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끝났는가. 미중 경쟁과 공급망 재편의 시대를 바라보며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그러나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수석이코노미스트였던 닐 시어링(Neil Shearing)이 그의 책 The ‘분열의 시대’(Fractured Age)에서 강조하듯, 지금의 변화는 세계화의 종말이 아니라 형태의 변화다. 세계화는 멈춘 적이 없다. 다만 방향과 구조가 달라질 뿐이다. 세계화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기원전 수메르와 인더스 문명 사이의 교역, 한나라 시대의 실크로드, 향신료를 따라 움직인 인도양 네트워크는 모두 초기 세계화였다. 상인과 승려, 병사와 질병이 함께 이동하며 기술과 사상, 종교가 퍼졌다. 동남아는 이 흐름의 중심이었다. 말라카 해협과 자바해, 메콩과 차오프라야 강을 따라 인도·중국·이슬람 문명이 교차하며 앙코르와 보로부두르 같은 혼종 문명을 낳았다. 근대의 세계화는 15세기 말 대항해시대 이후 본격화된다. 유럽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를 잇는 삼각무역, 마닐라 갈레온 무역,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과 프랑스의 동남아 진출은 세계경제를 하나의 체계로 묶었다. 향신료와 은, 노예와 면직물의 이동은 동남아를 다시 세계 교역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현대 세계화는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세계는 두 강대 세력의 경쟁 속에 흔들렸다. 해양 상업국가 신흥 아테네와 군사 중심의 육상 강국 스파르타. 이 둘의 대결은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졌고, 승패를 떠나 그리스 전체의 쇠퇴를 초래했다. 이 사례는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을 설명하는 비유로 자주 등장한다. 특히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남긴 “아테네의 부상과 그로 인한 스파르타의 공포가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통찰은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재해석되며 현대 국제정치 담론의 단골 개념이 되었다. 비유는 단순하다. 아테네는 해상 네트워크와 상업, 동맹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한 개방적 강국이었다. 델로스 동맹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고, 민주정이라는 정치적 정당성을 내세웠다. 반면 스파르타는 육상 군사력과 규율, 전통 질서 수호를 핵심 가치로 삼았다. 폐쇄적이지만 안정된 체제,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패권을 유지하려 했다. 이를 오늘에 대입하면 미국은 해양 패권과 동맹 네트워크, 규범 질서를 기반으로 한 아테네형 강국으로, 중국은 대륙 기반의 국력과 군사 현대화를 통해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스파르타형 신흥 강국으로 비유된다. 미국은 제2차
올해 하반기에도 ASEAN 정상회의가 의장국 필리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한국 대통령도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 의장국은 매년 초, 그해 의장국으로서 중점적으로 추진할 우선 과제를 제시한다. 의장국의 문제의식과 언어는 한 해 동안 아세안을 바라보는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지난 2월 6일, 필리핀 외교장관 마리아 테레사 P. 라자로는 싱가포르의 동남아연구소(ISEAS) 강연을 통해 2026년 아세안 의장국으로서의 구상을 공유했다. 전체적인 인상만 보면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연설은 올 한 해 아세안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나침반이라는 점에서 차분히 짚어볼 가치가 있다. 이 글에서는 필리핀 외교장관 연설의 핵심을 정리하고, 여기에 담긴 한국 외교에 대한 함의를 덧붙이고자 한다. 2026년 아세안 의장국을 맡는 필리핀은 결코 편안한 시기에 키를 잡지 않는다. 미·중 전략 경쟁의 장기화,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후 위기와 기술 혁명까지, 오늘의 국제 환경은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일상화된 상태다. 라자로 장관이 현 세계를 ‘3U—격변(Upheaval), 불확실성(Uncertainty), 예측 불가능성(Unp
동남아 외교를 오래 지켜본 이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ASEAN의 by-default leadership(방임적 리더십)”은 의도적으로 질서를 설계해 끌고 가는 리더십이 아니라, 강대국이 서로 불편해 주도하지 못하는 공간을 결과적으로 아세안이 메우며 회의를 굴려가는 리더십을 뜻한다. 반대로 EU 등 선진 지역기구가 국제무대에서 보여주는 방식은 by-design leadership—처음부터 규범과 제도를 설계하고, 기준을 제시하며, 따르지 않으면 비용이 따르는 리더십이다. 이 두 방식은 겉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작동 원리는 완전히 다르다. ASEAN의 리더십은 ‘의제 설정’이 아니라 ‘판 유지’에 가깝다. 아세안안보포럼(ARF), 아세안+3(APT), 동아시아정상회의(EAS), 확대아세안국방장관회의(ADMM-Plus)같은 협의체에서 아세안의 목표는 늘 같았다. 누구도 불편해서 회의장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성명은 모호하고, 표현은 절제되어 있으며, 합의는 최소공약수에 머문다. 그 대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호주가 같은 테이블에 앉는 구조는 유지된다. ‘아세안중심성(ASEAN Centrality)’는 권위가 아니라, 플랫폼 통제력
2015년 아세안 공동체가 출범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에게는 ‘먼 이야기’다. 역내 무역과 투자는 늘었고, 정상과 외교장관 회의는 정례화됐지만, 일상에서 “아세안 덕분에 삶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시민은 많지 않다. 아세안이 하나의 공동체라면, 왜 ‘우리(We- feeling)’라는 감각은 이렇게 약할까. 아세안 공동체는 세 개의 축으로 추진돼 왔다. 경제공동체(AEC), 정치안보공동체(APSC), 사회문화공동체(ASCC)다. 성과의 속도와 체감도는 이 순서와 거의 일치한다. AEC는 다국적 기업과 글로벌 가치사슬을 중심으로 가장 빠르게 진전됐다. 역내 교역과 외국인 투자는 확대됐고, 아세안은 ‘하나의 생산기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혜택은 대체로 기업과 투자자에게 먼저 돌아갔고, 일반 국민의 체감은 제한적이었다. 정치안보공동체는 엘리트 중심의 영역이다. 분쟁을 관리하는 대화와 규범의 장으로서 아세안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는 외교관과 안보 전문가의 언어에 가깝다. 합의와 비간섭의 원칙은 안정에는 기여했지만, 국민에게 ‘공동체의 실감’을 주기에는 거리감이 크다. 가장 늦게, 그리고 가장 더디게 움직여 온 축이 사회문화공동체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20세기 초에 제기된 지정학 이론들이 21세기 국제질서에서 다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세 가지 렌즈가 있다. 핼퍼드 매킨더(Halford Mackinder)의 심장지대론(Heartland), 앨프리드 머핸(Alfred Mahan)의 해양력론(Sea Power), 그리고 니콜라스 스파이크만(Nicholas Spykman)의 림랜드 이론(Rimland)이다. 매킨더는 유라시아 대륙의 핵심 내륙, 즉 심장지대를 지배하는 세력이 세계를 좌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심장지대 접근로를 둘러싼 전략적 행동으로 읽힌다. 러시아가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 역시, 방대한 자원과 내륙 연결성이라는 심장지대의 구조적 힘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값싼 에너지와 전략적 완충을 필요로 하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제재를 받는 이란·북한이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며 ‘비서방 축’을 확대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머핸의 해양력론은 미국과 서방의 대응 논리를 설명한다. 금융, 해상교통로, 보험과 결제, 해군력과 동맹 네트워
국제질서는 지금 공위기(interregnum)에 놓여 있다. 팍스아메리카의 균열은 분명해졌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이런 과도기에는 규칙이 느슨해지고 힘의 논리가 전면에 등장한다. 약소국과 중견국이 다수인 아세안에게 이는 가장 불안한 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은 과연 원칙과 현실을 함께 반영한 ‘조용한 외교’를 계속할 수 있을까. 아세안 외교는 오랫동안 비간섭, 합의, 점진성을 핵심 원칙으로 하는 아세안 방식(ASEAN Way)을 중시해 왔다. 요란한 성명이나 공개적 충돌을 피하고, 비공식 접촉과 시간을 통한 해결을 선호했다. 이는 이상주의라기보다 현실주의였다. 체제도, 국력도, 전략적 이해도 다른 국가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 최소한의 안정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구조화되고, 국제규범의 구속력은 약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세안의 원칙은 점점 ‘신중함’이 아니라 ‘모호함’, ‘조용함’이 아니라 ‘침묵’으로 읽히고 있다. 남중국해, 미얀마 사태 등에서 반복된 무력감은 아세안 방식 자체에 대한 회의를 키운다. 원칙을 지키려다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주의로 비칠 위험
요즘 나는 아침에 뉴스를 볼 때 동남아 기사뿐 아니라 중남미 뉴스에도 눈길이 간다. 아세안 소식이야 오래된 습관이지만, 중남미까지 챙겨보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12월 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NSS)에서 미국은 중남미가 속한 ‘서반구(Western Hemisphere)’를 최우선 전략 공간으로 명시했다. 국내외 언론은 이를 두고 ‘트럼프판 먼로주의’, 혹은 ‘트럼프식 먼로주의 추론’이라고 해석했다. 19세기 초, 미국이 아직 유럽 열강에 비해 힘이 약하던 시절, 중남미에 발을 들이려는 유럽 식민 강국들에게 “이곳에 오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 먼로주의였다. 이후 미국이 강대국이 된 뒤,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에는 그 경고에 ‘행동’이 더해졌다.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이른바 ‘루즈벨트 추론’이다. 그렇게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backyard)’으로 굳어졌다. 이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1959년 혁명 이후 공산국가가 된 쿠바를 지금까지도 장기간 경제제재해 온 이유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는 제3차 세계대전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으로 기록된다.
2026년 벽두, 세계는 또 한 번 기존 국제정치의 문법이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1월 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를 공습한 뒤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 대통령을 미국으로 압송했다. 참수작전이었다. 지난해 말 베네수엘라 유조선을 나포했을 때만 해도, 한 국가의 현직 대통령을 치외법권적으로 체포-구금하리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이는 트럼프식 ‘던로주의’(Dunlawism, 먼로주의를 빗댄 말)의 본격적 발현이다. 전통적 고립주의도,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도 아닌, 힘에 기반한 적극적 중남미 개입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현대판 먼로주의 추론(corollary)이라 부른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장면은 아니다. 1990년 1월, 미국은 마누엘 노리에가(Manuel Noriega)를 마약 범죄 혐의로 체포하기 위해 파나마에 지상군을 투입한 바 있다. 그래서 언론은 평행이론을 꺼내든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차원이 다르다.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힘의 정치가 국제질서를 압도하는 ‘정글의 법칙’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중국의 대만 무력 위협, 남중국해 무력 시
12월 28일, 미얀마 총선을 하루 앞두고 이 글을 쓰는 일은 솔직히 말해 조금은 모험이다. 대부분의 평가는 사건이 벌어진 뒤에야 쏟아진다. 틀릴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 현장에서 오래 일하며 늘 아쉬웠던 점은, 미리 생각하고, 미리 기록하지 못했던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총선 전날이지만,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쓴다. 요즘 국내외에는 미얀마 전문가가 넘쳐난다. 유튜브만 켜도 ‘미얀마 총선 전망’ 영상이 줄줄이 뜬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전문가라기보다, 전문가의 언어를 보통 사람의 언어로 옮기는 통역자에 가깝다. ■ 미얀마와의 몇 가지 기억 미얀마와의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1999년,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때였다. 당시 나는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뜻밖의 지시를 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의 최고지도자 탄쉐와 양자회담을 추진하라는 것이었다. 미국과 유럽 지도자들이 외면하던 시절, 아시아 민주화의 상징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그를 만난다는 건 탄쉐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결정에는 김대중 대통령 특유의 외교 철학이 담겨 있었다. 왕따시키기보다 대화를 통해 변화를 유도한다. 북한을
서정인 전 주아세안 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을 역임한 아세안 10개국과 인연을 갖고 있다. 특히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2023년 외교부 은퇴 후에도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전문가 및 저명인사(ARF EEP) 및 아세안동아시아경제연구소(ERIA) 한국이사로서 아세안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세안익스프레스는 현재 유엔기념공원관리처장을 맡고 있는 서정인 주 아세안대사를 새 칼럼 필진으로 초빙했다. 한국 주요 아세안 외교에서 직접 발로 뛰었던 현장 경험과 넓은 안목으로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주는 그의 인사이트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 2010년 태국에서 근무하던 시절, 나는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분쟁 지역을 직접 찾은 적이 있다. 지도 위에서는 가느다란 선 하나에 불과했지만, 현장은 달랐다. 붉은 흙먼지가 이는 비포장길, 간간이 보이는 철조망, 그리고 “여기까지가 태국입니다”라는 군인의 짧은 말. 그 선은 종이 위의 경계가 아니라, 역사와
서정인 전 주아세안 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을 역임한 아세안 10개국과 인연을 갖고 있다. 특히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2023년 외교부 은퇴 후에도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전문가 및 저명인사(ARF EEP) 및 아세안동아시아경제연구소(ERIA) 한국이사로서 아세안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세안익스프레스는 현재 유엔기념공원관리처장을 맡고 있는 서정인 주 아세안대사를 새 칼럼 필진으로 초빙했다. 한국 주요 아세안 외교에서 직접 발로 뛰었던 현장 경험과 넓은 안목으로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주는 그의 인사이트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 중남미에서 함께 근무하다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동료가 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를 다녀오더니 이런 말을 했다. “이상하지 않아요? 동남아는 오토바이, 중국은 자전거, 중남미는 자동차가 압도적이잖아요. 도대체 왜 이럴까요?” 그 질문에 나도 잠시 멈췄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인도네시아와 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