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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여행 1] ‘꽃의 도시’서 어여쁜 '성춘향'을 만나볼까나

‘봄의 향기’라는 뜻의 쓰언흐엉호수를 품은 달랏여행 4박 5일

 

이번에는 달랏이다. 지난 7월 베트남 남북철도 10일간 여행에 이어 4박 5일 ‘달랏(Da Lat)’을 찾았다.

 

달랏은 해발고도 1400미터에 위치했다. 사시사철 기온은 섭씨 18~23도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 ‘봄의 도시’로 불린다. 동남아 특유의 열대우림과는 달리 지중해성 기후로 소나무숲이 울창하고 일년내내 꽃이 핀다.

 

달랏이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프랑스가 식민지 시절 다낭 등과 같이 선택한 최적의 휴양지라서다. 시내에는 팰리스호텔 같은 프랑스풍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어 ‘미니 파리’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에다 프랑스가 만든 산중 인공호수 ‘쓰엉흐엉(Hồ Xuân Hương)’이 도시를 품고 있다.

 

 

베트남 응우웬(阮朝, Nguyễn triều) 왕조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의 여름별장도 관광객을 맞고 있다. 과일, 와인, 커피로도 유명한 달랏은 일년내내 꽃이 피기 때문에 ‘꽃의 도시’로 불린다. 5000여 농가가 1044만 평에 달하는 농장에서 연간 10억 송이의 꽃을 생산한다. 가로등에 달려있는 도시 상징도 매화꽃 문양이다.

 

“달랏의 꽃이 무척 아름다워 베트남 전쟁에도 이 달랏만은 지킬 수 있던 일화가 있다. 달랏은 식민 시절부터 프랑스가 점 찍어둔 땅으로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 중 하나다.”

-EBS 지식클립

 

2022년 달력이 두 장이 남는 11월 중순, 설레임과 부푼 기대감으로 인천공항 국제선으로 달려갔다. 이번 여정은 직항로가 없어 호치민에서 달랏 국내선을 갈아탔다. 4박 5일 여정이었다.

 

 

■ 프랑스가 휴양지 건설한 인공호수 ‘춘향호’가 도시 동서남북 나뉘어

 

달랏의 기후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프랑스인들이 만든 빌라식 호텔은 카드키가 아니라 열쇠구멍에 자물쇠를 돌려 문을 따고 들어갔다. 방에는 옛날식 거대한 선풍기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쓸 일이 없었다. 한낮에는 더워 반소매를 입지만 저녁이면 쌀쌀했다.

 

“코로나19로 다들 힘들었죠? 저는 더 힘들었어요. 달랏은 시원하고 땀이 날 이유가 없어요.” 20년 달랏에 살고 있는 가이드 임영민 부장은 이 말로 달랏을 설명했다. 

 

베트남은 하노이(HANOI) 중심 북부, 후에(HUE)의 중부, 그리고 호치민(HOCHIMIN) 중심의 남부로 나뉜다. 달랏은 남부에 위치해 있다. 달랏의 인구는 150만 명 럼동성의 성도로 인구 20만 명이다. 달랏의 지명은 토착민인 '랏족 사람들의 시내'라는 뜻에서 따왔다. 

 

꽃과 커피, 프랑스 도시건축 등이 어우러져 달랏은 한국의 제주처럼 베트남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혼여행지 1위에 올랐다.

 

특히 이 도시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 시내 한가운데 자리한 ‘쓰엉흐엉’ 호수다. 프랑스 식민정부가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지은 인공호수다. 베트남식 발음이지만 한자로는 ‘춘향(春香)’이다. 말 그대로 ‘봄의 향기’ 호수다. 17세기 베트남의 유명한 여성 시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 ‘춘향이 호수’인 셈이다.

 

프랑스가 달랏을 최고 휴양지로 낙점하고 설계한 이후 1919년 이 호수는 완성되었다. 그리고 베트남 최고 휴양지 명성을 뒷받침하는 상징이 되었다. 호수 주위에 들어선 별장만 3000채, 이제는 8000채가 넘는다고 한다.

 

 

실제 달랏 이 도시는 춘향이 호수를 중심으로 돌고 돌았다. 아니 달랏의 모든 길은 동서남북 춘향이 호수로 통했다. 면적이 25만m², 둘레가 약 5km다. 2km 이상 뻗어 있는 초승달 형상의 호수는 달랏 시민에게는 평안한 휴식처다. 

 

호수와 인접한 곳에 달랏시장, 달랏꽃정원, 예신공원, 랑비엔광장, 빅씨마트, 도하카페 등이 자리잡고 있다. 한나절이면 호수를 끼고 온갖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이 호수가 있어 달랏은 호반도시 한국 춘천과 자매도시를 맺었다.


5km 둘레길의 호숫가 산책길에는 젊은 연인과 중년 부부가 눈에 띄었다. 신혼여행 사진을 찍은 젊은 부부도 만났다. 물고기를 낚는 강태공들도 있었다. 내가 탄 관광용 마차는 포장도로에 박자를 맞추며 말발굽 소리를 냈다. 

 

 

요즘 신세대들은 풍경에 대해서 ‘맛집’을 붙이곤 한다. 이들 표현을 빌린다면 달랏은 ‘호수맛집’ ‘구름맛집’이다. 쓰엉흐엉을 배경으로 도시풍경 ‘호수맛집’, 액자 사진 같은 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하늘의 ‘구름맛집’이 연출된다.

 

첫날 호치민 공항에서 달랏행 항공기를 탄 시간은 오후 7시 40분, 짐부치기가 지체되어 승선은 늦어졌다. 비행기로 40분 걸려 링크엉 공항에서 내렸다. 여기서 다시 숙소인 달랏 ‘아나만다라 빌라스 달랏 리조트’까지 30분 달렸다. 

 

꿈에 그리던 달랏이었다. 어둠에 잠긴 산등성이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당도한 산중 도시 달랏은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 불야성(不夜城)이었다. 신비로웠다. 숙소 리조트는 17채의 빌라로 구성된 작지만 화려한 곳이었다. 1920~30년대 건축된 프랑스인이 살던 100년된 빌라를 개조한 곳이었다. 고색창연했다.

 

현재 이 고산지대 휴양지를 한국에서 찾아가려면 호치민과 나트랑에서 따로 건너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지만 직항로가 없어서 더 매력적인 도시였다. 여행사 대표는 조만간 직항로가 생긴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2023년 1월부터 한국출발 일-월-수-목  비엣젯항공에서 직항이 뜬다고 최근 소식을 전해들었다.

 

 

■ 아름다운 산중 휴양도시 출발...프랑스 건설로부터 시작

 

달랏은 한국의 '포천 산정호수'처럼 기묘한 느낌을 준다. 찾은 이들은 "이 도시를 알게된 사람들은 절로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동양의 파리'라는 명성에 불구하고 하노이와 호치민에 비해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꽃과 호수, 커피와 프랑스풍 성당과 황제의 별장으로 이름난 이 아름다운 산중 휴양지가 건설된 것은 언제였을까?


1890년대 전세계 유명한 의학자 파스퇴르 박사의 제자 알렉산드로 예신은 방역을 위해 베트남 전역을 돌았다. 그런 중에 달랏을 발견했다. 그는 "알프스와 유사하다"고 스승 파스퇴르와 프랑스 대통령에게 휴양지로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풍경이 아름답고 특히 날씨가 좋아 휴양지에 안성맞춤이라는 판단이었다.

 

 

달랏을 설계한 인물은 프랑스 건축이자 도시 계획가 에르네스트 에브라르다. 그는 근대 프놈펜의 설계와 건설을 총지휘한 인물이기도 하다. 1923년 그는 나무가 있는 도시를 건설했다. 3만 ha의 도시는 1500명의 사람이 거주하고, 최대 5만명이 수용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달랏은 현재 3만 9000 ha이고 인구는 1세기 전보다 160배나 늘었고, 5배나 많은 24만 명이다. 많은 이주자들이 달랏에 면허 없이 집을 지었다. 당국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여기에다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렸다. 관광 숙박 시설의 수는 2,400개로 2006년에 비해 2022년 은 4배 늘었다.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지 총독부는 달랏에 빌라와 다양한 시설을 지었다. 지금도 달랏 시내에는 프랑스가 지배했을 때 휴양시설로 지은 빌라가 많다. ‘베트남 속 프랑스’라는 이름을 얻게된 이유다.

 

1907년에 지은 첫 번째 팰리스 헤리티지 호텔은 정통 프랑스식 요리를 선보이며 지금도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시내에는 달랏성당을 비롯한 화려한 생활사를 알 수 있는 웅장한 유럽식 목조건물들이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25년 이후에는 프랑스 귀족과 베트남 왕족들뿐만 아니라 유럽인들도 너도나도 찾아왔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머나먼 동남아 나라 베트남 달랏까지 휴양지로 선택한 것이다.

 

내가 묵은 호텔 아나만다라 빌라스 달랏 리조트를 비롯,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달랏역 등 여기저기 프랑스풍 건축물이 즐비했다. 달랏역은 1943년 프랑스의 건축가와 기술자 공동작품 건축물이다. 호치민의 우체국 건물이 에펠탑을 만든 에펠의 설계로 지어진 것과 비슷하다.

 

 

유홍준 교수는 400만 권이 팔린 자신의 책 ‘나의 유산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춘향이 호수를 가진 달랏, 아름다운 휴양지지만 그 안에 프랑스와 베트남의 슬픈 역사도 배어 있다. 이제 베트남의 일부가 된 그 역사 이야기말이다.

 

■ 꽃과 커피와 와인, 그리고 더 알고가는 ‘달랏’ 베트남 역사여행

 

베트남은 과거 1000년간 중국의 속국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지배 100년, 여기에다 1941~1945년 4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이 미국이 지원하던 남베트남을 함락시키고 통일을 이루었다.

 

동남아사로 유명한 일본 역사가 후루타 모토오의 ‘동남아시아사’ 198페이지를 소개한다.

 

‘프랑스는 19세기 후반 가톨릭 포교로 관계로 베트남에 진출했다. 응우옌 왕조 자 롱 황제시 순탄한 관계는 민망 황제 이후 가톨릭 탄압을 빌미로 악화되었다. 1858년 뜨득(1847~1883) 황제가 스페인 선교사를 처형한 사건으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가 다낭-후에를 공격했다.

 

 

이후 프랑스는 1862년 남부 메콩 델타 동부의 3성을 프랑스에 할양한다는 제 1차 사이공 조약을 뜨득황제에 조정을 강요했다. 본격적 식민지화 정책을 본격화했다.

 

1867년에 메콩 델타 서부의 3성도 점령하면서 프랑스 직할 식민지인 코친차이나(Cochinchina)를 형성했다. 1863년에는 베트남-싸얌의 위협에서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캄보디아마저 보호국으로 만들어버렸다.

 

이후 1884년 프랑스군대가 북부로 출병해 프랑스와 응우옌 왕조 사이에는 베트남이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고, 외교권을 프랑스에 위임한다는 제2차 후에 조약을 체결했다. 이렇게 베트남은 주권을 상실하고 프랑스에 의해 식민지화되는 운명을 맞았다.

 

베트남은 프랑스 직할령인 남부 코친차이나, 보호국으로 전락했으나 응우옌 왕조가 존속했던 중부 안남(Annam, 安南), 그리고 프랑스 이사장관(理事長官)의 관리하에 놓였던 보호령 북부 통킹(Tongkin)이라는 세 지역으로 분할되었다....프랑스는 베트남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라오스를 총괄하는 인도차이나 전역에 지배했다. ’

--후루타 모토오 ‘동남아시아사’ 198페이지

 

■ 세계 커피 생산 2위국, 프랑스 선교사가 가져온 커피나무 ‘달랏’ 명성

 

위 책을 보면 프랑스는 탐욕적으로 베트남 식민화를 통해 베트남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라오스를 총괄하는 인도차이나 전역의 식민지배를 완성했다.

 

이 식민지배는 한 민족에게 슬픈 역사이지만 역설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삶을 많이 바꿔줬다. 가령 프랑스의 100여년 식민지 세월 속 바케트 빵은 ‘반미’라는 샌드위치가 되었다. 퍼(소고기 쌀국수) 역시 프랑스의 육수요리인 포토푀(Pot au feu)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프랑스 선교사가 가져온 커피나무는 달랏 메린 커피농장 등을 통해 베트남을 전세계 커피 2위 생산국으로 바꾸었다. 베트남 커피 중 80%가 달랏 산이다.

 

베트남 전역 도시 중심부에 성당이 들어서 있는 것도 프랑스 종교정책 때문이다. 가령 베트남 언어의 표기는 알파벳식이다.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표기법이 완성되었다.

 

 

관광안내서를 보니 다낭(Danang)에서 달랏으로 가려면 13시간 슬리핑버스를 추천한다. 지난 7월 내가 탔던 침대버스다. 베트남 장거리 여행에서 흔하게 이용하는 것이 ‘슬리핑버스’인가 보다.

 

호치민에서 달랏은 300km, 버스로는 약 7시간이 걸린다. 북쪽 나트랑(Nha Trang)에서 160km, 버스로 4시간 , 남쪽 무이네(Mui Ne)에서도 버스로 4시간이 걸린다. 호치민에서 무이네까지는 버스 5시간 30분이 걸린다.

 

 

첫날 달랏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를 꼽아보았다. 우선 달랏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라비앙, 달랏의 과거를 만날 수 있는 달랏 기차역, 다양한 먹거리를 만날 수 있는 달랏 야시장, 요정이 살 것만 같은 요정호수 ‘뚜엣띤꼭’, 사진찍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해피힐과 자수박물관 등이다.

 

휴양지와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는 달랏의 투어 대표상품을 보면 닭성당-케이블카(중림선원)-다탄라폭포-바오다이 여름별장-꽃전시장-플라워가든(약 11헥타르)-크레이지하우스였다.

 


달랏은 고원지대답게 서늘한 날씨가 일년 내내 이어져 어디서나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토양이 기름져 채소, 과일, 차, 고무 등의 온대작물을 재배하고 화훼는 수출한다. 양잠 실크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한국인이 현지 딸기 재배를 성공해 사랑받고 있다.

 

달랏의 1년 중 가장 큰 축제는 '꽃축제'다.  코로나19로 2년간 멈추어 있던 '꽃축제'도 12월 20일에 다시 열려 2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내가 달랏을 찾았을 때 11월 열린다고 했는데 연기했다. 12월에 달랏을 가지 못했지만 11월에 본 도시는 이미 꽃잔치였다. 

 

달랏을 찾은 이들은 한 목소리로 하는 말은 “달랏은 동남아인가 헛갈린다”고 했다. 이 도시는 습도도 없고 바람은 선선하기 때문이리라. 호텔은 대부분 에어컨이 없다. 내가 묵은 숙소인 리조트는 새벽에도 서늘할 기운이 느껴졌다.

 

 

어디서나 액자 사진 같은 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달랏 하늘', 숙박-관광 등 휴양지로서 최적의 여건을 갖춘 달랏... 봄 여름 가을 겨울 꽃이 피는 '꽃부자' 달랏...

 

즐거운 상상 하나, 달랏을 찾은 당신은 ‘춘향호’ 호수 안 카페서 일출을 보다 새벽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는 이도령을 만나볼 수도 있다. 아니면 드라마 속  '파리의 연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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