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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新加坡 통신<12> 총선서 야당 깜짝 약진, 싱가포르 미래에 '약'

노동당 단독 10석 깜짝 역사적 반전, 아시아에 필요한 건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

지난 주에 만난 두 분이나 싱가포르와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더라.  특히 싱가포르 선거에도 관심이 많아진 사람이 늘어난 것 같아 조금은 놀랐다. 그래서 7월 11일 발표된 선거결과도 분석할 겸 싱가포르의 정치 현안에 얘기를 해야할 듯 싶다.

 

1. 야심이 큰 도시국가 '싱가포르'

 

카르타고와 아테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역사상 성공한 도시국가들은 적지 않다. 암스테르담이나 베네치아도 이 같은 맥락이고, 근현대 아시아에서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대표적일듯 싶다.

 

대개 도시국가는 지리적 이점에 기반을 두고 인근의 무역상권을 휘어잡으며 막대한 수익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러다가 세계정세가 뒤바뀌며 몰락하는 스토리를 반복하게 된다.

 

1990년도 이전엔 평범한 중계무역항에 불과했던 싱가포르는 중국과 일본 한국 등 동북아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배경으로 하고, 전통적인 자원의 보고 아세안의 중심항구로서의 이점을 발판삼아 빠르게 아시아 4룡, 아세안 최대 부국으로 성장한다.

 

싱가포르를 키운 건 특유의 "엘리티시즘"이 밑바탕이 되었다. 자국의 상위 1% 인재를 세계최고학부로 유학을 보내고, 다시 이들을 고액연봉의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시스템을 안착시키며, 청렴하면서도 유능하게 공공부문 개혁을 지속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여담이지만, 싱가포르 총리의 연봉은 23억원 정도, 장차관 연봉은 거진 20억 원에 육박한다. 세계 초일류 기업의 임원진의 수준에 미치진 못하지만, 특유의 낮은 소득세로 인해, 다른 나라 30억원 연봉에 필적할 만하니 이 나라가 엘리트 공무원을 대접하는 수준과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레 이들 지도자들이 꿈꾸는 싱가포르 비전도 크고, 쎄고, 야심만만하다. 아세안은 이들에게 너무 작은 무대다.

 

2. 2020 선거결과...노동당의 약진

 

지난 7월 10일에 치러진 선거는 조금은 급작스럽게 결정이 됐다. 선거날은 6월 23일에 결정이 되었고, 여야는 6월 30일 서둘러 후보자를 확정해서, 단 일주일만 선거운동을 치르고 속전속결로 승부를 가누게 된 것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90여 개의 의석 가운데 지난 65년간 10석 이상을 야당에게 양보한 적이 없는 PAP(인민행동당)의 완벽한 승리의 연속이었다. 2015년 선거 결과는 83대 6이었다. 늘상 싱가포르 의회는 PAP가 90% 이상을 지배해 왔던 것이다.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이 90%의 벽을 무너뜨리고 10석 이상을 얻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이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Workers' Party)은 단독으로 10석을 거두는 깜짝 반전을 이뤄냈다. 1958년에 창립된 정통 제1야당으로 역사에 남을 만한 성과를 거둬낸 것이다. 노동당은 전통야당 답게 중산층 이하 서민과, 로컬피플의 권익을 대변한다. 인종적으로는 당연히 화인(華人)도 많지만, 인도계가 상대적으로 많은 게 특징이다.


야당이 선전하기 위해선 뚜렷한 제2 야당도 필요하다. 이번 선거에선 Dr. 탄쳉복이 이끄는 PSP가 그 역할을 해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PAP에서 갈라진 정당으로, 이번엔 당선자를 하나도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출마한 선거구에서 안정적으로 40% 득표율을 올리며 집권 PAP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종합 집계는 83 대 10, 특표율은 PAP가 61.2% 이고, 야당은 모두 더해 38.8%를 기록했다. 의석수로는 절대안정권이지만, 득표율은 슬슬 위험신호가 감지된다. 정치평론가들은 60% 정도가 PAP 정치독점의 마지노선으로 잡는 분위기다. 싱가포르도 민주주의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3. 성장에 성장, 또 성장...그 이후는?


1965년 독립 이후 싱가포르 정치가 안정적으로 굴러온 이유는 말 그대로 끊임없는 성장 정책이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처음엔 임가공, 선박정비에서 출발해, 1980년대에는 중계무역으로 성장의 기틀을 만들고 1990년대에는 선물시장과 자본시장으로 확대, 2000년대에는 석유가공 및 상품시장의 확대, 2010년 이후에는 도박과 관광산업 등을 연이어, 단 하나도 실패하지 않고 연달아 성공시키며 1인당 GDP 6만 달러의 신화를 기록한 것이다. 만일 중간에 단 한번이라도 삐걱댔다면, PAP의 집권기반은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60년 가까이 쉬지않고 성장을 했음에도 싱가포르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은 여전히 산적해 있는 게 문제다.

 

특히 지나치게 커진 빈부격차, 부자들의 해외이주, 시민권자와 비시민권자의 갈등, 노예제에 비견되는 해외노동자, 낮은 출산율과 빠른 고령화, 또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로 진입하고자 하는 수많은 아세안 부자들, 그리고 이런 극심한 경쟁 속에서 의욕을 잃어버린 평범한 싱가포르 시민권자들...

 

집값은 치솟고 물가도 오르지만,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는 양극화 속에, 코로나19 사태가 커지며 유권자들의 우려가 치솟으며 이 같은 선거결과가 나온 것이다.


4. 언론자유, 어떻게 높일 것인가?


코발트빛 하늘에 녹색의 수풀이 우거진 밝은 이미지의 싱가포르가 안고 있는 최대 숙제는 사실 조금은 우중충한 #언론자유의 문제다.

 

사실 싱가포르의 미디어는 수준이 굉장히 높아서 시청자 입장에선 별 불만이 없다. 글로벌한 시각과 빠르고 정확한 정보, 나름의 객관적 시각까지 흠 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언론사의 수가 너무 적다. 1개의 국영회사가 최대의 방송사와 신문사를 독점하고, 이것이 80% 이상의 언로를 장악하고 있다(작은 언론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예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는데, 필자는 지난 3년간 싱가포르 미디어에서 제1, 제2 야당의 대표와 관련된 기사를 단 한번도 우연히 접했던 적이 없을 정도니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국정감사 방송에서 노동당 대표 얼굴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고 "아, 저 사람이 야당 대표구나" 하고 놀랬던 적이 있다.

 

반면, 필자가 살던 지역구 PAP 의원은, 심지어 우리 아파트 춘절 행사에도 찾아와 사진을 찍어줄 정도였다(선거법상 현직 의원 특혜일 것이다). 거리 간판에 사진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정치적으로 야당과 언론의 활동이 크게 제약되어 있는 것이다.


이토록 싱가포르가 상당히 고지식할 정도로 PAP 중심의 폐쇄적인 사회시스템을 꾸려가는 이유는 역시나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 퇴출의 트라우마와 이후에 지속된 냉전체제, 그리고 말레이시아 땅에 화교가 터를 잡고 정착했던, 이른바 역사적인 갈등 요인 때문이다.

 

리콴유 중심의 화교 정권이 무너질 경우 혹시나, 만에 하나, 영토나 역사문제에 휩싸일 경우, 그 후폭풍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이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지만 이미 독립후 55년이 지나고, 충분히 강한 사회를 건설했음에도 아직은 마음에 여유가 없어 보인다. 여전히 폐쇄적이고, 양보없는 권력을 추구하니 말이다.

 


5. 홍콩보안법 이후...그 대안은?


홍콩보안법이 본격 작동을 하기 시작했으니, 아시아 각국의 관심은 "홍콩 이후"의 새로운 자본, 외환 시장의 허브가 어디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필자도 최근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현재까지 드러난 후보지는 1)홍콩 2)하이난다오 3)싱가포르 4) 타이완 등이다.


대략 느낌이 오시겠지만, 아시아의 금융 허브의 필수 조건으로는 화교네트워크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중화권 자본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국제항구를 끼고 있되, 중국어와 영어가 통해야하고 특히 자본주의 시장에 걸맞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적합하다.

 

이 관점에서 싱가포르는 정말이지 유력한 후보가 된다. 하지만 6개월 전에 필자가 쓴 논지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언론의 자유 대목도 자본시장에 너무도 중요하다. 문제는 싱가포르는 이 대목이 너무 취약하다. 때문에 최근 많은 이들이 차이잉원의 타이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타이완으로 직접 이주를 택하는 홍콩인들도 적지 않다.


물론 이 홍콩 이후 시대의 상황은 단기간에 결판이 나는 속전속결식의 경쟁은 아니다. 홍콩의 침체와 맞물려 아주 서서히 20~50년 이상의 장기 레이스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타이완의 민진당이 국민당과 로컬의 목소리를 잘 결합하고, 안보를 튼튼히 하여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그 틈바구니에서 중화권 민주주의 시스템의 보루로서 생존해 낸다면, 필자 생각은 타이완이 그 대권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고 본다. 


싱가포르 역시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마도 싱가포르 새로운 비전은 "홍콩의 금융시장 지위를 이어받자"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역시 그러기 위해서는 야당의 입지가 더 강화되고, 적어도 언론의 자유에 기반한 공정한 플랫폼에서 여야가 성장중심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가치모색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성장만으론 절대로 싱가포르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2020 싱가포르 선거에서의 노동당의 약진은 절대로 싱가포르에 해가 될 이유가 없다. 분명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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