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불패의 ‘탁신신화’가 빛을 바랬다. 2000년대 이후 태국 정치는 “탁신 중심으로 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탁신 전 수상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탁신계 정당은 2001년 이후 선거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모든 선거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14일 치러진 태국 총선은 '대이변'이 일어났다. 주인공은 2021년 10월 정계에 입문한 ‘정치 신인’인 탁신의 막내딸의 압승이 아니라 하버드대 출신 개혁당 미남 대표였다.
방콕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개표율 96% 기준 개혁성향 전진당(까우끌라이당, Move Forward Party, MFP)는 하원 500석 중 151석을 차지해 1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제1야당 프아타이당(For Thais Party)의 같은 시각 예상 의석은 141석으로 2위다.
전진당의 ‘파란’은 왕실모독죄 폐지 등 개혁적인 공약을 내세워 젊은이와 도시 거주 유권자에게 어필한 것이 작용했다. 탁신당 계열 프아타이당은 2001년 이후 선거에서 처음으로 1당 자리를 내놨다.
이 같은 '대이변'은 피타 림짜른랏(Pita Limjaroenrat, 42) 대표의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도 큰 몫을 차지했다. 피타 대표는 기업인 출신의 엘리트 정치인이다. 태국 민주화의 상징인 명문 탐마삿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와 메사추사츠공과대(MIT)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남'와 엘리트 이미지로 이미 그는 총리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위에 오르며 돌풍을 예고했다. 결과도 인기 수직상승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며 1위 당이 되었다. 'MZ세대의 반란'이라는 말이 나왔다.
총선이 임박한 4월 말까지 차기 총리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해왔던 탁신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Paetongtarn Shinawatra, 36)의 ‘프아타이당은 2위로 밀렸다. 아버지 탁신과 고모 잉락에 이어 총리 자리를 노리는 '30대 정치 신인' 패통탄은 쓴맛을 봤다.
2014년 군부 쿠데타 이후 두 번째로 시행된 태국 총선에서 ‘민주 진영’ 야권 2개 정당이 하원 500석 중 300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확보했지만 정권 교체 여부는 연립정부 구성 결과에 달렸다.
군부가 2017년 개정한 헌법 때문에 연정 없이 총리가 되려면 한 당이 상-하원 전체 750명 중 과반인 376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총선으로 뽑는 500명의 의원의 하원이 구성되더라도 차기 총리 선출을 위해선 군부가 임명한 상원의원 250명과 공동으로 합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야당이 군부가 임명한 상원의 지지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야권이 승리했지만 어느 정당도 집권에 필요한 의석은 확보하지 못해 연립이 정권교체의 최대 변수가 되었다. 야당이 연정하면 정권을 교체할 수 있으나 두 당의 연정은 미지수다.
중도 성향이지만 군부 중심의 현 연립정부에 참여한 아누틴 찬위라꾼 부총리 겸 보건장관이 이끄는 품차이타이당은 70석을 얻었다. 앞으로 연정 구성 과정에서 품차이타이당(PPRP)의 선택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품차이타이당이 상원을 설득하면서 프아타이당과 연정을 성사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나온 바 있다.
빨랑프랏차당과 2014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2019년 총선에서 연임에 성공한 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가 이끄는 루엄타이쌍찻당(RTSC) 등 두 친(親)군부 정당에는 각각 40석, 36석으로 예상된다. 이 점도 포인트의 하나다. 군부 진영이 126석만 확보하면 정권을 잡을 수 있다. 새 총리는 7월 말에 선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