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수의 Xin chào
[배양수의 Xin chào 9] 최대 농업생산지 ‘껀터’와 복합비료 외상수출
껀터(Cần Thơ)시는 메콩델타(Mekong Delta)의 심장도시다. 호찌민시에서 남쪽으로 약 170km 떨어진 곳에 있는 메콩델타 지역의 중심 도시다. 100여 년 전에는 서남부 지역의 수도라는 의미로 ‘떠이도(Tây Đô, 西都)’라 불리기도 했다. 껀터는 농산물과 과일, 수산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후는 열대 몬순기후로 연중 고온다습하다. 연평균 기온은 약 28℃, 연간 일조시간은 2,249시간에 이른다. 농업에 매우 유리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우기에는 홍수가 잦아 전에는 시 전체 면적의 절반 가량이 침수되기도 했다. ■ ‘껀터’라는 이름에 담긴 네 가지 이야기 껀터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째는 응웬아잉(응웬 왕조의 태조)이 왕위에 오르기 전, 배에 타고 이 지역에 저녁 무렵 도착했을 때의 일화에서 비롯된 설이다. 강 양쪽에 배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고, 등불 아래에서 노래와 시 낭송 소리가 들려오는 풍경에 감탄하여 이 강을 ‘껌티쟝(Cầm thi giang, 琴詩江)’이라 불렀는데, 이 ‘껌티’가 발음 변화로 ‘껀터’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둘째는 과거 강변에 자우껀(rau cần)과 자우텀(rau thơm)이 많이 재배되어 강을 ‘껀텀 강(sông Cần Thơm)’이라 불렀고, 이 명칭이 변화해 ‘껀터’가 되었다는 설이다. 셋째는 이 강에 ‘낀토(Kìn Tho)’라는 물고기가 많이 서식했으며, 당시 사람들은 강에서 많이 잡히는 물고기의 이름을 따 강 이름을 짓는 관습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낀토’는 캄보디아어에서 유래했으며, 발음 변화 과정을 거쳐 ‘껀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지막으로는 껀(Cần)이 ‘필요하다’, 터(Thơ)가 ‘시’를 뜻해 ‘시가 필요한 곳’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설도 있다. 메콩델타는 메콩강의 풍부한 수량과 광활한 평야, 충분한 일조량을 바탕으로 베트남 최대의 농업 생산지로 꼽힌다. 그 중심에 껀터시가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농산물과 과일, 민물고기가 풍부해 먹거리가 풍성하고, 북부와는 또 다른 남베트남 특유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Vũ Thế Bình 2012: 822~826) ■1988년, 한 건의 외상 수출이 시작되다 1988년 당시 껀터에는 허우장성 수출입공사(Mekong Import–Export Company), 약칭 메코니멕스(MEKONIMEX)가 있었다. 그해 8월, 나는 M 통상 수출 2과에서 베트남을 담당하는 신입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입사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무렵, 우리 팀은 베트남에 복합비료 1만 톤을 수출하기로 메코니멕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조건은 180일 인수인도 조건(180 days Documents against Acceptance), 즉 180일 외상 수출이었다. 화물을 실을 선박은 ‘송사이공(Song Sai Gon)호’였다. 당시에도 상당히 노후한 배로, 하루 선적량은 약 800톤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여곡절 끝에 배가 진해항을 출항했고, 우리는 한일은행 여의도 지점에서 네고를 통해 14억 원(당시 환율 740원 대)이 넘는 대금을 수령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180일이 지나면 잔금 약 140만 달러가 입금되어야 했지만, 기한이 지나도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후 빚을 받기 위해 껀터를 여러 차례 오가게 되었다. 현지 사정을 들어보니, 비료 판매 시기를 놓쳐 손실이 발생했고, 달러를 구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제안한 대안은 콩, 팥, 옥수수, 원목, 새우, 게 등의 현물 결제였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 수입이 어려운 품목들이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고, 최종적으로 쌀로 대금을 받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쌀 수입상을 찾기 시작했고, 싱가포르 무역상이 구매자로 나서 계약을 체결했다. 선박을 용선하고 메코니멕스에 쌀 준비를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는 메코니멕스가 최종 수입자인 줄 알았으나, 실제 비료 수입자는 속짱 지역의 다른 회사였고, 그 회사는 이미 파산 상태였다. 쌀을 인도받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참고로, 당시는 모든 회사가 국영(공기업)이었다. 소규모 사기업이 있었지만, 국제 무역을 할 수 있는 사기업은 없었다. 우리는 허우장성 인민위원회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인민위원회가 은행에 대출을 지시해 주었고, 그 자금으로 벼를 매입해 정미한 뒤 사이공 항으로 운송할 수 있었다. 하루 400톤 선적 조건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쌀 매입 소식이 퍼지면서 가격이 상승했고, 처음 대출받은 금액으로는 1만 톤이 아닌 약 8000톤만 확보할 수 있었다. 다시 인민위원회를 찾아 추가 대출을 요청했고, 최종적으로 9,600톤을 선적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 무역상은 이 쌀을 북한에 판매했고, 송사이공호는 사이공 항을 떠나 청진항으로 향했다. 이제 상황은 역전되었다. 쌀값은 우리가 받아야 할 채권을 정산하고도 수십만 달러가 남았고, 그 금액을 베트남 측에 돌려줘야 했다. 연일 독촉 연락이 이어졌고, 결국 잔금을 정리해 송금했다. 참으로 힘든 거래였다. 외상 수출 자체도 드문 일이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대금을 회수한 것 또한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특히 허우장성 인민위원회의 대출 결정은 국제 거래에서 신뢰를 지키려는 의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 껀터, 복합비료로 기억되는 도시 껀터는 힘들었던 외상 거래의 기억을 남긴 도시이지만, 결론적으로는 그 이름처럼 낭만적인 곳이기도 하다. 아침 6시에 호찌민시 까라벨 호텔을 출발해, 도중에 퍼(phở)로 아침을 먹고 페리를 타고 강을 두 번 건너면 정오 무렵 껀터에 도착하곤 했다. 점심을 겸한 상담을 마치면 바로 사이공으로 출발했다. 밤늦게야 사이공에 도착했다. 운전사와 단둘이서 이 지루한 여행을 참 여러 번 했었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 4시간 이내로 이동할 수 있지만, 1991년 이후로는 다시 가보지 못했다. 갈대밭에 내리쬐는 달빛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시가 나온다는 껀터는 나에게 복합비료를 떠올리게 하는 도시다.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배양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