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도 아세안을 굉장히 중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두 달. 각계 각층에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그 가운데 외교 정책 중 ‘신남방 정책’의 향배를 두고 한국은 물론 아세안 국가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 첫 시그널은 윤 정부의 첫 외교수장인 박진 외교부 장관의 첫 주한 외교사절과의 만남이었다. 박 신임 외교부 장관은 주한 외교단과의 행사를 아세안(ASEAN, 동남아연합) 대사들을 만나는 걸로 시작했다.
아세안익스프레스는 이와 관련 한동만 전 필리핀 대사-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를 만났다.
최근 두 사람은 올해 아세안 의장국을 수임한 캄보디아와 외교수립 30주년이 된 베트남을 방문을 하고 돌아왔다. 이들 두 전문가는 “박진 장관의 행보를 보면, 윤 정부도 ‘아세안 중시 정책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 “한국은 세계 10위 글로벌 중추국가...외교적으로 아세안 중심역할 인정”
두 사람을 한 서울 광화문 식당에서 만났다. 한 대사는 한 주 전 베트남과 캄보디아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고, 최 교수는 베트남-캄보디아-싱가포르의 출장 강행군을 마치고 아침에 막 비행기에서 내려 식당으로 달려왔다.
아세안익스프레스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새로 들어선 윤석열 정부가 외교정책 중 ‘신남방정책’을 계속해서 이어나갈지 여부이다.
한 대사는 “한국은 세계 10위 국가다. 동맹국인 미국과 협력해서 국제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 중국과도 상호존중과 호혜 원칙 위에서 협력하고, 동남아와 인도 등 인태지역의 주요 국가들과도 설사 이름이 바뀌더라도 외교적 중시 기조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비전을 제시한 윤 정부의 박진 신임 외교부장관이 아세안 대사들을 첫 만남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상징성 있다” “평가할 만하다”고 한 목소리로 평가했다.
아세안 대사단(ASEAN Committee in Seoul, ACS)는 아세안 10개 회원국 주한 대사단 모임으로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이 멤버다.
최 교수는 “박 장관이 아세안 대사들과 만난 시간이 두 시간이 넘었다고 들었다. 올해는 한-베 30주년이다. 수교 이후 현재 한국과 아세안 무역의 반인 900억 달러(약 116조 3430억 원) 정도가 베트남에서 나올 정도로 한-베 관계는 밀접하게 발전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한국 국립외교원도 베트남 내 주요 연구기관인 베트남 외교아카데미(DAV), 사회과학원(VASS), 호치민정치아카데미(HCMA) 등과 학술교류가 한층 깊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캄보디아는 올해 아세안 의장국이다. 11월 아세안정상회의가 개최된다. 또, 아세안 10개국에 추가하여 한-중-일-미국-인도-호주-뉴질랜드-러시아 8개 아세안 대화상대국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이어서 예정되어 있다. 여기서 초미의 관심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참가 문제다.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푸틴과 바이든이 만날 수 있는지여부가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고 말했다.
■ 아세안 국가 초미 관심 질문은 “한국 정부 바뀌었는데 신남방정책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세안 초미의 관심사는 “한국 정부 바뀌었는데 신남방정책은 어떻게 되는가?”였다.
두 사람도 가는 곳마다 물어왔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직 정식으로 발표한 것은 없다. 신정부의 큰 그림은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포괄적 지역전략 안에서 아세안 중시정책을 이어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대사는 “문재인 정부는 신남방정책의 세 가지 축(pillar) 중에서 인적교류와 경제측면인 상생공영에 주로 집중했고, 상대적으로 평화에 대한 비중이 적었다. 윤석열 정부는 세계 10위의 경제력, 세계 6위 군사력을 보유한 한국이 남중국해 등 동남아 안보문제에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동남아 국가들과 해양안보와 방산분야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정부의 정책적 지향으로 볼 때, 인도-태평양전략 하에서 아세안을 계속 중시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신남방정책’이라는 정책 브랜드를 계속 사용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미-중 전략경쟁이 치열해지는 국제환경에서 한국에게는 아세안이 경제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 대사의 분석이다.
최 교수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올해 베트남 수교 30주년을 맞아 베트남과 협력사업이 많다. 올해 양국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되어 있다. 향후 30년 간 양국 관계의 비전과 발정방향을 제시할 ‘한-베트남 현인그룹’(Eminent Persons Group: EPG)의 활동도 그 중의 하나다. EPG 사무국은 한국은 국립외교원, 베트남은 국립외교아카데미가 맡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캄보디아 프놈펜을 방문해서 캄보디아 외교부 아세안 담당 차관보를 면담하고 올해 아세안 의장국 캄보디아의 아세안 정상회의 준비 관련 얘기를 들었다. 이후 싱가포르를 갔는데 ‘샹그릴라 안보대화’ 회의장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샹그릴라 안보대화’에서는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해 각국 국방장관이 참석해서 연설을 했다. 한국 국방장관도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해 연설을 했다. 대면회의로 개최되었는데 코로나19 직후라 500여명 정도로 규모를 축소해서 개최했는데, 미국과 중국 국방장관 사이에서 하루 차이를 두고 비판과 반박이 이어지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아세안 각국 전문가들 또한 한국의 ‘신남방정책’ 지속 여부가 관심사였다. 야당이 집권했으니 과연 정책은 그대로 갈거냐 바뀌느냐가 관심이었다.
그만큼 아세안 국가들은 한국에 대해서 기대와 관심이 크다. 신남방 정책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한국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방증이다.
최 교수도 한 대사의 분석에 동감했다. 그는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전제로 “박 장관이 아세안 대사들을 첫 만남 대상으로 정한 것을 보면 신정부가 인도-태평양전략이라는 큰 그림 아래서 아세안을 중시하는 정책기조를 이어나가게 될 것 같다. 인태전략의 관점에서 보면 아세안이 미중 대결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그 전략적 중요성은 ‘신남방정책’보다 더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신남방정책에서는 경제협력, 인적교류에 방점을 찍었지만, 신정부는 이를 강조하면서도 역내 안보에서 더 폭넓은 역할을 하겠다는 전략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도 아세안을 더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이번 출장에서 목격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 6월 30일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식...윤 대통령 특사 파견 '아세안협력' 강조 활동 기대
한동만 대사는 “오는 6월 30일 봉봉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취임식에 대통령 특사를 파견할 것 같다. 비중 있는 인사가 대통령 특사로 가서 필리핀뿐만 아니라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도 방문하면 좋겠다. 한국 신정부의 아세안과의 협력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국관계 강화방안뿐만 아니라 부산 엑스포 유치 외교 활동도 전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치전에서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특히 큰 나라들 지지하는 게 중요한다. 근데 캄보디아는 다행히 우리 지지하겠다고 했다. 원래 러시아 지지에서 선회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아세안 대부분 사람들이 한국에 굉장히 친숙하다. 문화적으로도 K-POP, K-drama 등 한류를 좋아한다. 그리고 식민지나 침략 경험 같은 것이 없으니까, 상대적으로 한국은 부담이 없고 편한 나라로 여긴다. 중국은 겉으로는 경제적으로 중요하니까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중국이 압도적인 경제력을 통해 강압적으로 나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이 아세안 국가들의 생각이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유념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최 교수는 “아세안은 전통적으로 한 나라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일본이나 중국이 못 해주는 것을 한국이 해줘야 한다.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여러 상대와 다 잘 지내기’라는 싱가포르의 모토처럼 아세안은 여러 강대국들을 끌어들여 두루두루 관계를 맺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아세안 10개국은 강대국과는 좀체로 동맹을 맺지 않고 중립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아세안 자체가 만장일치제다. 강대국에 싸여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대부분 다 중립을 지키려고 한다.
두 외교 전문가는 아직 신정부 외교정책이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박진 외교장관의 행보를 통해 신정부도 “아세안 중시 기조를 이어갈 것”이 확실하다고 평가했다.
■ 더 넓게 볼 수 있는 시야 필요 “아세안 정치학과-아세안 경제학과 나올 때 왔다”
이제 아세안을 경제나 문화 등 협소한 관점에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서 ‘아세안’에 대해 보다 넓은 시야와 전문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한동만 대사는 “저는 오래전부터 아세안 정치학과, 아세안 경제학과 이런 게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부산의 영산대학에는 인도 경영학과가 있다. 좀 체계적으로 학문적으로 배우고 시야를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베트남 외교 아카데미를 갔더니 외교 아카데미에 한국어 학부가 생겼다. 올해부터 운영을 한다고 들었다. 베트남 외교 아카데미는 학부와 대학원 교육과정을 갖춘 외교전문 대학”이라고 소개했다.
이처럼 두 사람은 이제 그동안 주로 해왔던 어떤 특정 나라에 대한 지역 연구에 더해 아세안, 그리고 보다 넓게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제관계와 외교에 대해 보다 전문적으로 접근하는 시각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아세안 전문가가 되려면 어떻게 가능할까?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 전문가, 그 다음에 베트남 전공인 전문 등 특정 국가 중심의 전문가들이 이야기된다. 하지만 이제 아세안 지역의 국제 관계, 그리고 인도 태평양 지역 전체 등으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또 아세안만 들여다 본다고 아세안을 잘 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아세안을 조망하는 그런 시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베트남 수교 30년 현인그룹은 올해 연말까지 ‘한-베트남 관계 향후 30년 발전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 양국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물론, 이런 ‘베트남 현인그룹’ 같은 베트남전문가는 물론이고, 아세안 각 국가들에 대해 전문성을 갖춘 특정 지역 전문가 그룹도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동만 대사는?
1985년 외교부에 입부(19회 외무고시)한 이후 파리정치대학을 수료하고 파리 1대학(판테옹 소르본느) 대학원에서 국제행정을 공부하였다.
알제리, 영국, 호주, 뉴욕, 워싱턴에서 근무하였고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에서 일한 후에 외교부에서 안보정책과장, 통상홍보기획관, 국제경제국장을 역임하였다. 그후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를 거쳐 외교부 재외동포영사대사(현 재외동포영사실장)직을 마친 후에 2018년 1월부터 3년간 필리핀 대사를 역임하였다. 현재 국립외교원 아세안- 인도센터 고문으로 일하면서 한-베트남 수교 30주년을 맞아 현인그룹 운영자문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10년후를 말한다: 글로벌 메가 트렌드 변화와 우리의 미래전략(2011, 한스미디어)”와 “대한민국의 신 미래전략, 아세안이 답이다(2019, 글로벌 콘텐츠)”이 있다
최원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 학사 및 석사, 미국 워싱턴대학교 정치학 박사. 현재 국립외교원 교수 및 아세안-인도연구센터 책임교수. 한국외교협회 외교지 편집위원,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회 한-남아시아 의회외교포럼 자문위원, 유엔기후변화협상 정부대표단 외교부 자문 등을 역임했다. 현재 아세안 및 인도태평양 국제관계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