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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태국 ‘오렌지혁명, 전진당 해산-피타 10년간 정치금지

헌법재판소 ‘‘왕실모독죄 개정’ 추진은 입헌군주제 전복 시도’ 만장일치 결정

 

총선에서 ‘오렌지혁명’을 일으키며 제1당을 만든 피타 림짜른랏(Pita Limjaroenrat, 43) 전 대표가 앞으로 10년간 정치 활동을 금지당했다.

 

태국 헌법재판소는 7일 제1 야당 ‘전진당(Move Forward, MFP)’이 “태국 왕실에 대한 명예 훼손을 금지하는 법 개정을 제안한 것은 헌법 위반”이라며 해산 명령을 내렸다.

 

소위 ‘왕실모독죄’ 법 개정 추진은 “태국의 입헌군주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로 간주된다며 만장일치로 해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진당은 2023년 지난해 5월 14일 총선에서 ‘왕실모독죄 개정’ 등 파격 공약을 기적적으로 승리, 원내 제1당이 되었다. 하지만 정권 장악에 실패한 데 이어 해산 명령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오렌지혁명’을 일으킨 40대 피타 림짜른랏 전 전진당 대표와 차이타왓 뚤라톤 현 전진당 대표 등 전진당 전-현직 지도부 11명 등은 이미 재판의 판결로 10년간 정치 활동이 불가능해졌다.

 

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월 31일 헌법재판소가 “군주제를 비판으로부터 보호하는 법률 112조 개정 주장을 중단해야 한다”고 판결하자 전진당에 대해 탄원서를 제출했다. 112조 위반 시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이번 판결은 1월 ‘전진당 총선 공약은 군주제를 전복하려는 시도이므로 위헌’이라고 판단한 연장선으로 전진당 해산명령으로 이어졌다. 2020년 왕실을 비판한 ‘퓨처포워드당’에 대해 헌재가 내린 해산명령과 오버랩될 정도로 매우 흡사한 상황이다.

 

 

■ ‘슈퍼스타’ 피타 주도 ‘오렌지 혁명’...총 500석 중 151석 차지 돌풍

 

전진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MZ세대로부터의 열렬한 지지로 ‘오렌지 혁명’을 이끌어냈다. 총 500석 중 151석을 차지했다. 태국 수도 방콕에서 전진당은 33석 중 32석을 석권하면서 최다 의석을 차지하면서 제1당에 올랐다.

 

이 ‘기적 같은’ 돌풍의 중심에는 ‘왕실모독죄 법 개정’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국왕을 신성시하는 태국에서 보수 진영은 ‘왕실모독죄’를 불가침 영역으로 방어벽을 쳤다. 이에 맞서 개혁 세력은 이 법의 개정이나 폐지를 요구했다.

 

피타 대표는 태국 민주화의 상징인 명문 탐마삿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와 메사추사츠공과대(MIT)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특히 ‘국왕모독죄’ 개정 공약과 미남자이자 아이를 홀로 키우는 모습 등으로 MZ세대로부터 열렬히 지지를 받았다.

 

그는 지난해 태국의 최고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걸출한 ‘슈퍼스타’ 피타의 등장해 태국 정치판이 요동쳤지만,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상원 250석을 차지하고 있는 군부의 반대로 피타 전 대표는 결국 총리 자리에 앉지 못했다. 또 탁신 전 총리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Paetongtarn Shinawatra, 36)이 이끌던 제2당이었던 프아타이당(Pheu Thai Party)도 친군부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전진당을 견제했다.

 

상황은 매우 역설적이었다. 젊은 층의 전폭적 지지로 총선에서 제1당으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 피타는 총리 선출 실패에 이어 헌법재판소의 ‘유죄’로 정당해산과 10년간 선거 금지로 정치인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당이 2030세대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는 만큼, 분노한 청년들이 ‘선거’ 등 어떤 방식으로든 거센 반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국책연구소 여론조사에서 피타 전 대표를 차기 총리로 지지한다는 의견이 46.9%에 달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조사에서도 줄곧 1위에 올랐다.

 

 

■ 전진당 소속 의원들, 60일 이내에 다른 정당 소속 옮기면 의원직 유지

 

해산명령을 받은 전진당 소속 의원들은 60일 이내에 다른 정당으로 소속을 옮기면 의원직은 유지할 수 있다. 군소 정당인 틴까카오차오윌라이당(TKCV)으로 당적을 옮길 계획으로 알려졌다.

 

전진당의 하원 의석은 현재 총선시에 비해 3석이 줄어 148석이지만 여전히 원내 제1당이었다. 이번 판결로 정치 활동을 금지당한 11명 중 5명이 의석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4석을 가진 여당 프아타이당보다 여전히 숫자가 많다.

 

태국 미디어 네이션 8일(현지시간)자에 따르면, 피타 대표는 전날 밤 기자회견에서 “전진당은 당이 없어져도 정신은 이어나가겠다. 우리는 반격에 나서 지금부터 모든 선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여러분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곧 보궐선거와 지방선거가 열리는데 나는 시민으로서 합법적으로 선거 운동을 도울 수 있다. 2027년 총선까지 이 에너지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진당 해산 판결을 두고 국제사회의 비판이 이어졌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각각 성명을 내 이번 결정이 태국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미 국무부는 태국 헌법재판소가 진보정당 해산을 명령하고 지도자 11명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파르한 하크 유엔사무총장 부대변인도 “태국 다원주의와 민주주의, 결사와 표현의 기본적 자유의 후퇴”라고 밝혔다.

 

태국 헌법재판소는 2006년 이후 34개 정당을 해산했다. 태국에서 불가침 영역인 왕실을 대표하는 보수적 현 사회를 유지하는 주요 수호자 같은 존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중심엔 군부가 있고, 정치에 적극적인 군부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오는 14일에는 현직 세타 타위신 총리 해임 청원에 대한 헌재 판단까지 예고돼 있다. 세타 총리는 과거 ‘뇌물 스캔들’로 징역형을 받은 인사를 장관으로 기용했다가 위헌 논란에 휘말려 해임 위기에 놓이게 됐다.

 

제1 야당 해산 결정에 이어 현직 총리까지 해임되면 태국 정국은 ‘시계제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총리가 낙마하면 이들 정당 사이에 균열이 발생해 연립정부가 흔들리고 내각이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전진당과 퓨처포워드당]

 

이번 전진당 해산명령은 2020년의 상황과 거의 흡사하다. 당시 총선에서 예상외의 성과를 보인 ‘퓨처 포워드 당’은 헌재에서 해산당하며 공중분해되었다.

 

이후 퓨처포워드당 주축 인물들은 전진당에 합류해 퓨처포워드당의 후속 정당으로 탈바꿈시켰다. 지난해 총선에서 151석으로 제1당으로 뛰어올랐다. 퓨처포워드당 의석수(76석)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세력을 키웠다. 피타 전 대표와 시리까냐 부대표는 퓨처포워드당 해산 당시 핵심 인물이었다.

 

4년 전 퓨처 포워드 당 해산 판결은 대규모 거리 시위로 이어졌다. 청년 학생 운동가들이 주도한 이 시위는 6개월간 이어졌다.

 

"정치인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영광이다....오늘 정치적인 길이 닫혀서 국회의원 대표로써 여러분들께 작별인사를 한다. 하지만 나는 다시 시민으로 돌아오고 싶다...세계 각국의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태국 정치체제에 진입할 차세대 정치인들을 만들기 위해 모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이 여전히 원한다면, 나는 돌아올 것이다"

-피타 전 대표의 페이스북

 

[ 왕실모독법은?]

 

태국 형법 112조는 왕실을 모독하면 1건당 최소 3년에서 최대 15년까지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법 위반자를 고발할 수 있다. 지난해 태국 정부가 왕실 모욕 혐의로 최소 258명을 재판에 넘겼다.

 

왕실모독죄는 태국 왕실과 군부 등이 반대파를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재 최고 징역 50년 형까지 선고 가능하다.

 

전진당은 왕실모독죄의 형량을 최대 1년 또는 30만 바트 벌금형(약 1150만원)으로 낮추고 고소·고발도 왕실 관청만 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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