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지역전문가(area specialist) 자체에 대한 담론은 그래도 20년 이상 오래된 주제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가 취임하고, 본격적으로 정부차원에서 ‘지구화(globalization)’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그에 입각한 다양한 정책들이 집행되었다. 그 중 하나가 대학에서 ‘해외지역’에 대한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고, 운영되었다.
마침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탈냉전의 흐름과 함께 지구화가 가속화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요구되는 ‘해외지역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고, 대학은 이를 담당해 왔었다.
지구화는 때로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본의 전 세계적인 이동을 가속화했고, 자본의 이동과 함께 사람들의 전 지구적인 이주 및 이동도 함께 가속화되었다. 해외여행을 비롯하여 교육이주 그리고 노동이주 등 사람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이동성을 높여나갔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지구화의 긍정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조류독감, 사스 등 전염병의 지구화, 불평등의 지구화, 환경문제의 지구화 등 지구화의 부정적인 문제들도 계속적으로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지구화 과정에서 개별 국가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발생하였고,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초국가적(transnational 또는 supranational) 담론에 대한 인식은 확장되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2020년 코로나19로 증폭된 불안과 위험 속에서 세계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협력’이 아니 ‘대립과 경쟁’을 하고 있고, ‘전략경쟁’을 넘어서 ‘체제경쟁’의 양상으로 갈등은 증폭되어 나가면서 다른 국가들의 존재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필자는 이로써 1991년부터 현재까지 지난 온 ‘30년 국제체제’는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 세계질서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는 올해 5월에 ‘메가아시아와 아시아들: 정체성, 역동성 그리고 데이터텔링’이라는 대주제로 한국연구재단에서 후원하는 인문한국(HK+) 연구과제를 수행하게 되었다.
본 연구사업단에 속해 있는 본인의 문제의식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우리의 시대, 우리의 세계’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본 연구사업단이 목도하고 있는 현상이 ‘부상하는 아시아(Rising Asia)’이다. 서구는 21세기가 되자마자 다음 세기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아시아인은 그때조차도 정말 그러한가 의심했다. 코로나19 이전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중국, 동남아, 인도 등이 되었고, 그래서 ‘아시아의 회귀’, ‘일대일로’, ‘인도-태평양전략’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 전략경쟁개념이 회자되었다.
그러나 우리 연구사업단은 이러한 전략들은 위에서 언급한 ‘30년 국제체제’의 낡은, 오래된 발상이라고 보고 있다. 서구가 지목한 ‘아시아의 시대’가 아니라 아시아인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21세기 ‘아시아의 시대’는 이전 질서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고대문명 발상지의 주류는 아시아였고, 아시아는 서로 오랫동안 상호작용하면서 문명을 발전시켜왔고, 매우 긴밀한 연결 네트워크를 갖고 왔었다. 이러한 아시아가 서구의 개입으로부터 한 번의 ‘단절’의 역사를 경험하였다.
이 단절의 역사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그리고 민족국가로의 독립과 그 여정의 역사로서 개별 민족국가 간에는 높은 장벽과 성을 쌓아 두었다.
단적으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세 국가의 얽혀있는 역사 및 문화 인식, 미래 비전도 ‘민족국가적 단위’로는 절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세 국가는 민족국가 단위 이전부터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사업단은 이러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인식론적 사고 단위인 ‘지역(Region)’을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이론화하고자 하는 연구팀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시아를 광역지역으로 사고하는 ‘메가 아시아(Mega Asia)’라는 개념, 아시아를 여러 아시아들(Asias)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관점 속에서 이러한 다양한 아시아의 비교를 통해 그 관계성을 충분히 설명하고자 하는 ‘비교아시아지역(Comparative Asia Regions)’ 개념을 상정하고 있다.
그래서 전자의 개념을 통해서 훈련된 전문가를 ‘메가아시아지역전문가’ 그리고 후자를 통해서 훈련된 전문가를 ‘아시아비교지역전문가’라고 하였다. 또한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에 따른 ‘데이터’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면서 기존 인문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데이터사이언스 분야가 훈련된 ‘융복합지역전문가’를 양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지역전문가양성 교육프로그램을 통하여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를 넘어서 관계적으로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탄생하여, 국가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구성단위를 실천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노력들이 시도되는 세대가 출현해야 한다.
그 미래세대를 만나기 위해, 지금 우리는 ‘아시아지역전문가’를 양성하고자 한다.
최경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kalli@snu.ac.kr
최경희는 박사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를 수여하고, 한국동남아연구소와 주아세안대한민국대표부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아시아 비교정치로 박사학위를 수여한 이후, 인도네시아와 아세안 지역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