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HUE)에서 아침을 맞았다. 옛말에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食後景)’이라고 했다. 금강산 구경도 밥부터 먹고 하라는 것, 호텔 체크아웃하고 택시를 탔다. ‘퀴안 분보후에 바 트엣’. 후에 특산음식인 ‘분보후에’(BIN BO HUE)로 유명한 집이다. 이른 시간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장사진이었다. 식당은 문턱이 없다. 도로에서 바로 들어간다. 입구에서 주인인 듯한 한 여성이 선지를 자르고 있었다. 다른 직원은 대접을 두 줄로 정렬시켜 고명을 넣으며 국수를 말았다. ‘분보후에’는 매콤한 쌀국수다. 한국식으로 하면 ‘짬뽕’이다. 소고기에다 돼지고기와 숙주나물, 선지, 동그랑땡, 도가니 등을 넣었다. 식탁은 좁은 통로를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손님들은 낚시의자와 낮은 식탁에 앉아 쌀국수를 먹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다. 후에에는 이름난 전통 음식들이 많았다. 분보후에, 껌헨(조개 국밥, 재첩), 반코아이(작고 바삭한 반쎄오) 등이 있다. 전날 흐엉강(香江) 강변에서 먹은 ‘한막뜨 조개국밥’은 재첩 비빔밥이었다. 김석운 베트남경제연구소장은 “의자가 낮을수록 가격이 낮다”며 낮은 식탁과 의자에서 다닥다닥 붙어 국수를 먹고 있는 이들을 보며 웃었다. ■
다낭에서 15인승 고급리무진을 타고 후에(Hue)에 2시간만에 당도했다. 후에는 한국의 ‘경주’처럼 유서 깊은 베트남의 고도(古都)다. 베트남 최초 통일 왕국이자 마지막 왕조(1802년부터 1945년까지)인 응우옌 왕조가 정한 도읍지다. 하노이로 옮겨갈 때까지 143년간 베트남의 수도였다. 베트남 중부 투아티엔 후에라는 성(Thua Thiên-Hue Province)의 성도인 후에는 인구는 약 45만 5240명이다. 많은 역사적 기념물과 건축물들을 보유한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후에는 베트남인에게 역사 그 자체이자 정신을 가꾸어가는 도시이기도 하다. 프랑스 식민지, 베트남 전쟁 역사까지 ‘영광과 상처’가 켜켜이 쌓여있는 곳이다. 리무진에서 내려 택시로 옮겨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다낭보다 후덥지근했다. ■ 2대 황제 민망황제릉...엄청난 크기와 호수와 건축물 아름다워 고풍스런 장식과 왕궁 그림이 장식된 호텔에 체크인 했다. 곧바로 응우옌 왕조의 2대 황제인 민망황제의 무덤으로 갔다. 후에의 3대 유적지를 꼽을 때 후에왕궁과 카이딘황제릉, 민망황제(1820~1840)릉을 가장 많이 꼽힌다. 택시는 후에시를 관통하는 흐엉강(Perf
‘베트남에어라인’ 비행기서 기내식을 먹었다. 한글 자막이 없는 미국 영화 ‘분노의 질주:홉스&쇼’를 보았다. 문득 “아 지금 세 번째 베트남 방문이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여권에 적혀있는 첫 베트남 방문은 2019년 2월. 호치민의 사이공 강변 롯데호텔 로비서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 감독을 본 기억이 소환됐다. 박 감독은 그때 축구공 하나로 베트남의 모든 갈등과 갈증을 다 씻어내고 전 국토를 통일시켰다. 한국 월드컵 4강신화 히딩크 직속 제자(수석코치)답게 ‘쌀딩크’로 불리며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자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당시 호치민의 삼성전자 가전공장, CJ 공장, 대원건설 등을 돌아보았다. 호치민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전쟁박물관과 노르트담성당, 중앙우체국, 메콩강 삼각주 미토 맹글로수로도 찾았다. 같은해 11월에는 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3일간 찾았다. 한국 기업으로 베트남서 성공한 K마켓 물류센터를 찾아가 ‘한상 회장’이었던 고상구 회장을 만났다. 또한 호안끼엠 호수와 야시장, 김정일-트럼프 2차 정상회담이 있던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났다. 호안끼엠 호수에서는 젊은이들이 멋들어진 춤을 추었다. 베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