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어라인’ 비행기서 기내식을 먹었다. 한글 자막이 없는 미국 영화 ‘분노의 질주:홉스&쇼’를 보았다. 문득 “아 지금 세 번째 베트남 방문이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여권에 적혀있는 첫 베트남 방문은 2019년 2월. 호치민의 사이공 강변 롯데호텔 로비서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 감독을 본 기억이 소환됐다.
박 감독은 그때 축구공 하나로 베트남의 모든 갈등과 갈증을 다 씻어내고 전 국토를 통일시켰다. 한국 월드컵 4강신화 히딩크 직속 제자(수석코치)답게 ‘쌀딩크’로 불리며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자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당시 호치민의 삼성전자 가전공장, CJ 공장, 대원건설 등을 돌아보았다. 호치민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전쟁박물관과 노르트담성당, 중앙우체국, 메콩강 삼각주 미토 맹글로수로도 찾았다.
같은해 11월에는 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3일간 찾았다. 한국 기업으로 베트남서 성공한 K마켓 물류센터를 찾아가 ‘한상 회장’이었던 고상구 회장을 만났다. 또한 호안끼엠 호수와 야시장, 김정일-트럼프 2차 정상회담이 있던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났다.
호안끼엠 호수에서는 젊은이들이 멋들어진 춤을 추었다. 베트남의 미래를 짊어진 그들의 역동적이고 흥 넘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호수 옆 콩카페의 원조집에서 커피 맛도 음미했다. 그리고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베트남 동쪽 거대한 S자 해안선 철길여행은 어떠니?
이번 베트남 세 번째 방문은 컨셉이 좀 다르다.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 동쪽에 길게 뻗은 S자형의 나라다. 남북 길이 3260킬로미터의 긴 해안선을 갖고 있다.
어느날 지도를 보다가 남에서 북, 북에서 남으로 열차여행을 해보고 싶어졌다. 알려진대로 이 철로는 폭이 좁은 ‘협궤열차’였다. 아내와 연애시절, 수원-인천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소래포구서 회를 먹은 기억도 떠올랐다.
지도를 보며 또다른 꿈도 꾸었다. 라오스에서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를 관통하는 메콩강을 배를 타고 혹은 차를 타고 여행하고 싶었다. 인도차이나 지도가 눈에 띌 때마다 이 같은 모험심이 발동했다.
우선은 베트남 철도여행이었다. 남쪽에서 북쪽까지 열차를 타고 중간의 유명지를 둘러보면 어떨까 궁리질했다. 나는 지난해부터 한국 동해안 해파랑길 700km를 구간구간 조금씩 걸었다. 걸으면서 S자 베트남 해안선 모습을 상상했다. 베트남 동해안 도시들을 철도룰 이용, 여행하는 것을 상상할 때마다 남모른 희열에 빠져들었다.
코로나19와 급하게 흘러가는 주변 일들 때문에 계획은 ‘봉인’되었다. 꿈이 조금씩 시들어갈까봐 조바심이 났다. 봉인은 ‘유보’가 아닌 ‘폐기’ 직전으로 몰렸다. 다행히 올해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는 무렵 봉인이 풀렸다.
베트남에서 회사를 운영 중인 김석운 베트남경제연구소장이 내 철도여행 계획을 듣고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여행 길잡이를 자처했다. 그뿐 아니라 달랏대 한국어과 교수님도 흔쾌히 동행하겠다고 전해왔다. 비록 그 교수님은 급한 스케줄로 취소했지만 힘이 났다.
이 철도여행 가이드는 한국어를 잘하는 김 소장의 베트남 현지 직원이었다. 그 직원과 달랏대학교서 한국어를 전공 중인 대학생이 맡기로 했다. 둘은 자매였다. 언니 수경은 마침 전직을 결정하고 휴식 중이었다. 동생 짬(Tram)은 방학중이었다.
여행 계획이 세워지면 기다리는 동안 설렘지수가 점점 급상승한다. 올해 3월은 내가 운영하는 인터넷신문 '게임톡'이 창간 10주년을 맞았다. 마침 지긋지긋한 ‘코로나19’의 ‘병란(病亂)’도 벗어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때부터 6월이나 7월로 예정된 베트남 철도여행을 상상하면서 매 순간 남모르게 찌릿 짜릿했다.
■ 항공기 항로궤적 스카이랩-질주 오토바이 행렬과 81타워 보니 호치민이구나
“떠나기 위해 떠난다”는 말이 있던가. 설렘지수는 여행을 떠나는 당일 새벽 최고조에 올랐다. 호치민행을 타러 마포 공덕역에서 인천공항 고속철도 전동차에 오르면서 지수가 폭발했다.
3년 만의 국제선 비행기를 탔다. 온라인 티케팅과 공항의 좌석 배치-짐부치기-검색대 통과-면세점 방문-열차 환승 등이 마치 처음 같이 낯설었다. 그렇지만 반가웠다. 짜릿한 순간들이 너무 좋았다.
호치민 항공기를 기다리면서 식당 창 넓은 자리서 뜨거운 순두부찌개를 훌훌 불면서 아침을 먹었다. 항공기 몸체가 다 보이는 유리창 옆에서 순두부를 목으로 넘길 때, 그때 설렘지수는 만렙(최고 레벨)을 찍었다.
10시 20분발 호치민행은 108 탑승구에서 티켓을 최종 확인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내 자리를 찾아갔다. 화물을 위 화물칸에 넣고 자리에 앉자 드디어 떠나는구나. 실감났다.
항공기는 컸다. 하지만 승객은 3분의 1도 채우지 못했다. 양쪽 3좌석들은 대부분 세 개의 의자 중 가운데를 비워두었다. 가운데 3좌석열 앞쪽은 거의 비었다. 어떤 이는 출발 후 뒤쪽에서 아예 누워 황제여행(?)을 즐길 준비를 했다.
나는 앞좌석 뒤 영화 등 주문형 비디오 시스템 화면을 눌렀다. 영화 한 편을 보았다. 한류 드라마 주제가 OST도 들어봤다. TV시리즈를 뒤적거려봤다. 하늘에서 날아가는 궤적을 확인하는 스카이랩 화면도 눌러봤다. 서울-호치민, 광저우 마닐라 도시가 태평양 위에 표기되었다.
베트남 인근 도시에 접근하는 항공기 동선이 표기되었다. 인천공항과 떤선녓(Tan son nhat)의 거리는 1만 2129미터였다. 시간은 한국과 2시간 차이. 베트남어 기내방송에 이어 영어-한국어가 이어졌다. 드디어 호치민이었다.
베트남 최대 도시 호치민은 100킬로 반경에 산이 없다. 대신 30개 항구로 이어지는 사이공강이 실핏줄처럼 이어진다. 그 강과 낮은 평야, 바다가 공존하는 모습이 항공기 창에서 내려다보였다. 이곳은 물자가 풍부하고 부가 넘치는 부자들의 땅이기도 하다.
내가 호치민을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사이공강 인근에 있는 현대건설이 지은 ‘비텍스코 68타워’와 베트남 최대 기업 빈 그룹의 부동산 회사 빈홈이 만든 ‘81타워’와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행렬을 보니 호치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베트남은 지난 5월 15일 코로나19로 막아놓은 하늘길을 다시 열었다. 외국인 입국 문도 활짝 열었다. 여권만 가지면 외국인 입국을 모두 받아주기로 했다. 백신 접종증명서도 PCR(신속항원) 음성증명서, 의료보험, 30일내 무비자 재입국 가능, 방역관련앱설치도 불필요했다. 입국 후 코로나 검사도 없다.
현재 베트남은 출입국에 관해서는 코로나19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갔다. 나는 다음날 아침 새벽 5시 30분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사이공 역으로 갈 것이다. 남북통일이 되어 사이공 도시명은 호치민이라고 바뀌었지만 강이나 기차역 이름에는 예전 이름이 남아 있다.
내가 꿈을 꾸었던 동해안 철도여행 행로는 호치민-판티엣-무이네-나트랑-퀴논-다낭-후에다. 무이네 해돋이 어촌 바닷가 생선시장, 나트랑 빈펄랜드(Vinpearl Land), 다낭 바나힐과 호이안, 후에 궁궐 관광...
아, 시속 40km 안팎의 좁은 협궤열차 철로 위에서 보는 베트남, 또한 철도에서 내려 만난 베트남 동해안 유명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설레는 밤이다.
베트남 남북철도는?
남북선은 1899년부터 40년간 건설되어 1936년 하노이-사이공 철도가 개통되었다. 세계 2차대전으로 남북선 전체가 파괴되었다. 이후 베트남이 다시 통일되어 수도 하노이의 하노이역에서 호치민의 사이공역까지 다시 연결했다.
총 길이는 1726km로 모두 단선이다, 궤도폭 1000mm, 역은 49개다. 2018년 궤도폭 1435mm인 남북고속철도를 계획되어 2028년 본격 시공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