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서사 3 ‘인명고(人名考)’ 와타나베, 바다 건너온 도래인의 성 일본인의 성은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일컬어진다. <일본성씨사전>(日本苗字大辞典) 의하면 무려 29만 1531개로 되어 있다. 반면 김소운(金素雲) 편의 <한일사전>에 기재된 한국인 성은 401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일본인의 성 가운데 도래인 계 성은 얼마나 될까? 이전 이야기에서 후지와라노카마타리(藤原鎌足)라는 대화개신(大化改新)의 주역을 소개하면서 ‘카마’도, ‘타리’도 조선어라고 했다. 후지와라(藤原)는 카마타리가 임종할 때 조정에서 내린 문벌 성[姓: 카바네)이고 본래는 나카토미(中臣) 씨이었다. 중세 나카토미 씨는 나라의 제사를 담당하는 세습 가문인데, 그가 도래인의 후손이라는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은 이세신궁의 내궁 황대신궁(皇大神宮)의 세습신관인 아라키다(荒木田) 씨가 나카토미 가문의 일족이기 때문이다. 그 아라키다의 아라키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아라(安羅)에서 왔다는 뜻으로 아라키(安羅来) 또는 아라키(阿羅木)에서 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것은 신라에서 온 도래 계라는 뜻이 시라키(白木)가 시라기키(新羅来)에서 온 것을 표기한 것과 마찬가지
최근 한국의 모대학 ICT 전공 학생들이 교수님의 인솔로 베트남의 ICT시장을 체험하기 위해 4박 5일동안 하노이를 방문하였다. 우리는 이들의 베트남시장 탐방활동과 잠재적 창업동기를 부여하고, 현지기업과의 면접을 통하여 취업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베트남 공과대학과 성공가도에 있는 IT기업들을 찾아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모든 활동을 지원하였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은 AR/VR 콘텐츠 전공이었다. ICT학부 교수님의 지도로 8개월 동안 IT 학습을 집중 지도하고 취업까지 연계시키는 정부의 청년인재집중 양성 프로그램의 사실상 마지막 순서였다. 전 학생들은 이미 졸업반으로 한국 ICT기업에 취업이 예정되어 있거나 취업준비가 마무리단계여서 IT강국인 한국의 대학생으로 이 분야에 대해 전문성과 나름대로의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반면 베트남의 ICT시장에 대해서는 사전 정보가 부족했고 방문 성과에 대한 기대감도 낮아 보였다.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자 자신도 베트남 시장에 대한 확신이 없어 차후에 학생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내심 적지 않은 걱정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염려는 기우에 불과하였다. 대표단 일행은 우선 2010년에 정보통신부 산하에 설
지금까지 쓰시마-이키로 번진 일본 이야기를 엮어 보았는데, 지금부터 주제별로 ‘일본 엿보기’를 해볼까 한다. 먼저 일본인이 쓰는 언어, 즉 일본어를 서사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쓰시마-이키는 일본어 서사에도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것은 이 적은 섬에는 일본어의 조어(祖語)를 이룬 한국어의 형적이 적지 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쓰시마’라는 지명부터가 한국어에 유래한다. 그것은 한국어 ‘두 섬’이 ‘쓰시마’로 표기된 것이라고. 즉 ‘쓰’는 ‘둘’에서, ‘시마’는 ‘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일 전문가들이 두루 인정한다. 이것은 ‘섬(島)’-->‘시마(島)’ 또는 ‘절(寺)’-->‘테라(寺)’로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받침 말을 하기 어려운 일본인의 구강구조에서 한 음절이 두 음절로 된 말에 다름이 아니다. 또한 이키에는 후레(触)라는 이름을 가진 고장이 99군데나 된다. 이 작은 섬에 그 많은 후레가 있다니, 그것은 섬 전체가 후레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후레에 대해 <나가사키현의 역사산보>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이키의 농촌 단위는 ‘후레(触)’라고 불린다. 이것은 조선어인 푸리=푸루[村]의 뜻인 외래어라는 설과, 또
희한한 일이다. 18세기 초엽 쓰시마 번주 소(宗)씨의 한 대조선 외교를 담당했던 유학자가 지금 아베 정권의 대한 외교정책을 꾸짖고 있다. 그가 이 섬에서 활약한, 조선어에 능통했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이다. 카미가이토 겐이치(上垣外憲一)는 “조선과의 평등을 존중하고 힘에 의한 위압을 부정하는 호-슈의 외교사상이 메이지 일본의 국책과는 도저히 상용될 수 없었다” 면서 그 꾸지람을 이렇게 사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때문이야말로 호-슈는 실로 우리시대의 사상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일로전쟁의 승리가 경제전쟁의 승리로 바꿔치기한데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값싼 일본우월감에 우리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지금, 또한 무력을 대신한 금력에 의한 위압외교에 일본이 의존할지도 모르는 위험도 느낄 수 있는 지금, 호-슈 사상의 의의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上垣外憲一, 1989, 8~9). 물론 위에서 든 카미가이토의 저서는 아베정권이 들어서기 훨씬 전 1989년에 나왔다. 그러나 그가 20세기 초엽 메이지 일본이 노일전쟁[1904~5]의 승리에 취한 ‘값싼 일본우월감’에 대한 경고는 지금 아베가 자행한 대한 수출규제, 즉 ‘무력
이전 이야기에서 경관이 뛰어난, 쓰시마 상현 아소만의 조선식 산성을 한 대목으로 삼았지만 그 아소만 고후나코시(小船越)란 곳에 유서깊은 절 바이린사(梅林寺, 이하 ‘매림사’)가 들어서 있다. 그런데 이 절이 일본 불교에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해 이번 이야기는 쓰시마가 일본으로의 불교 전래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 점은 이전 이야기에서 한반도, 특히 신라에서 발원하는 무교가 쓰시마를 통해 일본에 들어갔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상기하면 쓰시마는 일본인의 주식인 쌀의 원조 적미를 전하는 몫을 한데 이어 그들의 정신적 양식으로서 신앙의 토대가 된 무교를 전도하는 무대가 되었다. 우선 <지도의 수첩-이키·쓰시마>라는 책에 매림사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매림사는 백제에서 처음으로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는 도중, 쓰시마의 고후나코시에 불상과 경전을 일시 안치했던 그 터에 세운 절[寺]이라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경내에는 나무로 둘러싸여 차분한 분위기가 감돈다(金達寿, 1986, 234 재인용). 재일작가 김달수는 “한국에서 불교 등 문화가 전해지는 경우 쓰시마가 그 중계지의 하나가 된 것
[주한 베트남 교민회 회장인 응웬 옥감이(NGUYEN NGOC CAM) 개막 발표]“1만 5000명의 재한 베트남 교민회의 흥겨운 축제였어요.” 한국에 거주하는 20여 만명 베트남인의 대표적인 축제인 ‘제9회 재한 베트남 교민회 문화 축제’가 74주년 8월 혁명 운동(cách mạng tháng 8)과 9월 2일 베트남 독립의 날을 맞아 1일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성황리에 마쳤다. 이번 행사는 응엔 부옥뚜 주한 베트남 대사, 전충헌 한베콘텐츠협회회장, 김순해 자동화 시스템 미래 대표 등 많은 관계자와 후원자들이 참석했다. 서울 중심부인 광화문 광장을 빽빽이 주한 베트남인들은 베트남 전통 음식 빤미, 베트남 쌀국수, 베트남 커피, 베트남 전통 의상 ‘아오자이’ 등을 선보이며 베트남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했다. 응웬 옥감이(NGUYEN NGOC CAM) 주한 베트남 교민회 회장은 “주한 베트남 교민회 문화 축제는 한국에 체류하는 베트남 사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있는 축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때문에 더욱 수준 높은 이미지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특히 이번 행사에 통해서 한국에서 살
“인플루언서(nfluencer), 그들이 움직이면 100만 팔로우가 지갑을 연다.” 인플루언서는 유튜브(YouTube), 인스타그램(Instagram)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수십만 명의 구독자(팔로워)를 보유한 ‘SNS 유명인‘을 말합니다. 베트남에서 SNS 마케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베트남 진출 시 로컬 마케팅 전략이 없이 진출하는 것은 큰 위험부담이 생깁니다. 베트남 홍보를 위해서 꼭 잡아야 할 타겟은 Z세대! Z세대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세대로 일명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립니다. 이들은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거치지 않고 바로 스마트폰을 접한 세대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자유자재 많은 것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신기술이나 어플에 민감하며 개인방송을 즐기며 직접 방송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베트남 진출하려는 마케팅 담당자들은 꼭 먼저 이들에 대해 주목해야 하고, 더 깊이 관찰해야 합니다. **베트남 유투버 겸 인플루언서 유귄니(yuu quynh nhi) 1990년으로 광고모델, 페이스북 팔로워 27만명, 인스타그램 팔로우 3만 4000명이다. XS 걸그룹 멤버(2012~2013)로 활약했다. 201
우리는 쓰시마-이키 라는 작은 섬에 신사로서 명성이 높은 시키나이샤(式內社)가 유난히 많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하면 <엔기시키>(延喜式) 신명장에는 쓰시마에 29사, 이키에 24사의 시키나이샤가 기록되어 있다. 이전 이야기에서 보듯이 전체 2861사의 시키나이샤가 모신 제신은 3132좌에 이른다. 이 신들은 ‘메이진’(名神, 또는 明神, 이후 ‘명신’)으로 불리며, 이 신들을 모신 신사는 ‘명신대사(名神大社)’가 된다. 명신이란 영험을 나타낸 신의 뜻으로 조야의 숭경을 받는 신을 말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명신은 쓰시마를 통해 한반도에서 건너간 신[海神(와다츠미 신)]들의 웃어른 격이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쓰시마의 명신대사에 얽힌 줄거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명신대사는 신사의 품격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나? ■ 일본은 신의 나라…팔백만 신과 함께 산다 일본은 신의 나라라고 할만하다. 열도 곳곳에 가지가지 신들이 묵고 있는 신의 나라이다. 이 신들은 열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신사는 물론이고, 산의 숲[모리(森])이나 바위 또는 나무에 깃들이기도, 사람들에 지피기도 한다. 이렇게 곳곳에 두루 묵고 있는 일본신의 편재현상을 무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대도시 중 하나입니다.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 10개 나라로 구성된 지역협력체인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사무국이 설립된 아세안의 관문이기도 합니다. 2017년 기준, 인도네시아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 4050달러(약 490만 500원)의 4배가 넘는 1만 7374달러(약 2102만 2540원)의 높은 1인당 GDP를 기록할 만큼 명실상부한 인도네시아 정치-경제의 핵심지로서 위상을 높여 왔습니다. 세계적 휴양지로 일찌감치 유명세를 탄 발리 등과는 달리 자카르타는 그동안 비즈니스 목적의 출장자들이 방문객의 주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500년 가까이 인도네시아 제1의 도시 역할을 담당해 왔을 정도로 고유의 역사적, 문화적 매력 또한 갖추고 있습니다. 자카르타 북쪽에 나란히 위치한 코타 투아와 차이나타운은 자카르타를 대표하는 명소로 손꼽힙니다. 느지막이 인도네시아로 여름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발품을 팔아 볼만한 곳들입니다. ■ 인도네시아 근·현대사의 산 증인, 코타 투아 구도심 혹은 구시가지로 풀이할 수 있는 코타 투아(Kota Tua)는 자카르타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지역입니
2013년 2월 자카르타에서 대홍수가 발생했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당시 조꼬 위도도(일명 조꼬위) 자카르타 주지사를 만나 수해지원 물품을 전달하고 환담했고, 나는 취재진의 일원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현지 언론을 통해 조꼬위 주지사를 간접적으로 파악하고 있던 터라, 나는 가까이서 그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설렜다. 조꼬위의 첫 인상은 ‘온화’ ’신중’ ‘배려’ ‘겸손’ 등이었다. 행사가 끝날 즈음에 모 기자가 유력한 대권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조꼬위 주지사에게 "차기 대권 도전 의향이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조꼬위 주지사는 잠시 깊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모호한 미소로 답했다. 그는 이날 행사가 끝난 직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20여명의 현지 기자들의 질문에 차분하고 친절하게 대응했다. 2018년 9월 조꼬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국빈방문을 했을 때 그는 한국외대에서 재학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이날 나는 좀더 오랜 시간 조꼬위 대통령을 지켜볼 수 있었다. 특강에서 조꼬위 대통령은 “미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직’과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성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쓰시마의 복점이 ‘제천(祭天)의 고속(古俗)’을 사상적으로 동반한다고 이전 이야기가 짚었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먼저 제천의 고속이 일본 신도에 사상적으로 일본 신도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신도가 천황제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천황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메이지 시대 쿠메 쿠니다케(久米邦武, 1839~1931)란 역사학자가 “신도는 제천의 고속”이라는 글을 써 신도 계를 발칵 뒤집혀 놓았다. 이것이 도쿄제국대학 역사학 교수인 쿠메의 유명한 필화사건이다. 그는 ‘신도’를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교수직을 쫓겨나는데, 여기서 ‘신도’란 교파신도나 민간신도가 아니라 국가신도인 것이다. 국가신도란 뒤에 다시 조명할 기회가 있을 터이지만 간단히 말해 신도국가화 정책에 의해 신사신도 등 종교를 재편성하고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아라비토카미])으로 하는 천황제 지배의 사상적 지주이었다. 이런 종교정책 아래 “신도는 제천의 고속”이라는 ‘이단’이 용납될 리 없음은 말할 나위도 없을 터이다. 그러나 어쩌랴. 신도가 제천의 고속에 유래한다는 것은 진리 중의 진리인 것을. 이 진리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중간다리 격인 쓰시마가 발원하고 있다. 그러니
인도네시아 발리(Bali)를 묘사하는 다채로운 수식어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발리는 동남아시아인들뿐만 아니라 지구촌 여행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 세계적 휴양지입니다. 심지어 발리가 인도네시아 땅이라는 사실은 낯설더라도, 발리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는 드뭅니다. 특히 고유의 예술과 문화는 발리를 동남아의 여느 휴양지들과 차별화시키는 자랑거리로 꼽힙니다. 힌두교의 토착 신앙화, 화산 지형이 주를 이루는 지리적 특성 등의 복합 산물로 일찌감치 발리만의 독창적 예술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던 1920~1930년경부터 서양 예술가들이 발리로 옮겨오면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예술인 마을로 유명한 우붓 지역을 중심으로 발리의 자연과 역사를 담은 수준 높은 회화 및 공예 작품 등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발리를 찾는 발걸음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발리의 팔색조 매력에 매료된 서양인 부녀가 현지의 미적 감각을 재해석해 상품화한 예술 공간 두 곳을 소개합니다. ◇ 존 하디 우붓 워크숍(John Hardy Ubud Workshop) 발리의 아름다움에 반한 캐나다 출신의 미술가 겸 디자이너 존 하디는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