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이슬람 신자인 아세안(ASEAN) 사람이 내게 묻는다. “저는 세 명의 신을 믿습니다. 첫째는 제 아내이고, 둘째는 제가 모시는 대사님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신은 바로 ASEAN입니다. ASEAN 헌장은 성경의 창세기와도 같습니다.” 이 엉뚱한 대답에 ASEAN 사람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외교관의 언어유희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주재국을 신주단지처럼 모셔야 한다는 직업적 소명에서 나온 확신이다. 필자는 과거 자유무역과 세계인권의 수호자인 WTO와 UN 인권이사회를,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희망인 세네갈을 신성시했고, 이제는 자카르타에서 ASEAN 신도로 살아가고 있다. ASEAN을 사랑하고 ASEAN을 이해함에 있어 가장 애착을 느끼는 점은 바로 ‘ASEAN’이라는 이름이다. 동남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이라는 의미 때문은 아니다. 바로 동남아인들 스스로가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민족, 국가, 지역도 다 이름이 있지만, 스스로가 아닌 남이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가령 아프리카는 로마인들에게 모래(afar)의 땅으로 불렸던 것에 기원
2019년은 가히 ‘아세안의 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우리 외교에서 아세안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적으로 높아진 한 해였다. 독자들도 방송과 언론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말 부산에서 아세안 정상들과 회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존경하는 형님(kakak yang mulia)’이라고 인사하면서 친분을 보여주는 훈훈한 장면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특별정상회의는 한-아세안 대화관계수립 3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었으며, 푸드스트리트, 카페 아세안, 패션위크, 뷰티 페스티벌, 영화주간 등 40여개의 다양한 행사에서 우리와 아세안 국민들이 어우러져 서로의 문화를 맛보고 즐기는 흥겨운 자리도 만들어졌다. 스타트업, 문화콘텐츠, 5G 등 미래 산업을 주제로 한 전시회도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찬사 속에 개최되었다. 우리 정부는 2017년 11월 자카르타에서 신남방정책을 천명한 이래 아세안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10년 이상 아세안 업무를 해온 필자로서는 이번 특별정상회의를 가능한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아세안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지시가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1. 싱가포르 덮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싱가포르와 미얀마를 자주 오가다 보니 최근 한국에 계신 지인들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안부 인사를 자주 받게 됐다. 싱가포르에 다녀간 분들로부터 감염된 사람이 한국서 생겼으니 몸 조심하라는 당부였다.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며 갑자기 주목을 받은 두 국가가 있다. 바로 '태국'과 '싱가포르'다. 태국은 사건이 본격화된 이후 줄곧 중국에 이은 2위 감염국가로 집계되어 왔다. 싱가포르는 2월 9일 현재 감염자가 40명에 이르러 3위 국가가 됐다. 태국이 중국과 물리적으로 가까운 인구 7000만 명에 중형 국가임에 반해 싱가포르는 700만 명에 불과 도시국가인 점을 고려하면, 싱가포르가 이번 신종바이러스에 취약함을 드러낸 점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동북아 국가들로의 바이러스 전파를 넘어 지난주엔 프랑스와 영국에까지 바이러스를 전파한 경유지로 '싱가포르'가 지목되면서 이 서울만한 크기의 국제도시는 그야말로 한바탕 커다란 난리법석을 치르고 있다. 일단 이번주부터 모든 국제행사가 축소되거나 취소됐고, 주말에 열리는 평범한 종교행사까지 사람이 대규모로 모이는 행사는 당분간 불가능하게 됐다. 싱가포르 내 모든 회사와 학교
정호재의 緬甸 통신②: 미얀마 물가에 대해 알아보기 (1) 해외 거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생활 정보 가운데 하나는 해당 지역의 '물가(price)'일 것이다. 실제 생활은 물론이고 향후 비즈니스 설계에 가장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얀마 양곤 물가가 어때요?"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런데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무척이나 애매한 질문이다. 그 의도에 따라서 무척이나 다양한 답변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실제 물가란 주관적 체험이 객관적 현실을 압도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우선, 미얀마 물가를 이해시키는 첫 번째 어려움은 한국인의 머릿속에 각인된 '1인당 국민소득'이란 고정관점을 깨는 일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 달러(약 3580만 5000원)를 웃돈다. 반면 아세안에서도 가장 취약한 경제로 평가받는 미얀마의 1인당 소득은 2000달러(약 238만 7000 원) 정도다. 이 수치가 전체 평균을 낸 것이기 때문에 참고는 될 지언정 '물가(物價)'를 나타내는 직접적 지표는 될 수 없다는 점을 공유해야 한다. 의외로 우리 주위엔 '선진국=고물가' '저개발국=저물가'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1. "
"Paris Van Java(자바의 파리)’, 인도네시아 반둥을 아시나요?" 1만 7000여 개 섬에 지구촌에서 네 번째로 많은 2억 6000여만 명이 거주하는 인도네시아에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들이 여럿 존재합니다. 세계적 휴양지 발리나 정치·경제의 핵심인 수도 자카르타만큼 익숙하지는 않지만, 빼놓을 수 없는 고장으로 인도네시아 생활을 처음 시작한 반둥을 들고 싶습니다. 서구 사회에는 ‘Paris Van Java(자바의 파리)’ 별칭으로도 기억되는 반둥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접한 ‘아시아-아프리카 회의(The Asian-African Conference, 1955년 4월 식민 정책에 반대하는 아시아 및 아프리카 29개 신생 독립국 대표들이 모인 국제회의)’ 개최지로 어렴풋이 기억되는 곳입니다. 해발 고도 약 700m에 위치한 반둥은 연평균 기온 22도를 뽐내는 쾌적한 도시입니다. 자카르타에서 동남쪽으로 180km 가량 떨어져 있는 지리적 접근성 덕분에 차량, 기차 등을 이용해 손쉽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2021년 상반기 개통을 목표로 자카르타와 반둥을 잇는 인도네시아의 첫 고속철도 공사도 한창입니다. ‘꽃의 도시(Kota Kemba
일본 고고학이 가르는 역사구분으로 고분(古墳)시대란 기원 3세기부터 7세기 전후의 약 400년을 가리킨다. 이 시기 일본인은 저 세상으로 떠난 지배자를 기려 거대한 고분을 조영했다. 기나이(畿內) 오사카 평야에는 오-진(応神) 천황 능으로 알려진 콘다고뵤야마 고분(誉田御廟山古墳)은 분구 길이가 420m나 되고, 오-진의 네 째 황자로 임금의 자리를 이은 닌도쿠(仁德) 천황 능으로 알려진 다이센능고분(大山陵古墳)은 분구 길이 486m에 이르는 등 최대 규모의 고분이 출현한다. 지방에서도 오카야마(岡山)의 쓰쿠리야마(造山)고분은 분구 길이 360m, 츠쿠리야마(作山)고분은 분구길이가 260m에 이른다. 군마의 오-다테텐신야마(太田天神山) 고분도 분구 길이 210m에 이르는 등 거대 고분이 만들어졌다. 이런 고분이 만들어진 것은 3~4세기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거대 고분이 돌연 나타난 것일까? 특히 출토된 유품 중 대륙제의 ‘금색찬연’한 부장품이 주목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말없는 이들 거대 고분에 누운 주인공은 누구일까? 글쓴이는 이 의문에 명쾌한 해답은 준 것이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교수가 주장한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이라고 본다. 도쿄대의 이노
1. 비행기에서 만난 샨족 케이팝 팬 얼마 전 싱가포르발 미얀마행 비행기를 탔다가 마주친 일이다. 별 의도없이 여권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았는데 옆자리 십대 후반의 여대생이 내 여권을 보고 눈이 반짝반짝해지며, "한국분이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옆좌석 낯선 이에게 먼저 인사를 받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은 일이다. 게다가 국적과 관련된 인사는 더욱 반갑다. 1시간 이상 무표정으로 이어폰에 집중하고 있던 그가 갑자기 "저, 지금 케이팝 듣고 있었어요. 엑소와 마마무 좋아하는 케이팝(K-POP) 팬이에요"라고 마음을 연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공부 중인데 이제까지 제대로 한국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덕분에 남은 비행기 시간 동안, 그녀가 궁금해 했던 케이팝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같은 사례는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꽤나 흔한 현상이 됐다. "한국"이라는 국적이 많은 이들에게 "쿨하고 멋지다"는 이미지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대략 2010년 무렵 부터인데 아시아에 장기 거주한 분들은 꽤나 체감을 한 현상일 것이다. 싱가포르 역시도 한류와 케이팝 덕질의 나라이기 때문에,
1. 싱가포르 사람들은 다 어디 숨었을까? 필자는 아시아와 동남아를 직접 만나기 위해 싱가포르에 왔는데, 막상 도서관에만 처박혀있으니 상당기간은 답답한 시간이 지속됐다. 정보를 사람이 아닌 책과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일은 참 쉽게 적응이 안되는 일이었다. 만나는 사람들도 주로 유럽에서 온 학생들이거나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태반이었다. 우선적으로 궁금한 이들이 싱가포르 사람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 가장 만나기 힘든 분들이됐다. 기존에 알던 싱가포르인 친구가 몇 있기도 했지만, 원래 잘 아는 사람에게 갑자기 진지한 질문을 하기 어려운 법이다. 싱가포르에 대한 여러 궁금한 점들을 싱가포르인들에게 직접 듣지 못하고 한동안 한국인들에게 간접적으로 전해듣는 상황은 무척이나 어색했다. 학교에서도 미국이나 유럽 얘들이 태반이었고, 아무리 찾아봐도 학부대학생으로 변신하지 않는한 싱가포르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물론 한인교회나 테니스 모임에는 한국인들 천지였고. 아, 이렇게 당혹스러울 수가 없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다 어디 숨었을까? 현지인들의 솔직한 느낌을 어떻게 하면 들을 수가 있을까? 우선 내 주위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로컬 사람들은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