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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글로발로 앙코르 6] 천년의 신비 '앙코르 와트'①

해자를 건너고 참배로를 지나며 속세의 먼지를 털어내다.. 신과는 점점 가까워지고..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초에 세워진 세계 최대의 석조사원이다. 30여 년간 매일 2만 5000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지어졌다. 앙코르 와트는 400여 년 동안 밀림 속에 방치되었다 1860년 우연히 발견된 세계 7대불가사의 중 하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벗어나자 앙코르 와트에도 예전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관광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지난해는 전년 비해 약 50여만명이 늘어났다.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조성진 기자와 함께 '왕국의 사원' 앙코르 와트 ‘시간여행’을 떠난다.  풍경에 새로운 숨길을 불어넣는 그의 '역사인문기행'에 동참해보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봉헌식, 신을 만나러 가는 길

 

 행렬을 멈춘 왕은 코끼리 가마에서 내려 마중나와 있던 대사제와 신하, 그리고 건축 총감독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진입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거대한 인공호수에 떠 있는 사원 입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사원을 착공한 지 이십 년. 이제 공사 마무리 단계다. 살아있는 왕일 때, 비슈누신에게 바치는 봉헌식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신하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공물을 바쳐야 했던 지방 호족들은 또 어땠는가. 강력한 왕권이 없었다면 시작도 못했다. 영원히 남을 하나의 사원을 짓겠다는 일념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진입로 입구 양쪽에는 해와 달, 불과 물을 상징하는 사자와 나가(뱀)가 지키고 있다. 죄를 지은 자는 진입조차 못하게 나가의 머리는 매섭게 치켜세워져 있고 사자는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사암으로 된 계단을 올라 첫 발을 내디딘다.

 

길게 나 있는 다리 옆으로는 바람조차 불지 않아 거울처럼 잔잔한 호수가 왕의 발걸음을 맞이한다. 사원을 둘러싼 호수의 양끝이 저 멀리 보인다. 왕은 걸으면서 생각했다. ‘호수 같이 맑고 투명한 자만이 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사원 입구에 다다른 왕은 좌우로 이어진 세 개의 고푸라(탑문) 앞에 섰다. 담장 양 끝에 있는 문까지 합하면 5개의 문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높고 웅장한 중앙 고푸라로 들어갔다. 왕과 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 대사제와 신하들은 양 옆의 문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정원이 열리고, 정원을 가로지르는 방죽길이 진입로보다 훨씬 길게 신전 입구까지 뻗어 있다. 여기서부터 350미터를 걸으면서 세속의 때를 하나씩 털어버리고 오로지 신에게 다가가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야 한다. 참배로다. 왕이 곧 신이지만 아직은 신의 대리인일 뿐이다.

 

 아침의 태양이 탑 위로 떠오르자 황금 탑이 태양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사원의 밝은 회색과 황금 지붕의 광채는 경건하면서 찬란했다. 다른 사원과 달리 사후세계가 있는 서쪽 방향을 향해 짓기는 했지만 왠지 찜찜하기는 했다. 그러나 서쪽문으로 들어와서 아침에 뜨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니 미덥지 못한 마음이 싹 가셨다. 자신이 죽으면 후세에 태양신의 보호를 받는 자로 불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면에서 1미터 높이의 참배로 양 끝에는 나가가 올라탄 난간이 참배로를 따라 길게 늘어져 있다. 참배로 중간 못 미친 지점 양옆 정원에 있는 건물은 장서각이다. 사제들이 머물기도 하고, 제사에 필요한 도구와 자료를 보관하는 제기고 역할도 하는 곳이다. 사원의 규모가 워낙 커서 장서각은 모든 층마다 두게 했다.

 

 

장서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연못이 있다. 연못에 비친 사원은 아름다웠다. 연못이 둥그런 달을 머금은 날, 사원에 걸린 달을 벗삼아 잔을 기울여야겠다.

 

 

참배로 끝에 다다르니 널찍한 테라스가 나왔다. 왕이 테라스에 올라서자 횃불이 타오르고, 사제들은 제를 올릴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의식뿐만 아니라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 방문하는 외국 사신, 전쟁터로 떠나거나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들을 이곳에서 접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과 만나기 위해 들어가는 초입이야말로 그들의 명예에 걸맞은 장소일 것이다.

 

사제들 옆에서는 압사라들이 춤을 추며 신의 축복을 기원하고 있다. 압사라들은 머리에 키 높은 금관을 쓰고 얼굴은 진하게 화장을 했다. 볼록한 가슴과 가늘고 유연한 허리 곡선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마치 줄기 끝에 달린 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 바람에 살랑대는 모습이다.

 

엄지와 검지를 포개 꽃망울을 만들고 아랫배에 살짝 대어 생명의 탄생을 기원한다. 나머지 세 손가락은 쫙 펴서 꽃잎이 활짝 핀 모습을 표현하고, 손가락을 아래로 비스듬히 늘어뜨려 꽃이 진 것을 표시한다. 압사라 춤은 삶과 죽음, 기쁨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중생에 대한 신의 위로다.

 

 

 테라스는 바로 회랑과 연결되어 있다. 회랑의 안쪽 벽은 아직 부조가 새기지 않은 상태이고 바깥쪽은 기둥만 세워서 공기가 통하고, 자연광이 들어오게 했다. 나중에 백성들이 부조를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왕은 회랑에 새길 그림을 몇 년 전부터 고민해왔다. 살아서는 신전이지만 죽어서는 자신의 무덤이 될 곳이기에 신과 왕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장면을 중심으로 새겨야 한다.

 

‘우선 주출입구가 있는 서쪽 회랑에는 비슈누신에게 바치는 사원이니까 비슈누신과 관련된 신화를 배치하자. 해가 뜨는 동쪽은 천지창조에 대한 신화, 북쪽은 악마와 싸워 이기는 신들의 이야기를 새겨야지. 그리고 남쪽에는 왕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왕권을 보여주는 사건을 후대 왕이 새겨 넣을 수 있게 비워놓는 것이 좋겠어.’

 

 ‘이 모든 것을 재미있고 생생한 그림으로 채워 넣어 글을 모르는 백성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1층 회랑을 건너 2층으로 가는 도중에 십자 회랑이 나왔다. 밭 전자 형태다. 회랑 지붕은 수십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기둥은 황금으로 덧칠해 화려했다. 이웃 나라를 정복해 공물을 받고, 전쟁포로를 데려와 짓지 않았으면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십자 회랑 네 면 밑에는 각각 욕탕이 있다. 신에게 중앙 성소로 제사를 하러 가기 전에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려고 만들었다. 아직 물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라 왕은 목욕 대신 성수에 손과 발을 씻었다.

 

 

 

■ 2층 회랑은 인간계와 천상계로 가는 마지막 경계....1500명의 압사라 부조

 

십자 회랑을 지나가자 2층 회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2층 회랑부터는 백성들이 출입을 못하도록 통제했다. 신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2층 회랑은 1층 회랑과 마찬가지로 직사각형 구조로 만들었다. 회랑 벽은 사제들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장식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2층 회랑 바깥쪽으론 창문도 없다. 안쪽에 있는 창은 그 수가 적어 안을 밝게 비추기엔 역부족이다. 긴 터널이다. 인간계에서 천상계로 가는 마지막 경계선이다. 신의 세계로 향하는 여정에 혹이라도 속세의 때가 남아 있다면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털고 가야 한다.

 

안쪽 창문의 창살은 구슬을 꿰어 놓은 듯 아름답다. 수년 전에 대사제와 함께 가보았던 반테이 스레이 창살과 같은 모양이다. 워낙 탐이 나 똑같이 만들자고 주문했다. 창문의 숫자는 동서남북 다 다르다. 옆에 있던 건축총감독이 “초승달이 떠서 보름달이 되었다가 다시 지는 기간을 계산해서 창문을 만들었다”고 알려줬다. 이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지었다니 크게 상을 내려야겠다.

 

 

 

2층 회랑을 건너 안쪽 정원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벽 곳곳에 압사라가 새겨져 있다. 신의 세계에 들어온 것을 보여주기 위해선 당연히 압사라가 있어야 한다. 힌두신화의 천지창조를 보여주는 우유바다 휘젓기에서 6억명의 압사라가 태어났지만 여기에 이를 다 새기기엔 애초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새겼다. 회랑 한 면의 길이가 100미터가 넘으니 1500명은 넘어 보인다. 사원 봉헌의 기쁨을 수많은 압사라가 춤으로 대신하고 있다.

 

새겨진 압사라는 각기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명예의 테라스에서 본 압사라 여인들처럼 살아서 움직인다. 춤추는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신을 기쁘게 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데는 모두 한결 같을 거라 생각하니 왕의 입에서 저절로 미소가 돌았다.

 

 

왕은 2층 정원을 한바퀴 돌았다. 왼쪽으로는 메루산처럼 우뚝 솟은 3층 신전이 보이고 오른쪽엔 긴 회랑이다. 회랑의 네 귀퉁이엔 둥그런 탑당이 층층이 올려져 있다. 정원 바닥은 돌판이다. 자연은 없지만 아늑하고 평안하다. 신의 품안에 안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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