠미는 한동안 알리를 바라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다가 반성과 후회의 울음을 삼키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불투명한 유리 창문을 응시하며 전보더 조금 더 크게 흐느낀다. 그 순간의 엠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궁금하지만 우리들은 그 답을 영원히 찾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엠미는 카메라를 응시하는 대신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글쓴이 = 송예섭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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