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이후 1990년부터 시작된 한-아세안 협력사업은 역사만큼 다양한 협력사업이 있다. 이 중에서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사업을 이어오는 기관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대전대학교다. 2013년, 처음 외교부 한-아세안 협력사업 전문관으로 근무할 때 이러한 장기 사업들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정말 성과가 있는지, 첫 단추가 잘 끼워져 운으로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윗선에서 “밀고” 있는 사업은 아닌지. 의심의 물음표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러한 의심이 든 이상 장기 사업들은 더욱 철저하게 검증해야겠다. 그리고, 부실하게 이어져온 것이라면 반드시 종료시켜 다른 기관들에게 더 기회를 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사실, 대전대학교 사업은 이러한 의심의 가장 꼭대기에 있었다. 한-아세안 대학생 간 교류를 증진시키고자하는 무수의 대학교 중 왜 대전대학교인가. 2014년 한-아세안 협력사업 심사를 앞두고 나는 이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아니, 사업을 종료시킬 명분이 있다고 확신한 채) 대전대학교로 향했다. ■ 오해는 애정으로, 첫눈에 매료된 대전대학교 대전대학교는 대전역에서 차로 약 10분, 그리
일본의 국학이 천황을 ‘현인신’으로 받는 종교적 뒷받침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국가신도’에도 깊숙이 관련을 맺는다. 국가신도란 무엇인가? 일본의 코지엔(広辞苑) 사전은 이렇게 정의한다. 메이지 유신 뒤, 신도 국교화 정책에 의해 신사신도(神社神道)를 황실신도 아래 재편성하여 만들어진 국가종교. 군국주의·국가주의와 결부되어 추진되고 천황을 현인신으로 하여 천황지배의 사상적 지주로 되었다. 이 단순한 정의가 “메이지 유신 뒤, 신도 국교화 정책에 의해...만들어진 국가종교”라고 했지만 이는 무미건조한 사전적인 의미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국가신도가 종교의 이름으로 이웃나라 조선에 자행한 만행이나 자국민에 저질은 죄상은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헤아릴 수 없는 청년들이 ‘텐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이 정의가 언급한 “군국주의·국가주의와 결부되어 추진되고 천황을 현인신으로 하여, 천황지배의 사상적 지주로..”하여 그 일단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그 영문도 모른 채 죽은 극히 일부가 야스쿠니(靖国) 신사에 ‘호국영령’으로 묻혀 있다고. 문제는 전후 일본 총리라는 자들이 이 ‘영령’에 참배
일본의 국학이 이웃 나라, 즉 조선, 만주, 중국을 침탈하고 마침내 태평양 전쟁까지 이른 황국 사관의 이데올로기로 된 기반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원천은 천황을 ‘현인신’, 즉 ‘아라비토카미(現人神)’으로 떠받든 천황 신앙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노리나가가 구상한 ‘천황교 교의’는 그가 필생 연구 끝에 엮어낸 <고사기전>에 드러내고 있으며 노리나가 사후 그의 문인으로 자임한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1776~1843)가 완성했다고 두루 알려지고 있다. 이번 이야기는 노리나가의 천황교 교의를 중심 줄거리로 삼고자 한다. 그에 앞서 <고사기전>이 담고 있는 한반도 편견을 짚어 보자. ■ 한반도 편견의 뿌리:노리나가 ‘일본서기’ 바꿔치기 인용해 ‘고사기’ 일대수정 <고사기>에는 이른바 천손강림 신화에서 천황가의 조상신이라는 니니기 신(邇々芸命)이 츠쿠시(筑紫, 규슈의 옛 이름)의 히무카(日向)의 다케치호 봉(高千穗峰)으로 내려왔을 때 <고사기>의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땅은 카라쿠니를 향하고, 카사사(笠沙)의 미사키(御前)와 직통하고 아침 해가 눈부시게 내려쬐며, 저녁 해가 밝게 내려쬐는 나라니라
일본에는 ‘국학’이라는 전통 학문 분야가 있다. ‘전통 학문 분야’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학문과는 거리가 먼 천황제 옹호 또는 천황 신앙이 묻어나는 ‘의사(擬似)학문’이다. 물론 국학에도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어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핵심은 일본천황과 연관을 빼놓을 수는 없다. 국학이란 무엇인가? 본래 이니시에마나비(古学び)라 불렀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본의 독자적인 사상이나 정신세계를 일본 고전에서 찾자는 ‘학문’이다. 국학은 에도 중기에 완성되지만 처음 승려 게이추(契沖, 1640~1701)에서 그 싹을 틔운다. 그것을 이어받은 사람이 가다노 아즈마로(荷田春滿, 1669~1736)이다. 그는 교토의 후시미이나리(伏見稻荷) 신사의 신관으로 복고신도를 창도한 신도가이다. 조선왕조의 경우 아직도 주자학(朱子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형편과 견주어 보면 그들 국학자는 자아의식을 일본 고전에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한발 앞서 갔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조선왕조의 중신인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중국의 주자를 모르는 자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든가 ‘오랑캐’라 했다. 당시 지배적인 당파 세력 노론(老論)의 우두머리인 우암에게는 주자는 신이
아세안(ASEAN) 10개국은 인종·면적·종교·경제현황 등에서 복잡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함 속에서 아세안은 다수의 회의체(아세안 간 회의, 아세안+1, 아세안+3, EAS 등)를 주도하고 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은 아세안 속에서도 이를 주도하는 국가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양한 환경 속에서도 동등한 위치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아세안이다. ■ 다양함 속에서의 조화: 알파벳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다만, 매년 주도하는 국가가 로테이션 된다는 점, 아세안의 방식은 알파벳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만 명심하면 된다. 그렇다. 제목의 ㅇㅇㅇ은 바로 알파벳이다. 알파벳순만 기억해도 반 이상은 정리된다는 점을 명심하며, 아세안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번에 아세안의 방식으로 주제를 잡은 이유는 필자의 저서인 ‘아세안랩’ 발간 후, 의외로 이 내용이 신기하고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교부 아세안협력과에서 근무하면서도 회의 행정을 준비하지 않았으면 아세안의 방식에 대해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 한국에서 개최된 2014 한-메콩 외교장관회의, 2017 한-아세안 다이얼로그 등의 행정을 맡
한류 : 한국의 대중문화가 알려지면서 대만, 중국, 한국 등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중국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열풍이 일기 시작하자 2000년 2월 중국 언론에서 이러한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한류'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널리 알려졌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류 [韓流] (두산백과) ■ 한류의 사전적인 정의 한국 문화가 사회 전반적으로 인기 있는 것을 한류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대장금', 영화 '기생충', 그리고 세계 최대 시장 빌보드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하게 K-POP 가수의 노래와 한국 드라마, 영화가 해외에서 인기 있는 것만으로 한류의 열풍을 설명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평론가와 학자들이 한류의 열풍에 대해 연구하고 평을 하는데 다들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화장품은 단순하게 물건이 아니라 문화적인 요소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필자는 아세안 지역에서 10년 동안 화장품 사업을 하면서 한국 화장품을 애용하는 계층은 중산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관찰하고 생각해온 '화장품'을 중심 키워드로 한류의 유행이 각 지역별로 중산층의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과 아세안의 관계를 한층 더 발전시키기 위해 신남방정책을 선언했다. 신남방정책이 주로 아세안과의 관계발전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 개인의 관심과 열정에서 비롯된 만큼, 2022년 5월에 종료되는 그의 임기 이후에도 정책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올해 한-아세안 협력관계 가속화를 위해 세워졌던 계획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중단된 상태다. 설령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전세계 사람들에게 제공할 만큼의 분량을 확보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전세계 수십억 명 분의 백신을 생산하고 배포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몇 개월 안에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2022년까지는 코로나19와 관련된 여러 제약을 감수하며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코로나19의 세상에서 한-아세안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적절할 것이다. 과연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지속될 것인가? 물론 아세안의 입장에서는 신남방정책이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되기를 바란다. 아세안으로서는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었든, 코로나 19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를 막론하고 신남방정책이 유지되기를 바랄 것이다. 아세안은 대
한국 사회에서 지역전문가(area specialist) 자체에 대한 담론은 그래도 20년 이상 오래된 주제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가 취임하고, 본격적으로 정부차원에서 ‘지구화(globalization)’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그에 입각한 다양한 정책들이 집행되었다. 그 중 하나가 대학에서 ‘해외지역’에 대한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고, 운영되었다. 마침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탈냉전의 흐름과 함께 지구화가 가속화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요구되는 ‘해외지역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고, 대학은 이를 담당해 왔었다. 지구화는 때로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본의 전 세계적인 이동을 가속화했고, 자본의 이동과 함께 사람들의 전 지구적인 이주 및 이동도 함께 가속화되었다. 해외여행을 비롯하여 교육이주 그리고 노동이주 등 사람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이동성을 높여나갔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지구화의 긍정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조류독감, 사스 등 전염병의 지구화, 불평등의 지구화, 환경문제의 지구화 등 지구화의 부정적인 문제들도 계속적으로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지구화 과정에서 개별 국가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발생하였고, 이러한 현상을
어린 시절 색종이를 오려서 하나를 고리로 만들고 다른 종이를 고리에 걸어 다시 고리를 만들기를 반복하다 보면 커다랗고 알록달록한 고리 목걸이가 되었다. 각각의 인물과 사건이 고리처럼 연결되어서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이하 한인사)라는 무지개빛 커다란 고리목걸이가 됐다. 한인사 집필을 시작할 때의 막막함이 원고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니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비추며 형체를 드러낸다. ■ 일제 식민지-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인도네시아 한인 삶과 사건 ‘고리 목걸이’ 재인도네시아한인회는 1920년 9월 20일, 장윤원 선생의 네덜란드령 동인도 도착을 기점으로 한 인도네시아 한인 진출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한인사를 출간하기로 했다. 2019년 7월 26일 재인도네시아한인회 회의실에서 출범식을 갖고 그 시작을 알렸다. 한인사에는 인도네시아에서 한인의 삶을 시작한 인물과 계기 그리고 일제 식민시기에 온 한인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인도네시아에 건너온 한인과의 연결 고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인에게 고리의 시작은 100년 전 장윤원 선생이다. 장 선생은 조선이 일본에 점령당해서 더 이상 조국이 그를 보호해줄 수 없게 되자 살기 위해 국경
타루이 토-키치(樽井藤吉)는 ‘대륙낭인(大陸浪人)의 선구자 중 한 사람’(旗田巍, 1969)로 불리는 메이지 시대(1868~1912) 인물이다. 대륙낭인이란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중국대륙 특히 만주·유라시아대륙·시베리아 등 방랑하면서 각종 정치활동을 한 일군의 일본인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한 ‘방랑자’가 아니라 일본의 조선 병탄을 노린 대륙침략의 척후병들임을 놓칠 수 없다. 타루이는 메이지 26년 즉 1894년 <대동합방론>(大東合邦論)이란 저서를 내놓고는 조선 병탄을 도모한 ‘대동합방’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침략사관을 포장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그가 주장한 ‘대동합방’의 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70년대 대두하여 무르익었던 ‘세이칸론’(征韓論, 이하 ‘정한론’)을 눈여겨봐야 한다. 왜냐하면 대동합방론은 정한론의 후속편이기 때문이다. 정한론을 포장한 자는 타루이뿐만 아니다. 미국의 펜실바니아 대학 교수 힐라리 콘로이(Hilrary Conroy)는 전혀 다른 논리로 정한론을 합리화한 <일본의 조선병탄>(The Japanese Seizure of Korea, 1960)을 간행한다. 그는 조선
코로나가 지구촌을 공습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세균들과 인간이 동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터져나올 정도로 ‘팬데믹’ 쇼크는 모든 분야에서 공포로 몰아넣었다. 당장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연일 확진자 알림판은 줄지 않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충격파를 던졌다. 특히 하늘길이 막히고 해외 여행길이 막혀 ‘여행’을 꿈꾸던 이들에게 절망과 답답함이 계속되었다. 그렇다면 국내 여행도 쉽지 않은 요즘, 실내에서 아세안(ASEAN)을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솔깃하지 않은가? ■ 가상현실으로 아세안 10개국 문화유산...코로나19 시대 해외여행 바로 부산 아세안문화원에 구축된 아세안 10개국 문화유산을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로 구현한 체험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역시 한-아세안 협력기금을 통해 진행이 되었다. 공식 명칭은 ‘아세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디지털 헤리티지 콘텐츠(Digital Heritage Contents) 개발 사업’이다. 문화유산기록보존연구소에서 진행하였다. 사업의 시작은 2014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성과사업으로 추진된 부산 아세안문화원 개원을 준비하면서였다
미시감(未視感, jamais vu)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리학적 용어로 전에 알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을 인지하지 못하다 한 발 떨어져서 볼 때 느껴지는 새로운 특성으로부터 경험하는 아득함이 있습니다. 공간에 대한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도시 공간은 익숙한 공간이지만 하나의 공간 단위로서 도시에 대한 고민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시는 이 순간에도 형성되고 있으며 자본주의 공간인 도시는 분명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 재선에 성공한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아래 조코위) 대통령은 2019년 8월 국회 취임 연설을 통해 인도네시아 행정 수도 이전 계획을 공식화합니다. 2024년까지 인도네시아의 주요 행정 기관들을 현재 수도인 자바(Java)섬 북서부에 위치한 자카르타에서 약 1400㎞가 떨어진 보루네오 섬 칼리만탄(Kalimantan) 동부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의 홍수, 교통체증 등 도시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왔고 이에 따라 행정 수도 이전은 몇 차례 논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들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