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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EAN 칼럼11] 로힝야 난민 평화정착이 아세안공동체 정신

라카인 주 평화정착를 위한 ASEAN 노력, 한국 신남방정책과 부합

 

2020년 6월 25일, 94명의 로힝야(Rohingnya) 난민을 실은 한 척의 배가 수개월을 바다에서 떠돌다 인도네시아 아체 앞바다로 흘러들어왔다.

 

아체 해양경비대는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그러했듯 이들을 밀어내려고 했다. 이를 지켜본 아체 주민들이 격렬히 항의하고 난민들을 수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심지어 이들은 정부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주민들이 나서서 구조하고 이들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할 것이라고 외쳤다.

 

■ 로힝야,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민족...역사, 종교, 인종, 사상 얽혀진 문제

 

결국, 중앙 정부의 허락을 받은 아체 해양경비대는 주민들과 함께 난민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선박 전체를 감싸고 있을지도 모를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체 주민들이 로힝야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끌고 감싸 안으며 육지로 내리도록 도와주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이들 이외 아직도 수천 명의 로힝야 난민들이 바다를 떠돌고 있고, 또 다른 수십만의 로힝야 난민들은 수용소에서 고통 속에 생활하고 있다. 왜 이들은 이렇게 버림받았으며 이들에게 평화와 안식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 것일까?

 

그간 UN과 서구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미얀마 정부에 이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고 제재까지 언급하며 압박하여 왔다. 아세안 지역에서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로힝야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 왔다.

 

최근에는 ASEAN 사무국에서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 또한 인도주의 차원에서 로힝야 난민 지원을 위해 상당한 액수의 구호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힝야 난민 문제의 근저에는 역사, 종교, 인종, 사상 등 다양한 분쟁 요소들이 얽혀 있어 해결이 용이하지 않다.

 

■ 로힝야족들은 왜 박해를 받는가?...미얀마 군 쿠데타 이후 추방작전

 

로힝야족은 기원에서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 미얀마에서 정당하게 거주할 권리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힝야족들은 자신들이 7세기 현 미얀마 라카인(Rahkain)州 지역에 있던 아라칸 왕국에 정착한 아랍 무슬림 상인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1824년 이후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통치하기 시작한 뒤 같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방글라데시로부터 이주 해 온 불법이민자라고 하며, 로힝야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하고 이들을 벵갈리(Bengali)로 부른다.

 

미얀마 북부 아라칸(Arakan) 지역에 소수의 무슬림이 오래전부터 거주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대다수 로힝야족의 조상은 영국의 진출과 함께 벵갈에서 미얀마로 건너온 것이라는 것이 다수설이다.

 

 

영국은 1826년 버마와의 전쟁 승리로 미얀마 아라칸(현 Rahkain州)를 할양받은 후, 아라칸인들의 농경지를 빼앗아 농장을 만들고 영국에 순종적인 벵갈인들을 이주시켜 경영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영국이 미얀마를 완전 식민지화한 후 미얀마 전국으로 확대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로힝야족과 버마족 사이에 뿌리 깊은 갈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버마족들이 해방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로힝야족들이 영국의 편에 섬으로써 두 민족 사이 앙금은 더욱 깊어졌다.

 

로힝야족 난민 발생 문제는 버마에서 네 윈(Ne Win) 장군이 쿠테타로 집권한 후에 민족주의 정책을 강화하면서 본격화했다.

 

1978년 라카인 지역에서 네 윈 정부는 시민권 등록을 이유로 ‘킹 드래곤(King Dragon)’ 이라는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약 4개월간 펼쳤다. 이로 인해 20만이 넘는 로힝야족들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이들은 같은 해 7월 버마-방글라데시 협정으로 다시 라카인주로 귀환했으나 1989년 버마가 미얀마로 국명을 바꾼 그해 다시 약 25만 명의 로힝야족들이 방글라데시로 밀려났다. 미얀마 정부는 1982년 시민법을 개정하면서 로힝야족을 공식 인정 종족에서 제외시켰다.

 

2012년에는 라카인주에서 불교도인 라카인족과 로힝야족 사이에 유혈충돌이 발생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2017년에는 로힝야 무장 반군이 경찰 초소를 습격하여 30여명의 미얀마 경찰이 사망함으로써 미얀마 군이 본격적으로 반군 토벌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다시 수십만의 로힝야족들이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후 지금까지 난민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 국제사회의 반응, 유엔 "미국-EU-이슬람권 안전한 귀환 보장" -중국·러시아 "미얀마 의견 존중"

 

2017년 미얀마 군의 군사작전 후 미국, EU 등이 사태에 대한 책임 규명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라카인주 문제는 국제사회의 주요 인권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UN 사무총장은 미얀마에 군사작전 중단과 피난민의 자발적이고 안전하며 존엄한 귀환 보장을 촉구하였다. UN 인권이사회는 미얀마 정부에 미얀마 군부의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규명을 요구하였다.

 

코피 아난(Kofi Annan) 전 유엔사무총장은 1년간의 라카인주 평화정착을 위한 자문단 활동 후 최종보고서에서 로힝야족에 대한 시민권 부여, 이동의 자유 보장, 빈곤 해결만이 라카인주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최근에는 라카인 사태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 국제형사재판소 관여 등으로 미얀마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개별 국가별로는 라카인주 문제에 대한 반응에 차이가 있다. 미국, EU 회원국, 이슬람권 국가는 미얀마 정부의 조치를 규탄하며 피난민 귀환 보장을 위한 행동을 촉구하고 있는 반면, 중국·러시아 등은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지나친 대응에는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미얀마 정부의 입장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또한 그간 미얀마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 및 경제 투자 등 양국 관계의 긴밀성을 고려하여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아세안 중 같은 종교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가장 적극적

 

아세안 회원국 중에는 로힝야족과 같은 종교권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가장 적극적으로 라카인주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6년 나집(Najib) 말레이시아 수상은 “라카인주 문제에 내 눈과 입을 닫지 않겠다. 로힝야족이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져서만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라며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조치를 “이슬람에 대한 모독”이라 칭하고 이 문제에 침묵하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난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라카인주 문제가 지역의 안정을 저해한다며 아세안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과 ‘내정 불간섭’이라는 강력한 두 원칙이 지배하는 아세안 방식이 결국 라카인주 문제와 같은 지역 내 인도주의 위기 이슈에 무기력하다는 역외 국가들의 비판에 아세안 또한 이 문제를 방관할 수만은 없었다.

 

2018년 11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33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미얀마 간 라카인주 문제 관련 성명 채택에 있어 격론이 있은 후 아세안 정상회의 처음으로 라카인주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이루어졌다.

 

성명서를 보면 로힝야 대신 ‘난민(displaced person)’이라고만 표현되어 있다. 이는 로힝야족을 불법 이민자로 간주하고 ‘로힝야’ 용어 자체를 부정하는 미얀마 정부의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주 내용은 미얀마 정부의 라카인주 문제 해결을 위한 그간의 노력을 지지하고, 미얀마 정부에 방글라데시, UN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협력해 나갈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이 성명에서 아세안은 처음으로 로힝야족의 귀환을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적시하고 있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글라데시에 피난 중인 로힝야족들이 라카인주로 귀환할 수 있도록 미얀마 정부를 적극 지원할 것이며, 이를 위해 아세안 재난관리·인도적 지원센터(AHA 센터 : ASEAN Coordinating Centre for humanitarian Assistance on Disaster Management)로 하여금 라카인주 난민 정착을 위한 예비 수요조사를 실시하게 한 후 미얀마 정부와 협력하여 이를 준비해 나가겠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아세안이 ‘아세안 이슈를 아세안화’하여 아세안의 위상을 제고하고 ‘아세안 중심성’ 가치를 확보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2019년 6월 AHA 센터는 아라칸주 예비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였으며, 아세안 사무국은 예비 수요조사가 제안한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2020년 3월 사무국 내 태스크 포스팀을 구성하였다.

 

■ 대한민국의 노력 ”라카인주서의 폭력 배격, 로힝야 난민 인도주의 구호“

 

라카인주 로힝야 인구는 110만명이다. 지금까지 추정되는 사망자는 약 1만명, 폭력사태 후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떠난 로힝야 난민의 수는 72만명이다.(엠네스티)

 

라카인주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는 라카인주에서의 폭력은 단호히 배격하면서도 로힝야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 구호 노력은 적극적으로 전개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은 유엔 미얀마 인권 결의를 지속 지지하는 한편, 아라칸주 문제 해결을 위한 미얀마 정부의 노력 또한 지지하고 있다.

 

한편, 한국 정부는 2017~2019년 간 유엔난민기구(UNHCR), 유엔아동기금(UNICEF), 국제적십자위원회(IRC)를 통해 방글라데시 난민캠프 지원, 라카인주 재건 사업 등에 1650만 달러(약 197억 6700만 원)을 공여하였다.

 

 

■ 미얀마 정부 "서구권은 지나치게 인권 편중" 지역 평화를 위한 한·아세안 협력 강화

 

국제사회의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라카인주 문제는 현재 뚜렷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난민귀환을 위한 자국의 노력을 강조하며 아라칸주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이 서구권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인권 측면에만 편중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보다 편한 대화 상대인 아세안과의 협력을 통한 아라칸주 문제 해결 노력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한편, 아세안은 라카인주 해결에 본격적 개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과 ‘내정 불간섭’이라는 아세안 원칙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라카인주 이슈 관련 2020년 6월 개최된 제36차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 성명이 기존 성명과 마찬가지로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70만 명이 넘는 로힝야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세계 빈곤 국가의 하나인 방글라데시는 국가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수용소에서 탈출한 많은 난민들이 해상에서 떠돌거나 인신매매, 폭력, 착취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라카인주 문제가 방치될 시 난민들의 폭력화·급진화를 야기하고, 아세안 회원국들 간 갈등이 심화하여 지역의 불안정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아세안은 재난관리·인도주의 문제에 대해 ‘하나의 아세안, 하나의 대답(One ASEAN, One Response)’ 라는 대응원칙을 가지고 있다. 아세안이 지난 사스(SARS) 위기 때도, 올해 코로나19 발생 위기에도 회원국 간 그리고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연계하며 신속하게 대처한 사례를 볼 때, 인도주의 분야와 같은 비전통적 안보 이슈에서 아세안은 분명히 충분한 대처 역량을 가지고 있다.

 

라카인주 문제 역시 당사국인 미얀마,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신속히 해결방안을 제시하여야만 아세안이 추구하는 ‘하나의 비전, 하나의 정체성, 하나의 공동체(One Vision, One Identity, One Community)’를 진정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세안과 ‘사람 중심의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 구현을 목표로 신남방정책을 추진하는 우리로서는 아라칸주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하는 것 또한 주요 외교 현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020년 1월 임성남 주 아세안 대한민국대표부 대사가 아세안 대화상대국 중에서는 처음으로 아라칸주 정착지원 사업 후원금 50만 달러(약 5억 9905만 원)을 아세안 사무국에 전달하였다. 림 족 호이 아세안 사무총장은 한국의 따뜻한 온정이 아세안 회원국뿐만 아니라 대화상대국들 모두에 눈이 굴려 눈사람이 되는 ‘스노우볼효과(snow bowling effect)’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향후에도 아세안 대표부는 아세안과 미얀마 정부의 라카인주 문제해결 노력을 지속 지지하고,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적극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로힝야 난민을 구호한다는 인도적 차원의 의미에 더하여 ‘인간’을 중시하는 우리 신남방정책의 근본정신을 구현해 나가는 일과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글쓴이=이수홍 행안관/ 주아세안 대한민국대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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