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한 해 동안 동남아에선 무슨 일이?
전북대 동남아연구소가 올해도 (사)한국동남아학회와 함께 지난 2월 1일과 2일 이틀간 동남아시아의 2022년을 돌아보고 2023년을 전망하는 동남아지역동향설명회(이하 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는 온라인 화상회의로 개최되었다. 주중에도 학자는 물론 전직 외교관과 시민사회, 일반 시민 등까지 60여 명이 실시간 회의에 참여하여 동남아 각국에서 지난 한 해 동안 화제가 되었던 다양한 이슈에 관한 궁금증을 풀고 2023년 전망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날인 2월 1일에는 베트남과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싱가포르 국가 동향이, 이튿날에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아세안 동향에 관한 발표와 토론, 질의응답이 이루어졌다.
제5회 동남아지역동향설명회는 유튜브로 다시보기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여섯 번째 발표는 부경대의 정법모 교수가 맡았다. 부산외대 아세안문화원장 김동엽 교수가 토론에 참여했다.
[필리핀 2022: 전통적 가문정치의 귀환과 코로나19 이후의 경제회복 과제]
발표: 정법모 부경대 교수 토론: 김동엽 부산외대 아세안문화원장
발표를 맡은 부경대의 정법모 교수는 필리핀 정치와 관련해서는 2022년 실시된 총선과 그 결과로서 나타난 가문정치의 부활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았다.
두테르테 집권 마지막 해로서 재임 기간 중 그가 약속했던 개혁과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지를 평가할 때 구조적인 정치적-경제적 개혁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하기는 힘들고, ‘가문정치의 부활’이라는 말이 압축적으로 말해주듯이 단지 권력의 주체만 이동한 셈이라고 진단했다.
2022년의 필리핀 경제는 국가 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산업과 해외노동자 송금이 코로나19 상황에서 급감한 데 따른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신정부는 두테르테 정부의 ‘Build, Build, Build’ 정책에서 더 나아가 ‘Build, Better, More’를 천명하며 팬데믹 복구를 위한 경제 정책으로 인프라 사업에 더욱 주력하려는 태세다.
한국과의 관계도 이러한 정책 기조에 힘입어 현대건설과 롯데건설이 2022년 말에 규모가 큰 필리핀 남북부 도시철도사업을 수주한 상태다. 2019년부터 시작된 한-필리핀 FTA 협상으로 양국은 전체 가운데 약 95%에 이르는 품목에서 관세를 철폐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여전히 공식 서명 및 발효를 남겨둔 상태여서 향후 어떻게 귀결될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신정부는 독립외교를 계속한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노선을 취할지와 관련해서는 중국과 미국 어느 한 편에 분명히 서지 않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르코스 가문의 정치적 근거지인 일로코스 북부 지역이 오랫동안 중국과의 교역 중심지였던 점도 중국과의 실리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입장에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등 전통적 우방국들과의 관계도 회복하려는 태도를 보여 향후 양자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갈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토론을 맡은 부산외대 아세안문화원장 김동엽 교수는 지난해 열렸던 필리핀 선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분히 결과론적인 측면이 있다며, 필리핀 국민이 단지 1970년대를 위대했다고 기억하기 때문에 봉봉 마르코스와 사라 두테르테를 찍었다고 보는 것은 필리핀 정치의 특징을 간과하는 분석이라고 지적했다.
선거가 시작될 즈음 봉봉의 입지가 상당히 약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실상 필리핀 선거에서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 것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입장, 즉 그가 누구를 지지하느냐가 핵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 70~80%대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되고, 여기에 일로코스, 아로요, 세부, 민다나오 지역의 전통적 엘리트 가문의 네트워크가 총동원되어 지지기반이 공고화되었다는 사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던 것이 매표, 즉 돈이 유권자들을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공식 선거기간이 3개월에 이르는 필리핀 선거제도의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재력을 쥔 지역 토호세력의 결집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김동엽 교수는 덧붙였다.
한편 필리핀의 외교 노선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나는 미국 편도, 중국 편도 아니고 필리핀 편’이라고 공언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른바 ‘양다리 외교’라 불리는 독립외교 혹은 자주외교 노선을 표방해왔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필리핀의 전통적인 외교전략으로 회귀한 것에 가까우며, 남중국해 분쟁 등에서 국제법에 의지하는 규칙기반 외교도 그 일면이라고 언급했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나 인권 등을 중시하는 ‘가치외교’ 측면에서는 우리나라와 협력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는 볼 수 없다며 앞으로의 한-필리핀 외교 관계에서 유의할 점으로 꼽았다.
끝으로 인적 교류와 관련해서 김동엽 교수는 요즘 큰 화젯거리인 한국영화 <카지노>를 보면 위험하고 범죄가 난무하는 곳으로 필리핀이 묘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한국인들이 필리핀에 가는 이유는 필리핀 사회가 가진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자유는 만끽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은 방기한 결과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를 계도하는 필리핀 연구자들의 교육적 역할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