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루이 토-키치(樽井藤吉)는 ‘대륙낭인(大陸浪人)의 선구자 중 한 사람’(旗田巍, 1969)로 불리는 메이지 시대(1868~1912) 인물이다. 대륙낭인이란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중국대륙 특히 만주·유라시아대륙·시베리아 등 방랑하면서 각종 정치활동을 한 일군의 일본인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한 ‘방랑자’가 아니라 일본의 조선 병탄을 노린 대륙침략의 척후병들임을 놓칠 수 없다. 타루이는 메이지 26년 즉 1894년 <대동합방론>(大東合邦論)이란 저서를 내놓고는 조선 병탄을 도모한 ‘대동합방’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침략사관을 포장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그가 주장한 ‘대동합방’의 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70년대 대두하여 무르익었던 ‘세이칸론’(征韓論, 이하 ‘정한론’)을 눈여겨봐야 한다. 왜냐하면 대동합방론은 정한론의 후속편이기 때문이다. 정한론을 포장한 자는 타루이뿐만 아니다. 미국의 펜실바니아 대학 교수 힐라리 콘로이(Hilrary Conroy)는 전혀 다른 논리로 정한론을 합리화한 <일본의 조선병탄>(The Japanese Seizure of Korea, 1960)을 간행한다. 그는 조선
[일본인은 누구인가 11] 일본의 신앙: 신도란?: 철학도 교리-교단도 없다! 신도(神道)는 일본의 국민 종교라 할 만하다. 신자 수는 총 인구 1억 2659만명[2018년 기준] 중 신도계가 8474만 명으로 일본국민 대다수가 신도 신자라고 볼 수 있다. 불교 신자도 8950만 명에 이르지만 기독교계 신자는 214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경우 기독교도와 불교도가 주류를 이루는 종교 지형과는 딴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도는 어떤 종교인가? 신도는 세계종교라고 하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어떤 가르침의 종교는 아니다. 신도에는 글로 엮은 명백한 경전이 없고, 교조(敎祖)도 교단도 없다. 신사는 교단이 아니고 공동체나 국가의 제사장 또는 제사기관일 뿐이다. 그렇다고 신도가 종교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불교가 깨달음과 자비의 종교이고, 기독교가 사랑과 용서의 종교라면, 신도는 신을 두려워 해 그를 모시는 ‘마츠리(祭)’의 종교, 곧 제사의 종교이다. 영국의 문필가로서 일본문화에 심취한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은 일본에 귀화한 작가다. 일본명은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다. 그는 “불교에는 만 권에 이르는 교리와
김정기 교수의 일본인은 누구인가9: 일본인의 신앙: 소노 신(園神)과 카라 신(韓神) 영국 외교관이자 일본어에 능통했던 아스턴(W. J. Aston)은 일본이 막부를 청산하고 근대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1905년 <신도>(Shinto: The Way of the Gods)라는, 주목할 만한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신도를 세계의 대종교 가운데서 ‘가장 뒤쳐진 종교’라고 낙인찍고는 그 논거를 여러 가지 들고 있다. 신도의 다신론에는 최고신이 없다는 점, 우상이나 도덕률이 상대적으로 없다는 점, 령(靈)의 개념을 인격화하는 것이 약하는 점, 그것을 파악하는 것에 방황하고 있다는 점, 내세의 상태를 실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점, 일반 대중에 열렬한 신앙이 없다는 점을 두루 내세웠다. 글쓴이가 아스턴의 신도관에 주목한 것은 일본의 신도에는 ‘한신(韓神)’이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일찍이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수는 아스턴이 수렴한 신도 관에는 그 시점에서 한계와 오해가 있다 면서도 다음과 같이 짚었다. 아스턴의 신도관에는 이런 오인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1905년이라는 시점에서의 신도에 대한 고찰로서는 괄목할만한
지난 번 이야기에서 짚은, 조선의 원혼이 일본에 건너가 “원령문화로 꽃 피웠다”는 서술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중심에는 원령이 문학-예술의 모티브로 들어서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원령을 모티브로 삼은 예능으로서 일본의 전통연극 노-(能)를 살펴보기로 하자. 무릇 노-란 무엇인가? 노-는 일본의 전통예능의 하나로 쿄-겐(狂言:, 가부키 연극)과 함께 남북조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실연되는 세계에서도 가장 오랜 연극생명과 전통을 가지고 있다. 독자의 양식을 갖는 노-무대에, 노-가면을 쓰며, 제아미(世阿弥)가 ‘가무이도(歌舞二道)’라고 지적하듯이 춤으로 높여지고, 추상화한 연기와 노래[謠(우타이)]와 반주음[囃子(하야시)]에 의한 음악 요소의 융합된 연극이다. 메이지 이후 ‘노가쿠(能樂)’라고 부르는 편이 일반화되었지만 ‘사루가쿠(猿樂)’ 또는 ‘사루가쿠노 노-’로 불러지며 제아미는 사루가쿠(申樂)이라는 글자로 이에 등치시키고 있다. ‘노-(能)’란 가무를 딸리고 연극적 전개를 갖는 예능의 의미이며 덴가쿠(田樂)의 노-, 엔넨(延年)의 노도 행해지고 있는데, 사루가쿠의 노-와 같은 발달을 이룩하지 못했다. ‘요쿄쿠(謠曲)’는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