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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글로발로 앙코르5] 크메르 예술의 보석 '반테이 스레이'

힌두신화 속 인물들이 돋을 새김 생생...앙드레 말로의 데바타는 '동양의 모나리자'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초에 세워진 세계 최대의 석조사원이다. 30여 년간 매일 2만 5000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지어졌다. 앙코르 와트는 400여 년 동안 밀림 속에 방치되었다 1860년 우연히 발견된 세계 7대불가사의 중 하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벗어나자 앙코르 와트에도 예전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관광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지난해는 전년 비해 약 50여만명이 늘어났다.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조성진 기자와 함께 '왕국의 사원' 앙코르 와트 ‘시간여행’을 떠난다.  풍경에 새로운 숨길을 불어넣는 그의 '역사인문기행'에 동참해보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 붉은 색과 돋을새김으로 생동감 넘치는 크메르 예술의 보석 

 

“황톳길에 선연한 / 핏자욱 핏자욱 따라 / 나는 간다 애비야 / 네가 죽었고 / 지금은 검은 해만 타는 곳 /” (김지하 ‘황톳길’)

 

10년 전 5월 가족과 함께 전북 고창 고부를 시작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전적지를 순례했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로 농민 봉기의 도화선이 된 만석보에서, 농민군이 관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황토현까지 걸었다. 이젠 기억에서 거의 지워졌지만 황토밭과 황톳길의 붉은 색은 해남의 고구마밭과 무안의 양파밭과 더불어 선연하게 남아 있다.

 

그 선연한 붉은 색을 톤레삽 호수로 가는 길에서 보고, 반테이 스레이(반테아이 스레이, Banteay Srei)에서 다시 봤다. 반테이 스레이는 석양 노을처럼 붉어서 아름답고, 자홍처럼 붉어서 가슴이 뛴다.

 

시엠립 시내에서 약 35킬로미터, 엉덩이는 아프고 소음과 매연으로 귀와 코가 고생이지만 한 시간을 타고 갈 툭툭이 기다려진다. 툭툭을 기다리는 건지, 툭툭 기사를 기다리는 건지, 툭툭을 타고 가는 시간이 좋은 건지, 툭툭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좋은 건지, 목적지가 기다려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툭툭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사원은 크지 않아 돌아보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문에서 들어와 천천히 관람하다 한적한 담장 그늘에 앉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서문으로 나가는데까지 2시간 남짓이다. 붉은 색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고 싶다면 늦은 오후 일정으로 잡아 일몰까지 보고 오는 게 좋다.

 

멀리 온 김에 툭툭이로 30분 더 가서 크발 스피언(끄발 스피언, Kbal Spean)까지 보고 왔다. 시엠립 강의 시원지이자, 바위에 새겨진 부조와 흐르는 물 아래 새겨진1000개의 링가로 유명하다. 산행길은 넉넉잡아 왕복으로 3시간 걸린다.

 

 

반테이 스레이는 원래 위대한 군주를 뜻하는 트리브바나마헤스바라였다. 그러나 사원이 아담하고 아름다워 ‘여인의 성채’를 뜻하는 반테이 스레이로 불리게 됐다.

 

주차장과 들어가는 입구, 식당, 기념품 판매소와 화장실까지 깨끗하게 정렬되어 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유적지와 유적지 주변, 도로까지 잘 정비한 덕분에 앙코르의 모든 유적지가 훨씬 깔끔해졌다.

 

반테이 스레이는 왕실 사원이 아니라 개인 사원이다. 라젠드라바르만 2세(재위 944~968) 때 왕족 출신으로 대사제를 지낸 야즈나바라하(Yajnavaraha)가 지었다. 후임 왕인 자야바르만 5세의 스승(왕사)도 했다.

 

라테라이트 적색 사암으로 지어진 사원의 둘레는 400미터다. 중앙 사원의 건축물들은 가로세로 40미터 범위 안에 밀집돼 있다. ‘지구 상에 가장 아름다운 신전’, ‘크메르 예술의 보석’으로 극찬을 받는 사원이다.

 

■ 힌두신화 속 인물들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부조예술의 극치

 

입구를 지나 황톳길을 따라 걸어가면 동쪽 고푸라(탑문, Gopura)가 나온다. 탑문부터 왕실 사원과 다르다. 앙코르 톰의 고푸라보다 훨씬 작다. 문의 상부는 삼각형 모양의 프론톤(Fronton) 구조다. 상인방(린텔 또는 린델, Lintel, Lindel)이 한 차원 더 발전한 형태로 반테이 스레이에서 처음 적용됐다.

 

프론톤은 기능적인 측면보다 장식성이 더 높다. 돋을새김과 박공으로 정교하면서 화려하다. 동쪽 탑문의 프론톤에는 인드라가 머리가 셋 달린 코끼리인 아이라바타를 타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동쪽 탑문에 들어서면 70미터 길이의 참배로가 뻗어 있다. 참배로 양 옆으로는 석등이 길 따라 나란히 세워져 있다. 석등은 연꽃 모양 같기도 하고 링가 모양 같기도 하다. 참배로 옆 정원에는 돌기둥과 벽, 문틀이 여기 저기 서 있다. 다른 사원과 달리 건물이 많이 있었던 흔적이다.   

 

 

참배로 중간의 왼쪽에는 난디를 탄 시바와 그의 아내 파르바티(Parvati)의 조각이 있다. 파르바티의 얼굴은 사라지고 없다. 오른쪽으로는 비슈누의 화신인 나라심하가 히란야카시프의 가슴을 찢어 죽이는 조각이 있다. 동 메본의 상인방에는 나라심하가 허벅지에 올려놓고 죽이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히란야카시프는 인간, 천신, 동물에게는 죽지 않는 불사이지만 비슈누가 인간이면서 동물인, 즉 인간도 아니면서 동물도 아닌 나라심하로 변해 죽여 버린다.

 

 

 

참배로가 끝나는 곳의 오른쪽에는 땅바닥에 프론톤이 세워져 있다. 참배로에 있는 건축물 중 하나에서 떨어진 모양이다. 거기에는 인도의 신화인 ‘라마야마’가 새겨져 있다.

 

힌두교의 많은 신화 중 앙코르 유적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신화는 창세신화 ‘우유바다 젓기’, 건국신화 ‘마하바라타’, 권선징악의 신화 ‘라마야나’이다. 앙코르 와트 서쪽 회랑에도 ‘라마야나’ 가 새겨져 있다.

 

라마야나는 라마 왕의 일대기란 뜻이다. 반테이 쓰레이 프론톤에 새겨진 것은 악마 왕 라바나가 라마의 아내 시타를 납치하는 장면이다. 나중에 라마는 원숭이 왕 수그리바와 하누만의 도움으로 시타를 다시 데려온다.

 

앙코르 와트 서쪽 회랑에는 하누만과 신들이 내려와 랑카에서 전쟁을 벌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 하누만이 종족을 거느리고 내려와 함께 싸우는 장면이 익살스럽고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미술작품이나 조각물은 보통 예술가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서서히 변화하다 축적되어 새로운 사조가 나타난다. 동쪽 탑문을 지나 참배로까지 걸으면서 본 프론톤 조각은 그 이전의 조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이전의 상인방이 긴 직사각형이어서 표현하는데 제한적이었지만, 삼각형으로 커지면서 구도의 변화가 생기고 새겨야 할 그림들이 많아졌다. 자칫하면 밋밋해질 수 있는 것을 나무판에 조각칼로 한 땀 한 땀 깊게 새겨 넣은 듯 세밀하고 도드라진다. 사암의 색깔도 바뀌었다.

 

이전 상인방에는 회색 사암을 썼지만, 반테이 스레이는 붉은색이다. 붉은색이 입체감과 어울려 신화 속 인물들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다. 입체감은 중앙신전탑 지붕의 조각에서 절정을 이룬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이중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문에는 시바가 새겨져 있고 두 번째 문에는 가루다가 비슈누의 아내인 락슈미에게 양쪽에서 성수를 뿌리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락슈미는 ‘우유바다 젓기’에서 연꽃을 들고 태어났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보호자이며, 부귀와 행복을 관장하고, 사랑의 신 카마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프론톤에 새겨진 조각으로 봤을 때 반테이 스레이는 시바신과 비슈누신 모두를 섬기는 사원이다. 반테이 스레이가 ‘여인의 성채’로 부르는 것은 아름답기 때문이지만, 시바의 아내와 비슈누의 아내가 새겨져 있는 영향도 있지 않을까.

 

 

사원 문을 지나치면 바로 앞에 보이는 게 중앙 신전이다. 중앙신전은 정면에서 봤을 때 세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앞부분은 회랑 형태이고 뒷부분은 탑이다. 앞부분 양 옆으로는 라이브러리가 각각 있고, 뒷부분 중앙탑 양 옆으로도 탑이 각각 있다. 다 해서 3개의 신전 탑과 2개의 라이브러리다.

 

3과 5는 크메르 왕국의 건축물에 많이 반영된 숫자다. 3은 구조상으로 안정적이어서 그랬을 거고, 5는 힌두신화에서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과 주위의 4개 봉오리를 상징한 것이다. 프레아 코 앞면의 3개의 탑과 뒷면 3개의 탑, 바콩의 5단 기단, 프놈 바켕 중앙 신전의 5개 탑, 동 메본과 프레 룹의 3단의 기단과 5개의 탑, 앙코르 와트 중앙 신전의 5개 탑 등이 그렇다.

 

■ 불꽃처럼 강렬하지만 연꽃처럼 우아한 프론톤

 

중앙 신전을 비롯해 모든 건축물의 크기나 부조가 거대하거나 높지 않다. 계단과 기단의 높이가 낮아 눈높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조금만 떨어져도 한 눈에 들어와 더욱 품고 싶다. 고운 입자로 된 강렬한 붉은 색의 사암에 새겨진 조각은 정교하고 화려하여 자칫하면 사치로 치부될 수 것을 곡선미의 부드러움과 우아함으로 상계시켰다. 프론톤의 모양도 불꽃처럼 강렬하지만 연꽃처럼 우아하다. 진짜 명품은 브랜드를 드러내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반테이 스레이가 그 격이다.

 

 

중앙 신전에 들어가기 위한 탑문의 프론톤에는 춤을 추는 시바(혹은 비슈누나 하리하라라고도 한다)가 새겨져 있는데 개다리춤 자세가 시바를 친근하게 만든다. 파괴의 신이지만 춤과 음악을 즐긴다.

 

 

중앙 신전 오른쪽에 있는 라이브러리의 프론톤에는 ‘마하바라타’ 신화가 새겨져 있다. 비슈누의 여덟 번째 화신 크리슈나에 관련한 것이다.

 

삼촌인 깜사 왕의 죽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강물에 버려진 크리슈나와 형 발라라마는 어느 마을 유목민에게 키워졌다. 그 마을은 인드라에게 큰 제사를 지내며 생활했다. 크리슈나가 청년이 되자 제를 지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제를 지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큰 산에 불을 질러 다음 해의 목초지를 준비했는데 인드라는 화가 나서 비를 내려 그들을 방해했다. 그러자 크리슈나와 발라라마가 하늘에 화살을 가득 쏴 비가 내리지 못하게 했다.

 

 

중앙 신전 왼쪽의 라이브리리 프론톤에는 ‘라마야나’ 신화에 나오는 시바를 찬양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머리가 10개 달리고 팔이 20개인 라바나는 시바를 추종해서 시바가 있는 카일라스 산을 찾아갔다. 입구에 있는 원숭이 수문장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자 때려 죽였다.

 

원숭이 수문장은 죽기 전에 “너는 원숭이 손에 죽게 될거야’”라는 저주를 내렸다. 그러자 라바나는 카일라스 산을 들어서 흔들어버렸다. 놀란 짐승들은 도망가고 파르바티는 남편 시바의 품에 안겼다. 화가 난 시바는 라바나를 발끝으로 눌러 꼼짝 못하게 했다. 라바나는 시바를 찬양하는 노래를 천년간 부르고서 겨우 풀려났다.

 

 

앙드레 말로가 반테이 스레이에 간 것은 1923년이다. 소설 <왕도로 가는 길>에 묘사된 반테이 스레이는 폐허 상태다. “세 개의 탑이 무너져 높이 2미터쯤 남아 있었”고 “큰 탑의 삼면 벽이 아직 서 있는 걸 보면 한쪽 벽만 무너진 모양이었다. 그 남은 벽들도 산더미처럼 쌓인 돌무더기 맨 끝에 우뚝 서 있었다.”

 

사원은 1931년부터 6년간 복원됐다. 돌과 흙을 모두 해체하고 지반을 다져 다시 사원을 세우는 아나스틸로시스 공법을 사용해 성공적으로 복원했다. 이후 앙코르의 유적들은 아나스틸로시스 공법으로 복원했다.

 

■ 은밀하면서 고요하고, 어색하지만 아련하면서 당당한 미소, '동양의 모나리자' 데바타

 

중앙 신전 벽에는 남신 수문장 드바라팔라가 조각돼 있고 양 옆, 즉 동쪽 입구에서 중앙신전을 보고 오른쪽인 북쪽 신전과 왼쪽인 남쪽 신전에는 데바타가 조각돼 있다.

 

신전마다 벽의 4면에 2명씩 총 8명의 데바타가 있다. 중앙신전을 빼고 2개의 신전이니까 모두 16명이다. 앙드레 말로가 도굴하려고 했던 데바타는 북쪽 신전의 안쪽인 동남 모퉁이에 있다. 출입이 금지돼 있어 보기가 어렵다. 16명의 데바타 모두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얼굴 모양과 표정은 조금씩 다르다.

 

 

데바타는 돋을 새김과 정교한 조각으로 다른 사원의 데바타보다 입체감이 뚜렷하고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근거린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한 안치환이 데바타를 보면 자기 노래가 역시 맞았다고 할 것이다.

 

상의는 입지 않아 잘 익은 사과 모양의 커다란 가슴이 탐스럽게 드러나고, 몸매의 굴곡은 가느다란 허리를 타고 내려오다 완만하게 솟은 배 부분에서 다람쥐 꼬리모양의 댕기처럼 생긴 액세서리가 배꼽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목에는 3개의 황금 링을 하고, 황금으로 세공된 목걸이는 쇄골과 볼록한 가슴 사이에 박쥐 날개 모양으로 달려 있다. 팔뚝에도 황금 세공의 팔찌를, 손목과 발목에는 금으로 된 링을 각각 2개씩 차고 있다. 다리 선이 보일듯한 치마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면서도, 발목 위까지 얌전하게 내려와 있다.

 

 

레게 머리에 꽃 장식을 하고 부끄러운 듯 다소곳이 숙인 고개, 은밀하면서 고요하고, 어색하지만 아련하면서 당당한 미소가 얼굴 전체에 퍼져 있다. '동양의 모나리자'라고 할 만하다.

 

한 팔은 부드럽게 올려 손등이 살짝 가슴을 닿으면서 하늘로 향해 있는데, 손에 들고 있는 연꽃은 줄기가 목 뒤를 타고 반대편 어깨로 나와 팔이 굽혀지는 부분까지 내려와 있다. 다른 한 팔은 길게 내려뜨리다 손목에서 비스듬히 들어올려 연꽃이 직사각형의 구도를 살짝 뚫고 나온다.

 

하늘을 향해 들어올린 손과 연꽃, 땅을 향해 내려뜨린 손과 연꽃은 꽃잎의 피고 짐과 같아, 태어남과 죽음, 기쁨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중생을 위로하는 부처와 같다. 앙드레 말로는  데바타에게서 탄트라의 에로티시즘을 느꼈을 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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