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지급 문제로 논란이 많았던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이 시범사업으로 첫발을 내디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7월말 필리핀 가사도우미(가사관리사) 100명이 국내에 들어와 교육과 훈련을 거쳐 8월 말이나 9월부터 가정에서 일하게 된다. 6개월 동안 진행되는 시범사업이 끝나면 만족도를 평가한 후에 본사업으로 전환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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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가사관리사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전문 취업비자(E-9)를 발급받아 국내로 들어온다. 필리핀 직업훈련원(TESDA, Technical Education And Skills Development Authority)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만 24세 이상이 대상이다.
한국에서 필요로 하는 TESDA 자격증은 보육 국가자격증 (Caregiving NCⅡ)이다. 보육 자격증 과정에는 영유아와 어린이에 대한 보육과 청소, 빨래, 다림질, 요리에 대한 교육이 들어 있다.
별도로 가사노동자 국가자격(Domestic Worker NCⅡ)과 영유아와 취학 전 아동에 대한 보육 국가자격<Caregiving(Newborn to Pre-schooler) NCⅡ>을 딸 수도 있다.
선발할 때 자격증을 소지한 가사관리사가 어느 정도 경력을 갖추고 있는지도 평가한다. 또한 필리핀 가사관리사에 관심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가사관리사의 영어 구사 능력과 지도능력도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종합하면, 최종 선발은 자격증 소지자 중에서 관련 경력과 지식, 어학능력 평가, 범죄 이력 등 신원 검증, 마약류 검사 등의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입국 후 4주 동안 진행되는 한국산업인력공단(HRDK)의 직업훈련 및 문화교육을 모두 이수하면 실제 가사일을 시작하게 된다.
가사관리사에 대한 관리는 정부가 위탁한 두 민간 회사가 맡는다. 숙소 문제가 걸림돌이라 정부와 서울시는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숙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함양군이 외국인 계절노동자를 위해 모텔을 매입해 기숙사를 만든 것은 벤치마킹할 모범 사례다. “여기 시설이 아주 좋아요. 음식도 해 먹을 수 있고, 베트남보다 생활이 더 나아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베트남 노동자 호덕휘(32)씨의 말처럼 노동 여건이 좋으면 이탈율이 적어 관리 효율성이 높아지고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진다. 서울은 부동산 가격과 임차료가 비싸기 때문에 변두리나 연수원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본사업이 됐을 경우 브로커 개입도 사전에 풀어야 할 과제다. KBS 3월 22일자 보도에 따르면 해남군에서 일하는 필리핀 계절노동자가 월 200만원을 받는데, 브로커에게 매달 75만원을 갈취당해 경찰에 고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수법은 해남뿐만 아니라 완도, 고흥, 진도 등 곳곳에서 발생해 구제 요청이 잇따랐다. 지자체는 관리 인력 부족으로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걸림돌이 되는 임금은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제가 적용된다. 2024년 최저 시급은 9860원이다.
고용노동부 사전 수요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들은 전일제 근무보다는 하루 4시간, 일주일에 3~4일 정도 일할 수 있는 시간제 근무를 더 선호한다.
여성가족부가 시행 중인 ‘아이돌봄서비스’의 시간제는 기본형인 경우 시간당 1만 1630원이다. 기본형은 △학교 · 보육시설 등 · 하원과 준비물 보조 △부모가 올 때까지 임시보육 △놀이활동 △준비된 식사와 간식 챙겨주기 등이 포함된다.
종합형은 기본형에 아이 세탁물 세탁, 청소, 정리, 식사 및 간식 조리와 설거지 등 아이에 대한 가사서비스가 추가된다. 종합형 시급은 1만 5110원이다.
여성가족부가 정한 시급제를 따르지 않더라도 보육과 가사를 다 할 경우와 한 가지만 할 경우 필리핀 가사관리사에게 지급하는 시급은 구분해야 한다.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한 가정에서 기본형으로 최저시급인 시간당 9860원을 받고 하루 4시간, 주 4일을 노동하게 되면 4주에 약 63만원을 받게 된다.
전일제로 근무하면 월 206만원 이상을 받게 되는데, 시간제로 근무하면 세 가정에서 근무해도 전일제 월급보다 적다. 가사관리자의 교통비, 식사비 등이 추가로 들어 실제 소득은 더 줄어든다. 게다가 이동시간에 따른 피로감과 부모들이 원하는 시간이 비슷하고 평일을 선호할 경우 세 가정에서 근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처음에 한국에 들어와 겪어야 하는 문화적 이질감, 의사소통의 어려움도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안착하기까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한국어를 구사할 수 없다면 6개월 안에 한국인 가정에 적응해나가기에도 벅찰 수 있다.
필리핀 가사관리자가 시급으로 두 가정에서 일하면 월 130만원을 받는다. 숙소비와 생활비, 교통비를 자부담할 경우 본국 가정에 송금할 수 있는 돈은 많아야 70~80만원이다. 지난해 12월 14일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싱가포르에서 경력 6년차 미얀마 가사도우미가 받는 월급은 800싱가포르달러(81만원)다. 싱가포르는 대부분 입주형 가사도우미를 고용한다. 숙식이 해결되기 때문에 자기가 쓰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해 8월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전일제로 이용할 경우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월급여는 124.9만 원이다. 125만원을 받으면 입주형이 아니기 때문에 숙식과 생활비가 들고, 이를 제외하고 남는 돈은 싱가포르와 큰 차이가 없다.
한국 부모들이 원하는 임금뿐만 아니라 필리핀 가사노동자가 적절하다고 여기는 한국에서의 임금, 보육과 가사에다 영어 교육까지 일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양질의 노동력을 계속 공급받기 위해 필요한 임금,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차등 없는 임금 지불은 시범사업 기간에 고민해야 할 숙제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기는 갈수록 어렵다. 정부가 아이를 가진 부모를 위해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어느 정도 예산을 써야 할 지는 시범사업을 통해 윤곽이 잡힐 것이다. 비록 싱가포르의 예처럼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출산율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 키우는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다면 그 예산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