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기존의 국제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기도 하고, 또는 자국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 기존의 질서에 대해서는 주도적으로 개혁의 필요성을 외치며 동조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그리고 기존 시스템의 개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아예 새로운 국제 조직이나 시스템, 또는 가치를 창조하여 영향력 확대를 위한 발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를 네트워크의 시각으로 보면, 중국은 기존의 국제 네트워크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고, 새로운 국제 네트워크를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타국의 네트워크를 파괴하는 등 네트워크와 연관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네트워크적 시각으로 현대 중국외교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발표한 이 연구는 최근 사회과학 영역에서도 점차 확산되는 네트워크 이론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바탕으로, ‘네트워크 권력(network power)’이라는 틀을 통해 현대 중국외교에 대해 살펴봤다. 다시 말해 집합권력(collective power)과 위치권력(positional power), 설계권력(programming power)으로 구성된 네트워크 파워의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 중국외교가 △어떤 네트워크 권력을 어떻게 구축해가고 있는지 △이것이 실제 외교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투사되고 있는지 △이러한 현상이 국제질서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중국은 경제 영역과 전통안보 및 비전통안보 영역에서 네트워크 파워를 적극적으로 구축하는 한편, 일부에서는 이미 형성된 네트워크 파워를 이용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이 상당한 영역에서 집합권력을 빠른 속도로 구축하는 모습이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또한 기존에 구축된 네트워크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중요한 위치를 선점함으로써 위치권력을 구축해나가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합권력, 위치권력과는 달리 여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설계권력의 차원에서 보면, 중국의 네트워크 파워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는 중국의 시스템 설계 능력과 방식에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네트워크 파워가 아직 강고함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의 네트워크 파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실은, 네트워크 파워를 둘러싸고도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일대일로와 인도ㆍ태평양 전략, 그리고 미ㆍ중 표준경쟁, 워싱턴 컨센서스와 베이징 컨센서스 등은 모두 미ㆍ중 네트워크 경쟁의 성격을 내포한다.
이와 같이 중국외교가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네트워킹 전략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
첫째, 네트워크 경쟁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미ㆍ중 표준경쟁으로 인해 한국기업들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화웨이 사건에서도 나타났듯 미ㆍ중 네트워크 경쟁으로 인해 양자택일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기업과 한층 긴밀한 소통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표준경쟁으로 인해 선택이 강요될 수 있는 민감한 최종재의 경우, 기업들로 하여금 중간재의 고기술 및 고부가가치화 전략을 추구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적 대비책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둘째, 미ㆍ중 경쟁이 가져올 선택에 대한 강요와 함께, 중국의 네트워크 파워 구축 자체가 초래할 리스크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현재 자국이 구축하는 네트워크의 개방성을 강조하며 네트워크의 확장, 즉 자기편 만들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하지만 중국이 설계한 네트워크가 규모 면에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고, 내부적으로 공고한 체제를 갖춘다면, 네트워크 밖의 노드(행위자)들에 대해서 자국의 네트워크를 배타적으로 운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이 네트워크 권력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이 구축하고 있는 네트워크들이 언제 개방성에서 배타성으로 방향을 전환할지 면밀히 관찰하는 한편, 그에 대응해 정책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중국은 ‘시장환기술(以市场换技术)’에서 ‘자주창신(自主创新)’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하면서 ‘외국인투자산업 지도목록’의 지속적인 수정을 통해 자국의 산업발전에 필요한 외자기업만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위치권력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정책을 통해 중국은 외국기업들의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도록 유도하고 있어, 우리 정부는 중국에 투자하는 한국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넷째, 에너지 네트워크 분야에서도 중국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바, 이것이 한국의 대외 에너지 전략에 일정한 제약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이 일대일로 연선국가 혹은 개발도상국과 원전이나 신재생에너지 관련 협력사업을 추진할 때 중국이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미ㆍ중 표준경쟁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분야에서도 설계권력을 둘러싼 미ㆍ중 간 갈등에서 한국이 불가피한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과 원전 수출 등에서 미국과 중국은 모두 자국의 표준과 시스템, 규범을 전 세계에 이식하고자 하므로 한국 또한 그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미ㆍ중 사이의 선택에 대응할 수 있는 우리만의 원칙과 명분을 사전에 확립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중국의 네트워크 파워가 우리에게 미칠 부정적인 측면에 대응해 철저히 준비하면서도, 중국의 네트워크 파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중국이 일대일로 전략을 통해 구축해놓은 설계권력과 위치권력을 활용하여 중국과 함께 제3국으로의 공동 진출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대일로와 신북방, 신남방 정책을 연계하려는 현 정부의 정책방향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여섯째, 중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사이버상 안보에서도 한국과 중국 사이의 협력 공간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상에서 이루어지는 중국의 네트워크 파워에 철저히 대비하면서도 이를 비즈니스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일곱째, 경제 및 전통안보, 비전통안보 영역에서 점차 강화되는 중국의 네트워크 파워에 대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정부 또는 공공기관 차원에서 중국의 외교역량을 네트워크 방법론으로써 관측할 수 있는 「(가칭) 중국 네트워크 파워 모니터링 시스템」을 시범적으로 구축ㆍ운영하여, 정부의 대중국 전략 수립 및 정책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ㆍ중 경쟁 국면에서 이와 같은 시스템은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의 상대적 역량 차이를 분야별로 판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울러 한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의 네트워크 위치를 파악함으로써, 미ㆍ중 경쟁이 격화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진영논리 강화에서 한국이 국익을 위해 어떤 네트워크에 참여 또는 거부해야 하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다.
이 연구에는 주관연구기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 책임자 허재철과 참여 연구진 박진희·최재희,
협력연구기관에서 한양대학교 김상규, 세종대학교 김용신, 성균관대학교 양 철, 세종연구소 정재흥, 대전대학교 황태연이 참여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국제협력 정상포럼’의 탄생
2017년 5월 14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개최됐다. 중국이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자국의 추진 의지와 계획, 포부를 선전하고, 관련국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자리였다.
특히 이 회의가 눈길을 끈 것은 중국이 주창하여 만들어낸 최고위급 회담이었다는 점과 국제사회가 적극적 참여를 보인 점 때문이었다. 이 회의에 28개국 정상을 포함해 130여 개국의 고위급 대표단이 참석했으며, 포럼을 취재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40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그리고 2년 후인 2019년 4월 26일에 개최된 제2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은 그 규모가 더욱 확대되어 37개국 정상과 150여 개국의 대표단, 90개 국제기구 대표 등 5000여 명이 참석했다.
중국정부는 폐막식에서 이번 포럼기간 동안 640억 달러(약 78조 752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 협정이 체결됐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 추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014년 10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선언했고, 2016년 1월 16일에 정식으로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미국과 일본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및 중동 지역 국가는 물론,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서방 국가들도 창립회원국으로 참여하여, AIIB는 명실상부한 중국발(發) 국제금융 네트워크로 태어났다.
-논문 중 <중국외교의 부상과 네트워크> 한 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