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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글로발로 앙코르3] 크메르 왕국의 영웅들①

108개 탑 지금은 5개 탑...영화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포드 석양 떠올라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초에 세워진 세계 최대의 석조사원이다. 30여 년간 매일 2만 5000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지어졌다. 앙코르 와트는 400여 년 동안 밀림 속에 방치되었다 1860년 우연히 발견된 세계 7대불가사의 중 하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벗어나자 앙코르 와트에도 예전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관광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지난해는 전년 비해 약 50여만명이 늘어났다.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조성진 기자와 함께 '왕국의 사원' 앙코르 와트 ‘시간여행’을 떠난다.  풍경에 새로운 숨길을 불어넣는 그의 '역사인문기행'에 동참해보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 영웅이 되기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은 ‘물 관리’

 

앙코르 유적지를 다니다 보면 사원 건축물에 놀라고 부조에 또 한번 놀란다. 건축물의 규모가 엄청 크고 부조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다. 사원의 수는 상상 이상으로 많다. 놀랍다 못해 신비롭다. 그러나 2~3일 지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물이다.

 

앙코르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당연히 사원 유적을 보기 위해 왔을 것이다. 물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은 그저 무대 배경처럼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일 뿐이다. 물론 앙코르 와트의 해자나 인공 저수지는 보기만 해도 규모에 놀라 입이 벌어진다.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 더 크다.

 

하지만 크메르 왕들이 ‘물을 관리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좀 더 들여다보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해자의 크기는 물 관리 시스템의 결과다.

 

 

앙코르 유적지는 북으로 쿨렌(Kulen) 산맥과 남으로 톤레삽(Tonle Sap) 호수 사이에 있다. 이 지역은 우기나 폭풍우가 몰아칠 때면 언제라도 홍수가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크메르 왕국 시절 홍수나 가뭄이 발생했다는 기록이나 구전이 없다.

 

지금도 홍수가 나면 피해를 입는데 당시에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실제로 2004년 앙코르 지역에 가뭄이 발생하여 앙코르 와트 해자와 왕실 목용탕인 스라 스랑이 바닥을 드러냈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홍수로 물이 넘치기도 했다. 그 옛날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었을까.

 

시엠립 시내를 걷다 보면 시엠립 강이 눈에 띈다. 강 주변으로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강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강폭이 좁고 물도 맑지 않았다. 필자가 사는 동네에 있는 안양천보다 볼거리가 없는 평범한 하천이다.

 

그런데 며칠 후 앙코르 와트를 구경하다 옆에서 해설하고 있는 가이드의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시엠립 강이 “크메르 왕국 시대에 축조된 배수로”라는 것이다. ‘강(River)’이 아니라 ‘수로(Canal)’인 셈이다.

 

 

시엠립은 동쪽의 롤루오스(Roluos) 강과 서쪽의 포욱(Pourk) 강 사이에 있다. 9세기 롤루오스 지역에 크메르 왕국의 수도가 들어서자 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해결책으로 포욱 강의 물을 끌어들여 새로운 물길을 만든 것이 시엠립 강이다.

 

일종의 여수로(餘水路, spillway)인 시엠립 수로는 가뭄과 홍수를 조절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건기에는 시원지인 쿨렌 산의 크발 스피언(Kbal Spean)에서 나오는 물을 시엠립 강으로 흐르도록 방향을 바꿨고, 홍수 때는 롤루오스 지역의 범람을 막기 위해 포욱 강과 시엠립 강으로 흘려보냈다.

 

12세기에는 시엠립 강에 아치형 수문이 있는 라테라이트 다리를 여러 개 만들었다. 강은 북 바라이의 북동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 서쪽으로 뻗었고, 여기에 유량과 배수를 조절하는 제방을 쌓았다. 이 수로는 북 바라이 및 동 바라이와 연결됐고, 서쪽으로는 서 바라이, 동쪽으로는 롤루오스 강, 남쪽으로는 앙코르 톰과 앙코르 와트의 해자와 연결됐다. 물 관리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2012년 앙코르 시대의 수로와 제방을 개보수했더니 다음해 홍수를 피할 수 있었다.

 

 

시엠립 강은 네악 뽀안(Neak Poan)이 있는 북 바라이의 오른쪽에서 내려와 북 바라이와 지금은 없어진 동 바라이와 연결됐고, 앙코르 톰과 앙코르 와트 해자를 거쳐 시엠립 시내로 흐른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크고 작은 집수 시설과 수로가 바둑판처럼 촘촘하게 연결됐다. 왼쪽 아래 사진은 라이다(Lidar)를 기반으로 복원한 앙코르 톰 주변 수로지도다. 사진=구글지도,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Location-map-of-Angkor-and-the-location-of-sites-mentioned-in-the-text_fig1_331354378

 

크메르 왕국 초기에 지어진 ‘프레아 코(Preah Ko)’를 비롯해서 거의 모든 사원에는 해자가 있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고 관개용수를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힌두 신화에서는 대양을 뜻한다.

 

해자의 또 다른 역할은 건축물의 붕괴를 막는 것이다. 캄보디아 중앙 평야는 육중한 건축물을 지탱할 만큼 토양이 단단하지 않다. 앙코르 와트 같은 사원을 짓기 위해서는 적합한 곳을 찾아야 했다.

 

크메르 왕국의 기술자들은 모래가 물에 젖으면 상당한 하중을 지탱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우선 지표면 가까이 지하수가 흐르는 지역을 찾았다. 앙코르가 선택되었다. 기초작업을 위해 땅을 파서 모래, 자갈, 흙으로 채우고 막대와 물로 다졌다. 물다짐 공법이다. 다음에 해자를 만들어 물을 저장했다. 지표면 밑에 지하수가 항상 흘러 땅은 단단해지고, 융기나 가라앉음 없이 수평을 유지할 수 있었다.

 

6개월 동안 이어지는 건기에 대비하여 빗물을 모으는 대규모 집수 시스템도 만들었다. 인공 저수지의 물은 지하수를 충전하고 생활용수와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데 사용됐다. 롤레이 바라이와 서 바라이는 관개용수로 쓰였고, 북 바라이는 앙코르 톰에 생활용수를 공급했다. 동 바라이는 초기에 관개용수로 사용됐지만 후기에는 왕실 목욕탕인 스라 스랑에 물을 공급하고 타 프롬 등 여러 사원의 해자에도 이용되었다.

 

 

물 문제는 크메르 왕국이 생기기 전부터 오랫동안 앙코르 지역의 가장 큰 숙제였다. 마침내 크메르 왕국의 영웅들이 이 숙제를 풀었다. 집수 시설과 수로를 만들어 1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했다. 약한 지반임에도 불구하고 해자의 물을 이용해 1000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앙코르 와트를 세웠다. 수세기에 걸친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신의 세계에 도달한 것이다. 물 관리에 성공한 왕들이야말로 백성들로부터 진정한 영웅이자 신으로 추앙받았다.

 

■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나라의 초석을 다지다

 

시엠립 시내에서 툭툭을 타고 6번 국도를 따라 프놈펜 방향으로 30분 정도 가면 롤루오스(Roluous) 유적지가 나온다. 프레아 코, 바콩, 롤레이 사원이 있는 크메르 왕국 초기 수도다.

 

태조인 자야바르만 2세가 수도를 옮기다가 마지막으로 정한 곳이 톤레삽 호수의 영향을 받는 롤루오스 지역이다. 톤레삽 호수는 우기가 되면 건기 때보다 면적이 3~4배 늘어난다. 롤루오스에 범람이 발생하고 논과 마을이 물에 잠긴다. 왕국 초기부터 수리 시설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국도에서 오른쪽 샛길로 접어들면 맨 먼저 보이는 것이 ‘프레아 코’다. 둘러싼 담이 무너져 내려 길에서도 한눈에 보인다. 초기 건축물에 사용된 붉은색의 라테라이트 벽돌로 쌓은 탑이다. 해자가 꽤 컸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 길에서 보면 굳이 이런 것까지 봐야 하나 할 정도로 초라하다. 왕궁이 있었을 거라 추정되는 사원 뒤는 수풀만 무성하다.

 

몇 걸음 만에 다다른 탑문은 무너져 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지만 바닥에 띄엄띄엄 깔린 돌과 낮은 담장으로 입구였음을 가늠한다. 이곳을 지나 내디딘 길은 ‘참배로’다. 천상의 길 또는 신도라고 부른다. 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프레아 코는 참배로가 짧다. 초기 형태다. 후기로 갈수록 길이가 길어지고 다리 형태로 변하기도 한다. 앙코르 와트의 참배로는 350미터나 된다.

 

 

참배로를 지나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소의 석상이다. 사원을 향해 꼬리를 내리고 홀로 앉아 있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소는 시바 신이 타고 다니는 ‘난디’를 조각한 것이다. 프레아는 ‘신성한’, 코는 ‘소’를 뜻하므로 사원 이름을 해석하면 ‘신성한 소’가 된다. 사원의 주인이 ‘난디’인 셈이다. 아마 난디를 타고 다니는 시바 신은 석탑 안으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고, 주야장천 기다리는 난디가 가여워 사원 이름으로 대신 달랬을 것 같다.

 

탑 앞에는 사자 두 마리가 앉아서 입을 벌려 으르렁대고 있다. 하지만 주인한테는 순종하듯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왠지 귀엽다.

 

 

사원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정면으로 보이는 3개 탑이다. 총 6개 탑이지만 뒤쪽 3개 탑은 앞쪽 탑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앞쪽 가운데 탑을 제외하고 양쪽 탑은 복원 중이다. 왼쪽 탑은 가림막이 쳐져 있고, 오른쪽 탑은 비계에 둘러싸여 있다.

 

태조 자야바르만 2세가 죽자 아들 자야바르만 3세가 왕이 되었다. 그에게는 후계자가 없어서, 외가 친척 중 인물이 뛰어나고 용감무쌍한 인드라바르만 1세(재위 877~889)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인드라바르만 1세는 인근 지역을 점령하면서 영토를 늘려 나갔다.

 

최초의 인공 저수지인 인드라타타카(Indratataka)를 만들고 수로를 연결했다. 롤루오스 강에서 끌어들인 인드라타타카 물은 프레아 코와 바콩 사원 해자를 거쳐 논밭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범람을 막고 일년 내내 농사가 가능해졌다. 백성들로부터 진정한 시바 신의 화신인 ‘데바라자(신왕)’로 추앙받았다. 879년 프레아 코를 지어 시바 신에게 바쳤다.

 

앙코르의 사원은 신에게 봉헌한 건축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무덤 또는 제사 공간이기도 하다. 프레아 코 역시 앞쪽 탑들은 중앙에 선대왕인 자야바르만 2세, 양 옆으로 자신의 아버지, 외할아버지를 기리는 탑이고, 뒤에 있는 탑은 그들의 부인을 기리는 탑이다.

 

 

프레아 코는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 벽돌로 쌓은 탑은 입구가 취약해 돌로 기둥(문설주)을 세우고 그 위에 큰 돌을 얹었다. 그 돌을 린델(Lindel), 한자로는 상인방이라고 한다.

 

가운데 탑 상인방엔 ‘칼라(Kala)’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칼라는 시간을 의인화한 것으로 죽음의 신이다.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데, 시바의 명령으로 자신의 몸뚱이를 먹다가 아래턱까지 없어지고 머리만 남았다. 부리부리한 눈에 넓적한 코를 가진 사자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축구 응원단 ‘붉은 악마’의 캐릭터인 ‘치우천왕’과 닮았다. 칼라 입에서 나온 뱀의 몸통이 문어 다리를 양 옆으로 벌린 모양으로 길게 뻗어 있다. 몸통 위에는 말을 탄 무사들이 달리고, 아래에는 압사라들이 춤을 춘다. 칼라의 머리 위에는 시바 신이 앉아 있다.

 

 

석탑 문 옆에는 수문장 부조가 있다. 남자들의 석탑에는 남신 수문장 드바라팔라, 여자들의 석탑에는 여신 수문장 데바타가 지키고 있다. 데바타의 듬직한 몸매가 소박하지만 힘 있어 보인다. 후기로 갈수록 세련되고 날씬하다.

 

프레아 코는 연대가 확인된 앙코르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벽돌로 된 탑의 원형이다. 갈수록 상인방이나 문 옆 수문장 부조가 점점 정교해지고 다양하게 변한다.

 

프레아 코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바콩(Bakong) 사원이 있다. 양옆으로 낮은 돌담이 있는 오솔길을 따라 사원으로 들어간다. 숲길이라 고즈넉하다. 조금 걸으면 해자가 나온다. 해자를 건너는 길은 흙길이고 가장자리엔 나가가 있다.

 

프레아 코에는 없었던 나가가 최초로 등장한다. 앙코르 와트의 나가와 달리 바콩의 나가는7개 머리가 각각 떨어져 있다. 길게 뻗은 몸통도 난간 위가 아닌 땅바닥에 배를 붙이고 있다. 초기 형태의 나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난간 위에 몸통이 올라가고 떨어진 머리도 배광이 있는 모양으로 붙는다. 참배로로 들어서면 양옆으로 지붕이 무너진 직사각형 건물이 보인다. 라이브러리다.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제사에 쓰이는 도구를 보관하고 사제들이 대기하던 장소로 보는 게 맞다.

 

 

인드라바르만 1세는 먼저(879년) 조상을 기리는 프레아 코 사원을 만들어 시바 신에게 바쳤다. 이어서 2년 후인 881년 선왕이 만든 사원을 사암으로 개축해 시바 신에게 바쳤다. 이번엔 조상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으면 들어갈 무덤으로 만들었다.

 

바콩은 초기 사원으로는 거대하다. 큰 규모로 짓기 위해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태의 기단을 쌓았다. 4개의 기단에 중앙탑이 있는 단을 하나 더 올렸다. 중앙탑의 지붕은 연꽃 모양이다. 4개의 세계(대륙)와 우주의 중심 메루 산을 표현했다.

 

후대 모든 사원의 기초가 된 산 모양의 신전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신을 모시는 곳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어 자신이 신과 동격체임을 보여주었다. 이집트 왕이 태양신의 화신이라면 크메르 왕은 시바, 비슈누, 부처의 화신이다. 살아서는 신전이고 죽어서는 신전이자 무덤이다.

 

인드라바르만 1세는 이집트 왕과 피라미드에 대한 정보를 누군가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머리가 비상한 누군가 피라미드와 같은 생각을 말했을 수도 있다. 왕은 자기 무덤을 피라미드처럼 높이 쌓아올려 하늘에 닿고 싶어했고, 죽어서도 죽지 않으려 신이 되고자 했으며, 신이 되어서는 지상에 머무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삶에 대한 집착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다. 권력, 재산, 명예를 모두 가진 자는 삶에 더욱 집착한다. 영웅도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은 두려웠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삶을 간결하게 정리하는 유언을 남겼고, 아들은 유언을 지켰다. 영웅의 시대는 이어졌다.

 

첫째, 조상을 위한 신전을 지어라.

둘째, 자신이 죽어서 돌아갈 신전을 지어라.

셋째, 백성을 위하여 저수지와 수로를 만들어라.

 

인드라바르만의 아들 야소바르만 1세(재위 889~910)는 어릴 적부터 왕위계승자로 철저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를 닮아 용맹하고 머리가 좋아 전략전술의 귀재로 알려졌다. 그는 아버지가 있던 수도 롤루오스를 떠나 적의 공격을 잘 방어할 수 있는 프놈 바켕에 성채를 구축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새 도시인 야소다라푸라(Yasodharapura)를 건설했다.

 

막강한 참(베트남) 왕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했고 영토를 확장했다. 왕국에는 보석, 코끼리, 황금, 황소 등 공물로 넘쳐났다. 안으로는 야소다라푸라 동쪽에 인공 저수지 동 바라이를 지어 백성들이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했다. 프놈 바켕에서 저수지까지는 도로를 닦아 주민들이 왕래하기 편하게 했다. 그리고 부왕이 축조한 인드라타타카 저수지 가운데에 롤레이(Lolei) 사원을 건립했다.

 

프놈 바켕(Phnom Bakheng)은 앙코르 와트를 지나 앙코르 톰 남문에 다다르기 전 왼쪽에 있다. 앙코르 중심 지역에 있는 유일한 산이다. 산의 높이는 67미터에 불과하지만 빙글빙글 돌아서 오르기 때문에 20분 이상 걸린다. 예전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직선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었지만 산림 훼손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산에 오르면 평지가 나타나고 프놈 바켕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저기 돌들이 흩어져 있다. 세월의 무게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했을 때는 프놈 바켕에도 해자가 있었다고 한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사원을 바라보고 있는 난디다.

 

 

가파른 5개의 단층을 오르면 사원의 정상이다. 정상에는 108개의 탑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5개 탑만 남아있다. 가운데 중앙탑이 있고 주변에 4개 탑이 있다. 중앙탑의 문은 사방으로 열려 있다. 세상의 중심이다. 다른 사원들의 탑은 대개 신이 오는 방향인 동쪽으로만 문이 열려 있고 나머지는 가짜 문이다. 중앙탑 안에는 시바를 상징하는 링가(Linga)가 있다. 링가는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는 남근상이다.

 

1100년 전에 깔린 돌계단에 앉아 일몰을 바라본다. 영화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포드는 석양이 질 무렵 쌍안경으로 사방을 둘러보다 앙코르 톰 남문의 사면상을 보았다. 그때처럼 하늘은 흐리다. 흐린 하늘과 구름 사이로 언뜻 보이는 불그스레한 태양이 주위를 물들인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에 더위가 한발 물러선다. 어둠이 서서히 드리우자 사방으로 펼쳐진 원시림에 고적함이 스며든다.

 

바콩 사원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중앙탑을 보며 떠올랐던 듀크 엘링턴의 ‘연꽃(Lotus Blossom)’ 재즈 연주가 가슴속에서 꽁꽁거린다. 헤집고 나온 피아노 선율은 사원의 탑들을 차례차례 찾아가 잊혔던 과거를 불러내고는 다시 놓아준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계단을 반음씩 두드리며 내려가더니 이번에는 사원 주변에 무너진 돌들에 여운을 남긴다. 이윽고 열대 밀림의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남아 있는 폐허가 애잔하다.

 

 

크메르 왕국의 세번째 왕인 아버지와 네번째 왕인 그의 아들은 왕국이 번성하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 아버지 인드라바르만 1세는 프레아 코와 바콩을 지어 롤루오스 시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아들 야소바르만1세는 수도를 앙코르로 옮겨 프놈 바켕을 중심으로 한 사원 도시 야소다라푸라를 만들었다. 아들이 만든 사원 도시가 앙코르 톰의 롤모델이다.

 

아버지는 최초의 인공 저수지인 인트라타타카를 만들고, 아들은 동 바라이를 만들어 홍수를 막고 일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만다라 구조를 갖춘 사원을 만들어 후대 사원의 표본이 됐고, 신전과 무덤을 같이 두어 신왕사상을 전파했다. 아버지의 유언을 스승으로 삼아 아들은 청출어람했다.

 

글쓴이=조성진 아세안익스프레스 객원기자 csji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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