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감(未視感, jamais vu)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리학적 용어로 전에 알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을 인지하지 못하다 한 발 떨어져서 볼 때 느껴지는 새로운 특성으로부터 경험하는 아득함이 있습니다. 공간에 대한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도시 공간은 익숙한 공간이지만 하나의 공간 단위로서 도시에 대한 고민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시는 이 순간에도 형성되고 있으며 자본주의 공간인 도시는 분명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 재선에 성공한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아래 조코위) 대통령은 2019년 8월 국회 취임 연설을 통해 인도네시아 행정 수도 이전 계획을 공식화합니다.
2024년까지 인도네시아의 주요 행정 기관들을 현재 수도인 자바(Java)섬 북서부에 위치한 자카르타에서 약 1400㎞가 떨어진 보루네오 섬 칼리만탄(Kalimantan) 동부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의 홍수, 교통체증 등 도시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왔고 이에 따라 행정 수도 이전은 몇 차례 논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들은 모두 무산되거나 부분적으로만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코위 2기 행정부는 칼리만탄섬 동부로의 행정 수도 이전을 두 번째 집권 초반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며 행정 수도 이전 실현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거대한 지리적 실험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인도네시아 국내 여론은 대체로 호의적이었습니다. 기존 수도인 자카르타 도시 문제 완화와 인도네시아 균형 발전이라는 행정 수도 이전의 당위성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습니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행정 수도 이전의 개념을 설명하고 긍정적인 사회적 상상력 확산을 위해 다른 국가의 행정 수도 이전 사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호주와 말레이시아, 브라질의 사례와 함께 한국의 세종시로의 행정 수도 이전 사례도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한국 정부와 기업도 한국의 행정 수도 이전 경험과 기술이 인도네시아 행정 수도 이전 계획에 ‘정책 이동(Policy Mobilities)’*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제시한 새로운 수도의 비전인 지속가능하고 스마트한 도시에 한국의 경험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표현된 내러티브는 마치 상품 교환을 위해 판매자와 구매자의 언어와 같았습니다. 양측의 기대와 수요가 일치하는 부분을 점점 확대하여 양측은 2019년 11월 ‘한국-인도네시아 수도이전 및 개발에 대한 기술협력 업무협약(MOU)’를 맺고 올해 2월에는 한국의 국토교통부 행정중심복함도시건설청과 LH에서 수도이전 협력관 3명을 자카르타 현지로 파견했습니다.
이러한 진행은 정책 이동의 이상적 실현을 기대하게 하며 한국 정부가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인도네시아와 신뢰 관계를 형성해온 것이 효과를 나타내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실무 진행 절차에서는 이전까지 진행되던 속도와는 대조적으로 ‘지지부진하게 진행(Muddling through)’되며 새로운, 혹은 진전된 협력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코로나19(COVID-19) 확산 대처에 인도네시아 행정력이 집중되며 수도 이전 계획이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정책 이동의 한계에서 비롯된 원인도 있습니다. 정책 결정자들이 상의하달식으로 결정한 정책 이동이 실무 단계에서 발생할 어려움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입니다.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두고 한국측 정책 이동 실무자들은 좀처럼 구체화, 가시화되지 않는 정책 이동 협력에 대해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면서도 함께 현재는 앞으로 있을 협력을 위해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정으로 일종의 ‘시간적 투자’를 하고 있다고 자평합니다.
이처럼 한국측 정책 이동 실무자들의 정책 이동 실현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책 결정자들의 정책 이동을 위한 도시와 정책의 성급하고 과도한 물질화-상품화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도시 공간은 어느 순간부터 ‘스마트 도시, 에코 시티’ 등과 같이 브랜딩(Branding)되었으며 도시 거주자와 정책 이동 대상에게 경영학적 마케팅 방식으로 홍보되었습니다. 이처럼 도시가 물질화, 우리가 매일 소비하고 향유하는 도시 공간이 교환을 위한 하나의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Karl Marx)는 교환(거래)하는 상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분했습니다. 일상적으로 거래하는 상품의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에 대해서는 이제 우리도 어느 정도 인식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 공간의 거주자이지만 교환에서는 어떠한 권한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도시의 교환 가치에 대해서는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성급하고 과도하게 상품화된 도시와 정책은 교환을 위한 가치만이 강조되며 사용 가치는 간과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행정수도인 세종시와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수도는 훌륭한 상품이 되어 교환(거래)에 성공했지만 사용 가치를 고려하는 실무 단계에 와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상품이 된 도시 공간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는 비판 도시 지리학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도시가 교환을 위한 상품이라는 인식은 도시 공간에서 도시 거주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있어 중요한 전환적 인식입니다. 매일 경험하지만 느끼지 못했던 도시의 상품화, 교환이 되려는 순간에 새롭게 느낀 미시감, 상품이 된 도시에서 도시 거주자(향유자, 소비자, 사용자)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일까요?
*각주: 성공한 정책이 다른 지역적 맥락에서 적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기 위한 개념. 기존 정책 여정(travel)에 대한 논의의 주요 개념이었던 정책 이전(Policy Transfer) 논의에서는 정책과 이동 과정의 지나친 단순화에 대한 지적을 받았고 이를 개선하기위해 제안된 개념인 정책 이동(Policy Mobilities) 논의에서는 과정과 행위 주체들의 의도와 역학관계가 구체적으로 분석된다.
* 본 글은 도시지리학회지 23권 2호에 개제된 논문 ‘도시 정책 이동의 이상과 현실: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 한국의 세종시 행정 수도 이전 간 정책 이동 과정에서 나타난 도시와 정책 상품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글쓴이=박준영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박준영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으로 동남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이주와 도시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