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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몽족 2세 메건 캉, LPGA투어 우승컵 번쩍

부모 베트남 전쟁 이후 탈출 미국 정착, 데뷔 후 7년만에 첫 우승

 

 

“제가 라오스 출신 최초, 몽족으로는 첫 LPGA 우승자입니다.”

 

메건 캉(Megan Khang, 미국, 25)이 지난 28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의 쇼너시 골프 앤드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LPGA 투어 CPKC 여자오픈(총상금 250만 달러) 최종일 연장전에서 우승했다.

 

USA TODAY 28일자 ‘스포츠’면에 따르면 연장전 승부에서 한국의 고진영을 꺾은 메건 캉은 우승상금 37만 5000달러(약 4억 9762만 5000원)와 LPGA투어 생애 첫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그는 “부모님은 8~10살 때 라오스에서 빠져나왔다. 아버지는 자동차 수리점을 한다. 어머니는 유치원 교사를 하고 있다. 나는 몽-아메리칸 1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우리는 아메리칸 드림 속에 살고 있다. 이번 우승은 우리 가족의 승리”라고 기뻐했다.

 

메건 캉은 다섯 살에 아버지한테 골프를 배웠다. 열네 살 때 미국 여자프로골프 예선을 통과해 2012년 US 여자오픈에 출전했다. 2016년 데뷔한 메건 캉은 7년 만에, 그리고 191번째 대회에서 첫 우승을 따냈다.

 

■ 아버지는 라오스 난민, 딸은 최초의 몽족 LPGA투어 선수

 

메건 캉은 이름 표기가 ‘KHANG’이라서 한국인으로 오해를 받을 적도 있다.

 

몽족 커뮤니티가 자리 잡은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메건 캉은 “나의 성과 외모를 보고 사람들은 대개 한국 사람인 줄 안다. 부모와 친척들은 몽족 문화와 전통을 늘 가르쳐줘 몽족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최초의 몽족 LPGA투어 선수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자부심을 드러낸 바 있다.

 

 

메건 캉의 아버지 리(Lee Khang)는 여섯 살에 가족과 함께 라오스에서 탈출해 태국 난민촌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메사추세츠주에 정착한 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역시 난민 출신인 여자와 만나 결혼했다.

 

자동차 정비사인 리는 32살 때 골프를 시작했고 독학으로 골프코치가 되었다. 그는 딸을 낳자 다섯 살 때부터 골프를 가르쳐 엘리트 선수로 키웠다. 주니어 골퍼로 활약한 메건 캉은 여러 대회 우승했다.

 

하지만 아버지 리는 자신의 골프 아카데미도 없는 프리랜서 골프코치였다. 메간 캉은 프로 데뷔 이후 대회 참가자격이 있어 초청을 받았지만, 비싼 호텔비와 항공료 등 경비가 없어 기권할 정도로 가난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졌다. 미국에서 터잡고 있는 라오스 소수민족 출신 동포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유명짜한 스타가 되었다. 아버지 리 캉은 “딸은 어린 몽족 소년 소녀들의 롤모델”이라고 밝혔다.

 

■ ‘캉의 가족사’로 재조명받고 있는 라오스 몽족의 슬픈 역사

 

첫 우승을 따내는 감격과 함께 주목을 받은 것은 메건 캉의 가족사였다. 몽족인 메건 캉의 아버지 리 캉은 베트남전쟁 와중에 라오스에서 탈출,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몽족이 3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몽(Hmong)족은 중국 남부와 인도차이나 반도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이다. 전 세계 총 400만~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한국에서는 다른 발음 이름으로 베트남, 중국, 라오스 등지에 사는 '묘족'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중국에 약 300여 만 명, 베트남에 100여 만 명, 라오스에 60여 만 명, 태국에 30여 만 명 정도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렇게 30만 명이나 되는 많은 몽족이 미국에 거주하게 된 이유는 뭘까.

 

몽족은 라오스 내전과 베트남전쟁 때 공산세력과 싸웠다. 베트남전쟁 때는 미국은 베트남 북부 고산 지대에서 살던 몽족을 북베트남(월맹)에 맞서 싸우는 게릴라와 첩보원으로 활용했다. 베트남과 인접한 라오스에서도 몽족은 미군을 도왔다.

 

베트남전쟁이 1973년 미국의 패전으로 끝나면서 베트남과 라오스에 있는 몽족은 위험해졌다. 베트남과 라오스 정부군은 몽족이 미군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대대적으로 탄압받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베트남과 라오스 몽족 상당수는 외국으로 탈출하면서 미국-태국-프랑스 등으로 망명했다.

 

■ ‘디아스포라’의 아픔 극복한 골프업계 투톱 ‘릴리아 부’와 ‘메건 캉’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유대인의 단어가 있다.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특정 민족의 이산을 지칭한다.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든지 타의적이든지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다

 

방민준 골프 칼럼니스트는 골프한국에서 골프업계 두 명의 ‘디아스포라’를 조명한 바 있다. 바로 8월 14일 올시즌 LPGA투어 마지막 메이저 대회 AIG여자 오픈에서 우승한 릴리아 부(25)와 이번 CPKC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메건 캉이 대표적인 ‘디아스포라 후예’로 꼽았다.

 

 

릴리아 부는 베트남계 3세다. 할아버지가 베트남전쟁 당시 조국을 탈출한 ‘보트 피플’ 출신이다. 릴리아 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베트남 출신이다.

 

부의 외할아버지 딘 두는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7년 째 1982년 보트 한 척에 의지해 가족들과 베트남을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침몰 직전 다행히 미국 전함 USS 브루턴이 구조했다.

 

LA 근처에서 정착한 1997년 릴리아 부가 태어났고, UCLA 재학 중 아마추어로 맹활약해 2019년부터 LPGA투어에 뛰기 시작했다. 올해 4월 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셰브론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셰브론 대회 우승 당시 “할아버지의 탈출 덕에 엄마가 미국에 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최선을 다해 경기하라’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릴리아 부는 올 시즌 타일랜드 챔피언십, 셰브론 챔피언십, AIG 위민스 오픈 등 3승을 거두면서 한때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릴리아 부와 동갑내기인 메건 캉은 2016년부터 LPGA 투어를 뛴 이후 190번 대회에 출전했지만 우승이 없었지만 꾸준히 상금 순위 30~40위를 유지해왔다. 2018년에는 톱 10에 6회에 오르면서 처음 한 해 상금 100만 달러(약 13억 2700만 원)를 돌파했다.

 

메건 캉은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프로로 전향하기로 선택한 리디아고(Lydia Ko), 렉스 톰슨(Lexi Thompson) 및 브룩 헨드슨(Brooke Henderson)처럼 10대에 프로에 뛰어들었다. 153cm의 단신임에도 다부진 몸매와 긴 비거리, 파이팅과 사교성으로 친화적이 뛰어난 선수로 알려졌다.

 

■ ‘보트피플’ 100만 명...키오콴 아카데미 수상-가수 팜꾸인아인 ‘헬로 베트남’ 주목

 

‘디아스포라’의 아픔의 다른 상징 중 하나가 ‘보트피플’이다. 1975년 베트남은 통일되었지만, 100만 명에 이르는 수많은 베트남인이 조국을 등지고 ‘보트피플’이 되었다.

 

 

골프계 릴리아 부 외에 연예계에서도 베트남 ‘보트피플’은 주목 대상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배우 키 오이 콴(51)다. 베트남 출신으로 최초로 올해 제95회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베트남계 중국인인 콴은 베트남 패망한 이후 1978년 보트를 타고 난민캠프에서 1년을 보냈다가 미국으로 왔다. 열 세 살 어린 나이로 인기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2’에 출연한 바 있다.

 

벨기에 국적의 1987년생 베트남계 가수 팜꾸인아인(Phạm Quỳnh Anh)도 보트피플의 2세다. 그가 자신의 조국인 베트남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을 담아 부른 노래가 '헬로 베트남'이다.

 

이 노래의 히트를 계기로 팜꾸인아인은 2008년에야 난생 처음으로 부모의 땅을 밟았다. 이 노래는 비엣젯 항공의 이착륙노래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밖에 액션 영화 ‘웬디 우: 홈커밍 워리어’로 알려진 미국의 배우 브렌다 송(35)은 아버지는 몽족이고 어머니는 태국인으로 유명하다. 2017년부터 영화 ‘나 홀로 집에’로 유명한 맥컬리 컬킨과 사귀는 중이며 2021년 4월에 득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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