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의 도시 팍세(Pakse)의 아침은 탁발로 시작합니다. 매일 아침이면 시내 곳곳에서 탁발승의 행렬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소개하고 싶은 것은 라오스 남부 최대도시 팍세 사원의 유서깊은 사원, ‘왓루앙’의 스님들의 탁발 행렬입니다. 불교대학을 겸하고 있는 이 사원은 1830년 축조된 라오스 남부에서 가장 큰 사원입니다. 부처님 발바닥 자국이 남아 있다는 것을 유명합니다. 스님들의 탁발행렬은 어둠이 스러지는 매일 아침 6시(06:00~06:30분경)이면 시작됩니다. 탁발은 불교에서 두타행 중의 하나입니다. 출가한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12두타행 중 걸식과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승려들이 걸식으로 의식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석가모니께서도 실천했습니다. ‘발’이란 음식을 담은 그릇인 발우를 말합니다. 탁발이란 걸식하여 얻은 음식을 담은 발우에 목숨을 기탁한다는 의미입니다. 스님들의 탁발에 라오스인들의 정성은 상상 이상입니다. 홍수로 도로가 잠기더라도,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그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로가에 두 무릎을 끓고 스님들에게 탁발 보시를 합니다. 제가 라오스에 와서 보고 감동을 받은 것도 라오스인들의 무릎을 꿇고앉아 돈, 음식 등을 드리는 정성스런
아세안 문화 경제 미디어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신년을 맞아 신남방정책을 현장을 해부하는 야심적인 기획을 준비했다. 바로 '정호재의 緬甸통신'과 '정호재 新加坡통신'이다. ㅂ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는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의 대표 정치인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번역도 했다. 緬甸은 미얀마의 한자표기고 新加坡는 싱가포르 한자 표기다. [편집자주] 정호재 新加坡 통신② 홍콩과 싱가포르...전혀 다른 이란성 쌍둥이 1. 2019 아시아를 강타한 '홍콩사태' ...싱가포르도 강 건너 불구경 아니다? 2019년 아시아 최고의 화두는 단연 홍콩사태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전체 아시아 사회의 상당지분을 차지하는 동남아 화교 사회에서, 홍콩 문제는 일종의 정치경제적 문제를 뛰어넘는 실존적 문제였다. 홍콩은 지리적으론 중국에 포함돼 있지만 화교사회와 오랜 밀접한 관계를 지녀왔다. 지난 150년간 베이징과 멀지감치떨어져 경제적 부와 정치적 자유를 누렸지만, 이제 이 같은 자유와 번영이 과거의 역사가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나라를 잃은 화교들은 복건과 광동 등 고향을 떠나 지난 200년간
아세안 문화 경제 미디어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신년을 맞아 신남방정책을 현장을 해부하는 야심적인 기획을 준비했다. 바로 '정호재의 緬甸통신'과 '정호재 新加坡통신'이다.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는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의 대표 정치인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번역도 했다. 緬甸은 미얀마의 한자표기고 新加坡는 싱가포르 한자 표기다. [편집자주] 新加坡통신 ① 동양의 아테네 or 스파르타? 싱가포르서 3년 가까이 비즈니스가 아닌 주로 공부를 하면서 살았다. 좁은 도시국가라지만 한국인의 눈으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라고 생각한다. 초반 2년은 중산층에 속한 콘도에서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며 살았고, 2019년 하반기 몇 달은 '동가식서가숙'하며 싱가포르 현지인 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지냈다. 그 덕분에 적잖은 싱가포르 사람을 만났고, 물론 아주 많은 한국 사람과 이곳에 일하거나 공부하러 온 다수의 아세안 사람도 만났다. 그러니까 싱가포르는 아세안 지역의 일종의 경제수도와 물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쌓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지속될 아시아-해양문명
아세안 문화 경제 미디어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신년을 맞아 신남방정책을 현장을 해부하는 야심적인 기획을 준비했다. 바로 '정호재의 緬甸통신'과 '정호재 新加坡통신'이다.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는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의 대표 정치인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번역도 했다. 緬甸은 미얀마의 한자표기고 新加坡는 싱가포르 한자 표기다. [편집자주] 정호재의 緬甸통신 ① 미얀마 양곤 한 달....'아웅산 수치'의 민주화 된 양곤 1. 2020년 1월-현지 조력자 구인 면접, 영어 소통에 감사 미얀마 양곤에서 1달 적응기간을 갖고 비즈니스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잠시 서울로 복귀했다. 더운 남국에서 서울로 다시 돌아오니 몸이 두 배로 힘들다. 양곤-서울 비행기 운항시간은 6시간 정도. 직항은 대한항공과 미얀마항공 두 곳이 있고, 환승을 하려면 태국 방콕이나 베트남 하노이가 유리하다. 과거 국제공항이란 낭만과 설렘의 상징이었지만, 점차 피곤함의 대명사가 되어간다. 지난 한 달 동안 만달레이도 다시 다녀오고, 어학공부에도 다시 속도를 올리고, 연구를 도울 현지인력이 필요해 공고도 내서
글쓴이가 이제까지 일본어 서사를 몇 회에 걸쳐 썼지만 한 나라의 언어를 단지 몇 차례로 그 전체 상을 그린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 여느 어부가 조각배로 한 나라 언어의 거대한 대양을 건너가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글쓴이는 그것을 알지만 ‘고래사냥’이 아니라 잔챙이라도 건져 올리려는 심정에서 쓴 것이다. 그 잔챙이란 일본어가 지닌 한국어와의 근친성 또는 차별성, 발음의 특이성, 한자훈독의 난해성, 인명과 지명의 다기성, 차별어의 병리성을 더듬어 본 것이다. 그밖에 일본어는 상대방을 받드는 존경어,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가 특히 발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한국어 ‘가다’는 일본어로 ‘이쿠(行く)’지만 겸양어 ‘마이루(参る)’가 있을 뿐만 아니라 존경어 ‘이럇샤루’도 있다. 이와 함께 ‘가시다’ ‘오시다’ ‘나가시다’ 등 두루 표현하는 존경어도 있다. 한국어에도 ‘가 나이다’와 같은 예스러운 겸양어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존경어로 ‘납시다’와 같은 예스러운 말과 함께 ‘가시다’라는 말은 있다. 이번 이야기로 일본어 서사를 갈무리해 보자. 이전 이야기서 글쓴이는 한국어와의 근친성에서 볼 때 한국어와 일본어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일본 깡패나 폭력배보다 조선인이 무섭다” 1921년 11월 4일 당시 일본 수상 하라 다카시(原敬, 1856~1921)가 도쿄역 남구(南口)에서 한 청년이 휘두르는 칼에 찔려 암살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범인을 포박한 형사가 대뜸 “너 쵸-센징이지”라는 말을 던졌다는 것이다. 사실 범행을 저지른 건 정치에 불만을 품은 일본인 청년이었지만 경찰은 반사적으로 범인을 조선인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건 경찰뿐만 아니었다. 당시 일본 신문은 하라 수상의 암살을 호외(戶外)로 전하면서 “하라 수상 센징(鮮人)에 찔려/도쿄역전에서 쓰러져” “돌연 군중 속에서...14~15세 조선인 풍(朝鮮人風)의 한 청년이 불쑥 나타나”[大阪朝日新聞, 1921년 11월 4일치 호외]라고 쓰고 있다. 이런 선입견에 의한 오도가 “두려운 존재로서 조선인의 이미지를 널리 번지게 한 것”(水野直樹·文京洙, 2015, 20)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앞의 이야기에서 1923년 9월 일어난 칸토 대지진 때 ‘후테이노센징’이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 등 터무니없는 데마로 조선인이 일본 곳곳에서 떼죽음을 당한 참극을 일깨웠지만 이런 극단적인 사건을 예외로 치더라도 ‘두려운
글쓴이가 아는 몇몇 일본인 친구는 말이 친절하고 예절바르고 정겹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구성하는 일본사회가 왜 차별어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특히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어가 두드러지고, 그들의 동포이기도 한 ‘부라쿠민(部落民)’에 대한 차별어도 이에 못지않다. 재일조선인 또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어로 악명을 떨치는 말로서 ‘후테이노센진(不逞の鮮人)’이라는 주홍글씨가 있다. 그 말이 쓰이게 된 역사, 배경, 의미를 되돌아보기 전 글쓴이가 이 말에 눈을 돌리게 된 경위를 잠시 적어보자. 전후 군국주의 일본이 패망한 뒤 맥아더 장군 점령아래 당시 일본은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 일본 민주화는 메이지 헌법을 폐기하고 ‘평화 헌법’ 또는 ‘맥아더 헌법’을 만드는 것으로 절정을 만났다. 절대권자 천황을 상징적 존재로 만들고 일본으로 하여금 아애 전쟁을 못하게 한 것이다. 오늘날 까지 일본 군국주의자의 후예 극우 분자들이 이 평화헌법을 줄기차게 개정하려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상징’ 천황을 메이지 헌법 상 ‘현인신(現人神)’ 천황으로 바꾸어 놓고자 하는데 있다. 그밖에 미 점령당국 GHQ는 일본민주화 정책아래 노동삼법을 마련해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인정하
일본의 지명은 읽기가 어렵다. 한문으로 표기된 지명은 거의 모두 훈독(訓読)으로 읽는다. 물론 수도 도쿄(東京)나 고도(古都) 교토(京都)와 같이 음독(音読)으로 읽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예외라 할 수 있다. 일본어 훈독은 비유적으로 견주면 예컨대 慶州라고 쓰고는 이를 ‘경주’가 아니라 ‘서라벌’이라고 읽는 식이다. 외부인은 이를 알 도리가 없다. 일본 매스컴의 사건-사고 담당 종사자들도 지명사전에 의존할 정도라고 하니 그 난해한 오명은 알 만하다. 한반도를 마주하는 쓰시마를 기점으로 전개되는 북 규슈 일원에는 한반도와 인연 있는 지명이 많이 눈에 띈다. 우선 ‘쓰시마’부터 한국어에 유래하는 이름인데, ‘쓰’는 ‘두’, ‘시마’는 ‘섬’으로 두 말을 조합하면 ‘두 섬’이 된다. 예부터 남북으로 갈라진 섬의 지형을 묘사하는 표기이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섬 이키(壱岐)에는 ‘후레(触)’라는 고아자(小字: 가장 작은 단위의 마을)라는 마을이 99개나 있으니 섬 전체가 후레에 다름 아니다. 이 ‘후레’는 한국어 ‘부루·후루’가 진화해서 ‘바루·후레’로 된 것이지만 본래 서라벌’의 ‘벌’에서 온 것이다. 북 규슈는 한반도 남부와 지리적으로 일의대수(一衣帶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