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문화 경제 미디어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신년을 맞아 신남방정책을 현장을 해부하는 야심적인 기획을 준비했다. 바로 '정호재의 緬甸통신'과 '정호재 新加坡통신'이다.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는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의 대표 정치인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번역도 했다. 緬甸은 미얀마의 한자표기고 新加坡는 싱가포르 한자 표기다. [편집자주]
정호재의 緬甸통신 ① 미얀마 양곤 한 달....'아웅산 수치'의 민주화 된 양곤
1. 2020년 1월-현지 조력자 구인 면접, 영어 소통에 감사
미얀마 양곤에서 1달 적응기간을 갖고 비즈니스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잠시 서울로 복귀했다. 더운 남국에서 서울로 다시 돌아오니 몸이 두 배로 힘들다. 양곤-서울 비행기 운항시간은 6시간 정도. 직항은 대한항공과 미얀마항공 두 곳이 있고, 환승을 하려면 태국 방콕이나 베트남 하노이가 유리하다. 과거 국제공항이란 낭만과 설렘의 상징이었지만, 점차 피곤함의 대명사가 되어간다.
지난 한 달 동안 만달레이도 다시 다녀오고, 어학공부에도 다시 속도를 올리고, 연구를 도울 현지인력이 필요해 공고도 내서 면접을 봐서 사람 뽑는 일을 해봤다. 인력을 구해보니 마치 벤처사업을 하는 흥분이 느껴질 것 같지만, 역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급여수준, 급여조건, 일의 성격, 사무실, 복지 등 신경써야 할 게 좀 많아 머리가 복잡.
예를 들어, 30세의 영어가 일부 가능한 미혼 여성을 뽑아보려고 했는데, 당장 그분의 아버지와 남자친구가 난리가 났다. 어디 외국인인진 모르지만 단 둘이 일하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반응이었다. 물론 면접볼 때, 내가 사무실은 조만간 구할 테니 당분간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공부하고 함께 작업하자고 동의를 구했지만, 출근 당일, 내가 사는 숙소로는 오지 않는 것으로 최종 통보를 받았다.
물론,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이 나라는 남녀구별이 엄격한 보수적 국가다. 고속버스에서도 낯선 남녀가 나란히 앉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번듯한 회사도 아니고, 아직 사무실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일단 죄인이 된 모양새가 됐다. 이리저리 조건을 수정해가며 함께 어학학습을 본격화해봤는데, 이분의 영어가 내가 알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 조금만 난이도 있는 단어만 나와도 발음이 내가 아는 영어와 너무 달랐다.
나중엔 거의 필담을 나누는 수준이 됐다. 심지어 스마트폰 타이핑은 잘 했는데, PC 키보드로 미얀마어 타이핑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이 속출했다. 이분은 싱가포르에서 무려 9년이나 일을 해서 생활영어와 중국어가 첫눈에 자연스러워 보였지만, 단 한번도 문서작업을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가진 한계였다. 그래서 그분은 부랴부랴 컴퓨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지 나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중.
사람 뽑는 것의 어려움을 미얀마에 오래 거주한 선배께 토로하니 그분 왈 "그래서 많은 인력을 뽑는 거에요. 멀티 능력을 요구하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죠. 한가지 직무에 한 사람, 그래서 인건비가 낮다는 것을 이해해야 해요. 높은 생산성을 원하면 외국서 공부한 비싼 인력을 뽑아야죠. 7년 전만 해도 인터넷이 없던 나란걸요. 영어로 소통되는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아, 그렇구나. 나는 적어도 세 명의 조력자는 필요할 듯 싶다.
2. "미얀마 언어 배우기 너무 힘들어"
미얀마 대졸자 초임 임금은 대략 월 300달러(약 35만 7420 원) 안쪽이다. 고졸자는 200달러(약 23만 8240 원)에도 가능하다(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전문직 임금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는 영역도 많다). 다만 경력이 쌓이거나 영어가 되면 더 올라가고, 한국어가 되면 더더 올라가고, 컴퓨터도 잘하면 더더더 올라가는 식이다. 그마저도 일자리가 부족해 일자리 공고 하나가 나가면 수백명이 경쟁한다. 나의 깐깐하고 돈벌이가 안되는 공고에도 수십 명이 달라들었을 정도였으니.
비자문제도 깐깐하고 까다롭다. 외국인이 장기거주 하기 위해서는 각종 번거로운 서류와 지겨운 행정절차, 그리고 살인적 비용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와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난리다. 흥미롭게도 초기엔 영국인과 호주인이 많았다면, 최근엔 미국인과 유럽인들이 많아진 모양새다. 특히 영국에 가려졌던 프랑스와 동남아 관계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나중에 이 주제도 한번 다뤄보겠다.
여튼 한달 간 맘을 다잡고 다시 미얀마 문자를 잡고 씨름했더니 대략 눈으로 읽고 발음하는데는 익숙해졌다. 혼자서 정확한 발음이 되니 어휘 암기에 훨씬 유리해졌다. 사실 미얀마 문자를 처음 공부한 것은 2~3년 전이다. 그런데 미얀마 현지에서 배운 게 아니다보니 기초 강의를 배우면 금세 잊고, 다시 배워도 잊기를 반복했다.
실제 미얀마 문자는 외국인에게 가장 넘기 힘든 산이다. 실제로 미얀마에 사는 상당수 외국인들은 미얀마 문자는 거의 포기하고 산다. 우리가 세종대왕에게 감사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10세기 이전에 확립된 고대어 기반의 문자이기 때문에, 특히 모음 표기체계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겐 너무 가혹하다. 표기와 발음방법이 다른 경우도 많아 "이걸 진짜 배울 수 있는 건가?" 하고 좌절하는 분들이 많다.
여튼 당분간 미얀마의 아이콘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그리 멀지 않은데서 살게 됐다. 가끔 내가 거의 잊고 있던 1980년대의 한국의 풍광이 떠오르는 지역에서 거주한다. 하수배관 시설이 열악해 모기가 너무나 많아 고통스러울 때가 있고, 음식 때문에도 남모를 고충이 많다. 미얀마 시장조사가 어떤 성과를 얻을지 스스로도 궁금한 순간이다.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의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