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요도요노 정부 후반기 인도네시아 정부는 중장기 경제개발마스터플랜(MP3EI 2011~2025)을 공표했다. 내용은 대규모 교통인프라 구축을 통한 인도네시아 6대 경제회랑을 연결이었다. 이 중 세간의 주목을 받은 플랜이 순다해협대교(Sunda Strait Bridge) 건설계획안이었다.
자바와 수마트라(머락항~바케우헤이니항 27.3km 구간)를 연결하는 ‘초장대교량’ 사업으로 예상 사업비가 무려 160억 달러(한화 18조 원 상당)에 달했다.
순다 해협을 횡단하여 수마트라 섬과 자바 섬을 다리로 연결하는 세계 제일 긴 현수교로 건설되는 계획이었다. 인도네시아 건국 이래 최대 단일규모 건설사업계획이기도 했다. 이는 인천대교(총 길이 21.3km, 총 사업비 2조 4000억 원)의 6~7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였다.
■ 무산된 인도네시아 ‘순다해협대교’ 초장대교량 건설계획...건국 이래 최대 단일규모 건설
물론 실제 착공계획단계까지도 못한 마스터플랜이었다. 하지만 당시 순다대교 초장대교량 건설사업이 언론에 발표되었을 때 ‘역대 최대 규모의 인프라 프로젝트’로 언론에 자주 부각되었다.
장대교량이 많이 건설된 동북아 국가들과는 달리 1985년 완공된 말레이시아의 페낭대교(총 길이 13.5km)를 제외하고는 아세안 전체에 이렇다 할 교량이 없었기에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여러 국가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페낭대교는 1985년 개통시 아시아에서 가장 길었고, 세계 3번째 긴 다리였다. 해상 구간 교량 길이만 8km에 달했다. 말레이시아 본토와 '동양의 진주'라고 불리는 페낭 섬을 이어주는 다리로 말레이시아 관광명소가 되었다.
요도요노 후반기 인도네시아 정부는 페낭대교처럼 순다대교 건설을 통해 자바와 수마트라간 교통 및 물류 기반시설을 한층 업그레이드할 야심을 표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사업비 편성에 따른 재원조달 난항 및 부처간 알력다툼 등 여러 가지 문제로 2014년 요코위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는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 2011~2012년, 아시아 건설산업 반등의 기회 “한-중-일 순풍순풍”
당시 순다해협대교 건설계획은 인도네시아 관료주의식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페이퍼 워크’ (Paperwork) 정도에 가까운 엉성한 플랜이었다고 평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다대교 건설계획이 발표되었을 2011년은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의 건설업계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해외수주전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글로벌 건설산업 전반에 거친 회복세(모멘텀)도 좋았던 시점이었다.
한-중-일 3국은 2008년 미국발 서프브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서서히 회복해가는 시기였다. 미국 연준(FED)의 초저금리(제로금리) 정책과 유로존 재정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유럽중앙은행(ECB)의 공격적인 양적완화(QE) 정책으로 인해 막대한 현금자산이 시장에 풀렸고, 한-중-일 건설업계는 적극적인 해외수주를 통해 돈을 벌고자 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당해연도 수출 증가율은 2010년 35%대에서 12년 ¾분기 -5.7%까지 위축된 상황이었기에 아세안, 중동, 서남아 등 전 세계 현장을 누비며 플랜트, 교량. 터널, 건축(마천루)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좋은 수주 성과를 내고 있었다.
아세안에서는 국내 및 일본기업과의 컨소시엄을 통해 싱가포르, 태국 및 베트남 등지에서 고속도로, 교량, 철도시설 등 교통과 관련된 교량과 철도 인프라사업에 횔발한 참여가 있었던 시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순다대교 또한 일부 1군 건설사들이 자체 사업타당성조사도 진행했고 사업협력을 위한 한-인도네시아 양국간 정부 고위급 미팅도 진행된 바 있다.
■ ‘토목공학의 꽃’ 금문교 같은 초장대교량, K-교량 영종대교-이순신대교 등 기술력 입증
당시 한국 주요 해외수주는 플랜트와 교통인프라였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플랜트와 달리 매일 시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교량사업은 홍보, 추가 수주 등 상당한 부차적인 효과 (Collateral Effect)도 뒤따른다.
특히 순다대교플랜과 같은 총 길이 수십km에 달하는 교량을 초장대교량이라고 한다. 이러한 다리를 건설하는 일은 토목공학의 모든 기술력과 역량을 총망라한다. 과거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나 호주의 시드니 하버브릿지 사례처럼 장대교량 자체가 그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남을 수도 있다.
교량공법은 철근콘크리트조 RC(Reinforced Concrete)에 대한 기초 기술에서부터 시작된다.
고강도 철근콘크리트 기술을 활용하여 바다와 바다를 잇는 어려운 지형여건에 맞춰 하중(load weight) 안정성을 정밀하게 계산해 경간장을 설계하고 미적인 부분을 극대화하여 시공하는 소위 ‘토목공학의 꽃’인 셈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현대 교량의 모습은 크게 현수교와 사장교로 나뉜다.
현수교는 부산 광안대교와 같이 케이블을 주탑과 주탑 사이 공간에 연결해서 버티컬(수직형)로프로 교량을 메다는 방식의 다리를 뜻한다. 사장교는 인천대교처럼 주탑 상부에서 사선으로 뻗은 케이블이 교량 상판을 당겨 지탱하는 다리를 지칭한다.
한국은 과거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경간전체에 동바리를 설치하여 타설된 콘크리트가 굳어 일정 강도의 로드를 견딜 때까지 건설하는 FSM공법과 트러스트 방식(철교)에 많이 활용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영종대교를 필두로 수많은 고난이도의 고난의도의 교량 건설을 성공시키며 가설공법을 발전시켜나갔다.
2019년 국토교통부 도로교량 및 터널 현황 조서에 따르면 현재 총 3만5902개 교량 철도교가 건설되어 운영 중인데 이중 무려 37% 달하는 1만 2500개소가 2000년부터 2010년 10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종, 광안, 인천, 서해, 이순신 대교가 모두 이 기간에 완공되었다.
특히 2011~2012년은 한국 최고의 교량으로 평가받는(3경간 대칭 타정식 현수교) 이순신대교 (여수~광양간)가 완공될 시점으로 설계, 주탑, 케이블, 첨단 PC거더공법기술의 완전국산화는 물론 그간 쌓아온 경험과 자체 개발한 첨단공법이 ‘포텐’을 터트린 시점이이었다.
이순신대교는 임진왜란 당시 주요 해전 중 하나였던 노량해전이 펼쳐지는 여수시 묘도와 광양시 금호동 사이의 바다위에 지어졌다. 이순신장군의 주 활동 무대 중 하나이자 그가 전사한 곳으로 상징성을 반영했다.
한국은 수십 개의 고난이도의 도로교량 프로젝트를 통해 PSM(분절상판,조립형), FCM(프리캐스트 캔틸리버형), ILM(연속압출방식), MSS(이동식 스캐폴딩 공법), PC거더 등 거의 모든 교량타설공법의 기술적 노하우를 축적하였다.
이제는 설계-시공-앵커리지-주탑-케이블-후판-강교제작 및 최종 감리 기술 분야에 거쳐 세계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나아가 전국토 면적대비 완공교량 밀도가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일본과 네덜란드 빼고는 없다.
현 시점에서 양적인 측면 기술적인 측면 모두에서 한국의 교량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한국교량기술의 우수성은 교각 최외단부터 다음교각 외측의 길이로 교량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를 뜻하는 경간장의 응용시공능력이 뛰어나다. 또한 최근 터키 차나칼레 최고난이도의 해상 장경간 현수교 공사에서 입증된 첨단장비를 활용한 현장타설공법의 기술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우수한 현장타설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특히 초장대교량 시공에 있어 최고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수많은 악조건속에서도 발주처가 요구한 최초 실시설계에 거의 변경을 가하지 않고도 안전한 교량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페낭대교 지은 현대건설...이후 아세안에 '초장대교량' 전무
서두에 언급한 말레이시아 페낭대교를 제외하면 아직까지도 아세안에 초장대교량은 전무한 실정이다. 페낭대교는 1985년 현대건설이 지었다. 1985년 당시 PC House 공법으로 건설된 장대교량으로 말레이 이슬람의 상징성을 담아낸 주탑형상이 특히 인상적인 아세안 No.1 장대교량이다.
오늘날 아세안 교통 인프라시장은 코로나 19 장기화로 인해 과거보다 많이 위축된 실정이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발주하는 구간단위 기반시설확충사업 내지 시설노후화 보수(교량안전진단)등 3000억원 미만규모 수주는 지속되고 있지만 메가급(총사업비 1조원 이상) 교통인프라 프로젝트 발주소식은 없다.
그나마 정부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유상차관계약 방식을 통해 GS건설이 제작년 베트남 남부 밤콩교(사장교)를 완공하였고 현재 미안마의 우정의다리 또한 공적개발 원조 (ODA) 방식으로 건설하고 있다.
이처럼 비록 메가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한국의 아세안 교량사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 ‘순다대교 건설계획’ 재점화되는 이유...상징성과 내수경제진작 ‘기회’ 잡아라
필자는 순다대교에 대한 논의가 머지않아 재점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이후 인도네시아도 순다대교 건설을 통해 원거리 화물운송체계 기반을 확보함과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 건설사업이라는 타이틀을 활용하여 글로벌 신탁사들의 직접적인 피투자를 통한 내수경제진작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향후 인도네시아가 자국 수도이전 프로젝트 등과 함께 순다대교를 건설계획을 다시 발표한다면 반드시 한국이 주시행자(Main Contractor)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말레이시아 페낭대교와 인도네시아 순다대교 즉 아세안 제1, 제2의 초장대교량 모두를 한국의 기술로 만드는 쾌거로 기록될 것이다.
나아가 한국과 아세안 국가간의 기술적 진보를 통한 발전적인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뜻깊은 사업으로 오랫동안 기록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필자인 김민수는 영국 런던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아랍에미레이트 등 다양한 도시에서 성장하며 각 도시의 특색을 좋아한다. 런던대 바틀렛 도시건설경영학을 전공하고 국내외 대기업 인프라분야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부산시에서 도시계획분야 정책연구원으로 근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