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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나]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사운드 오브 뮤직

 

1969년 10월 하순, 영국의 배우 겸 가수인 줄리 앤드루스가 주연을 맡은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이 퇴계로에 있는 대한극장에서 개봉됐다.

 

영화도 문학과 마찬가지로 사상과 감정을 상상의 힘으로 표현하는 매체라고 여겼던 어머니는 누나와 형들과 나를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한극장으로 데리고 갔다.

 

요즘의 멀티플렉스 극장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초대형 스크린을 가리고 있던 붉은 융단 커튼이 스르르르 열리면서 암흑의 공간은 빛으로 채워졌고 미세한 진동이 나의 마음 속에서 꿈틀거렸던 기억이 난다.

 

5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떨림으로 남아 있는 이 진동이야말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참된 맛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영화가 시작되면 창공에 떠있는 구름들이 서서히 흩어지면서 흰 눈을 덮고 있는 장대한 알프스 산맥이 동공을 가득 채우며 사방에 펼쳐지고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신의 시선처럼 구름보다 더 높은 곳에 있던 카메라가 서서히 하강하면서 하늘보다 더 파란 호수를 끼고 있는 마을과 가까워지면, 바람소리는 사라지고 산새들의 평화로운 합창과 엄마의 숨소리 같은 아늑한 음악의 선율이 귀를 통해 작은 마음을 채워주기 시작했고 나는 막연하기만 한 현실을 벗어나 마법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곧 하늘과 호수가 맞닿아 있는 드넓은 초원이 나타나고 저 멀리로 단정하지만 힘찬 걸음을 걷고 있는 마리아를 보여준다. 그녀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연결이라도 하듯 두 팔을 벌려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노래가사는 자연과 그 안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찬미하는 내용인데 이 영화의 주제나 다름이 없다. 나치시대의 오스트리아가 영화 배경이다. 필자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처럼 엄격하기만 한 폰 트랩이란 군장교의 집안에 가정교사로 들어간 견습 수녀 마리아가 어머니를 잃고 닫아버린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노래와 춤을 통한 사랑이 깃든 교육으로 열어 준다.

 

그 당시 내가 살았던 어두침침한 서울 예관동 뒷골목의 적산가옥과는 전혀 다른 궁전 같은 집에서 상냥하고 쾌활하지만 바위 같은 자존감을 품은 여자가정교사의 헌신으로 가부장제 아래서 일방적으로 억압받던 아이들의 마음의 문이 열리는 장면은 나에겐 초현실 같은 경험이었다.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극장 밖으로 나와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누나와 국민학교 5학년, 3학년이었던 형들은 자신들이 마치 영화 속의 그 아이들이 된 거 마냥 영화 속의 노래들을 흥얼거렸지만 나는 영화 속의 그 소녀, 막내 딸을 그리워했을 뿐, 그 누구에게도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나의 마음을 말 할 순 없었다.

 

그 후로도 누나와 형들은 며칠 내내 영화 속의 그 아이들처럼 노래하며 춤추며 시시덕거렸지만 난 그저 그 막내딸을 또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학교를 들어가기 전의 다섯 살 짜리 꼬마였던 나는 어머니를 졸라 매일 매일 대한극장으로 가서 그 영화를, 아니 그 소녀를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또 보고 다시 또 보았다.

 

 

어두움과 빛이 맞닿아 있는 마법과 환상의 세계에 빠져 있던 나는 문득 작은 소리로 코를 골던 옆좌석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눈을 뜬 어머니는 나와 눈을 맞추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우리 집에 가자. 엄마는 이제 너무 지겹구나.”

 

나는 못들은 척, 고개를 돌리곤 다시 환상의 세계로 돌아가려 했지만 어머니가 애원하듯 또 말했다.

 

“오늘이 이 영화를 본 열 한 번째인 거 알고 있지?”

 

전두엽이 충분이 발달되지 않았던 꼬마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함과 고마움의 진동이 교차했던 나는 계속 돌아가고 있는 필름을 뒤로 한 채, 어두운 극장을 조심스럽게 빠져 나와 어머니 뒤를 따라 뚜벅뚜벅 집으로 향했다.

 

어두침침한 적산가옥으로 돌아온 나는 그 이후로도 한 동안 영화 속의 그 소녀를 언제 또 다시 볼 수 있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이 영화는 다섯 살 꼬마에게 소녀를 향한 연정이 담긴 첫 사랑의 경험을 선사했다.

 

올해로 환갑이란 타이틀을 얻은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어머니의 사랑과 영화의 마법을 새삼 다시 느끼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쩌면 삶이란 돌아가는 영사기 위의 필름처럼 끝을 다하면 추억과 환상을 남기며 암흑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글쓴이 = 송예섭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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