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성장하는 나라다. 기회가 많다. 30년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장영관 대표(55)는 1996년 대기업인 LG(LG유통 FS사업부)에서 첫 직장을 시작했다. 2009년 베트남 삼성전자, 사우디 두산중공업 단체급식 프로젝트 수행 등을 거쳐 2011년 CJ 프레시웨이 베트남 법인장이 되었다. 그런데 법인이 자리잡자 2015년 전혀 예상 못한 명예퇴직(?)을 당했다. 한때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베트남에 쌓은 인연을 삼아 J FOOD CATERING을 창업했다. 각 나라에서 공장급식 총괄을 했던 급식전문가에서 급식회사 대표로 변신에 성공했다. 호치민 쇼핑몰 비보시티(Vivo City)에서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급식 경력을 보유한 기업 J FOOD의 장영관 대표를 만나봤다. ■ 갑자기 당한 베트남 법인장 명퇴...‘J FOOD’ 창업 8년만에 연 60억원 매출 장 대표는 명퇴 이후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맨땅에서 시작했다. 그가 창업한 J FOOD는 그의 주 전공인 케이터링(catering)으로 주로 공장에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급식’ 사업이었다. 출발은 베트남 직원 2명과 셋이
“홍강 삼각주를 빠르게 개발해 국가의 선도적 중심지로 만들자.” 팜 민 친(ham Minh Chinh) 베트남 총리가 12일 하롱시(Quang Ninh)에서 열린 ‘홍강(Red River) 지역 활성화 포럼’에서 ‘2045년 비전 및 홍강 지역 투자 촉진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총리는 “지난해 9월 2일 북부 꽝닌(Quang Ninh)성의 반 돈-몽 까이(Van Don-Mong Cai) 고속도로가 개통됐다. 이 고속도로를 통해 홍강 삼각주(Red River Delta) 지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인 중국과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환경, 국방, 안보, 바다와 섬에 대한 주권 측면에서 중요한 전략적 영역이다. 중국과의 경제 발전 및 무역과 관련하여 국가 및 아세안(ASEAN)의 북쪽 관문이다.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고 국제 경제 및 문화 교류의 중요한 다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의 주요 개발 원동력인 홍강 삼각주의 신속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잠재력과 뛰어난 이점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했다. ■ 국가 평균보다 높은 경제 성장...하노이, 하이퐁, 박닌 등 국가 GDP의 29.4% 차
베트남 전쟁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따른 피해를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1심 판단이 나왔다. 소송을 제기한 지 약 3년 만이다.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 피해자 응우옌 티탄(63)씨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응우옌씨는 2020년 4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30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그는 “한국군(청룡부대 제1대대 제1중대 소속 군인들)이 1968년 2월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에서 가족 5명과 민간인 70여명을 학살했고 나도 복부에 총을 맞아 겨우 살아났다. 한국 정부가 학살의 진실을 인정하길 바란다”고 주장해왔다. 이른바 ‘퐁니-퐁넛 학살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베트남전을 치르던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위치한 퐁니-퐁넛 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해 민간인 74명이 학살된 일이다. ‘제2의 미라이 학살’이라고 불렸을 만큼 외교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법부 판단이다. 다른 피해자들의 소송 제기가 연이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원은 베트남전 참전 군
배양수 부산외대 베트남어 교수는 유학 1세대로 한국 최초 베트남 유학생이다. 그가 베트남에 처음 갔던 1988년 10월 19일은 88올림픽 폐막식 날이었다. 그의 유학 기간은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를 준비하고 있던 시기와 수교를 시작한 시점을 가로지른다. 그는 도이머이(Đổi mới: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 이후 1992년 9월부터 하노이사범대학교에서 유학을 했다. 1964년 한국 베트남 전쟁 파병, 1975년 북베트남의 베트남 통일 등 긴장관계였던 두 나라는 1992년 12월 22일 공식적인 수교를 맺었다. 그는 1세대 유학생으로 2001년 ‘베트남을 사랑하는 모임’을 결성해 10년간 총무로 부산을 방문하는 베트남 학자, 고위 공무원들과 밥을 먹고 선물을 나누면서 교류활동을 했다. 베트남 문학 작품 번역가으로도 이름이 난 교수 배양수는 계묘년(癸卯年) 신년을 맞아 아세안익스프레스에 베트남 단편소설 6편과 르포 1편 등 7작품을 번역해 소개했다. 베트남 단편소설을 집중적으로 단기간에 소개한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이 기획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베트남 현지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스엉응웻밍의 단편소설 <열세 번째 나루(Mười ba bến nước)>
최신 브랜드 파이낸스 글로벌 500(Brand Finance Global 500) 순위에서, 비엣텔(Viettel) 그룹이 통신(Telecoms) 부문에서 세계 17위를 기록하며,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가치 있는 통신 브랜드로 선정됐다. 브랜드 가치가 미화 89억 달러(약 11조 1561억 5000만 원)에 달하는 비엣텔 그룹은 전체 브랜드 순위에서 234위를 기록했다. 2023년 순위에 오른 베트남의 유일한 브랜드이자 동남아시아의 유일한 통신 브랜드가 됐다. 비엣텔은 2022년 불황 속에서도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8년 연속으로 브랜드 가치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2022년, 세계 경제 환경이 계속 난항을 겪으며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베트남은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며 세계 경제의 빛줄기가 됐다. 2022년 베트남의 경제는 8.02% 성장했다. 2011~2022년 기간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이는 2021년 성장률보다 3배 높은 수치이며, 베트남 정부가 세운 6~6.5% 목표치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일부 베트남 기업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면서 베트남 경제에 희망찬 기운을 안겼다. 비엣텔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통신, 해
베트남 입국 외국인의 비자 면제 기간을 15일에서 30일로 연장된다. 현지 매체 비나타임즈는 1일 문화체육관광부의 요청에 따라 공안부는 관련 부처, 기관 및 지역과 협력하여 베트남의 무비자 입국 자격이 있는 국가 국민의 비자 면제 기간을 연장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팜 민 친(Pham Minh Chinh) 총리의 지침 초안에 따르면 베트남은 해외 관광객 유치 활성화 차원에서 공안부(출입국관리국)측에 전자비자 플랫폼 기술 적용을 강화하고, 전자 비자 발급 절차를 개선도 제안했다. 베트남은 지난해 3월에 동남아국가 가운데 비교적 일찍이 코로나봉쇄정책을 풀었다. 외국인 관광객에 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 유치 결과는 예상치보다 낮았다. 지난해 베트남을 찾은 해외 관광객 수는 목표치의 70%에 그쳤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비자 기간으로 지적되었다. 응웬 반 훙(Nguyen Van Hung)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5일인 무비자 체류기간은 외국인들이 충분히 여행하기에는, 특히 3~4주씩 머무는 경향이 있는 유럽관광객들에게는 너무 짧다”고 설명했다. 팜 민 친 총리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다른 국가에 비해 덜 우호적이라며 “외국인 관광객에게 유리한 조건을
아세안익스프레스가 계묘년(癸卯年) 신년을 맞아 베트남 소설 <열세 번째 나루(Mười ba bến nước)> <여행자의 전설> <이웃(HÀNG XÓM)> <천지가 진동할 얘기(Chuyện Động Trời)> <옛사람들(Những người muôn năm cũ)> <생쥐 띠의 실종(Tí chuột mất tích)> 등 6편을 실었다. 마지막으로 밍쭈엔(Minh Chuyen) 작가의 르포 ‘숨겨진 상처’를 싣는다. <편집자주> 숨겨진 상처 전쟁은 지나가고 과거가 되었다. 시간과 삶은 모든 지역과 신체에 있던 상처를 점점 아물게 했다. 자연의 푸름과 나무는 전쟁 때의 비참했던 흔적들을 지워버렸다. 그러나 인간의 아픔과 그들의 몸속에 숨겨진 후유증으로 인한 아픔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홍강(紅江) 하류에 있는 조그만 땅 타이빙(太平), 좁고 인구도 얼마 안 되는 이곳은 5만 명이 넘는 열사가 있고 수십만 명이 전쟁 후유증을 앓는 곳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3대가 후유증을 겪고 있는 일도 있다. 그것은 미국이 남부에 쏟아부었던 다이옥신의 후유증이다.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은 고향으
아세안익스프레스가 계묘년(癸卯年) 신년을 맞아 베트남 소설 <열세 번째 나루(Mười ba bến nước)> <여행자의 전설> <이웃(HÀNG XÓM)> <천지가 진동할 얘기(Chuyện Động Trời)> <옛사람들(Những người muôn năm cũ)>에 이어 <생쥐 띠의 실종(Tí chuột mất tích)>을 6번째로 싣는다. 응웬 타이 하이(Nguyễn Thái Hải)는 다수의 청소년 소설을 발표했다. <편집자주> 생쥐 띠의 실종(Tí chuột mất tích) ‘아이스크림 타잉’은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타잉의 별명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타잉은 집안 살림에 보태기 위해서 아이스크림 통을 메고 장사를 하러 다녔다. 타잉은 다른 아이들처럼 아이스크림을 파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쉬는 시간에 바로 자기 학교에 와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아이스크림 타잉은 같은 학년의 오후반 학생들과 사귀게 되었다. 그들은 빙, 산, 카잉과 생쥐 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