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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여행 7] “꿈에서 본 불상 200기, 직접 만들었다고?” 불상공원

비엔티안 인근 메콩강 태국 접경지역 ‘불상공원’ 신비한 200개 불상 조각상

 

라오스는 불교국가로 잘 알려졌다. 신도수로는 불교 69%, 토속신앙 28%, 기독교 1.5% 분포다.

 

비엔티안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 탁발을 직접 봤다. 그리고 유명 사원 ‘왓호빠깨우(Wat Ho phra keo)’와 ‘탓 루앙(Pha That Luang)’를 찾으면서 새삼 느꼈다. 라오스가 불교국가라는 것을 제대로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라오스 첫 여행에서 가장 기억이 남은 건 씨앙콴 불상공원(Buddha Park, Xieng Khuan)이었다. “꿈에서 본 불상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공원 설립자 스토리가 신묘했다. 그리고 200개를 직접 빚어낸 불상들 스토리도 그렇다.

 

단순히 종교를 넘어 '상상력을 뛰어넘는' 예술가들은 위대하다.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을 마치고 찾아간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 베트남 달랏의 당 비엣냐 여사가 만들어낸 ‘크레이지 하우스’가 생각났다.

 

 

이제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한국 화순 운주사처럼, 불가사의를 넘나드는 예술가 목록에 라오스 불상공원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 50미터의 와불 앞에서 운주사 ‘천불천탑’ 생각...불교와 힌두교 신들의 200개의 불상

 

불상공원은 비엔티안 동남쪽 약 25km 거리의 메콩강 유역 태국 국경접경 마을에 있다. 버스로 40분여를 달리면 닿은 곳이다. 이 공원은 분르아 쑤리랏(Bunleua Suliat)라는 승려가 지었다. 승려이지만 힌두교의 통합 주술사로 알려지기도 했다.

 

 

태국 농카이(Nong Khai)에서 태어난 그는 동굴에서 그의 스승인 깨우 꾸(Keo Ku)를 만나 사사했다고 한다. 이후 라오스로 건너와 1958년부터 조각공원을 짓기 시작했다.

 

불교와 힌두교의 신을 콘크리트로 형상화하여 조각과 건물을 시작했다고 한다. 공원에는 각종 석가모니 붓다, 힌두의 신 등 총 200여 개의 시멘트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라오스 불상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50미터(높이 12미터)의 누워있는 거대한 불상이었다. 부처님의 열반상으로 알려진 이 와불은 부처가 죽음을 맞는 순간을 만든 열반상이다. 부처는 그 순간에도 평안한 모습이었다.

 

 

마치 바다 건너 저멀리 동방에서 찾아온 나그네에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체(色)는 공(空), 색즉공이다”라고 표현하는 듯했다.

 

라오스에서는 와불(누워있는 부처상)를 많이 만났다. 집라인을 하러 가는 도중 작은 동굴 사당에서도 옆으로 누운 와불상을 만났다. 문득 한국에서도 이름난 와불이 생각이 났다. 이름은 와불이지만 열반상은 아닌 점은 다르다.

 

화순 운주사 와불은 고려시대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만들었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이 절은 절이 아닌 고대 야외 조각공원처럼 넓은 지역에 석불과 석탑이 세워졌다. 1942년까지 213기의 석불과 석탑 30기가 있다고 한다.

 

 

지금은 70기의 석불이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정상부 ‘와불상’이다. 부부처럼 둘이 누워있는 불상이다. 천불천탑을 다 완성될 무렵 일하기 싫은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소리를 내 석수장이들이 날이 샌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일어서지 못했다고 한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서는 이 불상이 일어나면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이 와불이 일어나면 1000년간 태평성대가 온다고 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도 2008년 비 내리는 날 운주사를 방문해 “천불천탑 전설이 너무 경이롭다”고 말한 바 있다.

 

 

수많은 이들이 라오스 불상공원을 찾아와 이 50m 거대한 와불 앞에서 무엇을 빌었을까? 궁금했다. 이상 세계와 깨달음에 대한 담겨 있는 민초들의 꿈과 상상력은 사람사는 어디서나 비슷한 것이 아닐까?

 

■ 상상을 훨씬 뛰어넘은 200여개 조각상...호박탑 ‘생명의 나무’서 윤회 비밀을

 

야외 불상공원에는 이 와불상을 비롯한 상상을 훨씬 뛰어넘은 200여개들의 조각상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어떤 불상은 하반신은 뱀, 상반신은 사람이었다. 나가신이었다. 또한 머리도, 팔도 여러 개인 신들도 있었다. 코끼리를 타고 있거나 가부좌를 하는 모습의 불상도 있었다. 불상마다 번호가 붙어 있었다. 폭염 속에서도 관광객들은 포토존에서 셔터를 누르며 경탄을 쏟아냈다.

 

 

마치 꿈결에서 툭 튀어나와 이승의 중생과 함께 하는 생생한 동작과 실감나는 묘사로 보는 즐거움, 상상하는 재미를 선사한 듯했다.

 

소위 ‘호박탑’으로 불리는 건축물은 공원에서 가장 높았다. 아수라 형상의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하나밖에 없는 입구를 통해 실내로 들어간다. 시멘트 건물로 내부는 3층으로 1층은 지옥, 2층은 현생계, 3층은 천국을 상징했다.

 

 

붓다의 탄생과 출가, 수행에서 열반까지 불교 관련 조각상들이 가장 많았다. 공간이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되었다. 마지막 계단은 타워 위로 연결되었다.

 

 

꼭대기에는 다음 생을 결정짓는 열매가 열리는 ‘생명의 나무’가 있었다. 다음 생을 결정짓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라니...나의 다음 생은 어떻게 될까? 아찔했지만 발 밑에 있는 불상공원 전시장 수백개의 불상을 내려보며 다시 한 번 설립자의 ‘상상력’에 놀랐다.

 

■ 불상공원 설립자 “라오스가 자유스러우면 다시 돌아오겠다”

 

이 공원을 만든 분르아 쑤리랏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결론은 내 상상력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1975년 사회주의 정부 라오스(라오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성립 이후 종교 탄압에 의한 신변 안전을 염려, 다시 강 건너 고향 농카이로 도주했다고 한다.

 

 

그는 태국에서 다시 씨앙콴 불상공원 10배 규모의 ‘쌀라 깨우 꾸(Sala Keo Ku)’ 조각공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라오스가 자유스러우면 다시 돌아오겠다”면서...

 

주인이 없는 씨앙콴 불상공원은 오랜 기간 방치되었다고 한다. 라오스 정부는 1990년대 재 정비를 해 관광지로 개장했다. 이제 이국적인 신비와 예술적인 상상력으로 이 공원에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현재 중국이 50년 임대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라오스에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를 무상으로 건설해줬다. 이미 라오스 많은 분야에서 중국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고 있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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