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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1] 베트남 작가 스엉응웻밍 단편소설 ‘열세 번째 나루’

배양수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 번역...‘농촌 여성’ 운명을 통찰 문제작

 

아세안익스프레스가 계묘년(癸卯年) 신년을 맞아 베트남 소설 <열세 번째 나루(Mười ba bến nước)>를 싣는다. 군 출신 작가 스엉응웻밍은 ‘농촌 여성’을 주제로 쓴 작품이 많다. 남자의 날카로운 눈으로, 냉철한 사고와 따뜻한 마음으로 여성의 운명을 통찰한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베트남 현대사를 이해하는 또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1.

남편에게 새 아내를 얻게 했다.

 

이옌하 마을에서는 전혀 없었던 신기한 얘기다. 신부는 혼기를 놓친 내 친구였다. 그녀는 남편이 필요했고 합법적인 자식을 간절히 원했다. 내가 중매를 섰다. 나는 시댁과 함께 약혼식에도 갔고, 결혼식 참석은 물론 신부를 데려왔다. (역자주: 베트남 결혼식은 신랑 측이 신붓집으로 가서 조상과 친지들에게 예를 갖추고 신부를 데려온다)

 

결혼식은 기쁨과 슬픔, 수줍음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신부가 행복의 방으로 들어갈 때 나는 조용히 뒷문을 지나 정원을 가로지르는 지름길로 나왔다. 보따리를 가슴에 안고 울면서 걷다가 무작정 나루터로 달려가 사공을 불러, 강 건너 친정으로 갔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던 '여자에게는 열두 나루가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는 다른 여자들보다 더 비참했다. 나에게는 열세 번째 나루가 있었다.

 

2.

 

나는 어느날 점심때 첫 아이를 낳았다.

 

음력 오월 추수가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일꾼들에게 줄 밥을 가지고 들판으로 갔다. 엄청난 메뚜기떼가 볏단으로 달려들었다. 일꾼들도 낫을 놓고 달려들었다. 나도 그루터기를 밟아대며 메뚜기를 잡았다. 배가 슬슬 아프기 시작했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삿갓에 잡았던 메뚜기를 버리고 배를 끌어안았다. 논둑에 오르기도 전에 양수가 터졌고, 바짓가랑이를 흠뻑 적셨다. 남편을 불렀다. 그는 묶던 볏단을 두고 놀라서 뛰어와 나를 안고 둑으로 갔다. 시어머니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자에게 산파를 불러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럴 새도 없이 막 벤 벼와 그루터기가 있는 축축한 논두렁에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고! 이걸 어째!”

 

시어머니는 소리를 지르다 볏단 위에서 기절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고개를 옆으로 떨구었다.

 

나는 영원히 시어머니의 비명과 내가 낳은 핏덩이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시어머니는 혀를 삐죽 내밀고 겁먹은 목소리였다.

 

핏덩이는 마치 죽기 전에 물고기가 하품하듯 검은 입술만 동그랗게 벌리고 있었다. 손발에 진흙을 묻힌 일꾼들이 나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엎드리기를 반복했다.

 

“항아리 가져다 넣은 다음 마장 언덕에 묻어!”

 

큰 소리가 들렸다.

 

“그러지 마!... 대나무 뗏목에 묶어서 강에 띄워!”

 

그리고 그루터기를 밟는 발소리와 철썩철썩 급하게 물속을 걷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렸다.

 

나는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항상 눈이 충혈되어 있다. 남편은 말수가 줄었다. 그는 말없이 어린 아이 돌보듯 나를 돌봤다. 시어머니는 쇠약해진 며느리를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시어머니는 나를 무척 사랑했다. 고부지간이지만 마치 친정어머니와 딸 같았다. 나는 억울하게 매 맞은 소녀처럼 목이 메어 말했다.

 

“아가! 어찌 이 지경이 되었니?”

 

시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 집이 대대로 착하게 살았고, 누구에게 악하게 한 적도 없는데 아이한테 이런 업보를 안기다니!”

 

남편이 한약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그가 놀라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주전자가 깨지고 갈색 한약이 흘러나오며 증기가 어둡게 퍼져나갔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두운 밤 꿈속에서 삿갓을 쓴 일꾼들이 풀밭에 앉아 물담배를 빠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아이를 뱀장어 가죽 색깔의 항아리에 넣은 다음 뚜껑을 닫고 마장 언덕에 묻으러 갔다. 또 꿈속에서 그 아이를 대나무 뗏목에 태워 황롱강 나루에서 흘려보내는 것도 보았다. 검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얀 어깨를 드러내고 처녀 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젖가슴에 몸은 뱀 같고 물갈퀴가 있는 용이 뗏목을 강둑으로 밀고 있었다. 나는 발버둥치며 소리를 질렀다.

 

“내 아이 돌려줘요! 내 아이 돌려달라고!”

 

잠에서 깨어나 비로소 내가 남편 품에 안겨있는 것을 알았다. 온몸이 차가워지면서 식은땀이 흘렀다. 남편의 어깨도 땀으로 젖었다. 그는 꿈속에서 발버둥치는 아내의 팔다리를 잡고 있느라 아주 많이 고생했다.

 

3.

갑신년 여름이 생각났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 상류에서 일주일 동안 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마을에 큰 홍수가 졌다. 쓰레기와 마른 나무, 생나무 가지가 휩쓸려왔다. 한밤중에 황롱강 둑이 무너졌다. 물이 콸콸 흘렀고, 개와 닭, 소와 물소가 울어댔다. 염소가 우리를 들이받으며 쉰 소리로 울어댔다. 사람들은 경황이 없어 난리에 도망치듯 홍수를 피해 달렸다. 나는 다행히 마을 입구의 벵골보리수로 올라갔다. 밤새도록 나무 위에서 엄마를 불러댔고, 홍수에 휩쓸리는 것보다 이무기한테 잡혀서 물에 처박힐까봐 더 무서웠다.

 

달밤. 벵골보리수는 홍수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몸을 굽혀 버티고 있었다. 나는 배고픔에 힘이 바닥났다. 한밤중에 홍수가 벵골보리수 뿌리를 뽑아냈고, 나도 휩쓸렸다. 다음날 아침 깨어보니 내가 이무기 언덕에 뻗어 있었다. 주변에서는 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앉은 사람, 선 사람, 어수선했다. 사람들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얼룩 개가 짖어댔고, 그 소리를 들으니 속이 탔다. 우리 어머니는 입을 씰룩이며 웃으면서 “이무기가 너를 건져내서 여기로 데려왔다”라고 말했다. 나는 너무 놀랐다.

 

내가 16살 때, 역사학 교수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우리 마을로 현장 실습을 왔다. 그들은 물고기 잡는 우리를 고용해서 이무기 언덕에서 유적 발굴을 시켰다. 나는 그 낯선 사람 중에 이옌하 마을의 따오가 있음을 알았다. 따오는 나를 아주 좋아하면서도 놀리는 것 같았다. 일주일 내내 파고, 긁어냈지만 조개껍데기 한 조각이나 동물 뼈 한 개도도 볼 수 없었고, 송판 한 개만 찾았다. 흙을 다시 덮을 때 따오는 여자 모양의 짚으로 만든 인형을 던져넣었다. 나는 “따오, 이게 뭐야?”라고 물었다. 따오는 “부적이야! 그것은 이무기의 혼으로, 여자아이 뼈야.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다가 버리면 미치게 되고, 이무기가 될 거야!”라고 했다. 낯선 사람들이 웃었다.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한참 후 서로 사랑하게 됐을 때 그 짚 인형에 관해서 물었는데, 그는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었다.

 

다시 시끄러워졌다. 달밤에 안개가 수면 위로 피어올랐다. 커다란 파도가 부서지며 동굴로 밀려 들어왔다. 이옌하 마을 도둑은 한밤중이 되기를 기다렸다. 사공도 쉬러 갔다. 그는 도둑질한 물건을 머리에 이고 옷을 벗은 다음 강을 헤엄쳐 건너려고 했을 때, 야간 고기잡이배가 굴속에서 안개와 함께 밀려 나와 가까이 다가왔다. 윗도리를 헐렁하게 입고 배 뒤쪽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올라오세요! 강을 건너드릴게요”라고 말했다. 도둑은 물건을 안고 배로 뛰어올랐다. 한적한 강 중간쯤 왔을 때, 배에 처녀 혼자 있는 것을 알고는 손을 뻗어 아가씨를 만졌다. 아가씨가 강으로 뛰어내렸다. 도둑은 그 아가씨가 가슴 윗부분만 사람이고, 나머지는 뱀 같으며 손발이 물갈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놀랐다. 그는 막 이무기를 만졌다는 것을 알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소녀는 어깨와 가슴을 물 밖으로 드러냈다. 물갈퀴 손으로 배 옆을 붙잡고 있었다. 물이 밀려 들어오고 배가 가라앉았다. 도둑은 물속에서 강물을 실컷 마셨고, 강가로 밀려났다. 너무 떨려서 다리를 붙잡고 도망치는데 뒤에서 소리쳤다. “여보세요! 이것 당신 것!” 그가 뒤돌아보니 여전히 그 아가씨였다. 그러나 옷을 단정하게 입었고, 윗도리도 말랐고, 바지도 말랐으며, 바짓가랑이를 접어서 하얀 종아리가 드러났다. 그가 도둑질한 배에 놓고 내린 물건도 말라 있었다, 그녀는 물건을 돌려준 뒤 배를 저어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이무기는 볼 수 없었다. 그날 밤 이후 도둑은 정신이 나갔고, 반년 동안 멍청하게 지냈다.

 

이무기와 나루터는 내 어린 시절 아주 신비롭고 전설 같은 안개와 같았다.

 

4.

 

내 남편 이름은 라인데, 전선으로 출발하기 전에 휴가를 받은 군인이었다. 그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휴가 초반에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휴가가 끝날 무렵 어머니가 재촉하니 비로소 상대자를 찾게 되었다. 그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고, 그를 만났다.

 

신부를 배로 데려갔다. 배가 나루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내가 물을 떠서 시어머니의 발을 씻기기를 기다렸다. 이러한 풍습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본래 갈등이 있는 것이다. 며느리가 물로 시어머니의 발을 씻어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나를 데려가기 전, 친정어머니는 호리병과 같은 마른 박으로 만든 작은 바가지를 주면서 며느리 역할을 할 때 필요한 일들을 당부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나루터에 비유한다. 처녀 팔자는 열두 나루 중 하나다. 그때 나는 내가 몇 번째 나루를 만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결혼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놀라고 소란스러웠다. “청년들이 나 같으면 나라를 잃는다!”라고 소리쳤다. 나는 따오는 보았다. 그의 가슴에 대나무 채반을 달고 있었는데, 석회로 “나는 탈영병이다”라는 글자를 써놓았다. 나는 그 채반 뒤에 있는 사람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미국 폭격기의 포탄이 온 북베트남을 안개처럼 뒤덮었다. 대학도 문을 닫았고, 그는 입대했다. 사람들은 ‘그가 남부 전쟁터에서 죽은 지 일 년이 되었다’라고 소곤거렸다. 또 ‘그가 죽음이 무서워 왼발에 총부리를 대고 쏘았다’라고도 했다. 어떤 사람은 ‘따오가 총을 닦다가 강도당해서 총을 뺏겼고, 부대에서 군적을 박탈하고 쫓아냈으며, 고향에 돌아온 지 며칠 되었다’라고 했다. 면에서는 벌로, 벽돌 만드는 노동을 시켰다. 밤이면 민병대가 따오를 묶어서 온 마을을 끌고 다녔다. 따오는 절뚝거리며 앞에 가고, 민병대는 K44 소총을 겨누며 뒤따랐다. 아이들은 뒤따라가며 한목소리로 “청년들이 나 같으면 나라를 잃는다!”라고 소리쳤다. 나는 남편을 따라가며 마음이 심란했다.

 

어제 랑이 나와 결혼했고, 다음날 바로 부대로 돌아갔다. 그가 가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은 슬픔을 가슴에 품었다. 그는 한 사람씩 인사를 건네고는 등을 돌려 떠나갔다. 아주 빠르게 갔다. 마치 시간이 길어지면 떠나지 못할 것처럼.

 

5.

 

남편과 떨어져 사는 아내에게는 수만 가지의 고통이 있다. 그 고통 하나하나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긴긴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베개를 끌어안고 남편을 그리며 하얗게 밤을 새웠다. 나는 남편의 색바랜 옷을 끌어다 얼굴에 댔다. 그리움이 더욱 사무쳤다. 가장 힘든 것은 생리대를 사용하는 그 금기의 며칠 동안이었다. 내 젖가슴은 단단해지고 아팠다. 젖꼭지가 수그러들고, 볼은 붉어지며, 눈은 빛났다. 언제나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남자 냄새를 모르는 여자는 호기심과 소심함이 있지만 남자 냄새를 아는 여자는 이미 중독되었다. 밤이면 밤마다 나는 오만 가지 상상을 하며 베개를 얼굴에 대고 남편의 냄새를 찾았다. 참을 수 없을 때는 나락을 맷돌에 넣고 아침이 될 때까지 빻았다. 또는 우물물을 끼얹으며 타는 속을 식혔고, 때로는 시어머니의 침대로 가서 시어머니의 냄새를 찾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시어머니도 오랫동안 남편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며느리의 마음을 이해했다. 시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옷장 안의 토기에 넣어 두었던 자식의 속옷을 꺼내며 손으로 입을 막고 중얼거렸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멀리 갔을 때 며느리가 마음을 굳게 갖도록 민간 처방을 했다. (역자주: 베트남에서는 사람이 실종되거나 멀리 떠났을 때 토기로 만든 솥에 내복을 넣어두면 그 사람이 속이 타서 빨리 돌아온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내 남편의 이옌하 마을에는 목욕하는 곳이 두 군데 있었다. 여자들이 목욕하는 곳은 상류였고, 남자들이 하는 곳은 하류였는데 두 곳은 몇백 걸음 떨어져 있었다. 여자들은 긴 옷을 입은 채로 강 가운데로 갔고 물이 차오르는 대로 두었다. 물이 가슴까지 치오르면 옷을 머리 위로 올리거나, 벗어서 강가로 던졌다. 나는 이 목욕하는 곳에서 이른바 스캔들에 연루됐다. 두 명의 민병대와 조장이 이곳을 지나다가 순간 머리를 풀어 헤치고, 어깨를 드러냈다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여자를 보았다. 그리고 물을 헤치는 소리와 남자의 머리를 보았다. 이무기와 사람이 엉켜있는 것 같았다. 결국 따오와 내가 물속에 있었다. 민병대 조장은 군대를 피한 탈영병, 절뚝발이, 약시자, 팔 굽어진 자, 체중 미달자, 집에 머무는 자 또는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 있는 병사의 아내를 꼬드기는 자 등을 아주 싫어했다. 그의 아내가 바지선을 모는 노동자의 아기를 임신했었다. 그는 엄청 화가 나서 나를 데리고 부두로 가서 뱃사람과 얘기했다. 나는 억울했다.

 

“내가 씻고 있었는데 발에 쥐가 났어요…”

 

따오는 당황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말했다.

 

“나는 물소를 끌고 이곳을 지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민병대 조장은 입을 씰룩이며 경멸하듯 말했다.

 

“자해 죄에다가 탈영해서 우리 면의 ‘벼는 한 톨도 소중하고, 군대는 한 사람도 귀하다’는 목표를 5년 연속으로 달성을 못 하게 했지. 게다가 전쟁터에 있는 병사들이 맘 편하게 전투할 수 없게 만들고, 후방의 정책을 위반했어. 또 이무기 얘기를 꾸며대기까지 하네.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무기가 사람을 구했다는 얘기를 들어봤지만, 사람이 이무기를 구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구먼. 내 생각에 물속에 있던 이무기는 이 통통한 여자라는 것을 알고 네가 뛰어든 것 같은데…”

 

민병대는 따오와 이무기라는 나를 데리고 면사무소로 가서 경위서를 작성했다. 따오는 여전히 팬티만 입은 채로 뒤따르고 있었다. ‘이무기’는 물에 젖어 허벅지에 꽉 달라붙은 검은 실크 바지에 몸에는 젖은 브래지어만 걸치게 했다. 벌거벗은 이무기 역할은 달빛 아래 더욱 빛났다. 갑자기 민병대 조장이 ‘이무기’에게 서라고 하고는 윗도리를 입으라면서 풀어주었다. 그는 미국과 괴뢰와 싸우고 있는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의 병사를 생각해서 풀어준다고 했다. 몇 발자국 걷다가 그가 뒤에서 ‘힘들어. 암컷은 배신의 종자야!’라고 저주하는 말을 들었다.

 

‘암컷이 배신의 종자’라고? 나는 우리 집 대나무 울타리를 보았다. 작은 숫사마귀가 배가 불룩한 암사마귀를 올라타고 있었다. 숫사마귀는 교미를 마치고 너무 피곤해서 암사마귀의 등에서 내려오자마자 뻗었다. 암사마귀는 숫사마귀의 배 속에서 내장이 튀어나올 때까지 발로 찼다. 사람들은 전갈도 그렇다고 했다. 사랑하고 교미를 한 후에는 생기를 모두 빼냈기 때문에 언제나 수컷이 더 피곤하다고 했다. 암컷은 뒤돌아서 상대방의 살을 먹는다고 했다.

 

나는 암컷 전갈이 수컷 전갈의 살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동네 연못에서 물뱀을 본 적이 있다. 암컷이 허물을 벗을 때 수컷은 늘 옆에서 지켜주었고, 먹이를 가져다주었다. 수컷이 허물을 벗을 때 암컷은 다른 수컷을 집으로 데려온다. 그들은 막 벗은 허물 냄새 가운데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막 허물을 벗어,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옛사랑을 먹어 치운다.

나는 여자이고 암컷이다. 사람들은 나를 배신의 종자라고 볼까?

 

6.

 

전쟁이 끝나고 남편이 돌아왔다. 긁힌 자국 하나 없이 완전한 신체로 돌아왔다. 정말 기뻤다. 모자, 형제, 부부가 만나서 기뻐할수록 남편은 그만큼 속을 끓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남편은 자기 아내에 관한 소문을 알았다. 밤이 되어 모든 사람이 돌아가고 난 후, 설날처럼 즐거워야 했지만, 우리 집은 장례식보다 슬펐다. 시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가 네 아내를 잘 지키지 못했다.”

 

남편은 말끝을 흐리며 주절거렸다.

 

“수년 동안 포탄 속에서도 살았는데, 세상 소문 때문에 죽게 생겼다.”

 

내 차례가 되어, 분명하지만 냉담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아내지요. 오직 당신만이 내가 정절을 지켰는지 아닌지 알 거예요.”

 

남편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가 그렇게 말하리라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전쟁 시기에 아주 많이 깨지기 쉬운 자기 혼인의 운명에 관해 알 수 없었다. 아내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수년 동안 집을 떠나 있던 병사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날 밤 이옌하 온 마을이 잠을 못 이루었다. 달이 아주 밝았다. 시원한 산바람이 슬프게 불어왔다. 십대들은 마을 길을 따라 달 구경하러 가자고 재촉했다. 황롱강에는 환하게 불을 밝히고 야간 고기잡이배의 옆구리는 두드리는 소리가 딱딱 울려 퍼졌다. 부부의 밤, 우리는 물속 동굴에서 엉켜있는 이무기처럼 서로를 휘감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시어머니는 아주 일찍 일어나서 흙마루 계단에 앉아 머리를 빗으며 순간순간 며느리 방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편이 일어나 어머니 옆에 앉았다.

 

“어제 제가 참지 않았으면 탈영병 따오를 죽였을 거예요. 다행히 제가 잘 참았지요. 까딱했으면 끝날 뻔했어요.”

 

“아들아, 그게 무슨 말이냐?”

 

“어머니, 생각 안 나요? 전에 제가 집사람과 하룻밤 보내고 남쪽으로 전쟁하러 갔잖아요. 그 신혼 첫날 밤, 집사람은 월경 중이었어요. 저희 부부는 서로 끌어안고 있다가 울기만 했어요.”

 

“그 말은 어젯밤까지도 네 아내가 처녀였단 말이냐?”

 

“네, 여전히 처녀지요. 제 아내는 제가 알죠.”

 

시어머니는 놀라서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과 며느리가 그런 끔찍한 상황에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나는 방에 조용히 누워 있다가 그때 비로소 밖으로 나갔다. 두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눈은 행복감으로 빛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시어머니 옆에 앉았다. 그때 시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나도 믿고 싶지 않았다. 당시 네 얘기는 있을 수 없는 얘기였다. 이 어미를 이해해다오.”

 

“저 아무도 미워하지 않아요.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요. 오직 남편이 적을 치러갔다가 안 돌아올까 봐 걱정했어요. 제가 남편을 잃으면 누가 제 한을 풀어줄까요?”

 

7.

 

나는 셋째와 넷째를 낳았지만, 여전히 불그스레한 고깃덩어리였다. 시어머니는 슬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종일 염불을 외우거나 절에 갔다. 부처는 어디에 있는지 여전히 우리를 돌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친정의 백 가지 복도 시댁 빚만도 못하다’라고 했다. 대대로 시댁은 착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 짐은 내가 짊어져야 했다. 그래서 그 짐을 어디에 던진단 말인가?

 

내가 다섯째를 낳았는데 붉은 고깃덩어리가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마치 이무기가 알주머니를 낳은 것 같았다. 그것은 인간도 아니었고 짐승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형상은 내 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쯤 되자 마을 사람들은 나를 냉담하게 피하기 시작했다. 나는 반은 미친 바보가 되었다.

 

남편이 말하길 내가 황롱강 가를 헤매고 다닌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강물로 뛰어들어 보라색 히아신스꽃을 건져다가 강가에 놓고 다시 건져내고 무얼 하려고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나도 마장 언덕에 갔던 일이 기억났다. 언덕은 인적도 없고 추웠다. 야생 파인애플이 주변에 빽빽했다. 들개가 짖어대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파란 눈에 털이 엉망인 들고양이가 으르렁거렸다. 나는 명 짧은 어린애가 묻혀있는 언덕 북쪽 구석으로 갔다. 봉분이랄 것도 없었다. 어떤 묘가 뱀장어 가죽색의 항아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오후 내내 어안이 벙벙했다.

 

8.

 

물 흐르는 밤이었다.

 

우리 부부는 새우 그물을 걷으러 갔다. 랜턴을 밝게 비추었다. 새우 눈이 빛을 받아서 붉은색 작은 점처럼 보였다. 몇 번 그물을 걷으니 반 소쿠리가 되었다. 피곤해서 나는 남편에게 풀로 만든 텐트에 돗자리를 깔아달라고 했다. 남편은 이무기 언덕 아래에 풀로 텐트를 만들어 그물을 볼 수 있게 했다. 피곤하거나 새우가 움직이지 않을 때는 그물을 주시했다. 텐트에서 새벽까지 한숨을 잤을 때, 이른 아침에 시장 가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랐는데 시장 가는 사람, 그물 올리는 사람, 새우 잡는 사람 등이 이곳을 지나가면서 누구나 흙 한 줌씩을 언덕에 버리고 갔다. 오랜 세월이 지나 언덕을 계속 넓어지고 높아져서 커다란 봉우리가 되었다.

 

남풍이 불어왔다. 그물이 가끔 나루터로 내려지기도 했다. 나는 눈을 감고 꿈꾸는 것 같았다. 한밤중에서 아침이 되었고, 여자 소리에 놀랐다.

 

“사공! 우리 모녀를 건너게 해주세요!”

 

사공을 부르는 소리가 아주 분명했다. 그리고 다시 소리쳤다.

 

“내 아이 돌려줘요! 내 아이 돌려주세요!”

 

그 외침이 고요한 한밤중에 울려 퍼졌다. 갑자기 한 여자가 바람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봉우리에서 내려왔다.

 

“사람들이 내 아기를 데리다 강에 버렸어요. 내 아기 좀 살려주세요!”

 

아는 사람이었다.

 

“사오 언니 무언가에 홀렸어요. 언니는 애 낳은 적이 없어요. 정신 차리세요!”

 

“우리 아기들이 저 물속에 떠내려가고 있어요. 제발 건져주세요.”

 

나는 나루터를 바라보았다. 은빛 달 아래 안개가 자욱했다. 나는 놀라서 내 눈을 의심했다. 탈영병 따오였다. 진짜였다. 따오는 핏덩이를 바나나 뗏목에 태워 밀어, 점점 강가에서 멀어져 갔다. 바나나 뗏목이 빙글빙글 돌면서 천천히 떠내려갔다. 그리고 사오 언니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가라앉았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다가 갑자기 이무기가 솟아올랐다. 검고 긴 머리에 젖가슴을 드러냈다. 그런데 몸은 뱀이었다. 그것은 갑자기 머리를 물속에 담그고 물갈퀴 발을 수면에 드러냈다. 다시 머리를 드러내기를 반복했다. 이무기가 수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나나 뗏목을 강가로 밀어냈다.

 

너무 놀라서 나는 눈을 부릅떴다. 따오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바나나 뗏목도 사라졌다. 오직 흰 야생 오리 떼가 날면서 우는 소리가 수면에 울려 퍼졌다.

 

“사오! 사오!” 남편이 내 어깨를 흔들었다.

 

“혼이 나갔네! 꿈꿨는가?”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나는 나루터를 바라보았다. 그물이 강물 속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달빛은 여전히 은빛이었다.

 

“사오가 사공을 불렀고, 강물로 뛰어들어 이무기로 변신한 것이 분명해.”

 

“정신 나갔어요? 미쳤어요? 제가 사오예요. 바로 당신 아내인데, 어떤 사오가 더 있나요? 됐어요. 늦었으니 아침까지 그물을 올립시다.”

 

곰곰이 생각해도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꿈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 부부는 아침까지 그물을 올렸지만 새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썩은 장작과 쓰레기뿐이었다.

 

새우를 팔러 시장 가는 길에 따오를 만났다. 그는 물소 수레에 갈색 항아리와 솥을 운반하고 있었다.

 

“아이고, 무서워! 내일부터 이것들 나르지 마세요.”

 

“알았어. 사람들이 요 몇 년 동안 이 갈색 항아리를 많이 쓰네.”

 

나는 꿈 얘기를 하고 말했다.

 

“따오, 현장 실습했던 것 기억하나? 당신이 이무기 언덕에 짚으로 만든 인형을 묻었잖아? 나와 당신의 옛 얘기는 지난 일이야…”

 

따오는 환하게 웃으며 내 말을 잘랐다.

 

“기억하지. 그것은 허풍인데, 그렇지만 이 얘기는 진짜야.”

 

“옛날에 점성국 병사가 바다에서 자주 우리 대월국을 약탈했어. 쩐 왕조 예종 때, 정성국 해군이 황롱강 하구로 들어왔어. 그들이 가는 곳에는 피가 흥건하고 연기가 가득했지. 그런데 우리 마을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고 해. 쩐캇쩐 장군이 쩨방응아에서 대승을 거두었을 때 점성국 군대가 철수했을 때인데, 그들이 우리 마을에 왔을 때처럼 철수할 때도 아무 일 없었다고 해. 그래서 전쟁 중에도 우리 마을은 평화로웠다고 해. 그런데 3개월 후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남편도 없는 수십 명의 처녀와 여자들이 임신한 거야. 군대도 없는데 반란이 일어난 거지. 마을은 전쟁으로 파괴된 다른 마을보다 더 슬펐어. 마을 규약이 엄격했지. 그 수십 명의 여자를 삭발을 시키고 석회를 바른 다음, 바나나 뗏목에 묶어서 강으로 흘려보냈어. 신기한 것은 아침에 바다로 흘려보냈는데, 오후가 되면 바나나 뗏목이 나루터로 돌아온 거야. 그것은 밀물 때 새우, 물고기, 게, 물뱀, 거북이, 이무기, 자라 등이 밀려오면서 뗏목에 붙어서 나루터로 밀어온 거였어. 마을은 밀물과 각종 어류의 힘 앞에 밀렸지. 결국 그 고난의 여자들을 받아들였어. 날이 차고 달이 차서 그들이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은 마을 혈통이 아닌 곱슬머리에 검은 피부, 큰 눈을 가졌어. 더 신기한 것은 그 여자 중 한 사람이 붉은 덩어리를 낳았는데 입이 동전처럼 동그랗고 꽥꽥 소리를 냈다는 거야. 젊은 엄마는 너무 놀라서 기절했어. 마을 사람들은 괴물이라면서 바나나 뗏목에 실어서 바다로 보냈지. 젊은 엄마는 미치게 된 거야. 그래서 늘 ‘내 아이 돌려줘… 내 아이 돌려줘…’하고 다닌 거야. 밤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황롱강으로 달려가, 강으로 뛰어들어 헤엄을 치면서 자기 자식을 찾아다녔어. 정말 힘들었지. 그 여자가 찬물을 마시고 죽어서 이무기가 됐고, 나루터로 흘러온 거야. 동전, 물소 뼈, 거북이 껍질, 여자 인형 등을 함께 묻었어. 그 이무기 언덕은 바로 그 젊은 엄마의 무덤이야. 사람들은 물속 동굴과 수면에 그 여자의 혼이 떠돌다가 사람이 빠져 죽는 것을 보면 이무기로 변신해서 구해준다고 말하고 있어. 아마 이것은 몰랐을 거야.”

 

“어젯밤 사오가 그 언덕에 흙을 버렸어?”

 

“아니, 우리 남편도 그러지 않았을 거야.”

 

“아이고! 사오 당신 부부의 소쿠리에 새우가 안 들어 있다는 것이 맞네. 흙 한 줌 집어다가 거기에 던져야지. 그걸 몰랐단 말이야!”

 

9.

우리 부부는 12㎞를 걸어서 읍내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우리가 건강도 좋고, 신체도 이상 없다고 했다. 현재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하노이에 있는 군 병원을 소개해줄 수 있는데, 너무 멀고 돈이 많이 드는데 가능하냐고 했다. 갈 수 있고말고. 쯔엉선, 서부 고원, 남부를 갔었는데 하노이를 못 갈 이유가 없었다. 남편은 나에게 소를 팔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귀걸이를 내놓았다. 친정엄마는 나락을 주었다. 옆 마을에 사는 결혼한 시누이는 돼지 두 마리를 주었다. 귀걸이만 그대로 두고 나머지는 팔아서 병원비로 썼다. 사람이 있어야 재물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검사를 받았는데, 거의 10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 군의관의 결론은 건강도 좋고, 생리도 정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남편에게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결국 그는 남편을 연구용으로 수백 개의 기형 태아 시체를 유리병에 보관하고 있는 차갑고 하얀 방으로 데려갔다. 그는 사진을 보여주고, 한 병을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이것은 고엽제에 오염된 남자가 정상적으로 출산을 한 경우인데, 나중에 그 아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마치 붉은색 리치 같은 핏덩어리를 낳은 경우라고 했다. 이 후과가 너무나 심각하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남편의 눈이 충혈되고 귀가 먹먹해질 때까지 위로하고 당부하고 격려했고, 포르말린 냄새를 견딜 수 없을 만큼 있다가 비로소 밖으로 나왔다.

 

집에 와서 남편은 3일 동안 누워 있었다. 4일째 나를 방으로 불렀다. 남편은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너무 안타까웠다. 나는 남편의 팔베개에 누웠다.

 

“이제는 당신에게 숨기지 않겠소. 의사가 내가 고엽제에 오염됐다고 하더군. 100번을 임신해도 100번 다 기형을 낳을 거라고 하네.”

 

남편은 내가 놀라고 고통스러워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내 눈은 말라 있었다. 무슨 눈물이 남아 있다고 울 것인가! 남편이 고엽제 환자이거나 내가 기형아를 낳는 것이나 아픔은 매한가지였다.

 

“언제 고엽제에 오염됐나요? 당신은 알겠죠?”

 

“그때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 의사의 설명을 듣고 나서 며칠 동안 누워 있으며 기억해봤지. 아마도 잎사귀가 다 떨어진 숲을 행군할 때인 것 같았다. 갈증이 나서 우리는 계곡물을 마셨고, 수통에 물을 가득 담았다. 그리고 한 번은 부대가 오래된 숲속에 머문 적이 있었다. 미국 비행기가 천천히 날며 하얀 안개 같은 물질을 뿌렸다. 며칠 만에 잎사귀 색이 순식간에 바뀌었고,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떨어졌다. 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숲 전체가 죽은 색이었다. 길을 가다 보면 가끔 철 또는 플라스틱 드럼통이 보였다. 숲속에 뒹굴고 있었다. 어떤 분대원은 고향으로 가져가 엄마에게 드려서 물통으로 쓰면 좋겠다고 했다. 그것이 미국 비행기가 떨어뜨린 고엽제 통이었고, 지금까지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때처럼 남편이 불쌍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정말로 마음이 아팠고, 짜증이 났다.

 

10.

 

남편은 옛 같은 부대원인 하반냉의 편지를 받았는데, 새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달걀 10개와 찹쌀 5통을 준비해서 방문하겠다고 했다.

 

조그만 언덕 위에 고상 가옥이 한 채 있었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는데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울타리에는 흰색 기저귀가 널려있었다. 바닥에 벌거벗은 아이가 둥근 머리에 머리칼이 하나도 없고 손도 없고 입은 원숭이처럼 이가 다 드러나 있었다. 나는 물릴까 봐 남편 엉덩이 뒤에 바짝 붙었다. 게다가 머리가 둘인 뱀이 기둥 아래에 동그랗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남편과 하반냉은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는 아내에게 아이를 데려와 귀한 손님에게 인사하라고 했다. 나는 아이를 보며, 그의 아내가 젊다고 칭찬했다. 그는 첫 번째 아내는 세 번 출산했는데 모두 기형을 낳았다고 했다. 그녀는 너무 무서워서 그는 물론 저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 아이도 버리고 갔다고 했다. 이 사람은 새 아내라고 했다.

 

얘기가 깊어지는데 갑자기 남편이 새파랗게 질렸다. 남편은 냉 씨를 끌고 가서 식수통을 가리켰다.

 

“자네 저것 어디서 가져왔어?”

 

“해방되고 나서 열사 묘를 참배했다가 숲속에 있던 것을 주어왔네. 행군할 때 북쪽으로 가는 트럭에 실어 왔어. 함께 제대한 친구 몇 명에게 놀러 오라고 했고, 저들이 가져왔어. 자네도 가져갈 수 있으면 하나 가져가서 물통을 쓰시게.”

 

남편은 아이고를 연발했다. 청각장애인은 총을 겁내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 친구는 죽음을 집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제초제, 발광제통이었다. 저 기형의 아이는 고엽제에 오염된 아버지로부터인지 아니면 이 통에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냉 씨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정말 두려워했다.

 

11.

 

하반냉 집에서 돌아온 후부터 남편은 시어머니와 얘기하면서 친구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여러 날 숙고한 끝에 남편은 나를 ‘해방’시키고 싶다고 결정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새로운 행복을 찾아 정상적인 아이를 낳기를 바랐다. 나는 옛 부두를 떠나는 배처럼 떠나서 복이 있다면 새로운 운명을 만날 것이고, 새로운 나루터에 정박하기를 바랐다. 바구니가 꽉 찬 것같이 따뜻하게 의지할 곳을 찾기를 바랐다. 사실 나도 그것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아찔했고,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하반냉이 둘째 부인을 얻어 정상적인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남편도 새로운 결혼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안됐다. 남편은 내가 경도가 끊어진 지 1년이 넘었다는 것을 몰랐다. 하얀 면 기저귀를 널 때마다 자신이 남자가 아니라 30살의 여자라는 것을 일깨우는 것으로, 남편이 이미 싫증이 났겠지만, 더 짜증이 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무척 화가 났다.

 

하루는 남편이 밖에 나갔을 때 시어머니가 힘들게 물었다.

 

“친구 집에 다녀온 후, 어떻게 생각하니?”

 

“아무 생각 없는데요.”

 

나는 화가 나서 무례한 줄 알았지만 차갑게 쏘아댔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여전히 참고 있었다.

 

“사오야! 랑한테 너를 버리고 새 장가 들라고 한 것은 내가 아니다. 나도 깊이 생각해 보았다. 너도 불쌍하고, 랑 녀석도 불쌍하다. 네가 시댁의 혈통을 생각한다면…”

 

“그러면 남편을 버리라고요?” 나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수많은 고통과 분노를 속에 쌓아왔었다. “어머니, 어머니 더는 말하지 마세요. 어머니도 남편이 새 아내를 얻으면 냉의 둘째 부인처럼 건강한 아이를 낳을 거로 생각하시죠?”

 

갑자기 시어머니가 며느리 앞에 엎드렸다.

 

“어미에게 부탁한다. 어미에게 부탁한다. 어미야! 어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집안은 하늘 같은 은혜를 입는 것이다. 그러나 어미는 내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할 거야. 어미도 내 속으로 난 자식이 필요하다. 우리 집안도 어미에게 일생 내내 일만 하라고 할 수도 없구나. 그것도 큰 죄야.”

 

“그만요! 어머니 더는 말하지 마세요. 제가 즉시 실행할게요… 제가 남편과 어머니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때는 그 어떤 진솔한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나만의 계획을 준비했다.

 

12.

 

나는 남편에게서 도망치듯 이혼했다. 친정엄마는 슬펐고 딸이 불쌍해서 속으로 우셨다. 모든 것이 미리 정해진 것처럼 흘러갔고, 돌아보니 나 자신이 바보 같았다. 반년이 지났고 나는 억지로 지난 아픈 과거를 잊으려 했다. 그러나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옛 추억과 모습이 되살아났다. 멀리 떠난 남편을 한없이 기다리던 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마치 서로 이를 잡아주던 친자매 같이 지낸 일, 남편의 구릿빛 얼굴과 시큼한 땀 냄새, 밤에 부부가 함께 새우잡이하던 때, 다섯 번이나 기형을 출산한 일, 우리 엄마가 나를 이무기라고 생각하는 것... 모든 일이 바로 어제 같았다.

 

나는 자주 강가로 나가서 전 남편의 집 쪽을 바라보았다. 저녁연기가 처마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내 친구가 오늘 남편에게 어떤 음식을 줄 건지 추측하곤 했다. 어젯밤 남편이 새 아내 옆에 누워서 내 생각을 했을까?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에게 몸을 바치면 일생 내내 죽거나 살거나 그 사람과 함께 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는 남편과 생사를 같이하지 못할까?

 

나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옛날 따오의 부적에 관한 생각이 여전히 따라다녔다. 강을 건넜다. 곡괭이를 메고 이무기 언덕으로 가서 땅을 팠다. 나는 이무기의 혼이 박힌 여자 인형 부적을 파내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내 맘이 편할 것 같았다. 나는 미치광이처럼 땅을 팠다.

 

하늘이 점지했는지, 내가 막 한 뼛조각을 파냈을 때 따오가 물소 수레를 끌고 지나갔다. 무슨 뼈지 알 수 없다. 나는 엉엉 울었다.

 

“내가 이무기가 됐어! 따오 씨!”

 

“사오, 왜 이렇게 멍청해. 유치한 시절의 내 근거 없는 말을 누가 믿어!”

 

“그럼 이 뼈는 뭐야?”

 

“뼈? 이무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와 당신이 무슨 인연이 있길래 이리 얽힌 것일까? 왜 당신이 자꾸 날 괴롭히지?”

 

여전히 절뚝거리는 따오의 다리를 보면 화도 나고 불쌍하기도 했다. 내가 책망하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잠시 주저하다가 그가 말했다.

 

“사오야, 랑의 새 아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산파가 세어보니 11개의 핏덩이더래. 마치 이무기가 알을 낳은 것 같단다.”

 

나는 떨렸다. 두 귀에 수만 개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윙윙거렸다.

 

랑과 나, 누가 더 고생인가?

 

13.

 

나는 다시 강을 건넜다.

 

내 친구는 너무 약한 것일까? 시댁의 '빚'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녀가 랑을 버리고 갔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랑은 조용히 냉정하게 견디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심하게 아팠다. 낫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녀와 랑은 내가 필요했다. 실제로 이때 우리는 서로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쯤에서 나는 열세 번째 나루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저녁 시간에 강을 건너기로 했다. 마지막 배를 타려고 했다. 안개가 수면 위에 가득 퍼졌다. 물건을 나르는 배 한 척이 강가에서 흔들거리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선실에 가득 쌓아 놓은 뱀장어 색의 토기와 항아리를 보았다. 나는 손발이 떨렸다. 너무 무서웠다. 요 몇 년 동안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 강 가운데쯤 왔을 때 사공은 바나나 뗏목과 만났다. 여자 뱃사공은 “잘 잡고 앉아 있어요. 제가 건네줄게요. 오후부터 지금까지 바나나 뗏목이 너무 많이 나루터로 흘러오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무기, 거북이, 자라가 헤엄치며 밀고 있다고 의심했다. 장대를 가져다 물속을 휘저었으나 걸리는 것이 없었다. 사공은 바나나 뗏목을 피하려고 했다. 나루에 거의 도착했을 때는 더는 나갈 재주가 없었다. 바나나 뗏목이 앞과 뒤, 주변을 둘러쌌고 가로막았다. 사공은 노 젓기를 포기하고 장대로 바나나 뗏목을 하나씩 밀어냈지만 다른 뗏목이 밀고 들어왔다. “이 나루에는 댈 수 없어요. 돌아가야 해요. 아니면 다른 나루터로 가야죠.”, “아가씨! 이 나루가 마지막 나루고, 건너가도 끝이에요.”, “내가 허리를 굽혀 바나나 뗏목을 밀어내고 있어요. 뗏목이 점점 멀어지고 있어요. 배가 나루에 도착합니다. 정말 신기하죠! 나는 방금 일어난 일을 설명할 수 없어요.”

 

이번 강 건너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나는 강가로 올라섰다. 바나나 뗏목은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배와 사공은 수면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뱀장어 색의 토기와 항아리를 짐배는 여전히 불이 환하게 타올랐다.

 

2004년 8월 다이라이 창작캠프에서

<번역: 배양수/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

 

베트남 작가 스엉응웻밍은?

 

스엉응웻밍은 1958년 9월 15일생이다. 본명은 응웬응옥썬이다. 닝빙성이 고향이며, 군 출신 작가다. 1992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대령으로 예편했다. 많은 문학상을 받았다.

 

단편소설 ‘열세 번째 나루’는 2003~2004년 문예지 단편 문학상을 받았다. 전쟁의 고통, 전후, 여성의 지위를 다뤘다. 2014년에 발표한 캄보디아 전쟁과 관련된 황무지(Miền hoang)라는 장편소설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현재 하노이에 살고 있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열세 번째 나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30년 전쟁하는 동안 편히 잔 날이 없었지만 이제 긴 평화가 왔다. 병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직업 군인’이라고 적을 정도로 여전히 보초를 서고 있다. 그러하니 열세 번째 나루터는 군인이다. 병사라는 나루에 정박하면 남편은 저 멀리 있는 것이고, 희생과 상실, 고통과 불행의 나루터를 견뎌야 한다.”

 

여성 감독 당타이후옌 이 소설을 각색한 비디오 영화 ‘열세 개의 두부’로 6개의 황금 연꽃상을 수상했다.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 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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