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은 루앙프라방과 함께 뉴욕타임스 선정 ‘꼭 가봐야 할 곳’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 라오스는 왼쪽에는 베트남, 오른쪽에는 태국, 그리고 미얀마와 캄보디아와 중국 등 5개국에 둘러싸여 있다.
라오스를 찾는 이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들은 무엇일까? 아니 비엔티안에서는? 불교국가의 상징 새벽 탁발에 이어 에메랄드 불상이 있었던 ‘왓호빠깨우(Wat Ho phra keo)’와 그리고 황금불탑을 찾아가봤다.
■ 200여년 모셔져 있던 에메랄드 불상, 태국에 빼앗겨 ‘태국 국보 1호’ 왜?
비엔티안에 있는 사원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왓호빠깨우’와 소위 ‘황금불탑’으로 알려진 ‘탓 루앙(Pha That Luang)’일 것이다.
‘왓호빠깨우’ 사원은 신비한 ‘에메랄드 불상’으로 알려진 프라깨우를 모시기 위해 만든 왕실 사원이다. 태국 북부의 란나 왕국에서 가져온 에메랄드 불상을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기며 1565년 ‘세타티랏 왕’의 명령으로 건설되었다.
하지만 1779년 태국의 샴 왕국과의 전쟁 때 사원은 전체가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특히 200여년 모셔져 있던 에메랄드 불상은 태국에 약탈당했다. 현재 에메랄드 불상은 태국의 국보 1호로 방콕 왕실 사원 ‘왓 프라깨우 사원’에 모셔져 있다.
비엔티안 왕국은 태국의 공격을 받아 1828년에 멸망했다. 비엔티안 왕국의 왕 차오아누는 타이에 끌려가 1829년 감옥에서 죽었다. 이처럼 라오스의 가슴 아픈 역사가 숨겨진 이 사원은 1936년 프랑스에 의해 복원되어 박물관이 되었다.
건물은 세 겹으로 만들어진 지붕의 끝이 날렵했고 넓은 기둥을 받치고 있었다. 방문객은 계단 아래 신을 벗고 건물에 올랐다. 내부로 통하는 문 앞 기둥 앞에는 소승불교의 불상인 손바닥이 크고 밖으로 밀어내는 불상이 서있었다.
안내하는 이는 “이 불상을 만지면서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 때문인지 부처가 만질만질하다”하다고 설명했다. 예전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정에 있던 하버드 설립자 동상의 구두가 생각났다. 그 동상 구두코도 사람들이 너무나 만져서 반질반질했었다. 만지면 입학이 이뤄진다고 해서 너도나도 만졌다고 했다.
사원 내부에 들어가니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수많은 라오스식 불상이 빽빽하게 전시되어 있다. 높이 66cm의 작은 에메랄드 불상 자리에는 원래 주인 대신 다른 불상이 놓여 있었다.
그렇다면 왜 에메랄드 불상일까. 이 불상은 실제 에메랄드가 아닌 준보석인 벽옥(jasper)으로 조성된 선정인을 한 좌불상이라고 한다. 부처가 있을 때 만들어졌다 문득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는 이 불상의 스토리텔링은 흥미진진했다.
원래 이 불상은 부처님 재세시에 나가세나라고 하는 현자가 비슈누와 인드라신의 도움을 받아 조성한 인도에서 만들어진 불상이라고 한다. 내전을 피해 실론(지금의 스리랑카)로 옮겨졌고, 반환하는 길에 엉뚱하게 캄보디아 마을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캄보디아는 태국 아유타야의 속국이라 아유타야 왕에게 선물로 바쳐졌다. 이후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이 버마의 침입으로 불상은 사라져버렸다.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가 1434년에 태국 북부 치앙라이에서 우연찮게 발견되었다.
이후 이동 경로가 역사 기록으로 남아 있다. 1551년 불상은 태국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으로 옮겨졌다. 라오스 수도 이전으로 비엔티안의 이 왕실사원에 안치되었다가 침탈(?)당해 다시 태국으로 갔다. 1779년 방콕이 수도가 될 때 국왕이 에메랄드 사원을 짓고 봉안하고 국보 1호가 되었다.
원래 프라깨우 사원 내 '에메랄드 불상'이 있던 자리 앞에서 섰다. 여러 생각이 스쳤다. 2000여년 각 나라를 돌고 돌아 강력한 '수호불상'의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수많은 순례자들에게는 영적 수호신이 되었다는 생각.
"수세기 동안 여러 곳을 떠돌았다가 태국이 마지막 소유자가 되었다. 태국은 에메랄드 불상의 주인이 될 '운명'이었을까. 이제 라오스 소유권은 소멸되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해결이 안된 채로 남아 있을까. 슬프고 애닯은 윤회 스토리구나..."
현재 태국과 라오스의 '에메랄드 불상'에 대한 관심은 땅과 하늘 차이였다. 태국에서는 ‘왕’은 부처같은 존재다. 7년 전 서거한 푸미폰 국왕은 가장 존경받은 이로 ‘살아있는 부처’라고 추앙받았다. 애도 기간 1년 내내 TV화면을 전부 흑백으로 방영했을 정도다.
태국 국왕은 매년 계절에 따라 에메랄드 불상에 직접 금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가사(옷)을 세 번 갈아입힌다. 또한 보관을 공양 올리는 법요식을 봉행한다. 전국민이 함께 하는 국가적 행사 중 하나다.
반면 사회주의 국가인 라오스는 에메랄드 불상의 반환 등 종교 문제에 무관심한 편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원의 옆 건물은 라오스 대통령궁(주석궁)이었다. 1893년 프랑스가 라오스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시키며 총독 관저로 건설했다.
■ 부처님의 가슴뼈 사리가 모셔진 ‘황금불탑’은 성지...라오스 국민 불심으로 모은 '금탑'
‘탓 루앙’은 ‘위대한 탑’이라는 뜻이다. 스리랑카에서 건너온 부처님의 가슴뼈 사리가 모셔진 황금불탑으로 라오스 최고의 성지 중 하나로 국보다.
사원 입구 불탑 앞에는 강력한 왕권으로 라오스를 번영시킨 ‘세타티랏 왕’(Setthathirath, 1534~1571)의 동상이 있었다.
높이가 45미터인 이 불탑은 세타티랏 왕 시대에 건축했다. 이후 19세기 태국의 침략으로 파괴되었으나 1935년 복원되었다. 2000년까지 여러 차례 수리해 현재 모습으로 재건했다.
‘탓 루앙’은 신도들이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 각 층을 돌아가면서 통로가 있다. 각층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11월에 개최되는 축제에는 탓 루앙 광장에는 단 한 번의 새벽 공양을 위해 전국에서 수십만 인파가 모여든다고 한다
이 탑은 비엔타인 현지인들이 가장 많은 기도사원으로 ‘프라 쩨디 로카쭐라마니(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탑)’라고도 불린다. 지난 3월에 찾았던 태국 치앙마이의 황금사원'으로 불리는 왓프라탓 도이수텝 사원이 생각났다. 도이스텝 사원은 순금 30%로 24미터 높이로 진신사리(어깨뼈)가 모셔져 있었다.
탓 루앙 황금불탑의 첨탑 상단부에는 라오스 국민들이 불심으로 모은 아주 많은 양의 금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이 탑은 3층으로 라오스의 국장과 지폐에 사용될 만큼 라오스의 중요한 상징이다. 이 사원의 명물은 ‘거대 와불’은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불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