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에서 태국까지 동남아 오토바이 경제...하지만 예외적인 양곤
한국인의 관점에서 동남아시아 경제와 사회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로 오토바이(모터바이크)가 실물경제에서 중차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타이완에서 시작해서 베트남을 거쳐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주요 대도시의 핵심교통수단은 다름아닌 오토바이, 모터바이크가 된다.
베트남의 양대 도시엔 호치민이나 하노이에 가보신 분이라면 아침부터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부대의 그 압도적인 위용에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외국인들은 끝없는 오토바이 행렬을 피해 도로를 횡단하는 일이 가장 큰 고역 가운데 하나다. 외국인에게는 고역이지만 현지인들에게 오토바이는 없어서는 안되는 생활 필수용품 가운데 하나다. 젊은이들 대다수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나가게 되면 휴대전화와 이 오토바이는 꼭 필요한 준비물이 되기도 한다.
동남아시아에서 오토바이가 중요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대중교통 수단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빈약한 대중교통 인프라...1년 평균기온 20도 오토바이 '경제성과 편리성' 두 토끼
널리 알려진대로 대중교통은 크게 버스와 철도로 나뉜다. 동남아는 특히 철도의 발달이 더딘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험난한 지형과 밀림 등 기후환경 조건이 철도와 궁합이 맞지 않은 이유도 크지만, 그보다는 1945년 이후 들어선 군사정부들이 사회인프라 투자에 별 관심이 없던 탓도 크다.
공공버스의 발달도 미약한 이유는 대도심 주변의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데다 1990년대 이전 지방정부에 재원이 마땅치 않았던 이유도 크다.
이처럼 동남아에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들여다보면 바로 오토바이가 너무나 편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한국에서 오토바이가 대중화가 안된 이유는 추운 겨울이 1년 가운데 4개월이나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날씨가 추우면 이런 소형 내연기관은 유지비용이 크게 올라간다. 날이 차면 이를 운전하는 사람도 고역이다. 비오는 날보다 추운 날이 더 문제가 되는 게 오토바이다.
그런데 동남아시아는 1년 내내 평균기온이 20도에 이른다. 한겨울이라고 해도 영상 5도 이하로 내려가는 지역이 일부 고산지대를 빼곤 거의 없다.
게다가 오토바이의 최고의 장점은 경제성이다. 차량가격이, 자동차의 1/10 가격인 50만~300만 원 내외에 그치는 것은 물론이고 유지비도 거의 들지 않다. 특히 기름값 대비 주행효율성이 탁월하다. 자동차가 1리터로 10km 내외를 간다면 오토바이는 그 4~5배 정도는 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유지비 역시 간단한 수공업으로 고쳐쓰기에 좋다. 여러모로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오토바이는 경제성과 편리성 측면에서 이를 대체할만한 대중교통을 만들기 어렵다는 얘기다.
모터바이크 일본 브랜드 혼다-스즈키-야마하 싹쓸이...중선, 리판 등 중국 도전장
자연스럽게 일찌감치 이 지역은 전세계 유명 바이크 메이커들의 격전장이 되었다. 가장 먼저 시장에 진출한 업체는 미국과 유럽이었지만 이는 1970년대 이후 일제 메이커들로 완전히 대체가 되었다.
우리가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일제 혼다, 스즈키, 야마하 등이 바로 그 주역이다. 이런 일제 업체들은 타이완과 태국, 베트남 등지에 현지 공장을 건설하고 40년 넘게 동남아 원동기 차량 시장을 싹쓸이해왔다.
일례로 동남아지역의 최대 축제 가운데 하나로 아세안 축구선수권대회 'AFP 스즈키 컵'이 있다. 이 대회의 스폰서가 다름아닌 일본의 모터바이크 회사다. 당연히 6억 5000만명의 아세안인 대부분이 바이크 시장과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위해 축구대회에 스폰서를 서는 것이다.
잠깐 옆으로 새는 이야기를 하면, 최근 이같은 일본바이크 독점 경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바로 중국업체들이 대거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기 때문이다. 중선, 리판, 지아링, 지앙스, 저장 등 중국 브랜드는 이미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1980년대 초반에 주로 일본 제조사의 기술로 원동기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한 중국은 어느새 원조 모터바이크 강국 일본을 훌쩍 뛰어넘을 기세로 무섭게 세력을 확장 중이기도 하다.
오토바이의 활용도가 워낙 높다 보니, 자연스레 최근 각광받는 4차 산업에도 이는 중요한 참여자가 된다.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브랜드인 '고젝(Go-Jek)'과 '그랩(Grab)'이 그 주인공이다.
고젝과 그랩은 미국에서 시작한 '우버'에 대항하기 위해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아세안(ASEAN) 특산품에 가깝다. 당연히 현지 네트워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사업 초창기부터 우버보다 싸고 보다 많은 차량으로 우버를 압도해버렸다. 시장가치도 이미 조 단위를 넘어 섰다.
그런데 한국인의 관점에서 차량공유나 택시서비스는 '자동차'를 떠올리기 쉽지만, 동남아에서는 오토바이 뒤에 타는 바이크 택시가 보다 더 흔하고 인기가 높다. 앞서 말한대로 싸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여행할 기회가 또 온다면, 휴대전화 유심을 사서 바로 이 오토바이 택시를 한번쯤 이용해 봄 직하다.
미얀마 양곤에는 '노 바이크' 오토바이가 없다...정부 이륜원동기 금지
이렇게 전성기를 구가하는 동남아시아의 모터바이크 세계에서 딱 하나 예외적인 도시가 있는데, 다름아닌 미얀마의 경제수도인 양곤(Yangon)이 그 주인공이다.
양곤에 도착하면 그 어디에서도 바이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정부에서 강력하게 양곤지역에서의 모터바이크 운행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륜자동차가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 2003년 갑작스럽게 취해진 조처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루머가 뒤따르는데, 어느 하나 명확한 것은 없다. 가장 널리 퍼진 가설은 당시 한 오토바이가 군부의 고위 지도자를 위협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이같은 루머는 이와 연관된 다양한 루머를 만들어 냈는데, 당시 양곤 시내에서는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잇따르는 시기이기도 했다.
모터바이크를 이용해 민주화요구 팸플릿을 뿌리고 다녔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한 군부지도자의 자녀가 바이크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죽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한때 유행했다. 확실한 것은 2003년 당시 군부정부가 수도 양곤에서의 이륜차 운행을 아주 강력하게 단속했다는 것 하나뿐이다.
현재도 그 조처는 바뀌지 않고 있다.
자연스레 이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도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양곤은 동남아시아 주요 도시 가운데 버스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진 도시라는 점이다. 외국인이 양곤에 장기 거주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앱은 바로 양곤의 버스운행을 표시하는 앱을 까는 일이다.
도시 곳곳으로 아주 많은 도시형 버스가 운행하고 있기 때문에, 200짯, 우리돈으로 200원이 채 안하는 가격에 아주 효과적으로 도시의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장점은 상대적으로 보행자에게 무척이나 안전하다는 점이다. 모터바이크는 운행자에게는 편리할지 몰라도 보행자나 자동차 운전자에게는 최대 위협이 되곤 한다. 이러한 위협요소가 양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덕분에 택시의 운행속도도 타 도시와 비교해 무척이나 빠르고 경제적인 경우가 많다.
물론 무척이나 더운 날씨에 서민들의 가장 친숙한 교통수단인 모터바이크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점은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한다. 동남아시아에서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기자전거 운행 비율이 무척 높은 도시가 양곤이기도 하다.
양곤에 다시금 모터바이크가 자유롭게 운행되는 날이 올까? 현재도 양곤 시민들의 의견은 두 갈래다. 서민들에게 꼭 필요한 교통수단이니 만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지만, 반대로 동남아 최초이자 유일하게 모터바이크가 없는 안전한 도시이기 때문에 이 전통을 지키자는 의견이다. 물론 이는 쉽게 결론내리기 어렵다. 다만, 이로 인해 도심형 공공버스에 대한 투자가 활기를 띠는 것은 무척이나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양곤에서 운행되는 버스의 절반 이상이 한국에서 운행되다가 팔려온 한국산 버스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2000년대 초반의 감수성을 느끼기에 양곤만한 도시가 없다는 점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여행 포인트가 된다.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