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이슬람 신자인 아세안(ASEAN) 사람이 내게 묻는다.
“저는 세 명의 신을 믿습니다. 첫째는 제 아내이고, 둘째는 제가 모시는 대사님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신은 바로 ASEAN입니다. ASEAN 헌장은 성경의 창세기와도 같습니다.”
이 엉뚱한 대답에 ASEAN 사람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외교관의 언어유희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주재국을 신주단지처럼 모셔야 한다는 직업적 소명에서 나온 확신이다.
필자는 과거 자유무역과 세계인권의 수호자인 WTO와 UN 인권이사회를,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희망인 세네갈을 신성시했고, 이제는 자카르타에서 ASEAN 신도로 살아가고 있다.
ASEAN을 사랑하고 ASEAN을 이해함에 있어 가장 애착을 느끼는 점은 바로 ‘ASEAN’이라는 이름이다. 동남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이라는 의미 때문은 아니다. 바로 동남아인들 스스로가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민족, 국가, 지역도 다 이름이 있지만, 스스로가 아닌 남이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가령 아프리카는 로마인들에게 모래(afar)의 땅으로 불렸던 것에 기원하며,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라고 착각한 나머지 그곳의 원주민들에게 인디언(Indian)이라는 엉뚱한 이름을 붙였다(그래서 최근 미국 지식인들은 Indian보다는 Native American이라는 표현을 쓴다).
동남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유럽인들에게 동남아는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되었다. 유럽인들은 향료와 조미료의 산지라고 알려진 인도에 도착했지만, 정작 그것들은 인도가 아닌 동남아의 열도에서 생산됨을 알았다.
그러자 유럽인들은 수마트라, 자바, 슬라웨시, 파푸아로 이어지는 열도를 ‘인도 제도’(Indian Archipelago 또는 Insulinde)라 이름 지었다. 심지어 자카르타에 ‘동인도’ 주식회사를 세운 네덜란드 역시 이 지역을 인도의 동쪽 지방이라고 본 것이다.
동남아 내륙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푸난, 대월, 크메르 등 동남아 역사의 획을 그었던 왕조들이 있었지만, 유럽인들은 이 지역이 단지 인도와 중국의 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로 인도차이나 반도(Indochina Peninsular)라는 이름을 지었다. 동남아는 인도와 중국이라는 거대 문명권의 변두리로서 독자적인 이름을 지을 필요가 없어보였던 것이다.
서양 문헌에서 동남아(Southeast Asia)라는 지리적 개념은 1890년대에야 비로소 등장한다. 독일 지리학자의 이 아이디어를 이후 미국, 영국이 받아들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당시 스리랑카에 주둔한 영국군의 이름이 동남아부대(Southeast Asia Command, SEAC)였음에 비추어 동남아는 이제 유럽국가의 공식 지명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탄생한 지리적 개념 동남아 역시 유럽인이 지어준 지명일 뿐이며, 그래서 더더욱 ASEAN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럽다. 해방 이후 동남아 국가 일부는 ASA(Association of South-East Asia, 1961), Maphilndo(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연합, 1963)이라는 연합체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1967년 5개국으로 출범한 ASEAN은 지난 52년 동안 통합과 발전을 거듭해왔다. 오랜 냉전의 상처를 극복하고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도 받아들인 ASEAN은 그 정체성을 동남아의 해양과 내륙까지도 확산시켰다.
카리브 출신 정치가 리처드 무어는 ‘개와 노예의 이름은 주인이 지어준다. 오직 자유인만이 스스로 이름을 짓는다’고 했다. 인도와 중국을 연상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유럽의 작명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 이름 ASEAN(‘아시안’도 아니고 ‘아세안’이라니!). 나의 세 번째 신 ASEAN을 떠올릴 때마다 김춘수의 시 ‘꽃’이 마치 복음처럼 귓가에 맴돈다.
ASEAN 창설의 아버지들에게 다시금 경의를 표하며, 모든 ASEAN 국민뿐만 아니라 신남방정책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도 그 이름의 소중한 의미를 간직했으면 한다.
윤상욱 주아세안대표부 공사참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